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손잔 보씨요, 다 닳아서 이 모양이야"

땅 파고, 지심 매고, 손으로 농사지어 파는 노점상 할머니의 손

등록 2010.01.05 10:54수정 2010.01.0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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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 갈라지고, 일 년 열두 달 손톱 한번 안 깎아봤다는 할머니의 손이 애틋하다. ⓒ 조찬현

닳고, 갈라지고, 일 년 열두 달 손톱 한번 안 깎아봤다는 할머니의 손이 애틋하다. ⓒ 조찬현

겨울바람이 매섭다. 횡단보도를 오가는 사람들은 종종걸음이다. 전남 여수 교동시장 초입에서 노점상을 하는 할머니가 한데서 라면으로 점심끼니를 때우고 있다.

 

위성엽(67) 할머니다. 할머니는 새벽 3시면 일어난다. 밥 해먹고 집안일 챙기고 4시30분경이면 여수 율촌 집을 나선다. 당신의 일터인 이곳 노점에 도착하는 시간은 아침 6시경이다.

 

"추운데서 고생이 많습니다."

"뭔 사람이요 겁나요, 죄는 한나도 안 지었소마는..."

 

"장사는 잘 되세요?"

"안 된께 이러고 있제. 장사도 안 되고 어디 농사짓고 살겠소, 어중간한 논떼기 있다고 세금만 겁나게 나오고"

 

"할머니, 어디서 오셨는데요?"

"쩌그 율촌 반월마을이여~"

 

가격을 묻고는 야속하게도 그냥 지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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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을 하는 할머니가 한데서 라면으로 점심끼니를 때우고 있다. ⓒ 조찬현

노점상을 하는 할머니가 한데서 라면으로 점심끼니를 때우고 있다. ⓒ 조찬현

지나치는 행인들은 대부분 가격을 묻고는 야속하게도 그냥 지나친다. 좀 사주면 좋으련만, 값을 묻고 몇 번을 망설이다 돌아서는 그들의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이곳에 한참을 머물다 보니 서민들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알 것도 같다.

 

할머니는 길거리에서 호박고구마와 키위, 알밤을 판다. 할머니 곁에서 도토리묵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는 도토리묵을 직접 만들어가지고 구례에서 왔다고 했다.

 

"호박고구마가 정말 맛있어, 삶아 놓으면 농글농글하니 맛있어."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노점을 한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인사도 건네고 아는 체를 한다. 제법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는 듯했다.

 

"여기 물렁한 놈 하나 있는디 하나 묵고 가소"

"사람 다 알제, 농사를 지어갖고 온께 푸짐하제"

 

할머니가 지나가는 단골고객을 불러 세워 키위 한 개를 건네주며 하는 말이다.

 

"묵고 살랑께 라면이라도 묵어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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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고 살랑께 라면이라도 묵어야제" ⓒ 조찬현

"묵고 살랑께 라면이라도 묵어야제" ⓒ 조찬현

구례 아주머니는 씨 고구마를 하겠다며 할머니에게서 호박고구마를 구입했다. 할머니는 노점에서 함께 하는 동료애 때문인지 덤을 듬뿍 준다. 지난해 할머니네 고구마 수확량은 30가마라고 했다.

 

"많이 줬어~ 속이나 알아, 씨 한다고 해서 내가 많이 담았어. 농사 지은다는 사람이 어찌 의심을 한당가? 딱 싸놓았다가 야물게 종자해."

 

추운 겨울에는 열량 소비가 많아지기 때문에 잘 먹어야 한다. 하루 종일 한데서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고 장사를 하는 할머니의 고생이 오죽하랴 싶다. 춥고 허기지고.

 

"끼니는 제대로 챙기셔야죠."

"식당에서 밥해다 판 사람이 있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배달을 안 해줘, 묵고 살랑께 라면이라도 묵어야제."

 

"일 년 열두 달 손톱을 안 깎아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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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은 닳고 닳아 뭉개지고 손등은 트고 갈라졌다. ⓒ 조찬현

손톱은 닳고 닳아 뭉개지고 손등은 트고 갈라졌다. ⓒ 조찬현

할머니의 손이 까칠하다. 손톱은 닳고 닳아 뭉개지고 손등은 트고 갈라졌다. 시선을 의식한 할머니가 장갑을 벗고 양손을 보여준 것이다. 할머니의 손을 본 순간 가슴이 아리고 아파온다.

 

"이 손잔 보씨요, 손이 다 째지고 닳았어. 일 년 열두 달 손톱을 안 깎아봤어, 다 닳아서 이 모양이야. 요래 갖고는 못살겠소, 우리 서민들 살게 좀 해 주씨요. 땅 파고, 지심 매고, 손으로 농사 지어갖고 와서 팔아 묵은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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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 추위도 마다않는 여수 교동시장의 상인들이다. ⓒ 조찬현

엄동설한 추위도 마다않는 여수 교동시장의 상인들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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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머니는 허기를 면하기 위해 꽃게를 굽고 있다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 조찬현

한 할머니는 허기를 면하기 위해 꽃게를 굽고 있다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 조찬현

할머니는 스무 살에 시집와서부터 장사를 했다. 30년이 넘었다. 시장에서 평생 장사를 해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쳤다. 며느리가 아들 직장이 없다며 집을 나가 손자 녀석들까지 떠 맞게 됐다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게 다 당신의 죄라며.

 

"평생을 자식들 가르치고 살았응께, 인제는 또 손주들 갈쳐야 돼 죄가 많아서..."

"시방 사람들은 비우 안 맞으면 가붑디여~"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손 #교동시장 #라면 #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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