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거북이' 영국병원, '불친절토끼' 한국병원?

[해외리포트 : NHS 60주년②] 영국 무상 의료 기관과 한국 병원 체험 비교

등록 2008.08.08 14:56수정 2008.08.0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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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전 국민에게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NHS 체계를 갖춘 나라로 유명하다. 지난 7월, NHS는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국가가 국민의 의료를 책임지고 세금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의 경험이 한국에 전하는 교훈은 무엇인지 전용호 통신원이 3차례에 걸쳐 짚는다. 1편에서는 NHS의 역사와 의미를 짚고, 2편에서는 영국 의료 시스템을 겪어본 경험을 한국에서 겪은 의료 체계와 비교,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3편에서는 영국의 경험에서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을 전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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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시의 지역병원인 요크 병원(York Hospital) 모습. ⓒ 전용호


몸이 약해서인지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NHS를 비교적 자주 이용했다. 이를 통해 NHS가 어떻게 작동되고 장단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객의 눈으로 나름대로 판단해볼 기회가 있었다. 특히, 최근 아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한국과는 다른 의료시스템을 확실히 경험했다. 내가 겪은 NHS를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NHS의 시스템을 간략히 살펴보자.

환자의 처지에서 단순화하면, NHS 조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지역마다 있는 소규모의 GP(일반의)가 있다. 일단 몸이 이상하다고 느끼면 GP에게 가는데 GP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제반 상담과 진단을 비롯해 예방 접종, 비만 탈출 및 금연 지원 등을 한다. GP는 병을 진단하는 1차 의료 기관으로 이 곳을 통해 병의 경중을 판단한다. GP 의사가 더 자세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환자를 2차 의료기관으로 '의뢰(Referral)'한다.

2차 의료 기관은 한국 기준으로 보면 종합병원으로 치면 된다. 본격적인 진단과 치료를 위한 의료 기구와 병동 등을 갖추고 있다. 영국에서는 '지역 병원'이라고 하는데 내가 사는 요크시와 그 주변에는 몇 개의 지역 병원이 있다.

마지막으로, 응급 시스템이 있다.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전화 911을 통해 앰뷸런스 등을 호출할 수 있고, 이 응급시스템은 지역병원과 바로 연결된다.

그러면 지금부터 내가 경험한 NHS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 경험이 전체를 대표하는 데 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히면서, 내가 느낀 NHS의 장단점을 중심으로 소개하겠다.

[에피소드 1] 한밤 중에 NHS 독방에 갇히다(?)


약 2년 전의 일이다. 당시 4살이던 첫째 딸이 한밤중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굴렀다. 연어를 사다가 터키식으로 케밥 요리를 했는데 이게 탈이 난 모양이었다. 웬만해서는 아프다고 하지 않던 애가 어찌나 크게 울던지 겁이 덜컥 났다. 거기에다 아이는 그 며칠 전부터 수두 증세가 있었고 고열까지 났다. 나는 "괜찮다"고, 기다리자고 했지만 아내가 "이렇게 아프다고 하는 애가 아니다"라며 빨리 병원에 가자고 했다.

911로 바로 전화했고 앰뷸런스 차가 5분 만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이는 응급차에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멀쩡해지더니, 신기한 눈초리로 "엄마 이건 뭐야?"라며 응급차 내부 기구들을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지역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수속도 없이 바로 소변 검사 등 각종 검사가 시작됐다. 딸아이는 언제 아팠냐는 듯 상태가 더 좋아지고 씩씩해졌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담당의사에게 "이제 아기가 회복됐으니 집에 가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의사는 "아기가 괜찮아 보이지만 소아과 전문의가 올 것이니 기다려 보자"고 말했다. 새벽 네 시쯤에 호출을 받은 소아가 전문의가 와서는 "아이의 소변을 배양해보고 있다"며 "결과가 내일쯤 나올 것이니 결과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집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독방에 갇힌(?) 우리 가족은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부스스한 얼굴의 우리에게 간호사가 와서는 "많이 피곤하죠? 차 마실래요, 커피 마실래요?"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병원에서 왜 환자가 아닌 보호자 식사까지 걱정하는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경험에 머쓱했다. 그런데 간호사가 갓 구운 토스트와 따뜻한 차를 아침식사로 가져오는 것 아닌가. 오전 10시쯤이 되어서 배양 결과는 아무런 문제없이 나왔고 우리는 드디어 풀려났다(?).

