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그림책과 예쁜 마음결

[그림책이 좋다 77] 이수지, <파도야 놀자>

등록 2010.04.06 11:07수정 2010.04.0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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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파도야 놀자
- 그림 : 이수지
- 펴낸곳 : 비룡소 (2009.5.22.)
- 책값 : 9500원

 (1) 예쁜 그림책 또는 예쁜 책이란


예쁜 그림책을 펼쳐 읽는다고 내 마음이 예뻐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내 삶을 어여삐 보듬고 싶기 때문에 저절로 예쁜 그림책에 손이 갑니다. 그러면 어떤 그림결을 놓고 예쁘다 할 만하고, 어떤 줄거리를 펼치는 그림책을 두고 예쁜 그림책이라 할 만할까요.

예쁜 사람을 만나거나 마주한다고 내 삶이 예뻐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내 눈과 마음을 어여삐 어루만지고 싶기 때문에 시나브로 예쁜 사람하고 가까워지고자 바라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놓고 예쁘다 할 만하고, 어떤 마음밭 일구는 사람을 두고 예쁜 사람이라 할 만할까요.

스물한 달째 접어들고 있는 딸아이는 '이쁜' 짓을 자주 합니다. 잘 쥐기는 해도 잘 집지는 못하는 젓가락질로 온 방바닥을 어지럽히면서 밥을 먹는 모습부터 이쁩니다. 마시지도 않는 물이면서 물잔을 들고 걷다가 뚝뚝 흘리더니 와락 쏟아 놓고는 모르는 척하다가 엄마나 아빠가 이를 눈치채면 손가락으로 물 흘린 자리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 또한 이쁩니다.

걸레를 가지고 오면 저 스스로 닦겠다며 엉덩이를 하늘로 들고 자그마한 손으로 영차영차 비비는 꼴이 이쁩니다. 아이 코를 흥흥 해 주고 손과 얼굴을 닦아 주는 손수건인데 아이한테는 꼭 걸맞는 걸레 크기라, 아이는 제 손수건으로 벽을 닦는 시늉을 합니다. 방마다 벽에는 아이가 색연필과 볼펜으로 끄적여 놓은 줄그림이 가득합니다.

빨래하는 아빠 곁에서 말끄러미 지켜보다가는 저도 빨래를 해 보겠다고 쑤석거리며 헤집어 놓는 모양이란 더없이 이쁩니다. 바쁘고 고단하고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라 할 때에는 집일에 걸리적거리는 아이라 여길 수 있으나, 바쁘고 고단하고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임에도 생각을 살며시 달리 품는다면 얼마든지 귀엽고 아름다운 아이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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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글책이든... 엄마 아빠하고 함께 보는 우리 집 아이. ⓒ 최종규


먹고살겠다며 밥숟가락 들고 다니는 품이라든지, 이제 좀 배가 불렀다며 더 안 먹겠다고 고개를 팩팩 돌리는 품이라든지, 아이는 아이다운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냅니다. 어른들마냥 돈 걱정에 뭔 근심에 갖은 끌탕으로 골머리를 앓지 않습니다. 밥과 놀이와 사랑과 잠과 동무와 따순 품이면 넉넉한 삶입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밥과 놀이와 사랑과 잠과 동무와 따순 품이면 넉넉한 삶이지 않을까요. 더 많은 돈이나 더 보람찬 일이나 더 거룩한 이름이나 더 멋진 자동차나 더 넓은 아파트가 굳이 있지 않아도 넉넉하고 고운 삶이지 않을까요. 우리들은 어른이 되어 가면서 스스로 예쁜 삶을 저버리고 있지 않나요.

어쩌면 오늘날은 어린이일 때부터 스스로 예쁜 삶을 마주할 겨를이 없고, 예쁜 삶을 마주하지 못한 채 시험공부와 지식쌓기에 얽매이면서 푸름이를 거쳐 대학생을 지나 사회인이 되고 나면 멋없고 맛없고 재미없고 신바람 없는 맹숭맹숭 철까지 없는 어른으로 나뒹굴고 말지는 않는지요.

