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사진가란 아름다움을 담는 이야기꾼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15] 정은진, <정은진의 희망분투기>

등록 2010.04.08 13:43수정 2010.04.0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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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정은진의 희망분투기
- 글ㆍ사진 : 정은진
- 펴낸곳 : 홍시 (2010.3.24.)
- 책값 : 12800원

 (1) 아름다움을 찍는 사진


어디를 다니든 늘 사진기를 갖고 다닙니다. 아이를 안고 마실을 다니든 동네 구멍가게에 보리술 한 병을 사러 다녀오든 사진기를 목걸이처럼 갖고 다닙니다. 어제는 옆지기와 아이와 저 세 식구가 충주 무너미마을로 나들이를 왔습니다. 여러 해 만에 모처럼 찾아온 이곳에 있는 자그마한 학교 밥집에서는 사진기를 놓고 밥술을 뜹니다. 밥먹는 자리에는 우리 아이한테 오빠와 언니뻘 놀이동무가 북적입니다. 아이는 밥먹을 생각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바람이 납니다. 무너미마을 할아버지가 밥집에 있는 건반을 두들깁니다. 아이는 노래소리 나오는 쪽으로 쪼르르 달려가 뒷짐을 지고 구경합니다. 건반 앞 걸상에 앉아 한손으로 건반 누르기를 하는데, 한두 번씩 건반을 누르고는 다시 뒷짐을 집니다. 이 녀석 참 귀여운 짓을 하네 하고 생각하다가는 사진기를 밥집으로 들고 오지 않았다고 깨닫습니다. 여기에서는 따로 사진 찍을 일이 없으리라 여겼는데, 제가 제 사진감으로 헌책방과 골목길을 찍기도 하지만, 우리 딸아이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찍고 있음을 헤아렸다면 밥집으로 들어올 때에도 사진기를 목에 걸었어야 할 노릇입니다. 아이가 이렇게 두 손 곱다시 뒷짐을 지고 있다가 한손으로 건반을 누르며 노는 모습을 다시 또 언제 볼 수 있겠습니까.

아이하고 내내 붙어서 살아가는 만큼, 오늘 아침이 되든 앞으로 또 언제가 되든 오늘과 같은 모습을 새삼스레 마주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엊저녁에 마주한 이 놀랍도록 귀여운 모습은 바로 엊저녁 이때에만 마주하는 느낌과 시간이기 때문에 나중에 찍더라도 이날 느낌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아마 이제부터는 이와 비슷한 모습을 두 번 다시 놓치는 일은 생기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사진을 찍는다는 사진쟁이로서는 더없이 바보짓을 했습니다. 바보짓을 했다고 배웁니다. 속이 쓰리도록 배웁니다. 사진쟁이한테는 기회가 두 번 찾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사진쟁이한테는 언제나 한 번 기회만 있습니다. 같은 사람 같은 곳을 찍는다 하여도 어제와 오늘은 다르고, 오늘 가운데에서도 아침과 낮과 저녁이 다릅니다. 똑같은 모습이란 한 장조차 찍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만듦사진이라면 빛이며 장비이며 똑같이 해 둔 채 단추만 누르도록 마련해 놓았다면 똑같은 모습을 찍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처럼 만듦사진이 아닌 삶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똑같은 모습이란 두 번 다시 없을 뿐 아니라, 똑같은 모습을 찍을 일이 없어요. 언제나 다 다른 모습을 저마다 다른 깊이와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찍는 사진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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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을 두들기며 뒷짐지는 모습은 놓쳤으나, 산길을 오르며 뒷짐지는 아이 모습은 잡아챕니다. ⓒ 최종규


사진은 어느 한때를 담는 예술이라고 일컫습니다. 한자말로는 '순간'이나 '찰나'를 찍는다는 소리인데, 우리 말로는 '어느 한때'를 담는 사진입니다. 점과 점을 찍으면서 점과 점을 이어 주는 이야기를 엮는 사진입니다.

