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단체 지원금은 국민이 주신 귀한 돈"

한국작가회의 정기총회서 문화예술위 지원금 거부하기로 결정

등록 2010.02.21 15:10수정 2010.02.2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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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를 하는 구중서 신임 작가회의 이사장 그는 '좋은 언어' 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 정용국

▲ 취임사를 하는 구중서 신임 작가회의 이사장 그는 '좋은 언어' 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 정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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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위가 작가회의에 보낸 확인서 작가회의는 확인서 제출 및 지원금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다 ⓒ 정용국

▲ 예술위가 작가회의에 보낸 확인서 작가회의는 확인서 제출 및 지원금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다 ⓒ 정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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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가 끝나고 찍은 기념사진. 앞줄 왼쪽부터 정희성, 박용수,신경림, 최일남, 구중서, 고은, 박석무 선생등이 보인다. ⓒ 정용국

▲ 총회가 끝나고 찍은 기념사진. 앞줄 왼쪽부터 정희성, 박용수,신경림, 최일남, 구중서, 고은, 박석무 선생등이 보인다. ⓒ 정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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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남 전 작가회의 이사장 최이사장은 임기를 끝낸 날 '지원금 거부;를 강력발언하여 임기중 치지 못했던 홈런을 장외로 날렸다. ⓒ 정용국

▲ 최일남 전 작가회의 이사장 최이사장은 임기를 끝낸 날 '지원금 거부;를 강력발언하여 임기중 치지 못했던 홈런을 장외로 날렸다. ⓒ 정용국

한국작가회의 제23차 정기총회가 20일 오후 3시 마포구 용강동 중부여성발전센터 강당에서 열려 2년 임기의 신임 이사장에 문학평론가 구중서(74) 박사를 선출했다.

 

구중서 신임 이사장은 신동엽 시인의 "좋은 언어"를 인용하며 "작가회의는 한국사회의 대표적 문화예술단체로서 물질 중심적이고 비인간화하고 있는 사회를 회복시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나가자"라는 취임사로 인사했다. "좋은 언어를 통해 비인간화한 현실을 순화하고 정화하는 가치작업이 문학인들과 한국작가회의의 소명이자 책임"임을 재삼 강조했다.

 

사실 이날 열린 작가회의 총회장은 임원선출이라는 주요사안이 안건으로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지원금 지급을 앞두고 '작가회의가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되었으나 실제 불법 시위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향후 불법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은 물론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라는 확인서를 요구한 사건으로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미 작가회의는 공문을 접수한 후로 대책회의를 열고 2월 8일 기자회견을 통해 확인서 거부를 밝혔고 나아가 예술위의 공식사과 등이 담긴 성명을 낸 바 있다. 이 사실이 KBS 뉴스로 방영되고 2월 9일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작가정신을 길들이겠다는 건가'라는 재목으로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일이 급속히 확산되자 작가회의 회원들은 인터넷이나 전화 등을 통해 분노와 격려의 글을 보내 성원을 표시하였다. '부당한 요구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기관지 발표 작품에 대해 무고료로 하겠다' '밀린 회비까지 적극적으로 내겠다' 등의 의견은 물론이고 백무산 시인은 없는 돈에 특별회비 200만원을 보내왔으며 창작과 비평사도 특별회비 1000만원을 지원해 오는 등 열의가 빗발쳤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가회의에 집회불참 확인서를 제출하라는 것은 무리였다"라고 사과성 발언을 하였고 예술위의 간부가 작가회의를 방문하여 "사려 깊지 못했다"라는 구두사과를 하였으나 작가회의는 공식적인 위원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아울러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전개하여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여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구현하자는 운동을 전개하자는 의견도 제기된 바 있다.

 

이날 정기총회에서 안건처리가 마무리되고 휴식시간을 가진 뒤 별도의 시간을 내어 확인서 건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였다. 평소 같으면 주요사안이 마무리되면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는 회원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무총장으로 고생하고 다시 부이사장으로 선임된 도종환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회의에서 많은 작가들의 의견이 이어졌다. 이시영 시인은 "유연성을 가지고 대처하자"라는 신중론을 발표했고, 김창규 시인은 "만만하게 보여서는 절대 안 되고 강력하게 잘잘못을 따져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전 사무총장 김형수 시인은 문예진흥원이 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뀐 근본적인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법적으로 대처할 것을 주장했다.

 

여러 작가들의 발표가 진행되고 묵묵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던 최일남 전 이사장이 마이크를 달라 하자 순간 회의장은 긴강하는 빛이 역력했다. 평소 발언을 자제하기로 정평이 나신 분이고 혹시 연로하셔서 그냥 좋게 넘어가자는 의견은 아닐까 하는 우려의 눈빛이 교차했다. 그러나 최일남 전 이사장의 말은 에둘러 가지 않았다. 직설화법이었다.

 

"여러분, 돈 없으면 지원 사업 하지 맙시다. 몇 년 기관지 안 내고 외국작가 불러다가 하는 사업 안하면 어떻습니까? 나중에 문화부 장관이 예술위에 물어보겠지요. 작가회의 확인서 사건은 어찌 되었느냐고요. 그런데 우리가 지원금 받아 버리면 '적당히 잘 처리했습니다'라고 보고할 것이고 장관은 웃으면서 '그러면 그렇지 저희들이 돈을 마다해!'라고 할 것 아니냐. 그러면 작가회의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박수가 끝없이 장내를 울려 퍼졌고 최일남 전 이사장은 말을 이었다.

 

"오늘 원로 지인이 만나자고 해서 회의 전에 만났는데 이름을 밝히지 말라면서 3400만원 짜리 수표를 건네주며 작가회의에서 쓰라고 하였다. 지금 내 입이 그 사람 이름을 말하고 싶어 간지러워 죽겠다. 재앙이 닥치니 더 큰 돈이 들어왔다. 깨끗하게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고 지원금 받지 맙시다. 우리가 지금 예술위 정도하고 싸우는 게 아니다."

 

다시 박수가 터졌다. 마이크를 이어 받은 도종환 시인이 웃으면서 요즘에는 어르신분들이 더 강력하고 바르시다는 말로 회의장은 시원한 웃음이 지나갔다. 이어 '저항의 글쓰기 운동'과 지원금 거부가 참가자 전원의 찬성으로 채택되어 작가회의의 공론으로 발표될 예정이라 한다.

 

구중서 이사장도 이 문제를 언급했는데 "문학의 존재이유는 생존의 문제와 맞먹는 가치를 가진다. 예술위의 지원금은 정부기관의 것도 여당의 것도 아니다. 국민들이 주신 귀한 돈이다. 예술위는 이 돈을 잘 전달할 임무를 지닐 뿐인데 이런 사건은 예술단체를 겁박하는 것이요, 안 좋은 언어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부이사장에는 최원식 교수, 도종환 시인, 이은봉 교수, 나종영 시인이 지명되었고 여성 부이사장 자리는 여성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정하기로 하였다. 살림을 떠맡을 사무총장에는 김남일 소설가가 사무처장에는 김근 시인이 결정되었다.

 

강당을 빌린 마감시간이 되어서야 총회는 끝났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어도 회원들의 얼굴은 정월 하늘에 뜬 초승달처럼 밝았다. 뒤풀이 장소가 번듯한 곳이 아닌 그 흔한 부대찌개 집이었지만 추가로 육수에 라면 사리를 청하는 목소리가 식당 안에 가득했고 소주는 잘도 팔렸다.

2010.02.21 15:10 ⓒ 2010 OhmyNews
#한국작가회의, 문화예술위 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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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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