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기독교 물량공세로 젊은층 개종 늘어나

인구의 10% 추산... 정부 제한 조치에 의료, 영어 무기로 선교

등록 2009.09.21 10:43수정 2009.09.21 13:47
0
원고료로 응원

몽골교회의 예배 모습 90년 민주화혁명 이후 한국과 미국의 선교사들의 공격적인 선교로 많은 몽골인들이 교회를 찾고 있다. ⓒ 백찬홍


공산당 시절 탄압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몽골불교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6박7일간 몽골공화국을 방문해 몽골불교현황과 기독교단체의 선교활동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일반적으로 몽골은 불교의 나라로 알려졌다. 몽골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흉노족이 몽골초원을 지배했던 기원전 1세기부터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부정하지만 기원전 3세기부터 비단길과 초원길을 따라 전해진 불교는 중국이 서역이라고 불렀던 중앙아시아로 전해졌고 이들 지역과 활발하게 교역했던 흉노족 일부도 불교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서몽골 일대에서 발견된 당시 불교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흉노, 선비, 돌궐 등 몽골초원 지배자들의 흥망으로 명맥이 끊겼던 불교가 국교화된 것은 칭기즈칸의 손자로 13세기말 원제국을 세운 쿠빌라이 때부터였다.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에 멸망되기 전까지 원제국 내에는 4만여 개가 넘는 사찰과 20만 명이 넘는 승려가 활동할 정도로 불교 영향력은 막강했고 그 중심에는 티베트 불교가 있었다.

원나라 승려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은 파스파였다. 라마교 승려였던 그는 제국의 불교계를 지배했고 티베트문자를 기본으로 현재까지 공식문자로 내려오는 파스파 문자를 만들기도 했다. 원제국 내에서 숭상된 불교는 지나친 기복신앙과 권력화, 성문란, 도덕적 타락으로 국력을 갉아먹는 역할을 했다. 14세기말 원이 멸망하고 초원으로 물러간 몽골족은 불교로 인해 제국이 멸망했다는 이유로 이전 신앙인 샤머니즘으로 돌아갔다.

몽골지역에서 불교가 부흥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말 몽골초원을 지배한 알탄 칸이 티베트 접경인 칭하이성 일대를 공격하면서부터였다. 티베트 고승 소남 갸초를 만난 알탄 칸은 그의 법력에 감탄해 달라이라마(지혜의 바다)라는 칭호를 선사했고 소남 갸초 역시 알탄칸을 칭기즈칸 가의 후계자로서 권위를 부여했다. 알탄 칸의 비호 아래 티베트 불교는 전 몽골로 확산되었고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지배 하에서도 불교는 더욱 확산되었다. 17세기 중반에는 전 몽골의 수령들이 모여 모든 귀족가문에서 아들 하나는 라마승으로 출가시키기로 합의했다. 

청조 역시 몽골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라마승들을 지원했고 불교의 정치·경제적인 영향력이 커지자 많은 몽골인이 승려가 됨으로서 19세기말에는 성인남자의 절반 이상이 승려가 될 정도였다. 한때 초원을 지배했던 몽골 남성들이 승려가 되면서 몽골인의 상무정신과 기상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지금의 몽골지역에만 4천 개 이상의 사찰이 있었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 왕조가 붕괴하자 불교지도자인 복드 칸이 몽골 최고통수권자이자 법왕으로 군림하기도 했다.

1924년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몽골불교는 거의 뿌리가 뽑힐 정도로 암흑기를 맞이했다. 소련 영향력 아래 있었던 몽골공산당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간주하고 불교는 물론 전통신앙인 샤머니즘도 철저히 탄압했다. 1930년대 스탈린시대에는 약 1만 7000명에 달하는 승려들이 처형당하거나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거의 모든 사찰이 폐쇄되었다.


간단사 법당 몽골최대사원인 간단사 법당에는 높이 26미터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금동불상이 모셔져 있다. ⓒ 백찬홍


또한, 몽골 최대 사원인 간단사의 26미터 높이 관세음보살상 등 막대한 양의 금동불 등이 소련으로 실려가 일부는 2차 대전 당시 무기 제조에 쓰이고 나머지는 소련 소재 여러 박물관에 전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설적으로 찬란했던 몽골불교의 유산이 소련으로 넘어가면서 오늘날 러시아 불교연구가 상당 수준에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 공산당의 불교 정책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1940년대 초까지 몽골에는 공식적으로 단 한 명의 승려나 신자, 절도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고 1980년대에도 몽골인 대부분은 자신들이 무신론자 또는 무종교인이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1990년대 소련연방이 붕괴하면서 몽골에서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불교가 국교처럼 존중되면서 많은 사찰이 복원되었고 승려양성기관을 통해 많은 승려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1990년 민주화 혁명 이후 집권한 오치르바트는 취임과 동시에 소련으로 실려 간 간단사 관음전의 관음보살 상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불사를 추진했고 몽골 국민 대부분이 보시할 정도로 그 열기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거리를 걷고 있는 몽골승려 몽골의 승려들은 결혼하거나 집에서 사찰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아 가족을 동반하고 거리를 걷는 경우가 많다. ⓒ 백찬홍