사진은 한 장으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진이라 할 때에는 한 장으로 마무리할 수 없습니다. 북극성처럼 움직이지 않는 큼직한 사진 한 장으로 우리 가슴을 크게 울리며 촉촉히 적실 수 있는 한편, 숱한 별자리처럼 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빛깔로 모두 다른 이야기를 엮으면서 이어지는 사진이 참된 길을 걷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사진 낱낱은 별자리 하나를 이루는 별 낱낱과 같고, 이렇게 하여 별자리 하나를 이룰 만한 사진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별자리를 이루는 무리별처럼 무리사진이 하나 나오고, 이러한 무리별로 밤하늘 가득 아름다이 빛나는 별들이 되듯, 무리사진이 우리 삶터 가득 아름다이 빛나는 사진들이 된다고 느낍니다. 떨어진 듯하지만 하나로 이어져 있고, 모조리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 조금씩 떨어진 채 가로놓여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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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안고 업고 산을 타는 느낌은 아이를 안고 업고 골목마실을 할 때하고 사뭇 다릅니다. 이 느낌을 사진 한 장에 담으면서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 최종규

이 사진 하나는 이 사진 하나대로 이야기가 있는 한편, 다른 사진 하나로 이어지는 징검돌 노릇을 합니다. 징검다리는 숱한 징검돌이 알맞게 어우러지면서 다리 노릇을 하는데, 이렇게 다리 노릇을 하면서도 물살 흐름을 막거나 거스르지 않습니다. 징검돌은 촘촘하게 놓아서는 안 되지만 너무 성기게 놓아도 안 됩니다. 꼭 알맞춤한 숫자로 놓되 물살이 끊이지 않도록 마음을 써야 하고, 물살이 거세어질 때에는 휩쓸리지 않게끔 단단히 놓아야 합니다.


징검돌 노릇을 하는 사진이란 사람들이 발을 디딜 때에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 튼튼해야 합니다. 이는 곧, 사진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내어 보더라도 이 사진 하나로 내 가슴이 뭉클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 하나가 다른 사진 하나로 넘어가도록 이어주는 노릇을 못하거나 안 한다면 큰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서로서로 이어 주되 서로서로 홀로서기를 해야 할 사진이거든요. 또한, 사진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이 사진에 얽매이지 않도록 우리 눈과 머리와 마음을 놓아 주어야 합니다. 징검돌 사이를 물살이 제 결대로 고이 흐르듯, 사진을 보고 가슴이 움직이고 머리가 맑아지는 우리들은 '사진을 다 보고 뒤돌아섰을 때'에 저마다 살아갈 자리에서 새로운 마음과 넋과 매무새가 되어 새로운 사람으로서 새로운 일과 놀이를 한결 튼튼하고 힘차고 맑고 아름다이 펼치도록 돕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사진들은 하나하나 모든 것이 되어야 하면서도 아무것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엊그제까지는 허구헌날 골목길만 걷다가 모처럼 산길을 걷고 고샅길을 걸었습니다. 산길과 고샅길을 걷는 동안 제가 요 몇 해 사이에 걷던 골목길이란 다름아닌 산길과 고샅길을 닮은 도시 한켠이었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어린 나날 달리고 뛰고 놀고 먹고자고 어울리던 동네와 길이란 바로 도시에 깃든 산길과 고샅길이라 할 만한 골목길이었구나 하고 비로소 느낍니다. 비록 흙이 아닌 시멘트였다 할지라도, 비록 돌이 아닌 아스팔트였다 할지라도, 도시 골목길에는 도시라는 갑갑한 잿빛 터전에 푸른빛 숨결을 불어넣고픈 고즈넉한 손때가 배어 있달까요. 모든 도시 골목길에 푸른빛 숨결이 깃들지는 않습니다만, 자동차하고 멀어지거나 자동차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샛골목이 될수록 골목사람은 푸른사람을 닮아 가고 골목길은 푸른길을 닮아 가며 골목꽃은 푸른꽃 푸른잎을 닮아 가는구나 싶습니다.