곰곰이 돌아봅니다. 2008년보다 2009년에 좋은 어린이책이 훨씬 많이 나왔고 더 많이 팔려서 읽혔으며 훨씬 많은 사람이 좋은 어린이책 만들겠다며 책마을로 들어옵니다. 2009년보다 2010년에 좋은 어린이책이 더더욱 많이 나왔고 더 많이 팔려서 읽히며 더더욱 많은 사람이 좋은 어린이책 만들겠다며 책마을로 뛰어듭니다.

2007년을 헤아리고 2006년을 돌아보며 2005년을 곱씹으면, 해마다 좋은 어린이책은 끝없이 늘어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 숱한 좋은 어린이책을 품에 안으면서 좋은 넋을 키우는 어린이는 뜻밖에 자꾸자꾸 줄어드는구나 싶습니다. 좋은 얼을 북돋우는 푸름이는 나날이 줄어들고, 좋은 마음을 건사하는 젊은이는 하루하루 스러지며, 좋은 꿈을 꽃피우려는 어른은 가뭇없이 자취를 감추는구나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좋은 어린이책이란 어린이한테만 좋은 책이 아닙니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한테 좋을 때에 좋은 어린이책이라고 합니다. 훌륭한 어린이책이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훌륭하게 곱새기면서 반가이 곰삭일 수 있는 책입니다. 권정생 할아버지 <하느님의 눈물>이라는 어린이책은 사람이 무엇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가를 놓고 가장 깊고 넓은 생각밭을 일깨웁니다. 고기도 풀도 불쌍하고 가슴아파 못 먹겠다고 하는 토끼는 바람과 이슬만 마시면서 살아가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고, 토끼가 흘리는 눈물 실린 울음을 듣던 하느님은 아무 말을 못하고 토끼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짧은 이야기가 <하느님의 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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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파도야 놀자> 속그림. ⓒ 이수지/비룡소


고기를 먹든 풀을 먹든(육식이든 채식이든) 모두 다른 목숨을 먹는 일이요, 우리들 사람은 누구나 제 목숨을 잇자면 다른 이 목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 스스로 '풀 먹는 사람입니다(채식주의자입니다)' 하고 밝히더라도 좋은 이웃집에서 고기 반찬 차려 애써 대접해 주면 고맙게 받아먹을 밖에 없습니다. 아무 티를 내지 않고.

왜냐하면 밥 한 그릇에 담긴 땀과 품과 사랑과 믿음이 있거든요. 푸성귀를 길러 먹는다고 목숨을 먹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돼지를 잡고 닭을 잡고 소를 잡을 때에만 불쌍하고, 개를 잡고 염소를 잡고 오리를 잡을 때에만 가여우며, 냉이를 캐고 쑥을 뜯고 두릅을 자를 때에는 불쌍하지 않는데다가, 벼를 베고 콩을 털고 밀을 빻을 때에는 가엾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밥을 먹고 옷을 깁고 집을 짓는 모든 일은 자연한테서 선물을 받는 삶입니다. 옛사람들은 예부터 자연한테서 얻은 선물이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돌보면서 당신들이 숨을 거둘 때에 조용히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개화기'라는 이름으로 갖은 공장이 들어차며 우리 스스로 이 땅과 마을과 삶터와 사람 모두를 더럽히기 앞서, 사람 삶이란 언제나 되돌림이고 되살림이고 되풀이였습니다.

이렇다 하여 머나먼 옛날로 돌아가자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밑바탕과 밑마음을 고이 깨닫고 가누면서, 저마다 아름답고 알차게 삶을 일구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나 스스로 맑은 넋을 붙잡고, 나 스스로 고운 뜻을 이으며, 나 스스로 예쁜 삶을 가꾸어야 좋다는 소리입니다.

