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앞에 헌책방 한 곳 새로 열다

[헌책방 나들이 215] 서울 염리동(이대입구역) 〈유빈이네 책방〉

등록 2009.11.07 17:55수정 2009.11.0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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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헌책방을 깔보는 기자들

세상은 바뀌고 세월은 흐릅니다. 오늘날 세상은 더는 예전 세상이 아닙니다. 요즈음 모습은 지난날 모습하고 사뭇 다릅니다. 그러나 세상사람은 예나 이제나 그대로입니다. 잘못된 생각이나 치우친 마음을 고치지 않으며 새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엉뚱한 생각이나 올바르지 못한 마음을 그대로 건사한 채 마치 스스로 새모습인 양 우쭐거리고 있습니다.


ㄱ문고와 ㅇ문고 못지 않게 크고 돈이 많은 ㄹ이라고 하는 새책방이 얼마 앞서 서울 강남에 '신개념 중고서점'을 열었다는 소식이 ㅈ일보에 났습니다. ㄹ이라는 새책방이 연 '헌책방 아닌 신개념 중고서점' 소식을 알리는 ㅈ일보 기자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퀴퀴한 책 냄새와 뽀얀 먼지는 없지만"이라는 토를 달면서, 이 나라 헌책방은 어느 곳이든 꼭 '(1)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며 '(2) 퀴퀴한 책냄새가 나는' 곳에다가 '(3) 뽀얀 먼지가 있는' 곳인 듯 못을 박습니다. 이 책방을 찾아온 손님 입을 빌어 "깔끔하고 다양한 책이 구비돼 있는 데다 책 읽는 자리도 마련돼"라는 말에다가 "헌책방은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내 한복판에 시설 좋은 중고서점이 있으니"라는 말까지 달아 놓으며, 헌책방은 '(4) 깔끔하지 못한' 곳이며 '(5) 다양한 책이 없는' 곳에다가 '(6) 시설 나쁜' 곳인 가운데 '(7) 책을 읽을 자리가 없는' 곳이라고 더 단단하게 못을 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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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겹 책꽂이가 돋보이는 <유빈이네 책방> 짜임새. ⓒ 최종규


그런데, 따지고 보면 ㄱ문고이든 ㅇ문고이든 '책을 읽을 자리(7)'는 마땅히 없습니다. 이곳에서 어린이책을 살피는 자리에 걸상이 놓이는 때가 때때로 있으나, 사람들은 으레 바닥에 주저앉아서 읽으며, 이곳 직원은 바닥에 앉는 사람을 일으켜세우곤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헌책방은 '향수로 먹고살지(1)' 않습니다. 헌책방 책손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헌책방에 책을 찾으러 가는 사람은 '똑같은 책을 더 싸게 파니'까 가고, '새책방에서 품절 절판이 된 책이며 도서관에서 안 갖춘' 책을 손수 갖추어 읽고 싶기 때문에 헌책방에 갑니다. '향수가 있다는 헌책방'이라는 모습은 헌책방을 찾아가서 책을 읽지 않는 '책 안 읽는 신문기자와 방송피디'가 억지스레 만든 허울좋은 거짓 얼굴입니다.

또한, 오늘날 어느 헌책방도 '퀴퀴한 책냄새(2)'가 나지 않습니다. 이는 1990년대로 접어든 때부터 그러했습니다. 2000년대가 된 다음에는 '옛날 헌책방 모습 간직한 곳은 전국에 몇 곳 안 남으'면서 터무니없는 편견과 왜곡으로 신문과 방송 보도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때때로 저한테 '헌책방 소개해 달라'는 연락을 해 오는 신문사와 방송사가 있는데, 몇몇 곳을 일러 주면 "그곳은 헌책방 같지 않아서 취재할 수 없어요. 헌책방 같은(?) 데를 다시 소개해 주셔요." 하고 되묻곤 합니다. 기자와 피디가 말하거나 생각하는 헌책방이란 '어둡고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오랫동안 안 팔리고 먼지 잔뜩 내려앉은 책이 어지러이 쌓인'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헌책방 살림을 꾸리면 누가 여기에서 책을 사서 읽겠습니까? 이렇게 장사하면 이 헌책방 일꾼은 그날로 문닫고 굶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ㅈ일보 기자를 비롯한 숱한 기자와 피디들이 그려내는 헌책방 모습이란 거의 하나같이 명예훼손이라 할까요. 또는, 인신공격이라 할까요. '뽀얀 먼지(3)'라든지 '깔끔하지 못한(4)' 같은 대목은 더욱더 헌책방을 얕잡고 깔보는 엉터리 말마디입니다. 올해 2009년으로 40돌을 맞이한, 서울 연세대 앞 〈정은서점〉만 보아도, 이곳에 꽂힌 책 가운데 손가락으로 슥 문질러서 책때를 느낄 수 있는 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헌책방 일꾼은 '새로 들여오는 책'을 걸레로 닦아서 책먼지가 없는 채로 책손한테 팝니다. 웬만한 헌책방에는 제단기가 있어, 지저분한 데는 싹둑 잘라내기도 합니다.