삶이란 우리가 깃든 어느 자리에나 고루 있되, 삶이 맑고 밝게 깃드는 자리라 한다면 우리 목숨을 살리는 흐름을 붙잡고 있고, 우리 목숨을 살리는 흐름이란 밥을 낳는 흐름이요, 밥을 낳는 흐름은 논밭과 산바다가 있는 터전이며, 이러한 터전이 어떤 기운을 끌어안고 있는가를 느끼면서 살며시 이어지는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싱그러운 사랑이 꽃피어 납니다.

사랑은 참사랑일 노릇임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참사람일 노릇임을 새삼 헤아립니다. 사진은 참사진일 노릇임을 거듭 돌아봅니다. 참사랑이랑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참사람이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참사진이란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내가 누구를 어디에서 어떻게 사랑하든 참사랑일 노릇이고,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놀이를 어떻게 즐기든 참사람일 노릇이며, 내가 어떤 갈래로 어떤 이야기 사진을 엮는다 하더라도 참사진일 노릇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랑,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진으로 걸어갈 노릇입니다.

 (2) 보도사진가가 찍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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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홍시

..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들을 취재할 때, 모든 취재원들에게 허락을 얻어내기도 힘들고, 특히 그들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우리를 찍는다고 우리 삶에 무슨 변화가 온다고 그러죠? 그동안 수많은 기자들이 다녔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아프간 경찰관의 지인, 카불의 정신병원 원장,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빌라 미모사'라고 알려진 창녀촌, 그리고 아프리카 민주콩고의 성폭력 피해자 병동 …… 이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불평을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가? 나는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내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차라리 이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는가? … 이제는 내 사진 한 장이 세상을 절대로 바꾸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허황된 꿈은 갖지 않기로 했다 ..  (12, 15쪽)

<정은진의 희망분투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한국 바깥에서 보도사진을 취재하고 담아내는 일을 하는 정은진 님이 중동과 브라질과 아프리카 땅을 밟으면서 만난 사람과 삶터와 아픔을 글과 사진으로 묶은 책입니다. 빛깔이 저마다 다른 세 곳인데, 이 세 곳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거의 흰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곳에서 다툼이 벌어지고 아픔이 생기는 까닭은 바로 흰둥이 때문입니다. 흰둥이들은 온누리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돈벌이를 하고자 토박이를 끝없이 끔찍하게 죽였을 뿐 아니라 노예로 부렸고 내전을 부추기는 한편, 이와 같은 다툼과 아픔을 보도사진으로 담는 일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병 주고 약 주고는 아닙니다만, 북 치고 장구 치고 또한 아닙니다만, 온누리를 흰둥이들이 망가뜨리면서 또다른 흰둥이들이 망가지고 있는 온누리를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그리며 글로 씁니다.

정은진 님은 바로 이 흰둥이 판에 뛰어든 누렁둥이입니다. 흰둥이들 스스로 온누리를 평화롭고 사랑스레 보듬기를 바라지 않는 마당에 끼어든 누렁둥이입니다. 세계 보도사진가 가운데 한국사람 같은 누렁둥이는 거의 없다고 하는데, 일본 누렁둥이 사진작가는 꽤 많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보도사진가를 살피면 미국사람 다음으로 일본사람이 가장 많이 죽었는데, 일본 누렁둥이 보도사진가는 온누리 구석구석을 누비며 '흰둥이 눈길과 다른' 보도사진 이야기를 엮어냅니다.

자, 그렇다면 한국 누렁둥이 정은진 님은 어떤 눈길과 생각과 마음과 넋으로 '흰둥이가 벌여 놓은 싸움판'에서 사진으로 보도기사를 쓰는 취재기자 노릇을 하고 있을까요. 부질없는 꿈을 꾸며 마음앓이를 했다가 부질없는 꿈은 내려놓기로 했다는 정은진 님은 무슨 사진으로 당신이 마주하고 부대낀 '이웃사람 삶'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 어느 날 저녁 맷이 바에서 나를 조용히 불러 이런 얘기를 했다. "진, 다 좋은데……. 사진기자 조끼는 좀 입지 말지 그래? 너무 깨." 그때 나는 뉴욕의 B+H라는 사진 기자개 가게에서 산, 엄청나게 크고 주머니가 수십 개 달린 카키색 사진기자용 조끼를 입고 있었다 … 아일랜드식 영어를 구사하는 앤드류는 키가 180센티미터 정도에 삐쩍 마른 편이었다. 그는 2008년 콩고에서 취재한 이야기를 해 주면서 하룻밤에 미화 10달러를 내는, 아주 허름한 '슈슈'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고 했다. 그리고 난민촌에는 매일 아침 오토바이를 타고 가 혼자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렇게 매일같이 촬영하니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즐기는 자세로 훌륭한 사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한다 ..  (38, 201, 202쪽)

