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등' 아래 꿈틀거리는 삶의 편린들

권갑하 시인의 새 시집 <외등의 시간>

등록 2009.10.19 10:36수정 2009.10.1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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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지향했던 19세기 유럽문학의 영향은 세계를 휘돌며 선풍을 일으켰지만 그 바람은 이내 잦아들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이  받들었던 예술의 지순미(至純美)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어느 예술가나 동시대를 관통하고 역류하는 시대의 불화와 싸우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당연한 그들의 사명이라 믿으며 그것을 표현한 모든 작품 속에는 한 예술가의 피땀과 열성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권갑하 시인은 누구보다도 정열적인 자세로 자기 직장에 충실히 임하는 직장인이다. 한국의 현 상황에서 적당하게 시간을 보내며 월급을 탈 수 있는 자리가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특히 그는 직장에서 회의와 출장, 새 상품 개발 등 주말을 조용하게 보내기 어려운 극한의 상황 아래 놓여 있는 듯하다. 동학사(대표 유재영 시인)에서 이번에 출간된 <외등의 시간> 속에는 권 시인이 외롭고 쓸쓸하게, 때로는 따듯하고 의젓하게 도시인의 버거운 삶을 붙안고 21세기의 한 복판을 역주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과 시대의 그림자가 어우러져 있다.

 

언젠가 권 시인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직장에서의 적당한 긴장과 고단함은 평범한 일상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문학적 긴장감과 창작의욕을 배가시키는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누가 들으면 타고난 직장체질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말은 그가 한 직장에서 30여년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신문사의 중요한 부서를 이끌어가는 내로라하는 위상을 견지한다는 것과 더불어 눈여겨보아야 할 현실인 것이다.

 

이렇게 직장에서의 고단함을 짊어지고서도 그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시조의 한 가닥을 붙잡고 또 다른 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시로 여는 e좋은 세상> 인터넷 카페와 계간 <나래시조>의 총 지휘자로 동분서주하는 것이다. 인터넷 카페에서 수많은 동호인들이 자발적이면서 긴장감 있게 스스로 시조를 향유하고 전파해 나가는 모습은 분주한 어항의 어부를 연상시킨다. 참여회원 회비로 꾸려지는 계간지가 수십 호를 거듭한다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현실에서 그의 힘은 왕성하기만 하다. 사설이 길면 뒷심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경계하며 이제 권갑하 시인이 외등 밑에 일구어 둔 시조의 텃밭으로 가보자.

 

(2)

시집의 작품해설을 통해 유성호 한국교원대 교수는 권갑하 시인을 '현실적 맥락과 시인의 서정이 두루 결속하면서 이채로운 음역을 보여 주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권갑하 시인의 시편들을 통해 나날의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만나 볼 수 있으며 원초적 통일성 회복 의지를 선명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의 시편들은 우리 시대의 폐허를 가로지르는 개성적인 보법으로서, 현실과 서정의 확연한 결속을 수해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또한 박기섭 시인은 표사를 통하여 '권갑하는 난만한 시대의 상처 속에 숫돌을 간다. 거기다 정신의 날 끝을 벼리고, 기진한 눈빛을 닦기도 한다. 세상은 언제나 온몸으로 떠안기에도 벅찬 생존의 비애로 가득하다. 현대인은 너나없이 돌지 않으면 쓰러지는 팽이와 같은 존재다. 덫인가 의심하면서도 고독한 몰입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날 선 지각이 도치된 역사의 얼룩진 오역을 헤집고 감당키 힘든 욕망의 굴절 앞에 당당히 서게 한다'라는 서설(瑞雪)같은 말을 얹어 격려하고 있다.

 

권갑하 시인의 근무처는 서울의 한복판 종로, 매연과 굉음이 지칠 줄 모르고 단정하게 정장을 한 직장인들이 때로는 씩씩하게 때때로는 파김치가 된 모습으로 분주하게 종종걸음 치는 곳이다. 이번 시집 중 '종로에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열 세 편의 시들은 그들의 일상과 고민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인사동과 재개발의 상징인 포크레인이 거대한 팔을 치켜들고 있는 외등 켜진 청진동 뒷골목도 시의 현장이다.