너무나도 친절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아이를 위해 필요한 검사를 꼼꼼히 하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 대형 병원 의사들의 그 고압적인 자세와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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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S의 앰뷸런스 응급 서비스는 2차병원과 직접 연결된다. 한 지역의 응급 서비스팀 모습. ⓒ www.cscneonatal.nhs.uk


[에피스드 2] 목 디스크 검사하는 데 석 달을 기다리다

작년 겨울의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뒷목으로 해서 오른쪽 어깨와 팔이 저릴 정도로 아팠다. 주저 없이 대학교에 있는 GP에 갔다. GP 의사가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해서 자세가 좋지 않은 것 같다"며 "물리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물리 치료를 받으러 가니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2주가 지나도 연락이 없어 다시 GP로 갔다.

"빨리 치료해 달라"고 담당의사가 물리 치료 기관으로 연락했고, 나는 바로 물리 치료를 받았다. 이 곳에서는 신기하게도 침을 놓았다. 영국에서 침을 맞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한국에서 받는 물리 치료와 비슷하게 안마기 등을 이용해서 물리 치료를 했다. 그렇게 몇번 치료를 받자, 목 상태가 좋아졌다. 

그러다가, 올해 한국에 잠시 나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목과 어깨가 다시 아픈 것이 아닌가. 아픔을 참을 수 없어서 병원에 갔다. 그런데 한국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목뼈 상태가 안 좋다"며 바로 "MRI를 찍자"고 했다. 그래서 약 30만원 정도를 들여서 MRI 촬영을 했다.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전형적인 목 디스크로 상태가 더 나빠지면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순간 화가 났다. '영국에서 제대로 검사해서 원인을 제대로 파악했으면 이렇지는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영국에서 치료받기 위해 MRI 결과물을 시디로 담아서 가져왔다. 한국 의사 소견서와 함께 GP에 제출했더니 담당 의사는 "자세한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며 가까운 도시인 리즈에 의뢰하겠다고 했다. 그게 지난 5월의 일이다. 리즈의 어느 병원으로 언제 오라고 할지, 기다렸지만 연락이 도무지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인 7월 중순에야 '8월 중순에 리즈의 모 병원으로 오라'는 편지가 왔다. 기다리는 동안에 상태가 좋아졌으니 망정이지, 기다리다 정말 목 빠지는 줄 알았다.

이 경험은 두 가지 문제와 연관되는 것 같다. 먼저 한국에서는 의사들이 필요하지 않은 검사도 강요(?)하는 등 '과잉 진료'가 문제지만 영국에선 반대로 '과소 진료'의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영국에서도 환자의 질병이 중하다고 생각하면 각종 검사를 착착 진행시키지만, 그렇지 않으면 되도록 검사를 적게 하고 자연스럽게 치유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다. 예산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불필요한 검사는 최소화하자는 속내다. 행위별 수가제인 한국과 달리, NHS에서는 GP별로 정부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는 식으로 계약을 맺는다는 점에서(금액은 GP별로 담당하는 환자 수 등을 고려해 정해진다) GP 의사들의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초기 진단에서 GP 의사가 질병의 존재 여부 및 경중 등을 제대로 진단해내지 못하면 자칫 병을 키울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은 물론 한국에도 존재하지만, 영국에만 있었다면 자칫 목 디스크인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던 내 경험에 비춰보면 그런 가능성은 영국 쪽이 조금 더 높은 것 같다(영국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현재 시스템을 바꿔가고 있다).

