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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vs. 시민 분향소... 세 가지 풍경에 담긴 우리 시대 모습

등록 2009.05.28 14:38수정 2009.05.2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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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정부 분향소] 국가권력과 시민권력이 만나는 곳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일째(26일). 퇴근하자마자 내가 향한 곳은 서울역 분향소였다. 이미 서거 첫 날 밤 덕수궁 대한문 앞을 찾았지만 워낙 경황이 없었던 바, 정신을 차리고 좀 더 넓은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서울역 분향소는 국가 장의위원회에서 준비한다 하니 그만큼 격식을 더 갖추지 않았을까?

 

회사가 인천 연안부두에 있는지라 동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역까지 논스톱 직행. 서울역 광장으로 나 있는 계단 앞에 서니 벌써부터 향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왼쪽 가슴에는 근조 리본을, 한쪽 손에는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보이기 시작했다. 드물지 않게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들.

 

지하철 입구를 나오자마자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낯익은 가요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촛불을 들 때마다 들을 수 있었던 <아침이슬>부터 시작해서 <그날이 오면> <부치지 않는 편지> <상록수> <광야에서> 등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경계 언저리에 위치한 바로 그 노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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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분향소의 풍경 추모하는 시민들 ⓒ 이희동

▲ 서울역 분향소의 풍경 추모하는 시민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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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사람들 추모의 열기 ⓒ 이희동

▲ 기다리는사람들 추모의 열기 ⓒ 이희동

 

영정은 구 서울역 건물 앞에 모셔져 있었다. 수많은 국화꽃 사이로 노 대통령은 빙긋이 웃고 있었고 그 흑백사진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눈시울만 적실뿐이었다. 누가 그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던가. 그제 대한문에서 다 흘린 줄 알았건만 또 다시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관이 주도했던 터라 덕수궁 대한문과 비교해 보면 으리으리한 규모의 분향소였다. 곳곳에 장의위원회의 명의로 된 안내문이 인쇄되어 부착되어 있었고,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근조 리본과 촛불, 국화 등을 나누어 주는 등 안내를 하고 있었다. 추정컨대 장의위원회 소속 공무원이리라.

 

갑자기 조직된 위원회라 사람이 부족했을 터, 꽤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는지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뚝뚝하고 지쳐보였다. 하긴 하루 종일 슬퍼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간디. 지쳐 보이기는 듬성듬성 무표정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는 경찰들도 매한가지였다. 아무 말 없이 추모객들을 바라보는 그들.

 

과연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년 전만 하더라도 자신들의 수장이었던 노무현 대통령. 그러나 정권교체 후 전임 대통령은 곧 그들의 공적이 되어버렸고 그들은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또다시 독재정권의 주구라는 예전 구호를 떠올리며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우리 모두가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뒤로 가서 줄을 섰다. 30분쯤 지났을까? 벌써 내 뒤로 많은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 아들에게 노란 노사모 목도리를 둘러주고 지그시 눈물을 흘리는 중년의 아저씨, 교복도 채 벗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떠드는 중고등학생들 등 내 옆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항상 모시고자 했던 그 '국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다시 드는 회한. 이들을 두고 고인은 왜 저 세상으로 가셔야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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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분향소의 풍경 점잖은 시민들의 일갈 ⓒ 이희동

▲ 서울역 분향소의 풍경 점잖은 시민들의 일갈 ⓒ 이희동

 

1시간쯤 됐을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빙긋 웃고 있는 노통에게 인사하고 헌화. 그리고 추모의 큰 절. 다음은 상주에게 인사를 하는 차례였는데 그 앞에 강금실 전 장관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상주로서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 국가에서 주최하는 분향소라더니 이렇게 유명한 정치인들까지 있구나.

 

그러나 유명인사의 존재와 관의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서울역 분향소를 국가만이 만들어낸 공간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이미 서울역은 민중들의 많은 역사를 안고 있었다. 60~70년대 상경하는 노동자들의 고된 삶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흔적, 그리고 최근에는 갈 곳 없는 노숙자까지, 국가는 결코 서울역이라는 공간을 완전히 장악한 적이 없다. 그곳은 항상 국가권력과 시민권력이 마주치는 공간이었으며 이는 분향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 틀은 국가가 짰지만 그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참여한 시민들이었다.

 

참배를 마치고 집에 가려는 길. 막상 지하철역으로 내려가자 자꾸만 시청역이 눈에 걸렸다. 과연 지금 덕수궁 대한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첫 날 밤에는 마냥 황망했을 뿐인데 지금은 어찌 진화되었을까? 궁금했다. 별 수 있는가. 한 정거장 밖에 되지 않는 거, 가 볼 수밖에.

 

[대한문 앞 시민 분향소] 탈권위적인 시민들만의 공간

 

시청역에서 내려 덕수궁 출구로 향했다. 서울역에서는 스피커의 노래 소리와 향내가 청각과 후각을 자극하더니 그곳에는 온갖 문건들이 나의 시각을 강렬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출구에서부터 시작해서 끝도 없이 붙어있는 노대통령의 사진과 수많은 대자보들. 하나같이 애통한 마음에 그를 그리는 글들이었고 현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들이 서울역보다 훨씬 센 강도로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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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출입구의 현실 시민들의 공간 ⓒ 이희동

▲ 덕수궁 출입구의 현실 시민들의 공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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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대한문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 ⓒ 이희동

▲ 덕수궁 대한문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 ⓒ 이희동

 

