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한테 예의 지키는 개발이란 없는가

[인천 골목길마실 71] 집 비우라며 스프레이 낙서를 하는 사람은 누구?

등록 2009.12.15 17:37수정 2009.12.15 17:3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람이 사람한테 예의를 지키는 일이란 어렵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누군가한테는 예의를 지키는 일이 삶이기 때문에 아주 마땅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누군가한테는 예의를 지키는 일이 삶이 아닌 겉치레와 인사치레이기 때문에 몹시 번거로울 뿐 아니라 힘듭니다.


a

철거도 좋고 재개발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도록 하는 집에 웬 낙서를 이리도 해대야 하는지요? ⓒ 최종규



a

무시무시하다고는 안 느낄 수 있으나, 이렇게 스프레이 낙서를 해 놓고 한참 그대로 두어 이웃집 분위기를 흐린 다음에 어느 날 갑자기 우지끈 뚝딱 하면서 허물고 있는 '재개발'입니다. 도무지 사람한테 예의를 지키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최종규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진 일요일 낮나절, 이웃동네인 송림4동 마실을 하다가 지난주에는 보이지 않던 '스프레이 낙서'가 잔뜩 뿌려져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마실을 하는 동안 손가락이 얼어붙어 시리디시렸는데, 스프레이 낙서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동안 가슴은 훨씬 얼어붙으며 시리디시립니다.

이 나라 공무원과 개발업자는 오래도록 고향동네로 삼으며 뿌리내린 사람들 터전을 '오로지 아파트 재개발'로 강제수용하면서 고작 이런 예의밖에 보여줄 수 없었을까요? 아니, 공무원으로서는 행정처리를, 개발업자로서는 더 빠른 일처리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동네를 엉망진창으로 어지럽혀도 될까요?

a

'아직 철거 대상까지는 안 된' 이웃집은 어떡해야 할까요? 이런 모습을 날마다 들여다보아야 하나요? ⓒ 최종규


헐어야 하는 집이라면 헐어야겠지요. 그런데 동네 재개발을 하는 이 흐름에서도 '이사를 안 간 집'은 어김없이 있습니다. 옮길 데가 없어서 못 가는 사람이 있고, 고향을 떠나기 아쉬워 못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짧으면 며칠, 길면 몇 주, 더 길면 몇 달인데, 딸아들 키워 내고 온 젊음과 늙음을 치러낸 삶자리에서 하루아침에 내몰면서 그토록 살내음 배어 있는 보금자리에 이런 볼꼴사나운 스프레이 낙서질을 해대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니, '위'에서 이렇게 하라고 시켰다 할지라도 이렇게 시키는 대로 따르는 사람들 가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는 집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는 집입니다. 내 어버이가 사는 집이며, 내 동무가 사는 집입니다. 집은 한낱 재산이 아닙니다. 집은 우리 땀방울과 눈물방울이 어리며 웃음과 손때가 깃든 쉼터입니다.

a

인천 송림4동과 도화2동 경계. 올 가을까지는 담장이 따로 없었으나, 아파트를 지으며 울타리를 높이 세워서 햇볕이 막히고 아주 답답하게 바뀌었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9월 11월 12월 모습입니다) ⓒ 최종규


돈만 섬기거나 우러르는 이 땅에서 예의를 찾기란 어렵겠지만, 어렵다고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이음고리를 우리 스스로 놓아 버리면 누구보다도 이렇게 살내음 짙은 보금자리를 망가뜨리는 사람들 마음바탕이 함께 망가지는 일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돈은 얼마쯤 벌겠지만 마음은 잃어버립니다. 돈을 얼마쯤 움켜쥐면서 부자에 가까워진다지만 사랑을 놓아 버렸기에 메마르고 차디찬 사람으로 굴러떨어집니다. 돈으로 온갖 놀음놀이를 즐기거나 자가용을 장만하거나 나라밖 여행을 즐길 수 있다지만 너그러움과 넉넉함하고 멀어지면서 구슬프고 애처로운 허수아비가 되고 맙니다.


답답한 가슴에 응어리가 쌓이는데, 햇볕 잘 드는 골목 한켠에서 이 겨울에도 꽃송이를 떨구지 않는 가냘프고 작은 꽃송이를 들여다보니 조금씩 누그러집니다. 이 나라에서 사람은 언제쯤 맑은 무지개 넋을 건사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a

모든 곳이 공사판인 인천에서도 옛 도심지는 아주 어수선한 공사판입니다. 동인천북광장을 마련한다며 중앙시장을 헐고 있는데 "아직 이사 안 갔음"이라는 쪽지를 나붙여도 철거는 버젓이 이루어지며 '못 살게' 합니다. '빨리 돈(보상비) 받고 꺼지라'면서... ⓒ 최종규


a

퍽 추워 손이 꽁꽁 어는 이 겨울에도 골목길마다 한두 꽃송이씩 꽃을 피워 올리며 갑갑한 마음을 풀어 줍니다. 저보고 '예의를 잊어버린 사람'들 마음까지 더 널리 감싸안도록 하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골목꽃입니다. ⓒ 최종규


a

빈집 자리에 일군 꽃밭에서 이 겨울에도 장미가 붉게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참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추울수록 더 붉디붉게 꽃송이를 피워올립니다. ⓒ 최종규


a

겨울에도 예쁜 집을 바라보면서, 이 집이 봄 여름 가을에도 얼마나 예쁘면서, 우리한테(골목길을 알아보거나 골목동네에 사는 이웃한테) 웃음과 기쁨을 선사했는가를 돌아봅니다. ⓒ 최종규


a

찬바람 쌩쌩 불며 옷깃을 여미며 골목마실을 하다가도, 이 붉은 장미를 사진으로 담으려고 두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사진기를 쥐어들 때에는 빙긋 웃음이 납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골목길 #인천골목길 #재개발 #철거 #사진찍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2. 2 "어버이날 오지 말라고 해야..." 삼중고 시달리는 농민
  3. 3 "김건희 특검하면, 반나절 만에 다 까발려질 것"
  4. 4 '아디다스 신발 2700원'?... 이거 사기입니다
  5. 5 네이버, 결국 일본에 항복할 운명인가... "한국정부 정말 한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