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3)

― ‘그의 일터’ 다듬기 + ‘그녀의 일터’ 생각

등록 2008.07.15 11:58수정 2008.07.1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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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포여중ㆍ고를 지나 해안도로로 막 접어들면, 제법 가파른 언덕 아래에 그의 일터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낭만의 안개가 한 올 한 올 옷을 벗은 뒤면 그의 작업장은 그만 삭막해지고 만다 ..  <박영희(글)-사라져 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삶이보이는창, 2007) 78쪽

 

‘해안도로(海岸道路)’라는 낱말이 두루 쓰이는데, ‘바닷가길’로 고쳐 주면 한결 낫습니다. “낭만의 안개”는 “낭만이라는 안개”로 고치고, ‘삭막(索莫)해지고’는 ‘쓸쓸해지고’나 ‘썰렁해지고’로 고쳐 줍니다.

 

보기글 앞쪽을 보면 “그의 일터”라 했으나, 뒤쪽에는 “그의 작업장(作業場)”이라고 나옵니다. ‘일터’는 무엇이고, ‘작업장’은 무엇일까요. 두 곳은 어떻게 다를까요.

 

 ┌ 그의 일터가

 │

 │→ 그 사람 일터가

 │→ 그 사람이 일하는 곳이

 │→ 그가 일하는 곳이

 │→ 그가 일하는 터전이

 └ …

 

‘내’가 잘 모르는 ‘누군가’를 찾아간다고 할 때에, 으레 ‘그/그녀’라는 대이름씨를 쓰곤 합니다. 잘 모르니까 ‘아무개 씨’라는 이름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대이름씨 ‘그/그녀’를 넣곤 합니다.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서 가리킨다고 할 때에, ‘그/그녀’처럼 쓰는 일은 옳다고 하는 분이 있으나, 우리가 쓰는 말에서 ‘나/너/우리/당신’ 어느 말도 ‘남성이나 여성에 따라 나누어서 쓰지 않’습니다. 이런 흐름 그대로, 우리들이 써 온 대이름씨 ‘그’는 남성한테도 쓰고 여성한테도 쓰는 말입니다. ‘그’는 남성만 가리키고 ‘그녀’는 여성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따로 여성을 나누어 가리킬 까닭이 없이 ‘그’로 써야 올바른 우리 말이요 말법이요 말씀씀이요 말씨입니다.

 

 ┌ 그의 작업장은

 │

 │→ 그 사람 일터는

 │→ 그 사람이 일하는 곳은

 │→ 그가 일하는 곳은

 │→ 그가 일하는 자리는

 └ …

 

그렇지만, 요즈음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보는 어린이책에서조차 ‘그녀’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씁니다. 어머니도 ‘그녀’고 할머니도 ‘그녀’며 누나도 ‘그녀’이고 나어린 동생마저 ‘그녀’입니다. 짐승을 다루는 동화책을 보면, 암탉이나 암뱀장어나 암여우한테까지도 ‘그녀’라는 대이름씨를 붙이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초등학교에 들지 않은 아이들한테까지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서, 이 아이들은 우리 말이 아직 익숙하지 않고 우리 문화를 몸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그때에 일찌감치 ‘she = 그녀’라고 배워 버립니다.

 

 ┌ 그녀의 일터 (x)

 │

 ├ 그가 몸담은 일터 (o)

 ├ 그가 일하는 곳 (o)

 └ 아무개가 일하는 곳 (o)

 

‘일터’라는 낱말을 잘 살려서 쓰는 일은 반갑습니다. 그러나 ‘일터’ 앞에 붙이는 대이름씨가 알맞지 못하다면 슬픕니다. 여기에다가 토씨 ‘-의’까지 붙여서 얄궂게 된 글을 더 얄궂게 깎아내리면 서글픕니다.

 

 ┌ 그의 일터는 이곳이다 (x)

 ├ 그는 이곳이 일터이다 (o)

 └ 그 사람은 이곳에서 일한다 (o)

 

낱말 ‘일터’를 그대로 두면서 대이름씨를 알맞춤하게 붙이는 길이 있습니다. 굳이 ‘일터’라는 낱말을 살려쓰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일한다”고 풀어내거나 “일하는 곳”처럼 풀어내어도 괜찮습니다.

 

낱말 하나만 잘 살린다고 하여 잘 쓴 글이 아닙니다. 말투를 매끄럽게 잘 이어 나간다고 잘 쓴 글이 아닙니다. 일제식민지 찌꺼기말을 섞지 않았다고 잘 쓴 글이 아닙니다. 외국말을 자랑삼아 끼워넣지 않았다고 잘 쓴 글이 아닙니다. 어느 한 가지를 잘 북돋우는 일에도 마음을 기울이는 한편, 이 모두가 골고루 잘 엮이도록 알뜰히 추슬러 주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15 11:5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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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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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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