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이음책방'은 웃으며 떠납니다

[책이 있는 삶 120] 다섯 해 돌아보는 사진잔치를 열며

등록 2009.11.20 14:05수정 2009.11.20 14:53
0
원고료로 응원
a

큰 기둥 안쪽 자리는 이제 '갤러리'로 탈바꿈했습니다. ⓒ 최종규


1 : 혜화동과 문화와 책

서울 혜화동('대학로'가 아닌 '혜화동'입니다) 안쪽 골목 지하 한 곳에 인문예술책을 전문으로 다루는 책방이 지난 2005년부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곳 이름은 처음에는 '이음아트'였고, '이음책방'으로 바꾸었다가, 이제는 '이음책방·갤러리'라는 새 이름을 마련했습니다. 처음에는 새책을 다루었다가, 나중에는 헌책을 함께 다루었으며, 이제는 자그마한 전시터와 차 마시는 쉼터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대학로'라는 말을 쓰지만, 이 이름은 그리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화여대 앞길이라 하여, 경북대학교 앞길이라 해서, 인천대학교 앞길이라 해서 '대학로'라고 이름 붙이는 일이란 없습니다. 서울 한 곳만 놓고 보았을 때 동국대학교 앞길이 '대학로'입니까? 경희대학교 앞길이 '대학로'입니까? 연세대학교 앞 신촌거리가 '대학로'입니까? 우리는 깊이 살피지 않고 '대학로'라고 일컫지만, 이곳은 '혜화동'입니다. 이제는 관악구에 있는 서울대학교가 혜화동에 한동안 자리잡고 있을 때 이곳 거리를 '대학로'라고 일컫던 말버릇이 남고 퍼져서 오늘날처럼 쓰고 있는데, 그리 알맞게 일컫는 이름이 아닙니다. 더구나, 서울대학교는 학교신문 이름을 '대학신문'이라고 씁니다. 우리 나라에 서울대학교만 대학교가 아닐 텐데, 이렇게 '서울대만 대학'인 듯한 느낌을 이야기하고, 더욱이 '혜화동이 온갖 대학생들 문화가 모여서 대학로'가 아니라 '서울대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대학로'라 하던 역사를 살핀다면 이 같은 이름은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혜화동에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다면 '젊음길'이나 '푸른길'이라고 해야 올바릅니다. 모든 젊은이가 대학생이 아니며, 대학생이 되어야만 젊음을 마음껏 뽐내거나 드러내거나 펼칠 수 있지 않은 터라, 더더구나 '대학로'라는 이름은 훌훌 털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a

혜화동 찾는 이한테 책으로 쉴 자리를 마련해 놓고픈 꿈을 이어온 <이음책방>입니다. ⓒ 최종규

이러거나 저러거나, '이음책방·갤러리'는 혜화동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큰길이 아니요 사람들 복닥거리는 길거리나 골목이 아닌 살짝 후미진 곳에 깃들고 있어서 고요하게 머물러 있는 듯 보이는데, 이 고요한 '이음책방·갤러리'는 지난 다섯 해(꼼꼼히 따지면 네 해 두 달)에 걸쳐 숱한 문화잔치를 벌여 왔습니다. '작가 강연마당'을 교보나 영풍처럼 큰 책방만 할 수 있지 않음을 수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자그마한 인문예술책방에서도 언제든지 '사진잔치'와 '노래잔치'에다가 '연극잔치'까지 할 수 있음을 한결같이 보여주었습니다. 대학교 강의실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인문학강연'을 즐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말이 아닌 실천으로 인문을 펼치고, 이론이 아닌 온몸으로 예술을 나누었습니다. '이음책방·갤러리'는 처음 책방 문을 열 때에 붙였던 '예술(아트)'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내세우는 예술이 아닌 나누는 예술을 벌여 왔고, 자랑하는 예술이 아닌 어깨동무하는 예술을 함께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음책방·갤러리'는 여태까지 씩씩하게 걸어오던 한길을 더는 걸어가지 못합니다. 2009년 12월 31일에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지난 11월 12일, '이음책방·갤러리' 큰일꾼 한상준님은 블로그(blog.naver.com/eumart)와 까페(cafe.naver.com/eumartbook)에 살림살이가 버거워 더는 책방살림을 잇지 못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이음 살리기"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이음을 더 잇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힘이나 겨를이나 품이 모자랐습니다.

지난 2004년 2월에 명륜동 '논장'이 문을 닫을 때 퍽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러나 명륜동과 혜화동을 잇는 '참으로 작은'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은 꿋꿋했습니다. 다른 숱한 인문사회과학책방이 문을 닫아도 '풀무질'만큼은 문을 안 닫았습니다. 겨우겨우 살아남은 인문사회과학책방이 둘레 도움을 받아 새로 문을 열을 때에도 '풀무질'은 외려 이 이웃 책방한테 살림을 보태 주면 보태 주었지 따로 보탬을 받지 않았습니다.