헌책방 헌책이 지저분하다는 잘못된 생각이 퍼진 까닭은, 처음 책을 내다 버리는 우리들이 지저분하게 아무 데나 내다 버린 책을 고물상에서 건져내어 예전에는 이 모양 그대로 팔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우리가 지저분하게 내다 버린 그대로 판 까닭에 '책을 감싸고 있던 달력 싸개' 같은 자취까지 고스란히 느끼고, 책 사이에 끼워 놓든 책갈피나 광고전단지나 사진이나 편지나 돈 들을 구경해 볼 수 있었습니다. 생긴 그대로 두는 책에서는 우리가 보내온 삶이 낱낱이 묻어난다 하겠고, 말끔하게 손질한 책은 '헌책 새책'임을 떠나 깨끗한 상품이 되는 책으로 만날 수 있다 하겠습니다.

그래도 헌책방은 예나 이제나 제자리를 얌전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떠들썩하게 떠들어 주든 떠들어 주지 않든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책을 겉읽기 아닌 속읽기로 마주하며 곱디고운 빛줄기를 찾아내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말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다 할 만한 책을 알아보는 이한테 더 잘했다고 부추기지 않고, 좋다 할 만한 책을 고르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서는 이한테 더 못했다고 다그치지 않으며, 모든 이한테 똑같이 열린 책쉼터로 제길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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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가에서 바라보면, '서울 르네상스' 공사 때문에 앞쪽이 조금 막혀 있지만, 책방임을 어렵잖이 알아볼 수 있습니다. ⓒ 최종규



 (2) 여자대학 앞 헌책방이란

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역 5번 나들목에서 아현동 언덕받이 교회 있는 데로 조금 걸어가면 헌책방 하나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이대(이화여대) 앞 헌책방'이 하나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낱낱이 따지자면 '이대입구역 앞 헌책방'입니다만, 이곳까지 아울러 '이대 앞 헌책방'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대 앞에 헌책방이 새로 문을 연 지는 꼭 두 달이 되었습니다. 큰길가에 연 헌책방에 내다 거는 간판에는 따로 이름을 적어 놓지 않고 "책"이라고만 적어 놓았는데(책방에 있는 사다리에는 책방 이름을 매직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이곳 이름은 〈유빈이네 책방〉입니다. '유빈이'는 헌책방을 연 아주머니네 아이 이름일까요?