현재 몽골불교는 티베트 불교(주로 겔룩파)의 영향으로 달라이라마를 여러 차례 초청해 대규모 법회를 열고 개별 가정에서도 달라이라마의 사진이나 조형물을 모셔놓은 경우가 많다. 승려들의 경우는 소련지배시절 강제결혼정책의 영향으로 독신 승려(Gelon)와 결혼한 승려(Genen)로 나누어져 있다. 자신의 근기에 따라 결정할 수 있고 가문을 이어야 하는 독자들은 승려가 되더라도 Genen이 되어야 한다.

독신 승려도 한국의 스님들처럼 절 안에 모여 살 수 있는 공간이나 제도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절에 가고 저녁때면 퇴근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가족들과 지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몽골 불교신자들은 절에 가는 것보다 스님들 집으로 찾아가 축복을 받거나 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다. 승려 대부분이 세속과 분리되지 않은 생활을 하기 때문에 유흥업소와 극장을 자주 가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몽골인들은 거의 없다. 최근에는 독신의 티베트 고승들이 몽골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지고 독신승려들이 우대를 받으면서 몽골의 승려사회는 조금씩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 미국 등 선교사들의 공격적인 활동으로 기독교신자 늘어나

러시아정교회 몽골내에서는 40여개 넘는 종파들이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정교회도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 백찬홍


70년간의 소련지배가 끝나고 몽골에서 불교가 재도약을 하는 시기에 기독교 등 외래종교들의 영향력도 확대되고 있다. 몽골에서 외래종교의 활동은 정권의 부침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집권한 민주연합의 오치르바트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개방화를 선언했고 이 시기에 외국자본은 물론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독교 신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급작스런 개방화 정책으로 체제혼란이 야기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자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를 가진 대중들의 지지로 인민혁명당의 바가반디가 대통령으로 당선하였다. 

1990년 민주화 혁명으로 정권을 내준 공산당은 인민혁명당으로 당명을 변경해 1997년 대선과 2000년 총선에서 승리하자 전통신앙을 무시하면서 무차별적인 선교활동을 펼치는 기독교선교사들의 활동을 제한했다. 몽골정부는 외국인 선교사의 등록제를 시행하고 거주도시를 벗어나 다른 곳을 여행할 때는 반드시 당국에 신고하도록 했다. 그리고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교단활동을 제외한 민간단체의 종교 활동을 금지해 대부분 NGO 형태로 진출해 있던 선교기관들의 활동을 제한했다.

2005년 당선한 인민혁명당의 엥흐바야르 후보는 아예 자신이 티베트불교의 독실한 신자이며 달라이라마를 존경한다고 드러내놓고 천명하기도 했다. 엥흐바야르는 2009년 5월 대선 때도 몽골불교계의 지지를 얻기 위해 비등록 교회의 예배와 외국어 설교 불허, 적발 시 강제추방 등 강력한 친불교정책을 발표했으나 부패와 무능으로 민주당의 엘벡도르지 후보에게 패배했다. 새로 집권한 정부도 여전히 외래종교의 활동을 제한한다. 불교신자가 대다수인 국민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다 몽골 고유의 전통이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의 제한조치가 강화되자 한국의 장로교나 감리교, 침례교 같은 개신교 정통파는 물론이고 오순절파, 몰몬교, 제칠일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같은 미국계 신흥종파들 선교사들은 빈민구제와 의료봉사, 영어교육을 무기로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몽골의 젊은이들 일부에서도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앞서갈 수 없다고 생각으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기독교외에도 천주교, 이슬람, 바하이교 같은 종파들도 포교활동에 뛰어 들어 몽골 내에서 활동하는 외래종파는 40여개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1999년에는 몽골인 스스로 몽골복음주의협의회(MME)를 조직했고 2000년에는 처음으로 몽골 성서공회가 신구약성경을 몽골어로 출판하기도 했다. 일부 선교사들은 7세기부터 몽골지역에 기독교 일파인 네스토리우스교(경교)가 전해지고 유력부족이었던 나이만이나 케레이트, 웅구트족은 물론 칭기즈칸의 후예인 몽골제국의 왕족이나 왕비들이 경교를 믿었던 것을 상기시키며 몽골선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몽골 종교계는 현재의 추세라면 개방 20주년이 되는 2011년이 되면 30만 이상의 기독교인(미국계 신흥종교 포함)들과 교회 수도 1000여 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몽골인구가 300만인 것을 감안하면 10%에 달하는 성장세는 놀랍다고 할 수 있다.     