<카불의 사진사>(동아일보사, 2008)와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 2008)를 내놓은 정은진 님 세 번째 보고서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홍시, 2010)는 지난 두 차례 보고서를 쓴 뒤 당신이 밟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돌아보는 뒷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정은진 님은 이번 보고서에서 지난 두 차례 보고서 때와 견줄 수 없이 '아픔 서린 땅'에 비자와 취재허가를 얻어 들어가는 일이 몹시 힘들고 바가지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이었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한두 해가 아닌 여러 해에 걸쳐 '아픔 서린 땅'에 취재를 갔다는 정은진 님임에도 아직까지 "뉴욕의 B+H라는 사진 기자개 가게에서 산 …… 사진기자용 조끼"를 입고 있습니다. 다른 동료가 이를 일깨울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마 지난 두 차례 보고서를 내놓는 동안에도 이런 차림새였을까요. 설마 보도사진을 배우고 취재기자로 뛰는 몸이었음에도 이런 몸차림으로 '아픔 서린 땅' 사람을 마주할 마음이었을까요. '아픔 서린 땅'에 멀디먼 구경꾼으로 찾아가는 '아픔 서린 땅을 만든 흰둥이'하고 똑같은 매무새로 찾아가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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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사진. ⓒ 정은진/홍시

그러고 보면,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라는 책을 읽으니 '아픔 서린 땅'에서 정은진(Jean Chung) 님을 마주한 토박이들은 정은진 님을 가리켜 '흰둥이(백인)'라고 부릅니다. 정은진 님은 흰둥이 아닌 누렁둥이요, 미국사람 아닌 한국사람일 텐데, 정은진 님은 '아픔 서린 땅' 토박이한테 당신들 이웃으로 찾아오거나 당신들 동무로 다가서는 사람으로는 잘 비치지 않습니다. 당신 스스로 밝히기도 하지만, 정은진 님은 조금도 "즐기는 자세로 훌륭한 사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사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보여주나, "즐기는 자세"로 "훌륭한 사진"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즐기는 사진이란 훌륭한 사진을 바라지 않고, 더군다나 '작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즐기'기 때문에 '사진'이라는 껍데기마저 훌훌 벗어 놓습니다. 그저 옆지기나 동무로서 '아픔 서린 땅'에 발을 디딥니다. 아니, 온몸과 온마음을 담급니다. 스스로 '아픔 서린 땅' 사람이 되어 아픔을 듬뿍 맛봅니다. 정은진 님은 '남자 보도사진가'가 되어야 '한 달 동안 목욕도 안 하면서' 취재를 잘할 수 있구나 하고 부러워 하기도 하는데(책 곳곳에 이 이야기가 되풀이됩니다), '아픔 서린 땅' 사람들이 당신들 몸을 얼마나 자주 씻고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자주 씻거나 못 씻거나에 마음을 쓸 겨를이 있다면, '아픔 서린 땅' 사람들 삶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하나로 묶을 수 있어야 합니다. 씻기 힘들거나 씻지 못할 뿐 아니라 마실물조차 모자란 곳에서 무슨 사치를 바라는지요.