서울에 있는 여자대학교 앞에 헌책방이 새로 문을 열기는 다섯 해 만이 아닐까 싶은데, 더군다나 이대 앞에 헌책방이 새로 문을 열기로는 스무 해가 훌쩍 넘은 일이라고 느낍니다. 이대 앞쪽에도 새책방은 한 군데 있습니다만, 전국 대학교 앞 곳곳에 하나둘씩 있던 인문학 책방이 사라질 때에, 이대 앞에 있던 자그마한 인문학 책방 또한 문을 닫았습니다. 이무렵 이대 앞에는 헌책방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성신여대 둘레에는 아직 〈신광헌책〉이 남아 있으나, 성신여대 둘레에 있던 〈이오서점〉과 〈그린북스〉는 진작에 문을 닫았습니다. 숙명여대 앞에 있던 〈책천지〉는 1995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도 지난 2004년 겨울 무렵에 숙대입구역 둘레 여관골목 한켠에 〈우리서점〉이 새로 문을 열어 새로운 책문화를 나누고 있는데, 숙대는 아홉 해씩이나 '둘레에 헌책방 한 곳 없는 메마른 책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겠습니다. 굳이 나라밖 이야기를 들지 않더라도, 학문을 깊고 넓게 헤아리는 대학교 둘레에는 어디에나 헌책방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은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만 남달리 '책 안 읽' 고 '헌책 얕보는' 버릇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어찌하다가 우리네 헌책방이 이렇게 사라져 버리고, 우리네 대학생은 이다지 책하고 담을 쌓았을까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입시지옥 탓이 아닌가 싶고, 입시지옥에 뒤이은 취업지옥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이런저런 지옥 탓은 핑계이고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사로잡거나 갈고닦을 책밭을 마련하지 않는 탓이라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아무리 입시가 우리들 마음밭을 메마르게 갈아엎는다 하여도 우리 스스로 줏대와 주제를 키워 책과 사람과 삶을 이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일자리가 걱정이며 보고서와 논문쓰기가 넘친다 하여도 책읽기와 사람읽기와 삶읽기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사들이 옳게 이끌지 않고 부모들이 바르게 살아내지 않기도 했다지만, 우리가 우리 힘과 슬기와 마음을 쏟으며 우리 스스로 새로워지거나 거듭나도록 하는 책읽기와 사람읽기와 삶읽기를 제대로 안 합니다. 그냥 흘러갑니다. 그저 남을 따라갑니다. 그예 겉훑기와 겉꾸밈으로 그칩니다.

거의 꿈꾸기조차 어렵던 '서울 이대 앞 헌책방'이 태어났지만, 다른 사람보다도 이화여대 학생과 이화여대 대학원 학생과 교수 들이 이곳을 즐겨찾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서울 경희대 앞쪽 회기동에서 열한 해째 헌책방을 꾸리는 〈책나라〉 일꾼은 "책 안 팔리는 것보다 경희대 학생들하고 교수들하고 책 보러 안 오는 게 속이 상"하다고 했습니다. 1970년 11월에 온몸에 불을 붙여 죽은 전태일 님이 '대학생 친구'를 바랐듯이, 헌책방 일꾼들은 '대학생 책손'을 바란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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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빈이네 책방>은 나온 지 얼마 안 된 책들도 제법 갖추어 놓고 있습니다. ⓒ 최종규


 (3) 책 구경

헌책방 〈유빈이네 책방〉 앞에는 상자와 책꽂이를 써서 여러 가지 만화책과 그림책과 잡지를 가지런히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 앞을 지나가면서 '어, 여기 헌책방이 있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런데 이 앞을 슬쩍 들여다보는 사람은 많아도 안으로 들어가 책을 골라 보려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한참 동안 밖에서 만화책과 잡지책을 들여다보다가 안으로 들어갑니다.

〈유빈이네 책방〉은 안으로 길게 뻗은 조그마한 가게입니다. 골마루는 오로지 둘이고, 헌책방 일꾼이 앉은 자리 앞뒤로 하나씩이요, 책꽂이는 네 줄입니다. 그런데 책꽂이를 슥 미니 뒤쪽에 다른 책꽂이가 있고, 이 뒤에도 하나 더 있습니다. 바퀴 달린 책꽂이가 모두 세 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벽 쪽은 두 겹이고 가운데에는 세 겹씩입니다. 그러니까 책꽂이는 모두 열 줄이 있는 셈이고, 천장이 조금 높다 할 이곳 〈유빈이네 책방〉은 크기가 작은 헌책방이지만, 속속들이 갖춘 책은 퍽 많은 셈입니다. 아직 세 겹 안쪽까지 빈틈없이 책을 채워 놓지 못했습니다만, 이만한 부피야 앞으로 서너 달이면 알뜰히 채울 수 있습니다. 어느 책방이나 마찬가지인데, 책꽂이를 가득가득 채우는 책방이 반갑거나 좋은 책방이 아니라, 우리 손을 쉬지 않도록 하는 책이 쏠쏠히 꽂힌 책방이 반갑거나 좋습니다. 책방 한 곳에 5천 권이 있든 5만 권이 있든 50만 권이 있든, 우리가 훑으며 장만할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아요. 두어 시간 둘러본다 하여도 몇 가지 책이나 꼼꼼히 살필 수 있겠습니까. 책방이 크면 클수록 볼 책이 많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책방이 클 때에는 오히려 '책방을 돌아보는 데에 시간을 빼앗'기며 정작 '내가 바라는 책을 차근차근 읽을 시간'을 잃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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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앞에서 조금 먼 곳인 이곳이라 하더라도 가게삯은 만만하지 않겠지요. 앞으로 오래도록 책쉼터로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 최종규