 

이번 시집 중에서 앞의 두 평자들이 거론한 시편은 거의 비슷하게 중복되고 있는데 '외등의 시간', '발자국, 발자국들', '숫돌' 등이 그것이다. 이 세 작품은 구성면이나 소재의 참신함, 주제의 현현(顯現) 면에서 시집을 대표할 만한 작품들이고 충분히 책 안에서 좋은 소개를 받은 듯하여 더 이상의 가획은 거둬들인다. 그리고 시집을 소개하는 이 글에서는 새로운 몇 작품을 나름대로 분석해 보고 평하고자 한다.

 

더듬거리다

-종로에서-

 

조개껍질로 물을 퍼 바다를 말린다는

그 한 구절에 허기가 져 밥을 찾는 땡볕 건널목

정오의 대탈출인가 몰려드는 난장의 행렬

 

맹인부부 지팡이가 길 옆구릴 더듬거리자

일순 터지는 봇물, 앞다퉈 물살 가르고

신호등 짙푸른 갈기 숨 멎을 듯 깜박인다

 

금시라도 달려들 듯 눈 부릅뜬 차량들

허공엔 깜박깜박 아슬아슬 넘어질 듯

의연히 강을 건너는 지팡이 끝 환한 눈빛

 

저 더듬거림으로 생을 환히 밝혀 왔구나

곰곰이 더듬거리며 짚어 가야 한다는 듯

한 끼 밥 젖은 수저가 지팡이인 양 더듬거린다

 

역설적으로, 이 시 제목으로 쓰인 '더듬거리다'라는 단어는 이 시집을 대표할만한 말로 가장 적확한 시어라고 생각된다. 종로시편에서 보이는 '대리운전' '막차' '로또복권' '해후' '안개 속' '쇼윈도' '야근' 등의 단어들은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고단하며 인위적인 현대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들로 충분한 대표성을 함축하고 있는 시어들이다. 더 나아가 이것들을 단 한마디로 응축한 말을 찾는다면 바로 '더듬거리다'가 되지 않겠는가.

 

불확실한 미래와 비정규직의 직장, 과외를 해야 하는 학생들처럼 정상 근무 시간 안에 마감되지 않는 개인의 업무량, 그로 인한 야근과 막차, 빠듯한 급여로 인해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쇼윈도 안의 사치, 일확천금을 바라고 사는 로또복권, 내일의 출근을 위해 부득이 차를 대리로 몰고 가야 하는 현실들이 어찌 제대로 사는 삶이겠는가. 눈은 뜨고 있어도 '더듬거리며' 비틀비틀 가는 현재 대도시 서울 종로에 서있는 직장인들의 삶의 방식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자란 삶이나마 소중한 것이기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거리에 쏟아져 나온 '난장의 행렬' 속에 '한 끼 젖은 밥' 을 구걸하기 위해 '지팡이 끝 환한 눈빛'으로 '길 옆구릴 더듬거리' 는 종로의 '아슬아슬 넘어질 듯' 그림이 마치 점자처럼 울퉁불퉁 하게 손끝에 어룽거린다. 이 시대화(時代畵) 속에서 시인은 '곰곰이 더듬거리며 짚어 가야 한다는' 것을 숙명처럼 진리처럼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더 나아가 '의연히 강을 건너는 지팡이 끝 환한 눈빛'이라는 역설적 진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3)

'외등의 시간'을 정점으로 하는 종로시편들과 서정을 앞세운 백담시편들로 이 시집을 대분한다면 그 사이를 비집고 또 다른 명징한 창을 보여주고 있는 시편들에 주목할 수 있으니 전봉준, 박정희, 노무현, 오현 스님, 6월항쟁, 숭례문 등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그의 역사인식과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편편들이 바로 그것이다.

