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작가가 아니라 잡가야. 잡가"

[2000년의 나 2010년의 나] '책 전도사'로 변신한 10년

등록 2010.03.07 11:23수정 2010.03.0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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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찾아오던 신춘문예 열병 가까스로 잠재우고 평범한 생활인이 되어 직장 얻고 결혼하고 두 아들 낳아 기르며 살았다. 젊은 시절 열병이 가끔 찾아들긴 했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충실하자 다짐하며 가라앉혔다. 어쩌다 등단한 작가들 만나 술 마시다 보면 부러운 마음은 속으로 감추고, 나 자신에 대한 초라함은 술기운으로 가리면서 한 마디씩 했다.


"난, 작가가 아니라 잡가야. 잡가."

등단은 못했지만 쓰고 싶으면 언제든지 어떤 글이라도 쓸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잡가'란 말을 억지로 붙여 정당화하고자 한 거지만, 제대로 된 어떤 장르의 글 하나도 완성시키지 못하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허세에 불과했다.

처음 시작은 그랬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잡가'란 말이 그렇게 질기고 단단하게 날 구속하는 말이 될 거란 것은. 쓰고 싶으면 언제든지 어떤 글이라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쓰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감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바뀌어간다는 걸 어느 순간 느끼게 되었다. 무얼 써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무작정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날이 늘어갔다.

그런 '잡가'의 길을 걷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이었다. 작가가 아닌 사람에게도 언제나 글을 써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처음에는 글만 올리다가 카메라로 사진 찍어 함께 올리면서 여행기, 답사기, 사는이야기 등등 기사를 부지런히 올렸다.

당신 참 무서운 사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쓴 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척수종양에 걸려 수술 받고 누운 아들의 병상일기였다. 척수 신경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이라 하반신 마비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수술, 그리고 재활 치료 과정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다.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도 재활치료를 담당했던 의사도 다시 걸을 수는 없을 거라는 절망적 얘기를 해서 언제일지도 모를 기약 없는 병상 생활을 했던 준수.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로 입원 수술을 받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재활치료를 하던 녀석과 그 곁에서 병수발을 하던 아내.

걸을 수 없을 거란 판정 받아 휠체어 사용법을 익히는 아들 곁에서 절망을 받아들이지 못해 병실에서 잠만 깨면 부처님을 찾았다는 아내였다. 그런 아내는 주말마다 올라오는 내게 부탁했다. 당신도 준수 위해 빌어달라고. 저 아이 걷기만 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거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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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치료실> 세브란스 병원 재활치료실에서 재활치료중인 준수 ⓒ 이기원


그런 아내의 제의를 한 번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처님 찾으며 빈다고 기적이 일어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들이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는 상황을 아내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게 현실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했다. 절박한 자신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를 향해 "당신 참 무서운 사람"이라며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아내가 부처님에 매달려 절망스런 자신을 다잡고 준수의 기적을 바랐다면, 나는 준수의 병상일기를 쓰면서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고 간절하게 준수의 기적을 기원했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또 다른 해를 맞으며 준수에게 기적이 찾아왔다. 발가락이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이고, 다시 수많은 시간을 보낸 뒤에는 의자에 의지해서 일어섰다. 그리고 또 다시 시간이 흐른 뒤에는 평행봉 잡고 발걸음을 떼더니 지팡이에 의존해서 걷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병원에서 수술 받고 투병 생활하던 준수는 퇴원해서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올해 준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여느 고3 학생과 똑같이 신 새벽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늦은 밤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형님, 책 전도사시네요

준수의 투병일기가 끝난 뒤엔 주로 사는이야기를 썼다. 시골 계신 어머니, 아버지 얘기, 교통사고 후 힘들게 농사짓는 장인, 장모님 도와드리며 일하던 얘기, 농촌 들녘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 얘기, 풀꽃 얘기 등등….

그러다 우연히 기웃댄 곳이 책 읽고 글 쓰는 서평이었다. 글 쓰는 것만큼 좋아했던 책읽기라 사는이야기 소재가 점점 바닥이 난다는 생각이 들 무렵 한두 번씩 서평을 썼다. 시립도서관에 가서 읽은 책을 중심으로.

서평이 어떻게 써야 되는지도 알지 못하고 무턱대고 시작했다. 책 내용 적당히 뽑아내서 짜깁기하면 되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지만, 서평 기사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두려움이 앞섰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들인 저자의 정성과 노력을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할만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서평을 쓰더라도 조금은 자신 있는 부분을 써보자고. 역사를 전공하고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입장에서 역사 관련 책을 읽고 서평을 써보자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책 속으로 떠난 역사 여행] 연재였다. 올해 2월 24일 기사가 된 <그래도 희망의 역사>가  59회 기사였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인터뷰 기사도 썼다. 물론 책동네 기사였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잠언집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을 펴낸 김익록 편집위원을 찾아 쓴 기사였다. 마침 경향신문에서도 같은 책에 대한 서평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아 서평과 인터뷰 기사를 같이 써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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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경향 서평> <나는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경향신문 서평 기사 ⓒ 이기원


그러다보니 오마이뉴스 '책동네' 인터뷰 기사와 경향신문 '책 읽는 경향'의 서평 기사가 거의 비슷한 시점에서 기사화되었다. 두 기사를 모두 본 김익록 편집위원이 고맙다며 전화를 했다.

"형님, 알고 보니 책 전도사시네요."

이젠 일반 종이 신문이나 잡지를 읽을 때도 서평에 먼저 눈길이 간다.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기자들은 서평을 어떻게 쓰는지. 어떤 서평이 더 맛깔스럽고 정감이 가는지 보고 배우기 위해서.

이따금 출판사에서도 연락이 오고, 드물게는 일반 신문에서도 서평 부탁을 받을 정도가 되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단지 책을 읽고 소개하는 게 아닌, 책을 통해 올곧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하겠다는 생각을 간직하며 2010년을 보내고자 다짐해본다.

덧붙이는 글 | <2000년의 나, 2010년의 나> 응모 기사


덧붙이는 글 <2000년의 나, 2010년의 나> 응모 기사
#오마이뉴스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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