그림책 《레오 리오니/김영무 옮김-티코와 황금날개》(분도출판사,1979)를 봅니다. 분도출판사 그림책 가운데 레오 리오니 그림책은 거의 안 가지고 있습니다. 줄거리나 그림이 안 좋아서 안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 마음이 그리 안 끌릴 뿐입니다. 《티코와 황금날개》는 오스카 와일드가 쓴 〈행복한 왕자〉를 떠올려 줍니다. 줄거리나 얼거리가 얼추 비슷합니다. 그림은 《티코와 황금날개》가 예쁘장하기는 한데,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 아름다움은 〈행복한 왕자〉를 따를 수 없습니다.

《岩田一男(글),眞鍋 博(그림)/안광제 옮김-펼쳐 보면 알게 되는 그림영어 회화단어 사전》(대한출판사,197?)을 봅니다. 간기에 '펴낸 해'가 언제인지 제대로 밝히지 않고 '197'이라고만 해 놓았습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낸 '그림영어 사전'을 몰래 훔쳐낸 판이기도 하지만, 간기마저 이렇게 엉터리로 붙이다니 대단합니다.

그러면, 이런 엉터리 책은 왜 사느냐? 제가 어릴 적에 이 책을 집에서 보았거든요. 우리 집에 이 그림사전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땅한 소리이지만, 우리 집에 있던 이 그림사전 또한 해적판이었습니다. 그림이 퍽 재미있다고 느끼며, 어릴 적에 심심풀이 삼아 오래오래 그림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온갖 이야기가 골고루 담긴 모둠그림을 들여다보며 꿈나라에 빠지곤 했고, 이런 아기자기하고 재미난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었을까 하고 두고두고 헤아리곤 했습니다.

1978년에 새로 찍은 판이라고 하나, 처음 내던 책에 쓰던 사진을 그대로 복사했다는 느낌이 짙은 《太極卷圖說 全本》(香港太平書局出版,1961)을 봅니다. 태극권 품새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1961년에 이런 책을 내려고 했을 때에는 사진을 찍느라 얼마나 힘들고 돈이 많이 들었을까요. 요즈음은 필름값이 올랐다지만 1961년 앞뒤로는 엄청나게 비쌌으니까요. 사진 질감은 아주 형편없지만, 그 옛날에도 사진으로 품새를 이와 같이 보여주고자 애썼다는 손품을 느끼고자 집어듭니다. 그러고 보니, 태권도 품새를 보여주는 오래된 사진책은 거의 못 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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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겹으로 된 책꽂이 안쪽에 수많은 책들이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최종규


사진책 《Linda Bladholm 사진-Kanazawa, the heart of a Japan》(能登印刷,1990)은 일본 카나자와라는 곳을 사랑한 어느 미국사람 작품을 그러모읍니다. 사진쟁이는 미국사람이지만 사진 느낌은 일본사람이 찍지 않았나 싶도록 일본 느낌이 납니다. 이 사진쟁이는 일본에서 퍽 오래 살았을까요? 머리카락 노랗고 살결이나 눈빛이 다른 서양사람이 사진기를 들이대고 있는데도 사진에 담긴 일본사람들은 하나도 흐트러지거나 어줍잖지 않습니다. 늘 그 모습 그대로 담깁니다. 억지스러움이 아닌 자연스러움입니다. 예전에 우리 나라에도 우리 모습을 담은 '마이클 F.오브라이언'이라는 서양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사진책을 여럿 내놓았고, 저한테는 《멀리 풍기는 내음》(1981)과 《Chi-Hoon》(1993) 두 가지가 있는데, 이분이 담은 한국땅 한국사람 느낌은 서양사람이 찍은 사진 느낌이 아닌, 꼭 우리 둘레 여느 아저씨가 찍은 사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Kanazawa, the heart of a Japan》은 일본을 아끼고 사랑하며 일본사람이 다 된 서양 아줌마(또는 아가씨)가 일본사람 눈높이에서 일본 문화와 삶을 사진으로 담아냈다고 하겠습니다. 아마, 한국사람 가운데에도 그리스를 사랑하거나 프랑스를 사랑하면서 이 나라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사진을 찍는 이들이 있을 텐데,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한국 사진밭은 '한국을 아낌없이 사랑하며 한국을 담는 한국 느낌 사진'이 아니라 '서양 삶과 문화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받아들이며, 이러한 서양 삶자락 눈길과 눈높이로 한국 삶자락을 담는 사진'이 아닌가 싶습니다.