.. 나는 그들에게 6년 전 촬영한 사진과 한국에서 모은 성금 중 일부를 기부하러 왔지만, 모슬렘 가정에서 용건만 전하고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슬람 교도들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기 때문에 집을 찾은 이에게 꼭 차를 대접하고, 자신들의 먹을 것 중 일부를 나누어 준다. 아무리 피난민 가정이라도 초콜릿과 사탕은 꼭 내주는 법이며,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아야 예의다 ..  (61쪽)

정은진 님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한테 성금을 나누어 줍니다. 그렇지만 성금을 받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이 돌려주는 예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예의라고 적어 놓았으나 예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은진 님은 '아픔 서린 땅' 사람들한테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몇 해에 한 번 목돈 들고 찾아와 비행기에서 구호물자 툭툭 떨어뜨리고 가듯 돈다발을 안겨 주는 산타클로스? 사진 찍혀 주는 대가로 성금을 받아드는 취재원?

"용건만 전한다"는 말이란 더없이 무섭습니다. 쉽게 찾아갈 수 없는 '아픔 서린 땅'에 무슨 용건만 남기려 하는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아픔 서린 땅' 사람들한테 성금 몇 푼이 더없이 도움이 되기도 할 터이나 몇몇 집에만 도움이 되지 모든 '아픔 서린 땅'에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도움이란 세상을 바꿀 수 없을 뿐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진을 일구는 길이 아닙니다. '아픔 서린 땅' 사람들과 나눌 사랑과 손길이 성금으로만 마무리되어야 하는지를 정은진 님 스스로 헤아려야 하며, 당신이 찍는 사진이 '아픔 서린 땅' 사람들과 삶터를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지는 않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 프레드도 이 파벨라에 처음 와 보기 때문에 주택 앞에 앉아 있는 한 중년 여성에게 길을 물어 보았다. 그녀는 파벨라에서 고속도로로 나가는 길을 알려주면서, 갑자기 검지손가락을 입으로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보지 마세요." … 인터뷰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허시냐 빈곤 지역을 통과했다. 다음날 찾아야 할 곳이었다. 석양의 파벨라는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마약 밀매와 갱단이라는 어두운 그늘 말고도 결핵이라는 치염적인 적이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었다 …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사진 촬영을 못한다니. 히타는 우리를 안전하다는 어느 주차 공간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주차장 주인의 허락을 받아 주차장 내부가 아닌 바깥쪽에 보이는 파벨라 전경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 해가 질 무렵, 파벨라의 집에 켜진 전깃불은 마치 하늘의 별처럼 촘촘히 수놓아져 있었다. '이곳은 정말 아름답구나. 이런 곳을 제대로 사진에 담지 못하다니 너무 안타까워.' ..  (124, 126, 129,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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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사진. ⓒ 정은진/홍시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라는 책에는 정은진 님이 밟은 '아픔 서린 땅'에 어떤 아픔이 얼마만큼 있는가를 3/4쯤에 걸쳐 적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아픔이 왜 생기고 어떻게 생기며 언제부터 생겼으며 누가 생기도록 이끌었는지는 한 줄로도 적어 놓지 못합니다. 뿌리를 캐지 않고 잎사귀를 들여다보고 있으며, 뿌리에 난 혹은 파 보지 않으며 잎사귀가 말라비틀어지는 모습만 붙잡고 있습니다.

보도사진이란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를 '말라비틀어진 잎사귀' 모양새 그대로만 담는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라비틀어진 잎사귀 모양새 그대로 사진으로 찍으면서 '잎사귀가 말라비틀어진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도록 이끌어야 비로소 보도사진입니다. 뿌리없는 생각 뿌리없는 삶 뿌리없는 사진으로는 이름으로 내세울 '포토저널리스트'는 될는지 몰라도, 참다운 '보도사진가'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참말 아름다운 곳을 제대로 사진에 담지 못하는 까닭은 갖가지 통제와 금지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은진 님 스스로 '아픔 서린 땅'에 '아픔을 먹고사는 사람'으로 녹아들지 못한 탓입니다.

