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세요? 집으로!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 를 읽고

등록 2009.09.29 09:26수정 2009.09.2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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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한미숙

겉그림 ⓒ 한미숙

이 세상에서 내 집처럼 편안한 곳이 또 있을까? 넓고 높은 집이 아니어도, 식탁엔 기름진 음식이 없어도, 내가 편안히 쉴 곳은 오로지 내 집 뿐이다. 어느 날, 그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다면? 그것도 어른인 아빠가 말이다.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는 초등학생들을 위해 읽기 시리즈로 나온 동화책이다. 이 책은 재미있는 흑백그림이 간간이 섞여서 읽는 맛을 더한다. 가족들이 함께 읽고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제 각각 할 말들이 마구 쏟아져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어떤 아빠는 어쩜 별로 할 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동화 속의 아빠는 집이 이사하는 날,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새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다. 버스에서 한 어린이가 "도대체 아빠들이 왜 필요한 거예요?"라고 물은 질문에 아빠는 여러가지 대답을 한다. '아빠들은 돈을 벌고, 자동차 운전을 하고, 페인트 칠을 하며, 고장난 게 있으면 고치기도 한다'고. 하지만 어린이는 그런 일은 엄마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아빠는 '엄마들은 할 수 없는데, 아빠들은 할 수 있는 그런 뭔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래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다. 그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아빠로서 집에서 할 수 있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려고 했지만, 머릿속은 너무나 많은 생각들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아빠는 그 때부터 길을 잃고 방황한다. '욕조와 새털 이불이 있고, 안락의자에 텔레비전이 있고, 먹을 것이 가득 차 있는 냉장고가 있는 아늑한 집', 아빠는 눈물이 날 정도로 가족들이 그리웠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자신을 보고, 아빠 같은 거 필요 없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를 생각하자 섬뜩해진다.

 

아빠가 길을 잃은 것은 새 집의 주소를 정말 몰라서였을까? 그는 진심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빠가 찾은 집은 어렸을 때 살던 집이었다. 그곳엔 아빠의 어린시절 벽에 걸어놓은 영웅사진들이 있었다. 그 그림은 모두 아빠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들로 탐험가인 난센, 아문센, 달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던 암스트롱 같은 인물들이었다. 자신이 모은 그림은 타잔,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뿐이었다.

 

순간, 아빠의 머릿속에 분명한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은 영웅같은 인물이 되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그런 아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다음과 같은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나의 아버지 역시 아빠들이 왜 필요한지 모르셨던 것이 아닐까?"

 

다 큰 어른인 아빠가 길을 잃었다니, 우리 아빠도 길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 아니 내 남편도 길을 잃지 않을까? 요즘 아빠들은 너무 바쁘다. 아이들이 아빠와 노는 날은 언제일까? 동화속의 아빠는 이제 빨랫줄에 널려 있는 옷들과 수건들을 잘 개어 정리한다. 가족들이 먹을 아침을 준비하고 식탁을 깨끗하게 닦기도 한다. 길을 잃고 헤매는 이 세상 많은 아빠들이 아늑하고 포근한 집으로 어서 돌아가길 바란다.

 

(*)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 랑힐 닐스툰 글, 하타 고시로 그림,김상호 옮김/비룡소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 송고

2009.09.29 09:26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sbs u포터 송고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

랑힐 닐스툰 글, 하타 고시로 그림, 김상호 옮김,
비룡소, 1998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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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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