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인간] 장준하의 학병과 나윤숙의 창씨개명

[김갑수 역사팩션 139] 3부 '열두개의 눈동자' 편

등록 2008.10.21 09:36수정 2008.10.2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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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는 고향에 있는 부친 얘기를 꺼냈다. 신사참배를 거부해 실직된 그의 부친 장석인은 사택마저도 내놓고 3년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는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보수로 작은 교회의 전도사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최근에야 삭주 대관교회의 목사로 부임했다. 하지만 그는 요시찰 불령선인이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미행과 협박이 따라붙었다.

"이런 정황에 나까지 학병을 기피하여 숨어 다니게 되면 우리 가족의 삶은 무너지게 될 거야."

장준하에게는 동생들도 있다고 했다. 요컨대 그는 집안에 닥칠 불행의 방파제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김용묵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장준하의 결심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임주호가 다소 엉뚱한 말을 했다.

"나는 장형의 의견에 반대야. 두 가지 이유 때문이지. 하나는 일본이 망할 날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장형이 그렇게까지 할 경우 아버님께서 너무 괴로우실 것이기 때문이야. 그것은 타인에 대한 과도한 희생이기에 일면 자만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고 봐. 모르긴 해도 아버지나 동생들도 그걸 원치 않을 거야. 아니, 지금은 원한다 해도 그 분들은 평생 장형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겠어?"

임주호는 확연히 두 청년과 관점이 달랐다.

장준하가 학병을 지원한 또 한 가지 이유

그러나 장준하는 귀국을 서둘렀다. 그는 겨울 방학이 얼마 안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고향에 가 학병을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나름대로의 심각한 이유가 또 한 가지 있었다.


임주호는 그 또 한 가지 이유를 김용묵을 통해서 전해 들었다. 장준하가 입대 전에  결혼하기 위해서 귀국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장준하는 일본에 와 정들었던 옛 하숙집에 편지를 보냈던 모양이었다. 그 집의 딸은 장준하의 제자 김희숙이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대신해 장준하에게 답장을 했고,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오랜 기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집의 경제 형편이 어려워져 최근 보성여학교에 다니던 김희숙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것은 그녀에게 정신대의 위협이 현실적으로 옥죄어 왔다는 점이었다. 김희숙의 부친은 반일 망명 인사였기에 우선적으로 정신대 후보로 오르게 된 것이었다. 세상이 급작스레 험해질 줄 모르고 학교를 선뜻 포기한 것이 불찰이었다. 그녀는 그런 공포감을 장준하에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가 정신대를 피하는 길은 결혼밖에는 없었다.

임주호는 장준하의 사정을 다 듣더니 말했다.

"장형은 성인 아니면 파시스트야."

장준하가 보통 인간이라면 그리 행동할 수는 없는 거라고 임주호는 말했다. 그러자 김용묵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행동해야 보통 인간일까?"
"제자에게 피신하라고 하고, 그것을 도와주는 선에서 끝내야지. 세상에 결혼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하는 것은 여자를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그건 그렇고 임형은 어찌할 생각인가?"

사실 학병은 말이 지원이지 강제나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완전 강제 징집령으로 바뀌기 전에도 학병을 거부한 집은 온갖 박해와 위협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들은 일단 학병에 지원을 하지 않으면 대학에서 제적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주호는 사태를 보아가며 버티다 여의찮으면 은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용묵은 만주로 망명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히비아 공원의 후미진 길을 말없이 걸었다. 그들에게 분명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겨울이 닥치고 있는 12월이었다. 그들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상의 깃에 목을 묻은 채,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사실 그들은 학병을 거부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윤숙에게 창씨개명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일본 경찰

나윤숙은 경기도 경찰국의 소환을 받았다. 그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아직 창씨개명을 안 한 채 버티고 있었다. 명색이 조선 시인으로서 서둘러 창씨개명을 하면 조선인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맞이한 경찰은 난바라 시게루라고 자기 이름을 밝혔는데, 정확한 직급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따로 자기 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간부급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는 나윤숙에게 시집 한 권을 내밀었다.

"조선의 유명한 여류 시인을 만나 기쁩니다. 나윤숙 시인의 시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나윤숙은 무슨 수작인가 싶어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시들입니다. 이 한 편만을 빼고는요."

난바라 시게루의 손가락은 나윤숙의 시 <조선의 딸>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윤숙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제가 창씨개명을 안 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앞으로 여류 시인으로서 중요한 일을 맡아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는 경성방송국장이 그녀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한때 경성방송국에서 여성교양강좌 프로그램을 맡아 한 적이 있었다.

"방송국장의 지침을 들으시면 될 것입니다."

난바라 시게루는 그만 가셔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때 난바라 시게루가 그녀를 불렀다.

"이런 시는 앞으로 안 쓰실 거지요?"

그녀는 물끄러미 상대를 응시하다가 짐짓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곧 다소곳하게 바뀌었다. 그러고는 물음에 대한 긍정인지 아니면 작별의 인사인지 모를 아주 모호한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그녀는 경성방송국장을 만나는 일이 자신에게 나쁜 일은 아닐 거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그런 기회가 찾아오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에 협조하는 일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일본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협조한다는 기색을 보이는 것이 자기에게 이로운 처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경성방송국장을 만나는 일을 자기가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기색을 굳이 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조선인에게도 욕먹지 않으면서 일본인에게도 대우 받기에 유리하다는 것을 그녀는 계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그녀가 문 손잡이에 손을 댔을 때, 난바라 시게루가 다시 불렀다.

"참, 나윤숙 씨, 잊을 뻔 했습니다. 지금 조선 이름은 그대로 쓰십시오."

나윤숙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수작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난바라 시게루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절도 있는 어조로 힘주어 말했다.

"창씨개명을 하지 마시라는 뜻입니다."

나윤숙은 다시 모호한 목례를 하고 방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번의 모호한 목례는 계산된 것이 아니었다. 영악한 그녀였지만 왜 일본 경찰이 자기에게 창씨개명을 하지 말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는 데 기여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제국주의의 실상과 이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삶이 그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는 데 기여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제국주의의 실상과 이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삶이 그려집니다.
#장준하 #창씨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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