또 목 디스크 관련 정밀 검사를 받기 위해 무려 3개월이나 기다려야 하는 것이 한국과는 너무 다르다. 한국에서도 종합병원에서 MRI나 CT 촬영 등을 위해 보름이나 한 달 정도 대기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지만 영국의 대기 기간은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기 시간을 줄이려고 영국 정부는 어떤 병이든 의뢰 시점부터 수술 등 본격적인 치료까지 18주(4개월 반) 내에 끝내도록 정책적으로 노력하면서 대기 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에 비해서 대기 시간은 여전히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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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S에서 입원 환자에게 제공하는 점심 식사. ⓒ 전용호



[에피소드 3]
가정으로 직접 방문하는 조산사와 간호사
 

지난 7월, 둘째 아이를 영국에서 낳았다. NHS는 출산과 관련해 '조산사'가 출산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담당하는 등 한국과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임신이 확인되면 담당 조산사가 지정되는데, 이 조산사가 산모와 접촉하면서 출산 전후의 정기적인 검증 및 상담을 지속적으로 한다. 그리고 출산 때에도 지역병원의 당직 조산사가 직접 업무를 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산모가 특이한 이상증세를 보일 경우에는 관련 분야의 의사를 연결시켜 진단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산사가 모든 것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둘째 아이를 얻는 과정에서 느낀 점은 조산사들이 임신 중에 실시하는 주별 검사에 대해 매우 상세히 설명하고 안내한다는 점이다. 아내는 "기형아 여부를 검사하는 트리플 검사와 양수검사 결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낙태 같은 윤리적인 부분까지 자세히 설명해줬다"며 "피검사를 할 경우에도 이 검사가 무엇이며 왜 하는지 자세히 친절하게 안내해서 한국에서 첫 아이를 낳을 때보다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담당 조산사의 휴대전화 번호와 종합병원의 관련 번호를 산모에게 알려줘서 24시간 동안 언제라도 궁금하거나 불안한 내용이 있으면 문의할 수 있게 한 시스템도 산모의 불안을 해소시켜준다.

이번에 느낀 가장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출산 후의 '가정방문 시스템'이다. 산모가 출산 후 퇴원하면 그 다음날 바로 담당 조산사가 집을 직접 방문, 신생아와 산모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불편 사항 등을 상담해준다. 그 이후에도 약 2~3주 동안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아이의 체중을 측정하고 혈우증 여부를 검사하는 등 산모 및 아이와 관련된 각종 조사 및 영양 관리 등에 대한 종합적인 상담을 해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모유 수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젖을 먹이는 데 효과적인 자세와 노하우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아내의 담당 조산사이던 샤론 프라트는 "임산과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과 관련 법적인 사항까지 교육을 받았다"며 "과거에는 간호사로 경력을 쌓은 후에 별도로 조산사와 관련된 대학 과정을 3년 동안 이수해야 했지만 요즘은 바로 전문적으로 조산사와 관련된 코스를 3년간 이수해서 조산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아기가 태어난 지 2주가 지나면 방문보건관이 집에 온다. 방문보건관은 주로 간호사들로서 아기의 건강에 초점을 맞추고 예방 접종과 위생·발육 상태 등을 점검한다. 방문 기간은 아기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6개월 정도를 기본으로 하며, 건강에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그 기간이 더 길어진다. 이들은 아기를 돌보는 데 산모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산모의 '산후 우울증'에 대해서도 조언해준다.

이처럼, 영국에서는 모성 보호 차원에서 가정에 직접 조산사와 간호사가 방문해서 산모와 아기를 위해 제반 검사를 하고 불만, 어려움 등을 들어주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처럼 출산 후에 힘든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전문가들이 와서 꼼꼼하고 친절하게 아기와 산모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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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의 집을 방문해서 상담 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산사 샤론. ⓒ 전용호


거북이 같아 보이는 NHS, 국민 위하는 측면에서는 토끼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NHS에는 한국에 비해 우수한 점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있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측면인 오랜 대기 시간과 과소 진료의 문제점 등은 관련 의료 예산을 늘리고 업무 관행을 혁신하면서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대기 시간과 친절 정도를 중심으로 보면 영국 병원은 '친절한 거북이', 한국 병원은 '불친절한 토끼'에 가깝다. 그렇지만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하는 측면에서 보면 영국 병원은 '친절한 토끼', 한국 병원은 '불친절한 거북'으로 비유될 만하다.

NHS가 영국인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까닭은 얼핏 보면 거북이 같아 보이지만, 이용자인 국민을 위하는 측면에서는 한국에 비해 훨씬 재빠른 토끼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NHS #무상 의료 #공공 의료 #과잉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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