.. "이 아이들은 엄마들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에 괜찮지만 다른 아이들은 미성년자들이기 때문에 부모의 허락도 받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학교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해요. 지금 내 말을 안 듣고 학교로 가서 꼭 취재를 해야 한다면 당신과 나는 이제 끝입니다. 나는 당신을 파벨라로 데리고 들어왔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사람들은 나에게 책임을 돌릴 거예요. 여기에는 당신 말고도 여러 사람이 와서 취재를 하고 가지만 항상 몰래 촬영을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리기도 해요. 당신은 이곳이 얼마나 심각한 곳인지 잘 몰라요. 여기는 내전 지역이라고요. 학교는 못 갑니다. 나는 도저히 책임질 수 없어요." 세상에 이렇게 취재하기가 힘들다니. 게리 나이트가 한 말이 문득 생각났다. "안 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 그러나 그건 게리 나이트고 나는 나 아니겠는가. 이곳은 빈민촌이고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다. 간단한 카포에이라 취재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히타에게 불평을 할 수도 있었다 ..  (176∼177쪽)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를 읽으며 정은진 님이 몸으로 부대끼며 깨달은 앎보다는, 정은진 님이 취재하도록 도운 '아픔 서린 땅' 토박이 입에서 나온 목소리하고 동료 보도사진가가 들려준 목소리에서 '무언가 깨달은 이야기'를 엿봅니다. 정은진 님은 희망을 찾고자 애써 싸웠다며 세 번째 보고서를 내놓습니다만, 정은진 님이 찾으려던 희망이란 '정은진 님 당신이 사진을 왜 찍어야 할까' 하는 희망이지, '아픔 서린 땅 사람 스스로 희망을 찾는 길에 정은진 님이 사진으로 무엇을 하면서 희망을 들여다볼까' 하는 희망이 아닙니다.

어느 분은 굳이 중동이니 브라질이니 아프리카이니를 찾아가지 않아도 나라안에 사진으로 담을 이야기감이 가득 있다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나라안에 사진감이 많다 하더라도 나라밖에 나가지 않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나라안에는 나라안대로 이야기가 있고, 나라밖에는 나라밖대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라밖에서만 살아간다면 나라밖 이야기에만 눈을 두고 삶을 맞출 터이나, 나라안에서 나라밖을 찾아다닌다면 나라 안팎 이야기를 골고루 눈을 두며 삶을 맞추면 됩니다. 정은진 님으로서는 한국에서 중동을 보듯 중동에서 한국을 볼 수 있고, 한국에서 브라질을 보듯 브라질에서 브라질을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 아프리카를 보듯 한국에서 한국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은진 님 보도사진과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에서 몹시 모자라거나 텅 빈 대목이라 한다면, 세상을 보는 눈길과 눈높이와 눈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희망인 사람이 나라안에 있을 때에는, 나라안 희망이 둘레 어디에나 희망을 나누며 희망을 담고 희망을 어깨동무합니다. 정은진 님 스스로 당신 삶을 희망으로 어루만지고 있으면, 애써 나라밖으로 나가는 때마다 희망을 찾고 나누고 선물받을 수 있는 한편 나라안 어디에서나 희망으로 넘실거릴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들기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인 '보도사진가가 되는 곧고 착하고 슬기롭고 맑은 매무새'를 기를 수 있다면, 훌륭한 사진을 찍든 못 찍든 대수롭지 않으며 어설프거나 어줍잖은 사진 한 장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착한 보도사진가로서 당신 길을 씩씩하게 걸으면, 맨몸뚱이로도 온누리 어느 곳에서나 당신 둘레 사람들을 착하게 이끌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보도사진가로서 당신 삶을 곱게 다스린다면, 후줄근한 똑딱이 하나로도 이 땅 어느 자리에서나 당신 곁 사람들을 아름다이 얼싸안을 수 있습니다.

보도사진가란 아름다움을 담는 이야기꾼입니다. 네 번째 보고서를 꿈꾸는 당신이라면, 아무쪼록 참다운 보도사진가 길하고 참다운 아름다움에다가 참다운 이야기를 낮은자리에서 고개숙이며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돌아보면서 손수 일구고 손마디에 꾸덕살을 박으며 땀을 흘리시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정은진의 희망 분투기 - 중동, 브라질, 아프리카, 그리고 세상의 끝

정은진 지음,
홍시, 2010


#사진책 #사진읽기 #사진비평 #보도사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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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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