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1)

― ‘아이들의 구매력’, ‘아이들의 현실’, ‘이들의 모습’ 다듬기

등록 2008.07.10 20:05수정 2008.07.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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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아이들의 구매력이 높아지다

 

.. 광고에서도 어린 아이들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 ..  《안드레아 브라운/배인섭 옮김-소비에 중독된 아이들》(미래의창,2002) 44쪽

 

“…… 인식(認識)하고 이를 철저(徹底)하게 이용(利用)하고 있다” 같은 말은 “…… 깨닫고 이를 남김없이 써먹고 있다”나 “…… 느끼고 이를 빈틈없이 살려쓰고 있다”쯤으로 다듬어 봅니다.

 

 ┌ 아이들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있음을

 │

 │→ 아이들이 물건 살 힘이 커지고 있음을

 │→ 아이들이 물건 살 돈이 많아지고(늘어나고) 있음을

 │→ 아이들이 바라는 물건을 얼마든지 살 수 있음을

 └ …

 

우리 말투가 아닌 일본 말투 “(무엇)의 (무엇)”입니다만, 신문과 방송과 책에서 이런 말을 아주 자주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말투로 적든 일본 말투로 적든 무슨 상관이냐 하는 마음이 널리 퍼진 탓인지 모릅니다. 말 한 마디 바르고 살뜰히 쓰면서 자기 마음도 바르고 살뜰히 가꿀 수 있을 테지만, 말과 삶을 따로 떼어놓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지 모릅니다. 입으로는, 또 지식으로는 ‘낮은 자리’에 서야 좋다고는 알고 있지만 몸으로는 따라가지 않기에 그러는지 모르고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은 그저 옛말이라고만 느끼거나 아예 생각도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ㄴ. 아이들의 현실

 

.. 이것은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  《황선열-따져 읽는 어린이책》(청동거울,2005) 35쪽

 

“아이들의 현실”에서는 ‘-의’를 덜고 “아이들 현실”로 적어 봅니다. 그냥 ‘-의’를 넣어서 적고픈 분들도 많을 텐데, 몇 가지 말을 함께 놓고 생각해 봅시다.

 

 ┌(1) 하멜 표류기 / 골목안 풍경 / 마님 난봉가 / 티벳 전사 / 그랑빌 우화

 └(2) 소비사회의 극복 / 공장의 불빛 / 러시아의 한인들 / 민중의 세계사

 

제 책상 둘레에 있는 책 몇 가지 이름을 적어 봅니다. 여기서 (1)는 ‘-의’를 사이에 넣지 않은 책이름이고, (2)은 ‘-의’를 넣은 책이름입니다. 잘 살펴보셔요. 둘이 얼마나 다른가요. (1)에 적은 책이름 사이에 ‘-의’를 넣고 싶으신지요 (2)에 나온 책이름에서 ‘-의’를 빼 보면 어떨까요.

 

“소비사회 이겨내기”, “공장 불빛”, “러시아 한인들”, “민중 세계사”처럼 적어도 좋습니다. 아니, 이렇게 적으면 한결 낫습니다. “약소국 그렌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라는 책도 보이는데, “힘없는 나라 그렌드 펜윅이 뉴욕을 치다”쯤으로 적어 주면 더 낫겠지요. “녹색 세계사”라는 책도 있습니다. 이 책은 “녹색의 세계사”라고 이름붙이지 않았어요.

 

우리들은 토씨 ‘-의’를 구태여 안 쓰면서도, 또는 덜 쓰면서도 말과 글을 알뜰히 펼쳐 왔습니다. 우리 말 문화는 ‘-의’ 없는 말 문화, 또는 ‘-의’에 매이지 않는 말 문화입니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도 “이것은 우리 아이들 현실이다” 또는 “이것은 우리 아이들 참모습이다”로 적어 주면 넉넉합니다.

 

ㄷ. 활동하는 이들의 모습

 

.. 이미 사라져 버린 자신의 권력을 되찾기 위해 활동하는 이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  《발자크/지수희 옮김-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서해문집,1999) 28쪽

 

‘되찾다’라는 말을 써서 반갑습니다. 다만 ‘위(爲)하다’를 넣어서 “되찾기 위해”가 되어버리니 아쉬워요. ‘되찾으려고’나 ‘되찾을 생각으로’쯤으로 다듬으면 좋겠습니다. ‘활동(活動)하는’은 ‘움직이는-일하는-뛰는’으로 손봅니다.

 

 ┌ 활동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다

 │

 │→ 활동하는 이들을 보다

 │→ 활동하는 모습을 보다

 └ …

 

보기글에서 문제는 토씨 ‘-의’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토씨 ‘-의’만 덜어서 “활동하는 이들 모습”이라고 적어도 됩니다. “활동하는 모습”으로 줄여도 돼요. 어느 쪽으로 해도 괜찮으니, 자기 말투나 느낌에 와닿는 쪽으로 골라서 쓰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10 20:0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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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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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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