《片野隆司(사진),間所ひさこ(글)-ちいさな つぼみ》(チャイルド本社,2003)는 다달이 나오는 '잡지 같은 그림책' 가운데 하나로, 'サンチャイルド ビッグサイエンス'라는 묶음책 33권 2호(2003년 5월호)로 나온 녀석입니다. 다만, 이 녀석은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마, 이런 책은 어린이책 갈래에서 그림책 쪽에 들어가고 따로 사진책으로 나누지 않을 텐데, 일본에서는 '사진으로 엮는 그림책 형식 어린이책'이 퍽 많습니다. 이러한 책은 그림으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남다른 느낌을 아주 잘 잡아채면서 훌륭하게 마무리를 짓습니다.

《말틴 루터 킹/김교준,이성학 옮김-아빠는 왜 자주 감옥에 가야 하나요》(삼한출판사,1966)가 두툼한 판으로 있습니다. 500쪽 가까운 책을 손으로 쥐면서 '예전에 같은 책을 좀 얇은 판으로 보지 않았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그러다가 '아하, 예전에 본 책은 킹 목사 책이 아니라 네루 수상 책이 아닌가?' 하고 떠오릅니다. 겉그림 꾸밈새가 거의 비슷해서 살짝 헷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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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찾는 우리 손길에 따라, 책방 문화와 책문화는 사뭇 달라집니다. ⓒ 최종규


 (4) 마음을 닦아 주는 책

《데이비드 스즈키,오이와 게이보/이한중 옮김-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나무와숲,2004)라는 책이 보입니다. 처음 한 시간 남짓 골마루를 돌 때에는 보이지 않던 책입니다. 〈유빈이네 책방〉 아주머니한테 책방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도 되느냐고 말씀을 여쭌 다음 거듭 골마루를 찬찬히 다시 누빌 때 비로소 눈에 들어왔습니다.

책을 끄집어 내어 펼치면서 생각합니다. '아까 틀림없이 이 책이 꽂힌 책꽂이를 샅샅이 훑는다고 훑었지. 그러나 그때에는 내 눈에 이 책이 들어오지 않았지.'

우리는 무엇을 보고 '보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새삼 되뇌어 봅니다. 우리는 무엇을 놓고 '알았다'는 글을 쓸 수 있는지 가만히 되씹어 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요즈음 우리들은 무엇을 글로 적바림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보았다고 하면서 글로 적바림하는 이야기는 얼마나 참된 모습과 자취라 할 만할까요?

이대 앞에 새로 문을 연 헌책방 〈유빈이네 책방〉 안팎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거듭거듭 헤아립니다. 사람들은 왜 헌책방을 헌책방 그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지를. 사람들은 왜 헌책을 헌책 그대로 맞아들이려고 하지 않는지를. 사람들은 왜 책방과 도서관이 얽힌 고리를 꾸밈없이 껴안으려고 하지 않는지를. 사람들은 왜 책 하나마다 무엇이 스며 있고 배어 있으며 깃들어 있는가를 느끼려 하지 않는지를.