혜화동(과 명륜동을 이으며) 이 터전에 '책으로 문화를 나누는 곳'으로 '풀무질'과 '논장'이 있어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주었는데, 이 흐름이 2004년 2월부터 한쪽 팔이 똑 하고 부러진 채 있었습니다. 2005년 11월에 이르러 부러진 한쪽 팔이 '이음아트'가 새로 열리며 채워졌습니다. 2005년 11월에 새 닻을 올리며 혜화동(과 명륜동 잇는) 책 문화를 새로 다스리고자 했던 '이음아트' 큰일꾼 인사말을 들여다보면, "대형서점이 독점하고 인터넷서점이 횡행하는… 서점·음반 시장에서 서점도 없어지고 음반점도 없어진 대학로에서 한번 자리를 잡아보자는 생각이 무모하다는 주위의 염려와 우려를 들으며 어쨌든 문을 열었습니다"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참으로 '무모'했지요. 더없이 '무모'했습니다. 그러나 이 무턱대고 밀어붙이는 힘이 있었기에 '이음책방·갤러리'는 다섯 해를 혜화동에서 살아냈습니다. '다섯 해밖에 못 버틴' 책방살림이 아니라, '다섯 해나 살아낸' 책방살림입니다. 오늘날 같은 세상에서 이 자그마한 책방이요 전시장이 다섯 해를 꿋꿋하게 지키고 씩씩하게 버틴 대목은 널리 칭찬할 대목이라고 느낍니다.

a

책과 전시터와 차가 함께 있는 <이음책방>입니다. ⓒ 최종규


책방 문을 열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았을 무렵, 책방 큰일꾼 한상준님은 블로그에 글 하나 남깁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들른 인터넷서점 알라딘을 보고 기가 꺾인 상태입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인터넷 서점과의 가격 경쟁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또 듭니다. 가게를 연 후에 관심을 갖고 들러 주신 많은 손님들의 격려는 계속 대학로에서 자리잡고 잘 되기를 빈다는 진심 어린 격려였습니다. 이렇듯 성원해 주시는 많은 소중한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기죽지 않고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이음만의 생존전략을 개발해야 할 상황입니다.(2005.11.15.)"

세 해가 지난 다음에도 똑같은 걱정이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책방을 연 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은 책방의 생존 확률은 더 낮아지고 있는 것은 어느 업종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책을 소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더 편리하게 더 낮은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서점의 이용이나, 양과 종수에서 소형 책방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대형서점이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는 상황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더 나은 수익으로 아이들의 교육과 안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의 입장에서 전혀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십대 중반에 들어선 나이로는 이것 저것 선택할 여지가 많지 않은 게 너나 없는 우리의 현실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상황은 더욱 나빠져 가고 있는 게 안타깝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더 나아진 의료 혜택과 영양섭취의 상태가 좋아져서인 것은 분명한데 그만큼 행복지수와 삶의 질이 높아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때 책방을 하겠다고 결정한 계기는 수입이 적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만 있다면 그것도 삶의 한 방법이 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2009.1.3.)"

이 같은 걱정은 '이음책방·갤러리' 큰일꾼뿐 아니라 이웃한 '풀무질' 일꾼도 하고 있습니다. 책방 한 곳은 걱정을 더 짊어지지 못해 문을 닫지만, 다른 책방 한 곳은 앞으로도 걱정을 짊어지려고 합니다. 좀더 힘이 있었다면 한결 나았을는지 모르는데, 좀더 힘이 없어 이렇게 손을 내려놓는다 하여 더 슬프지는 않습니다. 그예 "애 많이 쓰셨습니다." 하고 인사말을 올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걱정을 접고 마음을 넉넉하게 쉴 때가 되었나 보네요." 하면서 따뜻하게 껴안고 싶습니다.

a

2006년 이른봄. <이음아트>라는 이름으로 혜화동에 새 문화바람을 일으켰습니다. ⓒ 최종규


a

지난 다섯 해에 걸쳐, 이곳 벽 쪽 책꽂이도 여러모로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 최종규


2 : 사진잔치 알림

저는 '이음책방·갤러리'를 2006년 봄부터 드나들었습니다. 책방을 드나드는 틈틈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 번 나들이를 할 때 너덧 장이나 열 장쯤을 찍어 백 몇 장을 찍었습니다. 여느 헌책방을 나들이하면 으레 스무 장쯤 찍었으니, '이음책방·갤러리'에서는 얼마 안 찍은 셈입니다. 저로서는 이곳에 좀더 오래오래 뿌리를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한 번 찾아올 때 너덧 장씩 찍더라도 열 해가 넘으면 수백 장이 될 터이니 차근차근 남달리 '추억과 기록과 이야기와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리라 믿었습니다. 이 사진찍기는 2006, 2007, 2008, 2009, 이렇게 네 해로 그칩니다. 누군가 '이음책방·갤러리'를 이어받아 '혜화동 책문화'를 한결 살찌우고 더욱 씩씩하게 가꾸고자 한다면, 저 또한 2010년이 되고 2011년이 되어도 '이음책방·갤러리' 이야기를 사진으로 엮을 수 있겠지요.