 

전봉준

-가시-

 

사초(史草)의 손톱 밑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못물로 갈앉은 역사 불꽃처럼 깨운다

 

분연히 어둠을 긋고

 

스러져 간

 

유성

 

 

 

'손톱 밑' 은 사람의 살 중에서도 가장 연하고 약하기 때문에 손톱이라는 각질의 보호를 받고 있는 육신의 일부다. 육체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하므로 각질의 보호를 받으며 가장 위험하고 더럽고 세밀한 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독립군이나 민주투사들이 고문을 당할 때 대나무 침으로 이곳을 찔렸다 하는 사실을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사초의 손톱 밑'이라니 허허, 혀를 차며 무릎을 칠 일이다. 사초는 얼마나 구리고 더러운 것인가. 혹자는 그리하여 역사를 '이긴 자의 기록' 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런 취약한 곳의 손톱 밑을 '가시'가 되어 '깊숙이 파고들'었으니 어찌 참형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인가 말이다.

 

'못물로 갈앉은 역사'의 더깨를 흔들어 휘저어 놓고 '분연히 어둠을 긋고 스러져간 유성 하나' 라는 단언으로 단수를 끝내고 있다. 녹두장군은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래서 그를 시에 끌어들이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설명이 필요 없고 부연도 불가능하다. 다만 이렇게 촌철살인의 비유로 유성 하나를 허공에 날려야만 가능한 것이리라.

 

박정희, 노무현, 6월항쟁 등을 소재로 한 시편들인 '오래된 신문' '예각의 돌' '넥타이' 등의 작품은 권갑하 시인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부담감을 줄 수도 있는 소재였으리라 생각된다. 더구나 신문사에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처신하기 버거운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벽의 바위들은 비수를 품고 있다' '쥐오줌/ 마른 얼룩/ 뒤틀린/ 팔과 다리' '옥죄어 오는 내 의식의 바리케이드' 라는 절제된 표현으로 의미심장한 작가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양비론적이거나 격정적이지 않으며 한 쪽으로 지나치게 경도된 표현을 넘어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시인의 초점에 숨겨진 또 다른 눈빛이 이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4)

시는 내게 늘 결핍을 주었다.

그 결핍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여기 실린 시편들은

외등의 고독을 경건하게 견디는

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불혹의 강을 건너며 만난

세상의 소중한 눈빛들에게

삼가 이 시집을 바친다.

 

시집을 상재한 권갑하 시인의 자서가 자못 분연하며, 상대를 높이고 지극하게 자신을 낮추고 있다. 자못 지천명의 경계가 보이는 듯하다. 시인의 눈빛이 살아 숨 쉬는 한 시인에게 '결핍' 은 숙명적인 것이리라. 그의 시안(詩眼)이 피뢰침처럼 '선 채로 꼿꼿이 그대를 맞으리라' 하고 다짐한 말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의연한 시인의 길을 갈 것을 의심치 않는다. 외등(外燈)이 실내등이 아닌 이상 '보안등' 의 의미를 담고 있다. 권시인이 켜둔 '외등' 이 세상의 낮은 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듯하고 믿음직한 마음의 등으로 더 환하게 켜 있기를 희망한다.

 

동시대를 사는 갑장(甲長)으로서 같은 고갯길을 넘어 가고 있다는 믿음과 소신의 동지로 오래도록 동행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번 시집을 통하여 그간 쉽게 눈치 챌 수 없었던 권갑하 시인의 들창 너머를 들여다보게 된 것은 내겐 의미있는 일이었다. 언젠가 하늘재 앞마당쯤에서 산나물에 탁주 한 사발 할 날이 올 것이다. 그의 속마음에 좋은 누룩과 곡식을 버무려  숙성되고 있는 술항아리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는다.

 

술을 담그다

 

내 안에 술을 부어 넘치도록 술을 부어 후끈후끈 부글부글 울컥울컥 끼억끼억, 품었던 속마음 죄다 술술 풀어난다면

 

무슨 색 어떤 향일까 시리고 아픈 것들, 안으로 되삼켰던 회한의 눈물까지 말갛게 걸러 낸다면 허기는 또 몇 도쯤일까

 

이 저녁 부유물처럼 떠도는 저 군상(群像)들

2009.10.19 10:36 ⓒ 2009 OhmyNews

외등의 시간

권갑하 지음,
동학사, 2009


#권갑하, 외등의 시간,동학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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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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