예쁜 그림책 하나란 나 스스로 내 삶을 어여삐 붙잡고 잇고 가꿀 때에 비로소 태어납니다. 무슨무슨 일류 대학을 나온다든지 어디어디 나라밖에서 그림 공부를 했다든지 해야 예쁜 그림책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떤어떤 상을 받았다거나 얼마얼마 많이 팔리는 그림책이라 해서 더 예쁜 그림책이 되지 않아요.

열다섯 살 나이에 그렸다고 모자란 그림책이 아니요, 예순다섯 살 나이에 그렸다고 훌륭한 그림책이 아닙니다. 내 삶에 담는 마음그릇에 따라 예쁘냐 예쁘지 않느냐가 갈리는 책 하나입니다. 내 삶에 바치는 땀과 눈물과 손길과 다리품에 따라 예쁜지 안 예쁜지가 나뉘는 책 하나입니다.

 (2) 예쁜 마음결로 노래하는 그림책

그림책 <파도야 놀자>를 넘깁니다. 애 아빠는 설렁설렁 지나쳤으나 애 엄마는 그림이 예쁘고 시원하다면서 찬찬히 펼칩니다. 애 엄마 말에 애 아빠는 그림을 눈여겨봅니다. 애 아빠가 <파도야 놀자>를 사자고 말합니다. 애 엄마는 어느새 다른 그림책들을 구경하더니 똑같은 책값이라면 이 그림책 말고 다른 그림책을 사겠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합니다. 애 아빠는 이 그림책도 사고 다른 그림책도 사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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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파도야 놀자> 겉그림. ⓒ 비룡소


집으로 돌아와 <파도야 놀자>를 여러 차례 되넘기고, 아이 앞에서 넘기며, 그린이 누리집에 들어가 이모저모 들여다봅니다.

조용히 일렁이던 파란 물결이 차츰차츰 길어지거나 커지면서 아이하고 술래잡기를 하는 듯 오락가락합니다. 괭이갈매기 다섯 마리는 어린 계집아이 뒤와 둘레에서 걷다가 날다가 하면서 아이와 나란히 파란 물결하고 놉니다.

괭이갈매기는 갑자기 불어난 파란 물결을 깨닫고는 높이높이 날고, 어린 계집아이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다가는 와락 물벼락을 맞습니다. 그런데 물벼락을 맞고 보니 어지러이 핑핑 돌기는 하면서도 아이 둘레에 쏟아진 불가사리며 조개이며 갖가지 바닷것이 널립니다. 물결에 휩쓸려 아이한테 다가온 바닷내음입니다.

<파도야 놀자>를 그린 이수지 님은 당신 아이한테 이 그림책을 바친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나의 아기, 산에게"라 적어 놓습니다. "우리 아기, 산한테"나 "아기, 산한테"라 적지 못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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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파도야 놀자> 속그림. ⓒ 이수지/비룡소


군말이 없이 예쁘장하게 그리고 꾸민 책은 하양과 파랑과 검정이 알맞게 어우러지면서 시원한 맛과 넉넉한 멋을 풍깁니다. 온갖 군더더기가 많은 창작 그림책이 판치고, 지나친 지식과 정보에 허덕이는 자연생태 그림책이 넘치는 오늘 우리네 어린이책 터전을 돌아보노라면 <파도야 놀자>는 더없이 깔끔하고 홀가분한 그림책입니다.

옐라 마리 님이 빚은 <나무>처럼, 가브리엘 벵상 님이 이룬 <꼬마 인형>이나 <어느 개 이야기(떠돌이개)>처럼, <파도야 놀자>는 그림책 하나로 사람들 가슴에 얼마나 짙고 넉넉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가를 알뜰히 보여줍니다.

좋은 그림책이란 한 번 보며 좋다고 느낄 책이 아닙니다. 좋은 그림책이란 수백 번 볼 만한 그림책 또한 아닙니다. 좋은 그림책이라고 할 만한 책이라면 수백 수천 번을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좋고 새롭도록 반가운 책입니다.

