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되는 골목집 사진] 아무리 그래도 사람 사는 집인데?

[인천 골목길 이야기 37] ‘재개발’ 뜻은 좋습니다만 ‘세계일류와 명품’ 이라면

등록 2009.02.02 09:32수정 2009.02.0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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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류 명품도시'를 내걸고 싶은 인천이라면, 재개발이건 개발이건 재생사업이건 '세계에서 일류'다운 모습과 '명품'다운 모습을 몸소 보여주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최종규

'세계일류 명품도시'를 내걸고 싶은 인천이라면, 재개발이건 개발이건 재생사업이건 '세계에서 일류'다운 모습과 '명품'다운 모습을 몸소 보여주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최종규

일요일 낮, 겨울다움을 잃고 어느덧 봄과 같은 날씨가 되어 버린 따스함을 느끼면서 아기를 안고 골목마실을 합니다. 어디로 가 볼까 하고 생각하면서 슬슬 길을 나서다가 송현동 중앙시장 앞 건널목 앞에서 신호를 기다립니다. 건널목을 건너다가 문득, 이토록 파헤쳐진 저 집자리 안쪽이 궁금해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사뿐사뿐 걸음을 떼는데, 그만 기가 질립니다. 보상을 받고 떠난 사람들 집자리야, 보상을 해 준 인천시 건설업체에서 삽차나 밀차를 끌고 와서 밀어버릴 권리가 있을 터이지만, 아직 제 살림집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또 보상을 안 받거나 못 받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곳이 자기 보금자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보금자리야 아랑곳하지 않고 파헤쳐 놓았습니다. 비닐테이프로 길게 줄을 쳐서 파헤친 자리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는 삽차마저 파헤쳐진 자리에 떡하니 세워 놓는데, 아무리 힘있는 이가 임금님이라 한다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집’ 아니냐 하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사람 사는 집을 이렇게 흐트려 놓아도 되느냐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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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된 집과 철거 안 된 집, 또 철거를 바라지 않는 집이 어우러져 있는 인천 옛 도심지입니다. 왜 우리는 모두 똑같이 제 삶터이자 고향이자 보금자리를 돈 몇 푼에 내맡기면서 '버려야' 할까요? ⓒ 최종규

철거된 집과 철거 안 된 집, 또 철거를 바라지 않는 집이 어우러져 있는 인천 옛 도심지입니다. 왜 우리는 모두 똑같이 제 삶터이자 고향이자 보금자리를 돈 몇 푼에 내맡기면서 '버려야' 할까요? ⓒ 최종규

 

 개발도 좋고 재개발도 좋고 재생사업도 좋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길(도리)’이 있습니다. 지킬 길이 있고 다스릴 길이 있으며 헤아릴 길이 있습니다. 사람 사는 길을 지키지 않고 밀어붙이는 개발이 우리 사람을 얼마나 따스히 감싸 줄 수 있을는지, 사람 어우러지는 길을 돌아보지 않고 이루어지는 재개발이 우리 사람을 얼마나 푸근히 어루만질 수 있을는지, 사람 느긋히 누울 길을 쓰다듬지 않고 막나가는 재생사업이 우리 사람을 얼마나 알뜰히 껴안을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쇠삽날로 밀어붙여서 깡그리 없애버릴 수 있을는지 모르나, 사진은 이 모든 모습을 또렷하게 아로새겨서 우리 뒷사람한테 우리들이 오늘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남김없이 보여줍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뒷사람한테, 또 이제 막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을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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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받고 나간 집자리야 허물려면 허물어야 할 테지만, 아직 나가지 않은 사람들 집자리는, 고이 지켜져야 할 소중한 보금자리입니다. 살아가는 사람들 자리를 함부로 다치게 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 최종규

보상 받고 나간 집자리야 허물려면 허물어야 할 테지만, 아직 나가지 않은 사람들 집자리는, 고이 지켜져야 할 소중한 보금자리입니다. 살아가는 사람들 자리를 함부로 다치게 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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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헤쳐 놓고 허물어 놓은 집자리 한복판에 삽차가 무섭게 서 있습니다. 저는 무섭다고 느꼈습니다. 꽤나 큰 이 녀석을 이 자리에 그대로 두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빨리 보상금 받고 고향을 떠나라는 소리일까요. ⓒ 최종규

파헤쳐 놓고 허물어 놓은 집자리 한복판에 삽차가 무섭게 서 있습니다. 저는 무섭다고 느꼈습니다. 꽤나 큰 이 녀석을 이 자리에 그대로 두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빨리 보상금 받고 고향을 떠나라는 소리일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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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 삽차 옆에 옆지기가 서서 파헤쳐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직도 이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삽차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 최종규

우람한 삽차 옆에 옆지기가 서서 파헤쳐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직도 이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삽차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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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에 깃들어 사는 사람은 이제 얼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기와집'을 전통집으로 여기면서 큰돈 들여 새로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전부터 있던 기와집은 아무 거리낌없이 허물어 버립니다. 새마을운동 기와장으로 바뀐 기와집인데, 이제 와 생각하면 '새마을운동 기와장'도 또다른 우리 근현대 역사 유물입니다. ⓒ 최종규

'기와집'에 깃들어 사는 사람은 이제 얼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기와집'을 전통집으로 여기면서 큰돈 들여 새로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전부터 있던 기와집은 아무 거리낌없이 허물어 버립니다. 새마을운동 기와장으로 바뀐 기와집인데, 이제 와 생각하면 '새마을운동 기와장'도 또다른 우리 근현대 역사 유물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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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삐 철거를 해야 하거나, 철거가 중요한 일이라 해도, 살아가는 사람 집에 금이 가도록 하면서, 그렇게 막나가야 할 까닭이 있는지, 그렇게까지 바쁜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 최종규

아무리 바삐 철거를 해야 하거나, 철거가 중요한 일이라 해도, 살아가는 사람 집에 금이 가도록 하면서, 그렇게 막나가야 할 까닭이 있는지, 그렇게까지 바쁜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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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진 집, 허물린 자리는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예의를 알고 사람 사는 길을 아는 개발로 나아가, 이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 최종규

허물어진 집, 허물린 자리는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예의를 알고 사람 사는 길을 아는 개발로 나아가, 이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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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든 골목이 아니든, 사람 삶터는 어디든 그곳마다 고유한 빛깔과 냄새와 모습이 있습니다. 이 빛깔과 냄새와 모습을 고이 섬기어 줄 수 있는 마음밭으로 우리가 한결 아름답고 싱그럽게 살아갈 길을 찾아보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인천이라는 데는, 오로지 아파트로만 때려짓는 개발만으로는 참맛을 살리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곳곳에 깃든 살가운 텃밭과 골목집을 알뜰살뜰 가꾸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재미나고 조촐한 마을문화를 일구면서 관광지로도 북돋울 수 있다고 봅니다. ⓒ 최종규

골목이든 골목이 아니든, 사람 삶터는 어디든 그곳마다 고유한 빛깔과 냄새와 모습이 있습니다. 이 빛깔과 냄새와 모습을 고이 섬기어 줄 수 있는 마음밭으로 우리가 한결 아름답고 싱그럽게 살아갈 길을 찾아보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인천이라는 데는, 오로지 아파트로만 때려짓는 개발만으로는 참맛을 살리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곳곳에 깃든 살가운 텃밭과 골목집을 알뜰살뜰 가꾸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재미나고 조촐한 마을문화를 일구면서 관광지로도 북돋울 수 있다고 봅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2.02 09:32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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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골목길 #인천 #재개발 #송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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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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