.. 마루키 부부는 예술가의 책무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고 지나간 고통의 교량 역할을 하여 남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그러한 참사를 알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많은 지옥을 그린 다음에, 저는 여인들 대신에 아이들을 그려 넣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지요. 아이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들을 그렸고, 남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여자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제 그림을 보면서 (남편) 이리는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법이 아니오.' 그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저는 여인들을 유혹하고 여인들이 이루려고 하는 것을 방해하려는 악마들을 그려 넣었지요." ..  (3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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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긴 골마루 두 군데로 이루어진 작은 헌책방 <유빈이네 책방>입니다. ⓒ 최종규


품절이 된 뒤 거듭 찍지 않아 새책방에서는 찾아볼 길이 끊긴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를 천천히 읽어 나갑니다. 틀림없이 다시 찍지 않을 터이니, 이 책 하나 곱새기며 차근차근 맛보자고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스즈키는 캐나다사람인데 왜 '스즈키'라는 일본 이름이 들어 있는지를 아무도 살피지 않을 이 나라에서, '오이와 게이보'라는 이름 어느 구석에서도 이이 핏줄 가운데 하나가 북녘나라에 가 닿아 있음을 어느 누구도 살펴보지 않을 이 땅에서, 이 두 '일본사람이면서 일본사람이 아닌 사람'이 들려주는 일본땅 낮은자리 목소리란 참으로 우리한테 어떻게 스며들 만한 책이 될는지를 돌아보면서 책장을 넘깁니다.

책방에 손님이 둘 들어옵니다. 한 분은 십 분 남짓 돌아보다가 빈손으로 나갑니다. 한 분은 아이가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로 내야 하는 '읽기 책'을 찾습니다. 머리가 허옇고 앞 이마는 제법 벗겨진 분인데, 당신 늦둥이일는지 손주일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읽을 책이 아닌 아이가 읽을 책을 헌책방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읽을 책은 딱 한 번이라도 찾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값싸게 사서 읽힐 '숙제'만을 찾아봅니다.

.. 전세계 절대 다수의 과학자들이 군사기관을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러한 곳들의 연구비 예산은 보건ㆍ수송ㆍ통신ㆍ교육 분야의 예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네이팜탄이나 오렌지제(고엽제), 중성자탄, 스타워즈, 패트리어트 미사일, 그리고 특정 인종 집단을 겨냥한 무기 등은 군인들이 꿈꿔 오거나 창조해 낸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착상해 낸 사람들은 바로 '과학자들'이다 ..  (57쪽)

지난 8월부터 한글학회 일을 거들면서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을 배우는 분들을 열 사람 남짓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따로 물어 보아야겠지만, 당신들 다니는 학교 앞에 헌책방이 생겼음을 아는 분은 없으리라 봅니다. 소식을 알려준다 한들 짬을 내어 한 번쯤이라도 찾아올 듯한 분 또한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곳 명함을 그분들한테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대학원 마치기 앞서 한 번쯤은 나들이를 해 보셔요.' 하고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덧붙여 '가까운 신촌에도 훌륭한 헌책방이 여럿 있으니, 한 곳씩 찾아가 보시면 말과 문학과 책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 믿어요.'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 혼자만 좋을 마음닦이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 알아차리며 즐기는 이 책쉼터에서 혼자만 책으로 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이곳에서 책으로 쉴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쉼터를 애써 마련해 일구는 분들이 책을 사고팔면서 당신들 일하는 보람을 거둘 수 있기를 바라고, 앞으로 또다른 누군가가 '헌책방 일꾼이 되어 내 밥벌이도 하고 마음벌이도 하는 기쁨을 누려 볼까?' 하는 꿈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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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일꾼이 앉는 자리 둘레. ⓒ 최종규


..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들을 널리 여행해 본 결과, 혼다는 일본이 스스로 핵무기의 '희생자'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그런 이미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렸다. 난징이나 싱가포르, 코레히도르 섬(필리핀), 충칭, 판문점 등 아시아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일본의 잔인성을 기억할 뿐이라는 것이다 … "부모님이 안 계신다면 내 고향 마을은 쓸쓸한 곳이 되어 버린다. 만일 강에 아직도 새우와 올챙이가 가득 있다면, 아직도 반딧불이가 집안으로 날아 들어온다면, 아직도 개구리가 밤새 운다면, 우리 마을은 아직도 부모님의 모습과 냄새를 간직할 것이다. 그런 곳이라면 내 고향의 추억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논에 사는 작은 물고기를 보면서 나는 과연 누가 파괴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북베트남은 매일같이 폭격을 받아 파괴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파괴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일본이었다. 북베트남 마을들에서는 내 고향 마을을 볼 수 있다. 일본 제도혁신 계획에 따른다면 우리 자연과 환경이 어떤 꼴이 되겠는가? 내 고향에는 지금 고속도로 건설이 한창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고속철도 시스템까지 걸노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든 것에서 진정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  (65∼68쪽)

《요시다 겐코(吉田兼好/송숙경 옮김-徒然草》(을유문화사,1975)라는 자그마한 책을 마주합니다. 아, 이런. 이런 이런. 이런 책이 진작에 나와 있었구나.