<파도야 놀자>는 여러 차례 되넘기며 들여다볼 만한 그림책입니다. 군더더기없는 그림책임에도 여러 차례 되넘길 때마다 곳곳에 조용히 깃든 또다른 모습에 눈길이 머무는 그림책입니다. 다만, 이 그림책을 백 번쯤 넘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면, 천 번쯤 되넘길 수 있을까 하고 헤아린다면, 글쎄 하는 말이 나옵니다.

이 그림책을 그린 이수지 님은 당신 아이한테 이 그림책을 바친다고 책머리에 밝힙니다. 나라 안팎 좋은 그림책을 일군 숱한 분들은 하나같이 '당신 아이' 또는 '마을 아이' 또는 '이웃 아이'한테 바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리곤 합니다. 글책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그런데 아이한테 바친다고 밝힌다든지, 참으로 아이한테 바치는 책이라 할지라도 늘 곱거나 아름답거나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그림책 하나가 좋으면서 곱고 아름다운 가운데 훌륭하려면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샘솟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날마다 먹는 밥과 같은 이야기로 엮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먹지만 물리거나 질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 밥처럼, 날마다 새로 지은 밥이 날마다 새로운 맛이요 날마다 군침도는 맛이요 날마다 싱그러운 맛이듯, 좋은 그림책 하나로 자리잡자면 날마다 되넘기면서 날마다 기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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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파도야 놀자> 속그림. ⓒ 이수지/비룡소


제 지난 삶을 돌아보았을 때, 아이를 키우지 않던 나날이었다면, 또는 혼인을 해서 옆지기하고 어우러지는 나날이 아니었다면, 이때에는 <파도야 놀자>를 넘기면서 이처럼 어여쁘고 멋지고 시원시원한 그림책이 또 있을까 하고 생각했으리라 봅니다. 아무래도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 얕고 좁을 때에는 책을 바라보는 눈길 또한 더 깊거나 넓기란 어렵습니다.

누구나 제 삶에 따라 온누리를 살피고 사람을 마주하며 책을 쥐어듭니다.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지 않고서는 훌륭한 책에 깃든 훌륭한 얼을 읽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훌륭한 얼을 받아들여 스스로 훌륭한 삶으로 거듭나고자 힘쓰지 못합니다. 어줍잖은 쥐대기인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늘 어줍잖음을 느끼면서 책 하나 얼마나 제대로 읽어내는가를 돌아봅니다. 책 하나 얼마나 제대로 읽어내는가를 돌아보면서 내 삶을 나 스스로 얼마나 제대로 꾸리는가를 돌아봅니다.

아이하고 어우러지는 하루를 보내는 동안 아이한테 같은 책을 수없이 되풀이하여 '다 다른 목소리와 모습'으로 읽어 주기 마련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일 때에는 수백 번이 아닌 수천 번을 소리내어 읽어 주고 어버이가 아이와 함께 책에 젖어들기 마련입니다. 같은 책 하나를 수십 번이 아닌 수백 수천 번을 함께 읽다 보면, 이 책 하나를 어떤 마음결과 품과 뜻으로 이루어 냈는가를 저절로 깨닫습니다.

그림이 예쁘장하다 하여도 '앞으로 더 보여주어서는 안 되겠다'고 느낀다든지, 줄거리가 재미있거나 괜찮다 하여도 '이 책에 담긴 삶이 영 올바르지 않네' 하고 느낍니다. 1986년을 마지막으로 다시 나오지 못하는 <리타와 자전거>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애 아빠가 몹시 좋아하는 책이면서 아이 또한 퍽 좋아하는 책이라 거의 날마다 이 그림책을 다시 펼치고 또 펼치곤 하는데, 벌써 몇 백 번을 넘기지만 질리는 날이 없고 지루한 날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저희 또래 동무나 손위 손아래 동무하고 어울리는 나날을 살가이 보듬는 한편,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 삶자락이 곱게 엮이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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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파도야 놀자> 속그림. ⓒ 이수지/비룡소


