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김수환 추기경 평전 낸 구중서박사

등록 2009.03.02 10:33수정 2009.03.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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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평전 책표지.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는 그의 유언이 되었다. ⓒ 정용국

김수환 추기경 평전 책표지.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는 그의 유언이 되었다. ⓒ 정용국

 한국사회는 2009년 2월 16일 오후 6시 12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전환점으로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한 인간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반향치고는 엄청 큰 것이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에 대한 아이러니컬한 반작용은 아니었을까. 역설적으로 본다면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 사회적인 분위기로 본다면 많은 술렁거림과 잔잔한 충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추기경의 평전이 나왔으니 우선 그 속도에 놀랄 일이다. 책만드는집(대표 김영재)에서 나온 이 평전은 김추기경과 40여년의 인연을 지켜왔던 구중서 박사가 집필한 것이어서 다시 한 번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인 것이다.

 

 구중서 박사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남는 이유는 그가 우리 문단의 대표적 진보학자로 수원대학교에서 오래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저서를 집필하였고 한국가톨릭문인협회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회장을 맡으면서 끊임없이 지식인의 그룹을 이끌어 온 증인이기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후에 각종 방송과 언론매체들이 특집으로 다루는 바람에 많은 이야기들이 새로 밝혀지고 역사적 전환기에 처했던 종교 최고 지도자로서의 번민과 고뇌가 속속 드러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아직 방송이나 언론에 밝혀지지 않은 따듯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책의 구석구석에는 구중서 박사가 김수환 추기경과 맺어온 40여년의 인연들이 오롯이 담겨 있으며 문단의 다른 한 면이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채 살아 있어서 이채롭고 별난 기록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중사 박사는 이미 1981년에 <대화집 :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제목으로 그와의 대화를 책으로 묵어 낸 전력이 있었으니 이 책이 신속하게 출간된 배경이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의 말대로 김수환 추기경의 그늘에서 느낀 아주 편안하고 인간미 넘치는 진한 인연과 김 추기경의 다른 여러 모습을 전해주면서도 "내가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어떤 표현을 시도하는 것은 외람된 일이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성인의 생애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 있다.

 

이런 표현은 생전에 김수환 추기경께서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경영하는 가톨릭출판사의 편집주간을 맡은 저자에게 늘 "저를 도와주시고, 늘 선생님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이 큽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십시오" 라고 하면서 아직 30대의 젊은 저자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러준 인간미에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은 듯 하다.

 

 또한 이 평전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문화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관심과 배려의 입장을 취했는지 눈여겨 볼 대목이 많다. 1972년 4월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발행하는 종합 월간지<창조>에 김지하의 장편 풍자시 '비어'가 게재되었는데 이 필화사건으로 인하여 김지하 시인은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되고 구중서 편집주간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20여 일간 고초를 겪게 되었다.

 

이때에도 김 추기경은 "내가 발행인이니 최종 책임자는 본인" 이라며 사표를 강요당한 저자에게 3개월간 쉬게 하고 꼬박꼬박 월급을 편집장을 통해 전해주었으며 저자를 계속 자리에 앉혀 두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김 추기경은 많은 진보적 문인들의 글을 잡지에 게재하도록 배려하며 독재치하에 짓눌려 신음하던 작가들의 숨통을 열어주었다며 그는 김 추기경이 문화적 성향을 갖춘 고매한 분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유언이 되다시피 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라는 제목은 상당한 친화력으로 다가온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였고 늘 가장 낮은 자리에 서있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기리고 흠모하는 것이리라. 평전이라는 글이 무거운 분위기를 주기 쉬운데 반해 총 6부로 나뉜 내용은 아주 친근하고도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엮여 있다.

 

아름다운 시골 성당에서 부드럽게 출발한 글은 점점 깊고 깊은 김 추기경의 정신세계와 종교인으로서의 자세 그리고 역사 앞에 바로 섰던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 가지런히 생전의 추기경 모습대로 앉아 있으니 봄이 오는 길목 책 한권 들고 가벼운 여행길을 나서봄도 좋을 것이다. 승리는 자신감을 키우고 패배는 인간을 키운다는 경구를 되씹어 보면서 말이다. 구중서 박사는 자작시조로 평전을 마무리 하고 있다.

 

시골성당 젊은 신부 아름다운 그 시절

가난과 깊은 정이 평생에 그리운데

어이해 십자가 지고 명동 언덕 올라섰나

 

불화살 최루탄이 발 앞에 날아와도

하느님 모습 닮은 인간이 존엄해

자유와 민주의 횃불 환하게 밝힌 이

 

김수환 추기경을 겨레가 기리는데

때로는 애꿎은 구설에 외로워도

세상이 원래 그렇지 여기는 님이여

 

                        -김수환 추기경- 전문

2009.03.02 10:33 ⓒ 2009 OhmyNews
#김수환추기경평전,구중서, 책만드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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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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