처음에는 한자로만 적은 글쓴이 이름이 낯익지 않아 '뭐 이런 책도 을유문화사에서 문고판으로 낸 적이 있네?' 하고 집었는데, 다름아닌 요시다 겐코라 하는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대단한 옛 어른이 쓴 책입니다. 이런 대단한 책이 1975년에 벌써 나와 있었군요.

.. 신분이나 가문 그리고 용모 등은 타고나는 것이니 하는 수 없다손치더라도, 마음은 현명하고 슬기롭게 하려고만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수가 있는 것이다 ..  (9쪽)

요시다 겐코라 하는 분 삶과 이야기는 당신이 흙으로 돌아간 지 수백 해가 지나고서도 이웃나라 한국에서 알뜰하게 옮겨져 읽힙니다. 처음에는 을유문고 가운데 하나로 뽑히며 널리 사랑받았고, 차츰 사람들한테 잊히면서 헌책방으로 흘러들어서 조용히 새 책손을 기다렸습니다. 아마, 이 책은 제가 흙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우리 아이라든지 다른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이리라 봅니다. 성경하고는 또다른 테두리에서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담고 있는 책이거든요.

짧은 글월 엮은 《徒然草》를 야금야금 조금씩만 맛보면서 읽습니다. 조금 읽고 생각하고, 생각한 다음 다시 펼치고, 다시 조금 읽다가 덮고서 생각하기를 되풀이하다가 문득 이런저런 궁금함이 하나둘 솔솔. '우리 나라에서 어른으로 손꼽는 분들 책 가운데 앞으로 200 해가 지나고 나서도 읽힐 만한 이야기는 몇 가지가 있을까?' '이제부터 삼백 해가 지난 뒤에,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로 내는 고전이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 찾아서 읽을 뿐 아니라 가난한 출판사 편집자가 기꺼이 피땀 바쳐서 새로 펴내 줄 만한 오늘날 어른들 책은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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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앞 길가에 만화와 잡지와 레코드판 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 최종규


.. 만사에 뛰어나 있는 사람이라도 사랑이나 그리움의 정취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지 않은 사나이는 몹시 부족된 감이 있어서, 마치 아름다운 옥잔의 밑이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 틀림없다 ..  (11쪽)

권정생 할아버지 《우리들의 하느님》은 이백 해 뒤에도 새숨을 얻을까요? 이오덕 할아버지 《나무처럼 감처럼》은 어떠할까요? 리영희 할아버지 《스핑크스의 코》는 어떻습니까? 박완서 할머니나 박경리 할머니 책은 어떠할까요? 우리들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오늘날 같은 환경재앙을 스스로 고쳐 나가거나 그만두면서 새삶을 얻는다면 앞으로 오백 해나 천 해 뒤에도 우리 역사는 이어지리라 보는데, 그 멀다면 멀고 짧다면 짧은 앞날에 '1900∼2000년대를 살던 어른들 좋은 책'을 2500년대나 3000년대 사람들은 몇 권쯤 뽑아서 다시 읽으려고 할는지요? 다문 한 가지 책이라도 2500년대나 3000년대에도 읽힐 수 있을까요? 그때까지 그저 몇 가지 요즈음 책이라도 살아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네 도서관은 2009년에 나온 책을 2999년까지도 건사할 수 있을까요? 1959년에 나온 책을 2559년까지 지켜 줄 수 있을까요?

한참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집에서 아기하고 둘이서 씨름하고 있을 옆지기가 떠올라, 혼자 하는 책마실은 이제 그치기로 합니다. 부랴부랴 책값을 셈하고 가방을 꾸립니다. 용산역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인천으로 가는 빠른전철을 잡아탑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하고 《徒然草》를 번갈아 읽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염리동(이대입구역) 〈유빈이네 책방〉 / 010-3169-9313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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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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