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과실 교통사고 내고 11년간 국가유공자
보훈급여 등 22억, 지위 박탈해도 환수 못해

[국감] 보훈처, 과도한 '제 식구 감싸기'...감사원 재심사 후에도 일부는 지위 유지

등록 2008.10.02 10:17수정 2008.10.0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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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가보훈처 전경. ⓒ 선대식


익산지방보훈청에 근무하던 김아무개씨는 지난 1990년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신호를 위반하고 불법 좌회전을 하다가 직진하던 택시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7년이 지난 1997년 김씨는 "출장을 가던 중이었다"는 이유로 '공무로 인한 부상(공상)' 판정을 받고 국가유공자인 공상공무원으로 등록됐다.

그러나 출장 목적지인 부안보훈회관 관계자들은 당시 김씨의 방문 사실을 몰랐고, 당시 근무하던 여직원도 김씨의 공무출장 사실을 모른다고 진술, 그가 출장을 갔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 게다가 김씨는 본인의 과실로 교통사고를 냈고, 무고한 시민을 다치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김씨는 2008년 2월 국가유공자 지위를 박탈당했다.

하지만 지난 11년 동안 김씨는 국가유공자로서의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예우법)'에 따르면, 공상공무원 본인은 물론 자녀는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고, 공무원채용시험에서도 가산점(본인은 10%, 자녀는 5%)을 받는다. 또한 의료지원 전액무료, 대부지원, 주택 우선분양, 장애용 차량 LPG 지원 등의 혜택도 주어진다.

보훈처 출신 국가유공자 92명 비율

문제는 이들의 국가유공자 지위가 박탈됐다고 해서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된 보상금 등 각종 혜택을 국가가 되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공상공무원으로 등록됐다가 취소된 것은 본인들의 귀책사유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보상금 등을) 환수할 수 없다"는 게 국가보훈처의 입장이다.

국가보훈처 소속으로 공휴일에 동호인끼리 등산하다가 다리를 다친 사람이나 법규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야기하고 사람을 다치게 한 가해자 등을 국가유공자로 둔갑시켜놓고 길게는 20년 이상 특혜를 받게 했으면서도,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조경태 민주당 의원이 국가보훈처로부터 제출받아 1일 공개한 '2007년 11월 국가보훈처 직원 중 국가유공자 92명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드러났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해 11월 보훈처에 대한 감사에서 정일권 전 보훈처 차장이 자격을 허위로 꾸며 국가유공자 자격을 획득한 행위를 밝혀낸 바 있다.

특히 감사원은 당시 보훈처 직원들의 국가유공자 비율이 다른 부처 공무원의 30배에 이른다는 사실과 함께 보훈처 전·현직 직원 유공자 92명이 부실한 보훈 심사 등에 의해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사실을 발견했다. 감사원은 이 가운데 허위 지정 의혹이 큰 35명에 대해 보훈처에 재심사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보훈처는 지난 2월 재심사를 실시했고, 24명에 대해서 유공자 지정을 완전히 취소하고, 5명은 유공자에서 '지원 대상'으로 자격을 격하시켰다. 그러나 6명에 대해서는 '현행유지' 판정을 내려, 유공자 지위를 유지시켰다. 특히 보훈처는 '제 식구 챙기기'라는 여론의 질타를 우려해 이러한 재심사 결과를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불법유턴 부상도 심사 통과... 경위서 진위도 의심

조경태 의원이 공개한 '감사원 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중과실 등 본인과실로 교통사고를 야기하고 부상을 입은 뒤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사례가 김씨를 포함해 모두 7건에 달했다.

순천지방보훈청 공무원인 김아무개씨는 지난 1995년 출근중 빙판길에 승용차가 미끄러지면서 언덕 아래로 추락했다. 그러나 김씨는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고, 신체검사에서도 '경미한 기능장애' 판정을 받아 결국 유공자로 등록됐다.

1989년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중앙선을 넘어 불법 유턴하다가 직진하던 차량과 충돌, 부상을 입은 전주지방보훈청 직원 양아무개씨도 비슷한 경우다.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할 때 제출하는 부상경위서의 진위 여부가 의심이 되는 직원도 여럿 있었다.

광주보훈청에서 근무한 조아무개씨는 1988년 청사 계단에서 실족해 다리를 삐었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당시 조씨는 부상경위서에서 '상담차 내청한 민원인 이아무개씨를 전송하던 중 청사 현관 앞 계단에서 실족해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민원인 이씨에게 확인한 결과, 조씨를 만난 날은 평일이 아닌 휴일이었으며, 다친 장소도 현관 앞 계단이 아닌 2층과 1층 사이 계단이었다. 또한 조씨는 넘어져서 다리를 주무르다가 이상이 없어 곧 귀가했다고 한다. 이씨의 진술이 나오자, 조씨도 당초 부상경위서 내용과 다르게 이씨의 말대로 진술을 번복했다.

