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등에 업은 빨래

[골목길 사진찍기 5] 다 다른 살림집 다 다른 빨래 빛깔

등록 2010.05.16 14:16수정 2010.05.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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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둘레에 빨래대를 세워 놓은 집을 어렵잖이 찾아볼 수 있는 골목동네입니다. ⓒ 최종규

텃밭 둘레에 빨래대를 세워 놓은 집을 어렵잖이 찾아볼 수 있는 골목동네입니다. ⓒ 최종규

하늘이 파랗습니다. 바람이 싱그럽습니다. 날이 따뜻합니다. 이런 날은 골목동네에 빨래잔치가 벌어집니다. 이 골목 저 골목 담벼락이나 옥상이나 앞마당에 온갖 빛깔 빨래가 펄럭입니다. 하얀 옷부터 빨간 옷과 까만 옷과 파란 옷과 노란 옷이 골고루 내걸립니다.

 

골목집 사람들이 내놓는 빨래는 해바라기를 합니다. 집안이 좁아 빨래를 밖에 내놓기도 하지만, 집안에 들일 때보다 바깥에 내놓을 때에 빨래가 한결 잘 마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빨래기계가 제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햇볕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골목집에서 내놓는 빨래 둘레에는 으레 꽃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꽃그릇이 잔치를 벌이는 집이 있고, 텃밭 한켠에 빨래대를 마련해 바지랑대에 줄을 늘여뜨리는 집이 있습니다. 그냥 빨래대를 밖에 내놓았다가 들여놓는 집이 있고, 옥상에 시멘트를 부어 빨래대를 단단하게 세운 다음 이불까지 널어놓는 집이 있습니다.

 

똑같은 집 하나 없는 골목동네인 만큼, 똑같은 빨래대란 하나 없습니다. 똑같은 빨래대도 없으나 똑같은 빨래 또한 없으며, 널리고 나부끼는 빨래 모습 또한 저마다 다릅니다. 이 다 다른 모습과 빛깔과 산뜻함은 봄햇살을 받으며 봄 기운을 흠뻑 받아들이고, 여름햇살을 받으며 여름 기운을 물씬 풍깁니다. 가을에는 가을햇살로 가을 기운을 머금고, 겨울에는 겨울햇살을 선물받으며 겨울 기운이 고이 녹아듭니다.

 

빨래를 올려다보는 고개는 조금도 아프지 않습니다. 잎이 갓 돋은 고추포기 내음을 보송보송 마르는 빨래 기운과 함께 살며시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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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21. 인천 동구 화평동. 2010.5.15.13:52 + F20, 1/100초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이 보이고 하얀 구름이 보이는 날은 산을 올라도 즐겁고 골목을 거닐어도 즐겁습니다. 어린 날, 이렇게 눈부시게 좋은 날에 동무들하고 골목에서 뛰어놀다가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며 넋을 잃곤 했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멋진 뭉게구름이나 고운 새털구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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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22. 인천 동구 화평동. 2010.5.15.13:43 + F10, 1/80초

함께 골목마실을 하던 아이가 발걸음을 멈추고 무언가를 들여다봅니다. 뭘 들여다보는가 하고 아이 눈높이로 들여다보니, 골목집 담벼락 빨래줄과 발래집게 아래쪽에 무슨 판박이가 붙어 있습니다. 이 동네 아이들이 벽에다가 판박이를 붙여놓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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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23. 인천 동구 금곡동. 2010.5.15.14:41 + F16, 1/80초

골목길에는 골목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기 마련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조그마한 땅뙈기 하나에 수많은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담벼락이 맞닿은 집이 있고, 샛골목이 아주 좁은 집이 있습니다. 그래도 서로서로 햇볕이 어느 만큼 깃들어 빨래가 해바라기를 하거나 꽃그릇에 햇살 한 줌 비치도록 마음을 씁니다. 어느새 골목집 지붕보다 키가 자란 골목나무 그늘을 쐬면서 골목집 빨래가 잘 마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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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24. 인천 중구 내동. 2010.5.15.13:23 + F13, 1/80초

바깥에서는 골목집 안쪽에 어떠한 숲이 이루어져 있는가를 알아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집 안쪽에 이와 같이 숲을 이루어 놓은 골목집은 으레 집 바깥에도 또다른 숲을 이루어 놓습니다. 갖가지 꽃그릇으로, 또는 길바닥 한쪽 바닥돌을 들어내어 씨앗 하나 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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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25. 인천 남구 도화1동. 2010.4.24.13:00 + F22, 1/80초

잘살고 못살고는 그리 눈여겨볼 대목이 아닙니다. 큰집이냐 작은집이냐 또한 그다지 살필 대목이 아닙니다. 식구들이 얼마나 사랑스레 어울리며 즐거이 살아가느냐를 눈여겨봅니다. 이웃들하고 얼마나 따스하게 어깨동무하며 아름다이 지내느냐를 살펴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5.16 14:1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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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사진찍기 #사진 #골목마실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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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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