그리고 눈앞의 덕수궁 대한문. 이제 그곳은 단순히 조선시대의 문화재, 죽은 화석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현장이었다. 혹자는 현재 대한문의 인파를 보고 90년 전 고종이 죽은 뒤 모인 백성을 떠올렸다지만, 그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왕이 아니라, 국민을 왕처럼 섬기던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기 때문이다. 물론 3·1운동 대신 어떤 움직임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덕수궁 대한문 앞은 첫 날 밤보다 더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지만 좀 더 차분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낮에 경찰버스가 빠진 덕에 그전처럼 답답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버스에 둘러싸여 있는 시청 광장을 보니 가슴이 턱 막히는 건 매한가지였다. 도대체 이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애도는 입으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서울역의 분향소가 관과 민의 합작품이라면 덕수궁 대한문 분향소는 그야말로 시민들만의 공간이었다. 국가와 상관없이 시민들의, 시민들에 의해, 시민들을 위해 창출된 그 공간. 때문에 그곳은 다양하고 재기발랄했다. 서울역이 좀 더 근엄하고 엄숙하다면 대한문은 탈권위적이었고 자유로웠다. 좀 더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제각각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었으며, 그만큼 그 공간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려고 했던 사회는 바로 이와 같은 사회가 아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행할 수 있는 곳. 아마도 그것은 지금의 권력층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도달할 수 없는 사회일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마냥 한심하고 어지러운 카오스일 테지. 그러고 보니 또 서글퍼졌다. 결국 노 대통령은 죽어서도 우리에게 그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주고 가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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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의 사람들 끝이 없이 늘어선 사람들 ⓒ 이희동

▲ 정동길의 사람들 끝이 없이 늘어선 사람들 ⓒ 이희동

 

추모 인파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까지 늘어서 있었다. 결코 이른 시각도 아니었건만 사람들은 돌담에 붙어있는 대자보를 읽으면서, 사람들이 나눠주는 유인물을 보면서, 그리고 동영상 등을 통해 방송되는 노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그 시간을 지키고 있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다더니, 죽은 노무현이 산 명박을 쫓아내는 꼴이었다. 서울역과는 달리 슬픔보다는 각오를 새기는 시간이었다. 결코 노 대통령이 왜 죽었는지 잊지 않으리라.

 

추모인파의 끝을 지나자 어느새 정동길 입구였다. 어라? 또 하나의 분향소인 서울역사박물관 역시 이곳에서 멀지 않잖아? 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곳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까짓것 가보자!

 

[서울역사박물관 정부 분향소] 군인이 지키는 그들만의 공간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는 매우 적막했다. 물론 늦은 시간이었지만, 방금 다녀온 대한문 앞과 비교하여 천양지차였다. 박물관 앞의 불은 꺼져 있었고 그 휑한 공간에 KBS 중계차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래. KBS, 너희가 올 때가 이곳밖에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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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국가의 공간 ⓒ 이희동

▲ 서울역사박물관 국가의 공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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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KBS 갈 곳 잃은 그들 ⓒ 이희동

▲ 외로운 KBS 갈 곳 잃은 그들 ⓒ 이희동

 

우선 분향소를 서울역사박물관에다가 차린다는 발상 자체가 한심스러웠다. 박물관이란 공간처럼 국가의 입김이 강한 곳이 어디 있던가. 현재 권력의 모든 이데올로기를 함축하고 있는 그 공간에 탈 권위를 외쳤던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을 갖다 놓는다는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게다가 서울역사박물관이라지 않는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민들의 교감이 거의 없다시피한, 역사성이 전혀 전제되지 않는 공간에 무슨 생뚱맞은 분향소인가!

 

분향소 정문에는 해군헌병으로 보이는 군인 하나가 무뚝뚝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현충원에서나 볼 수 있는 그 로봇 같은 군인. 그래 국가가 하는 짓이 그렇지. 정부는 분향소와 현충원을 헛갈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들의 상식으로는 군인들이 정문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예우겠지만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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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에 근엄을 더한 현 정부가 상상하는 공간 ⓒ 이희동

▲ 근엄에 근엄을 더한 현 정부가 상상하는 공간 ⓒ 이희동

 

분향소 내부 역시 썰렁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참배객들보다는 상주와 안내인, 군인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무표정하고 딱딱한 모습으로 무슨 기계처럼 흰 국화를 건네는 군인. 에끼, 이놈들아. 과연 지금 이 정부가 노무현 대통령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고는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권위에 권위를 더한 그 공간. 그것이 바로 현 정부의 한계요, 2009년 대한민국 민주주의 현실이었다. 결국 대한문에 줄을 설 수밖에 없는 우리가 그들의 잘못을 깨쳐주어야 할 터.

 

분향소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날 저녁 둘러본 분향소들을 떠올리며 각각의 사회적 의미들을 떠올리는데, 순간 내가 처음 들른 분향소를 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서울역으로 오기 전, 동인천 역사 앞에서 참배를 드렸던 바로 그 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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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 분향소 지역주의 타파의 필요성 ⓒ 이희동

▲ 동인천 분향소 지역주의 타파의 필요성 ⓒ 이희동

 

언론에서는 호들갑을 떨지만 아마도 복잡하지만은 않은 그 분향소의 풍경은 지방 어느 곳이나 비슷할 것이다. 인천의 경우는 사람들이 모두 서울로 오는 탓에 그 공동화가 더욱 심했겠지. 이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또 노 대통령이 그리워졌다. 결국 그가 바꾸고 싶었던 것들 중의 하나가 서울 중심주의의 극복이요, 각 지방의 발전 아니었던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일째. 많은 이들이 부디 그분의 죽음을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고민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던진 노 대통령의 유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5.28 14:38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서거 #정부 분향소 #시민 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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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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