결국 보훈처는 재심사를 통해 조씨를 국가유공자인 '공상공무원'에서 한 단계 아래인 '지원 공상공무원'으로 격하시켰다. 무려 18년이 지난, 때늦은 조치인 셈이다.

동호인 행사에서 등산갔다 넘어져도 국가유공자

예우법에 따르면 공상공무원이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한 때는 소속기관장이 발급하는 '국가유공자 요건관련 사실 확인서'를 확인한 후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4월 5일 공휴일에 등산동호인 행사로 산행을 하다가 실족해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는 류아무개(서울청)씨가 국가유공자로 등록하는 데 이런 규정은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당시 소속기관장인 서울지방보훈청장이 "동호인 행사는 공무가 아니므로 공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사실 확인서'를 발급했는데도, 류씨는 이를 무시하고 같은 해 6월 9일 국가유공자로 등록했다.

뿐만 아니라 류씨가 서울지방보훈청장의 공상불승인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결과 법원에서도 "동호인 행사는 공무가 아니다"는 최종 판결(2005.12.27)이 있었는데도, 류씨는 국가유공자에서 배제되지 않고, 여전히 혜택을 받았다.

숙직근무 후 다음날 안면통증 진단을 받은 나아무개(보훈처)씨, 약 1년간 민원 상담전화를 받으면서 장시간 헤드셋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소음성 난청 진단을 받은 이아무개(남부지청)씨, 서류철을 들어올리다 '추간판탈출증(디스크)' 부상을 입었다는 이아무개씨 등도 공상공무원 판정을 받았다. 이처럼 15명의 직원이 '공상 불승인자'이면서도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수년간 유공자로서의 혜택을 받았다.

또한 소속기관장에게 요건확인 신청조차 하지 않은 채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직원도 최아무개(대구지방보훈청)씨를 비롯해 11명에 달했다.

감사원이 재심사를 요구한 35명 중 보훈처로부터 '현행 유지' 판정을 받고, 국가유공자 지위를 유지한 6명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목포지방보훈청에서 근무하는 류아무개씨는 퇴근중 교통사고를 당해 슬관절 및 요추염좌 부상을 입고, 지난 2002년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시속 20km로 달려온 스쿠터가 시속 10km로 진행중인 승용차를 충격하였다는데, 허리를 다칠 정도로 큰 충격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신체검사 기록에도 요추부분 부상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3세 때 발병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며 재심사를 요구했다.

"서류철 먼지를 많이 마셔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가 된 송아무개(순천지방보훈청)씨에 대해서도, 감사원은 "폐결핵은 이미 22년 전 완치되었고, 폐결핵 후유증은 보훈심사위원회에서 공무 관련성을 불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훈처는 감사원의 지적을 무시한 채 류씨와 송씨 등 6명에 대해 '공상공무원 유지' 판정을 내린 것이다.

감사원 "공상군경은 퇴직 후, 공상공무원은 재직중에도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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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군 60주년 국군의 날인 1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건국 60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를 마친뒤 6.25 참전 유공자들이 시가행진을 벌이자 시민들이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 유성호


앞서 감사원은 보훈처에 전·현직 직원 유공자에 대한 재심사를 요구하면서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생명을 담보하는 군경에 비해 공무원의 직무는 위험도, 육체적 난이도, 조직상의 통제 등이 적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어 "따라서 국가유공자 제도의 본래 취지에 맞게 국가를 위해 공헌하다 부상당한 애국자가 유공자가 될 수 있도록 공무원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심사기준을 마련, 적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감사원은 또 "공상군경은 퇴직 후에 국가유공자로 등록할 수 있는데 비해 공상공무원은 재직중에도 등록,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근무환경이 열악한 군경보다 오히려 수혜가 더 많은 등 형평성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재조사를 벌인 보훈처 전·현직 직원 유공자 92명이 받은 보훈 혜택은 다음과 같다.

- 24명이 자녀 등 36명을 고용명령에 의하여 취업
- 49명이 자녀 등 91명의 대학교 학자금 7억6500만원 수혜
- 45명이 189회에 걸쳐 10억2800만원의 생활자금 등 대부지원 수혜
- 6명이 보훈급여(간호수당 등) 4억2900만원 수령

조경태 의원은 "국가유공자 심사는 보훈처 직원들이 맡고 있다"며 "다른 공무원에 비해 보훈처 직원의 국가유공자 비율이 30배가 넘는다는 것은 제 식구들에게 느슨한 기준으로 유공자 지정을 남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또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은 공무원이 공상으로 국가유공자가 되면 보상금만 다를 뿐 가족 취업시 가산점을 받거나 대학까지 자녀 학비가 면제되는 등 독립유공자나 무공수훈자와 동일한 혜택을 받기 때문"이라며 "차제에 공상공무원을 국가유공자와 명칭 및 예우 내용에서 분리하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훈처 재심사를 통해 국가유공자 지위를 취소당한 대상자 가운데 10여 명은 재심사 결과에 불복, 행정소송 등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유공자 #국가보훈처 #공상공무원 #조경태 의원 #부실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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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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