'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35) 무미건조

[우리 말에 마음쓰기 367] '따분하다-재미없다-메마르다'를 잊어버리는 우리들

등록 2008.07.10 10:52수정 2008.07.1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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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화학을 하는 사람은 무미건조

.. “그래서 화학을 하는 사람은 무미건조한 거예요. 궁금아, 너는 너무 화학에 빠지지 마라. 증류수 같은 사람이 될라” 어머니는 힐끗 아버지 쪽을 보면서 말씀하셨다. “알았어, 알았어. 증류수보다 초정리의 물 같은 사람이 되지 뭐. 모두가 거리낌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될게” ..  <요네야마 마사노부/현종오 옮김-이온 인터뷰>(아카데미서적,1997) 51쪽


“무미 건조한 거예요”는 “무미 건조하다고요”로 다듬습니다. “초정리의 물 같은”은 “초정리 물 같은”으로 손질하고, ‘대(對)할’은 ‘마주할’이나 ‘어울릴’로 손질합니다.

 ┌ 무미건조(無味乾燥) : 재미나 멋이 없이 메마름
 ├ 무미(無味)
 │  (1) 맛이 없다
 │  (2) 재미가 없다
 ├ 건조(乾燥)
 │  (1) 말라서 습기가 없음
 │  (2) 물기나 습기가 말라서 없어짐. 또는 물기나 습기를 말려서 없앰
 │  (3) 분위기, 정신, 표현, 환경 따위가 여유나 윤기 없이 딱딱하고 버성김
 │
 ├ 재미없다 / 지루하다 / 심심하다 / 따분하다 / 갑갑하다
 ├ 판에 박다 / 틀에 박다 / 그게 그거다 / 맛이 없다 / 꽉 막히다
 ├ 말라비틀어지다
 ├ 볼 것이 없다 / 들을 것이 없다
 └ …

어느 한 사람이 메마르면 그이 둘레에 있는 사람은 갑갑합니다. 숨이 막히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재미있을 수 없다지만, 너무 따분하거나 지루하면,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품만 합니다.

한 가지 일을 하든 두 가지 일을 하든, 판에 박히거나 틀에 박히지 않도록 마음을 쏟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마다 한 번 주어진 소중한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음을 헤아린다면, 이 한 번 주어진 삶을 좀더 알뜰하게, 더욱 알차게, 더 신나게 돌볼 수 있어야지 싶어요.

ㄴ. 무미건조하고 딱딱할


.. 대법원 판사까지, 말하자면 육법전서하고만 씨름을 하며 생활해 와 무미건조하고 딱딱할 거라고 짐작한 것은 잘못이었다 ..  <남재희-언론ㆍ정치 풍속사>(민음사,2004) 231쪽

“생활(生活)해 와”는 ‘살아와’로 다듬고, “딱딱할 거라고 짐작(斟酌한 것은”은 “딱딱하리라는 생각은”으로 다듬습니다. ‘육법전서’에서 ‘육법’은 법률 낱말이기는 한데, ‘여섯법’으로 손질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여섯 가지 법’이라 해도 되고요.

 ┌ 무미건조(無味乾燥) : 재미나 멋이 없이 메마름
 │    - 무미건조한 문장 / 똑같고 단조로워 무미건조하다 /
 │      생명이 없는 기계와 마주 서서 무미건조하고 단조한 기계적 작업
 │
 ├ 무미건조하고 딱딱할 거라고
 │→ 재미없고 딱딱하리라고
 │→ 메마르고 딱딱하리라고
 │→ 할 말도 없고 딱딱하리라고
 └ …

재미가 없으면 ‘재미없다’고 하면 됩니다. 메말랐다면 ‘메마르다’고 하면 됩니다. 멋이 없으면 ‘멋없다’고 하거나 ‘멋대가리없다’고 하면 됩니다.

보기글을 보면 ‘무미건조’ 뒤에 ‘딱딱할’이라 적는데, 딱딱하다고 느끼니 ‘딱딱하다’고 말했습니다.

 ┌ 재미없다 / 따분하다 / 지루하다 / 심심하다 / 멋없다
 └ 메마르다 / 팍팍하다

‘무미하군’ 하고 말하거나 ‘건조하군’ 하고 말한다면, 이와 같은 말을 듣는 쪽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헤아려 봅니다. ‘무미’라는 말이나 ‘건조’라는 말이 얼마나 우리 가슴에 와닿을 만한 말이 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빨래를 말리는 일을 ‘건조(乾燥)’라고도 합니다만, 우리들은 ‘말리다’라는 토박이말 한 마디로 넉넉합니다. 그러나, 말리는 일을 ‘말린다’고 하지 못하면서 ‘건조’라는 말을 붙이는 버릇이 스며드는 가운데 ‘맛없다(멋없다)’가 아닌 ‘無味’가 쓰이고, 이 ‘무미’를 앞에 붙이는 ‘무미건조’가 자꾸만 쓰이는구나 싶습니다.

ㄷ. 무미건조하고 황당무계하게만 여겨진

.. 그건 그렇다고 하고, 청년 시절부터 무미건조하고 황당무계하게만 여겨진 성서를 이제부터 독자와 함께 읽어 보고자 한다 ..  <엔도오 슈우사쿠/윤현 옮김-예수 지하철을 타다>(세광공사,1981) 7쪽

“청년(靑年) 시절(時節)부터”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젊을 때부터”나 “젊은 날부터”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황당무계(荒唐無稽)하게’는 ‘터무니없게’나 ‘참이 아니게’나 ‘말도 안 되게’쯤으로 고쳐 주고, “독자(讀者)와 함께”는 “여러분과 함께”로 고쳐 봅니다.

 ┌ 무미건조하고 황당무계하게만 여겨진
 │
 │→ 지루하고 터무니없게만 여겨진
 │→ 따분하고 어처구니없게만 여겨진
 │→ 재미없고 쓸데없게만 여겨진
 │→ 하품만 나오고 거짓말로만 여겨진
 │→ 졸립고 말도 안 된다고만 여겨진
 └ …

재미가 없으면 하품이 나옵니다. 하품이 나오면 졸립습니다. 졸리면 잠이 옵니다. 아무리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책이라 해도, 재미가 없다면 몇 장 펼치지도 않았는데 입이 쩍 벌어지도록 하품을 하고 눈물도 찔끔 나다가는 꾸벅꾸벅 졸면서 머리가 책상에 콩 하고 박고는 코도 골며 잠들곤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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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우리말 #우리 말 #사자성어 #상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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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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