애 아빠는 <리타와 자전거>를 자꾸자꾸 되읽으면서 아름다운 책 하나를 돌아봅니다. 애 엄마는 두툼한 <모비딕>을 여러 번 되읽으면서 좋은 책 하나를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이란 어디에 어떻게 나 있는가를 살펴보고,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는 길이란 누구와 어떻게 어깨동무하거나 손잡고 걷는가를 살핍니다.

<파도야 놀자>는 틀림없이 예쁘장한 그림책입니다. 시원시원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책입니다. 앙증맞기도 한 그림책이요, 재미난 그림책입니다. 상큼하고 밝은 그림책입니다. 보기에 괜찮고 귀여운 그림책입니다. 다만 '좋은'이라는 꾸밈말을 붙여 '좋은 그림책'이라고는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흐뭇한 그림책이거나 아름다운 그림책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신나는 그림책이요 즐거운 그림책입니다만, 고운 그림책이라는 말은 삼가렵니다.

그러나, 그림책 이루어 낸 분은 이제 서른일곱 나이인 만큼, 앞으로 마흔일곱이 되고 쉰일곱이 되면 그동안 못 보고 못 느끼고 못 생각하고 못 살고 못 어루만지고 못 부대끼고 못 받아들이고 못 찾았던 이야기와 삶을 새록새록 찾아내면서 알뜰살뜰 푸근하게 여밀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그림책 하나가 그린이 한 사람 모든 땀방울을 못박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모든 책은 똑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 책 하나로 이 책을 쓰거나 낸 사람 눈높이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 책 하나를 마무르는 동안 이만큼 이이 삶이 다시 태어났다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이 책 하나를 이쯤에서 마무르고 이제부터 또다른 삶을 일구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배워 나간 다음, 앞으로는 또다시 새로 태어나는 삶을 새로운 책에 담는다는 실마리를 보여줍니다.

책을 덮고 책꽂이로 옮겨 놓습니다. 제가 장만한 책은 2009년 12월에 3쇄를 찍은 판입니다. 2009년 5월에 1쇄를 찍었으니 제법 사랑받는 그림책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은 제본이 영 잘못되었습니다. 애써 시원시원 그린 그림을 잘못된 제본이 잡아먹어 버립니다. 1쇄가 이렇다면 미처 못 보고 지나쳐서 그렇다 칠 수 있습니다만, 2쇄도 아닌 3쇄 책이 이렇게 제본이 잘못되었다니요.

이수지 님 그림책 <파도야 놀자>는 가운데가 잡아먹히지 않게끔 실묶음을 제대로 하여 좍 펼쳐지도록 하든지, 아니면 그림을 통으로 더 길게 한쪽으로 오롯이 드러나도록 만들든지 해야 제맛과 제멋을 살립니다. 예쁜 그림책 하나를 어설픈 제본 때문에 망가뜨리는 끔찍한 잘못을 비룡소 같은 이름있고 큰 출판사에서 저지르지 않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4쇄와 5쇄에서는 반드시 제본을 바로잡아야 할 터이며, 이 책을 장만한 사람들한테 고개숙여 뉘우치면서 앞으로는 그림책 제본에 더욱 깊이 마음을 쏟아야 할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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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제본 때문에 가운데에서 그림이 잡아먹혔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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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넓게 펼쳐서 읽는 그림책은 제본에 남달리 마음을 쏟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그림을 죽여 버리고 맙니다. 1쇄 아닌 3쇄 책에 이런 잘못을 저지른 출판사는 깊이 뉘우쳐야 합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파도야 놀자 (예스 특별판)

이수지 지음,
비룡소, 2009


#그림책 #어린이책 #책읽기 #어린이문학 #삶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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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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