종교간의 평화를 실현했던 칭기즈칸과 몽골황제들

마니차 몽골의 불교신자들이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몽골이나 티베트 불교에서는 마니차를 한 번 돌릴 때마다 불경을 한 번 읽는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 백찬홍


앞으로 몽골사회는 불교와 기독교 간의 보이지 않는 종교전쟁으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전통문화를 존중하는 시골의 노장년층은 불교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도시의 젊은 층은 기독교에 대해 개방적이어서 종교를 바라보는 세대 간의 간극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몽골의 종교 갈등은 그들이 자랑하는 칭기즈칸의 정신에 어긋난다. 일찍이 칭기즈칸은 대법령을 통해 종교간의 평화를 강조했다.

대법령의 종교와 관련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11조: 모든 종교를 차별 없이 존중해야 한다. 종교란 신의 뜻을 받드는 면에서 모두 같다. ▲16조: 만물의 어떤 것은 부정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만물은 애초부터 깨끗하며 청정함과 부정함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17조: 모든 종교의 종파에 대해 좋거나 싫은 정을 나타내거나 과대포장하지 말고 경청도 사용하지 말라 ▲30조: 신을 받드는 성전의 조세를 면제하고 성전과 그것에 봉사하는 성직자들을 우러러보게 하라

칭기즈칸의 종교관은 영명한 지도자로 알려졌던 몽케칸에게 이어졌다. 몽케칸은 "도교나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등 모든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절대자나 절대진리는 그 근본을 따져 볼 경우 모두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손바닥이 있고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다. 너의 각 종교지도자들이 모시고 있는 다양한 신이나 진리의 이름은 엄지나 검지 등 이름이 다른 손가락일 뿐 그 최후의 도달처는 모두 같다"고 강조했다.(박원길, <유라시아 대륙에 피어났던 야망의 바람>, 민속원.  2003년 6월 30일, 341쪽 참조)

몽케칸을 비롯한 몽골의 황제들은 대칸이나 제국에 반대하지 않는 한 모든 종교를 우대했고 포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그들은 종교의 존립근거는 수행과 대중에게 철저히 봉사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몽골 제국 내에서 각 종단에 속하는 사원이나 사제들은 병역과 세금을 면제받았고 사제 둘 중 일부는 황제의 정치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쿠빌라이는 "티베트의 땅은 지배해도 티베트의 마음은 지배할 수 없다"라는 격조 높은 말로 자신의 종교관을 피력했다.

그의 말은 오늘날 티베트와 신강위구르를 지배하면서 유혈사태를 빚고 있는 중국, 제2의 십자군 전쟁 운운하면서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침공을 단행한 미국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여기에는 물론 기독교인 특히 자신이 몸담고 있는 소망교회 출신인사들을 중용해 불교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도 해당된다.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처하는 몽골 지도자들이 현재 직면한 종교간 갈등을 과거 몽골제국의 황제들처럼 현명하게 해결해 나갈지는 알 수 없다. 개방을 천명하고 민주정부를 표방하는 상황에서 전통 종교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기독교 선교사들을 설득하고 압박하는 방식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공식과 비공식차원에서 전개되는 그들의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선교방식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은 결국 몽골 불교가 건강해지는 것이다. 과거처럼 정치권력에 기대 종교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젊은 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수행문화를 만들어내고 승려들 스스로 국민들에게 철저하게 봉사하는 삶이 필요하다. 몽골불교의 자체 역량이 강화되지 않는 한 기독교의 전투적인 물량공세에 밀려 공산통치 시절에 버금가는 침체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막대한 물량과 자본으로 무장한 기독교의 무차별적인 도전에 2천년 역사를 가진 몽골불교계가 자생적으로 위기를 돌파하기를 기대해본다.      
#몽골 #불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태도가...' KBS와 MBC의 엇갈린 평가
  2. 2 5년 뒤에도 포스코가 한국에 있을까?
  3. 3 윤 대통령 95분에서 확인된 네 가지, 이건 비극이다
  4. 4 6자로 요약되는 윤 대통령 기자회견... 이 노래 들려주고 싶다
  5. 5 감정위원 가슴 벌벌 떨게 만든 전설의 고문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