이참에 '이음책방·갤러리'가 걸어온 다섯 해가 외롭거나 고단하거나 슬프지 않았음을 나누고 싶어 사진잔치를 마련해 봅니다. 저로서는 네 해에 걸쳐 '이음책방·갤러리'를 바라보고 즐긴 발자취를 사진 예순아홉 장에 담아서 보여드립니다. 씩씩한 책방이요 씩씩한 책방 일꾼이고 씩씩한 책방 손님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잊혀지거나 사라지거나 안쓰러운' 문닫는 책방 한 곳이 아니라, '그동안 애 많이 썼고 웃음과 눈물 기쁘게 나눈 고마운' 책쉼터 한 곳이라고 느끼며 사진잔치를 마련합니다.

사진잔치는 11월 19일부터 엽니다. 12월 7일에 마감합니다. 사진잔치를 여는 동안 '작품 예약 판매'를 합니다. 앞으로도 '이음책방·갤러리'를 사진 하나로 되새김하고 싶으신 분들은 사진을 살 수 있습니다(사진은 한 장에 만 원씩. 사진을 사시면 이 돈은 고스란히 '이음책방·갤러리'가 책방살림을 정리할 때에 보탭니다). 사진을 사는 분들한테는 제가 인천 골목길에서 찍은 사진을 작게 뽑아서 한 장씩 선물로 드립니다. '이음책방·갤러리'는 따로 쉬는 날이 없으며, 큰일꾼은 아침저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은 책방에 전화로 여쭈면 되고, 지하철로는 4호선 혜화역 1번 나들목입니다(02-745-9758).

a

문을 닫기로 했지만, <이음책방>은 마지막 날까지 씩씩하고 꿋꿋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최종규


3 : 책방 이야기 사진잔치란

'이음책방·갤러리' 큰일꾼은 "이음은 우리 모두의 편안한 쉼터, 대학로의 문화공간이 되기를  꿈꿉니다.(2005.11.28.)" 하는 마음씨로 다섯 해를 이끌어 왔습니다. "새로 나오는 좋은 책들도 중요하지만, 저는 헌책도 변하지 않는 중요성과 매력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2006.4.2.)" 하는 마음결로 책을 마주하고 다루어 왔습니다. "진열된 책들을 바라볼 때면 마음 가득히 뿌듯하게 차오르는 포만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만 권의 책이 무슨 소용이랴 쓸쓸함을 느낄 때도 있다. 책은 그냥 책일 뿐이다. 다 그런 것이지.(2007.12.31.)" 하는 마음밭을 다독이면서 책 하나와 사람 하나를 잇는 징검다리 몫을 맡은 당신 삶을 즐겨 왔습니다.

제 사진이 이 같은 마음씨와 마음결과 마음밭을 어느 만큼 함께 느끼면서 녹여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책 하나 사랑하고 사람 하나 믿는 제 마음씨와 마음결과 마음밭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떠나는 '이음책방·갤러리'를 안타까이 여기는 뜻이 아닌, 이제까지 튼튼하게 책나눔을 해온 '이음책방·갤러리'를 기리며 고마이 받아들이는 뜻으로 사진잔치를 마련합니다. 홀가분하게 찾아오시고 느긋하게 둘러보시며 두 손 두둑하게 '마음 살찌우는 책'을 장만해서 돌아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a

한 해 두 해 책방살림 이으며 책 가짓수가 늘고 책꽂이도 여러 차례 새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 최종규


a

<이음책방> 큰일꾼이 벽에 새 사진을 붙여놓고 있습니다. 사진잔치는 11월 19일부터 12월 7일까지 이어집니다. ⓒ 최종규


[사진잔치 여는 이 : 최종규]
 1998년에 보도사진을 처음 배운 뒤, 1999년부터 '헌책방' 한 가지만을 사진으로 담아 왔다. 2005년부터 드문드문 '자전거'를 사진으로 담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고향 인천에서 어릴 적 뛰놀던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2007년부터 함께 살고 있는 옆지기와 2008년에 함께 낳은 아기하고 세 식구 살림을 꾸리고 있다.

그동안 <모든 책은 헌책이다>(2004), <헌책방에서 보낸 1년>(2006), <자전거와 함께 살기>(2009), <책 홀림길에서>(2009)를 써냈다. 2007년부터는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을 엮고 있는데 2009년까지 7호를 내놓았고, <사진은 삶이다>와 <말은 삶이다>라고 하는 비매품 책을 주머니돈 털어서 내놓았다. 2009년 12월 첫주에 <생각하는 글쓰기>라는 책이 새로 나온다.

지금은 고향 인천에서 '사진책 도서관 : 함께살기'를 꾸리고 있다. 사진쟁이 최종규는 헌책방과 골목길 이야기를 개인 누리집에 올려놓고 있다. 이 사람이 참말로 마음 바쳐 하는 일은 '우리 말 이야기 쓰기'이고, 옆지기와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먹고 아이키우는 일을 좋아한다.

- 우리 말+헌책방 이야기 : hbooks.cyworld.com
- 인천 골목길 이야기 : cafe.naver.com/ingol


a

요즈음 <이음책방> 모습. ⓒ 최종규


a

요즈음 <이음책방> 모습.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사진잔치 #이음아트 #이음책방 #대학로 #혜화동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3. 3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4. 4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5. 5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