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 있는 동네는 빛깔 사진으로

[골목길 사진찍기 6] 내가 골목 사진을 빛깔로만 담는 까닭

등록 2010.05.18 14:27수정 2010.05.1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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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동네 빛깔은 꾸밈없이 나타낼 수 있는 빛깔 사진일 때에 비로소 제대로 보여주며 나눌 수 있다고 느낍니다. ⓒ 최종규

골목동네 빛깔은 꾸밈없이 나타낼 수 있는 빛깔 사진일 때에 비로소 제대로 보여주며 나눌 수 있다고 느낍니다. ⓒ 최종규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 왜 흑백으로 찍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이럴 때에는 따로 어떻게 대꾸를 하기보다는 말없이 있다가 "저랑 골목마실 함께 하시겠어요?"하고 여쭌 다음 한 시간 남짓 골목마실을 하면 '골목길을 흑백으로 찍을 수 없는 까닭'을 더 묻지 않습니다.

 

어떠한 곳이 골목인지 이제까지 헤아린 적이 없을 뿐더러, 골목동네에서 살아 본 날이 없거나 너무 오래된 분들한테는 '골목길 = 흑백사진 모습'이라고 못박혀 있습니다. 그렇지만 골목동네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골목길 = 빛깔 있는 모습'입니다.

 

깊은 밤에 사진을 찍을 때에는 더러 흑백으로 담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깊은 밤에는 달빛과 거리등 불빛에 기대어 담는 사진인 까닭에 빛깔 있는 사진은 잘 어울리지 않다고 느낍니다. 무언가 그윽하다고 하는 사진을 얻으려면 밤에는 흑백으로 담을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그렇지만 깊은 밤에 흑백으로 담는 사진으로는 이 동네가 어느 동네요, 이 골목길 터전이 누구네 집인지 알아챌 수 없습니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골목이란 으레 이렇게 어둡고 컴컴하고 고요한 뒷자리'로 헤아리고 맙니다.

 

요즈음은 밤에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깊어 가는 밤에 모두들 잠들어 있다면, 저 또한 잠을 자야지, 사진기를 들고 동네마실을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집에서 애 보고 뒤치다꺼리 하느라 고단해서 밤에는 마실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이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맞이하고 밝은 낮을 즐기는 결을 나 또한 고스란히 담아내거나 받아들일 때가 가장 알맞고 좋구나 싶습니다.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따쑨 햇살을 받으며 잘 마르는 골목빨래마냥, 저 또한 여름이든 겨울이든 따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골목마실을 하고 사진으로 옮겨야 제대로 어울리는 골목길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봄꽃은 봄꽃대로 다르고, 여름꽃과 가을꽃은 여름꽃과 가을꽃대로 다르며, 겨울꽃은 겨울꽃대로 다릅니다. 싱그러움이 다르고 튼튼함이 다르며 곱기가 다릅니다. 이 다름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저마다 다른 골목 살림집 모양새와 느낌을 싣자면 아무래도 빛깔 사진입니다.

 

빛깔이 있는 동네를 다니며 빛깔을 느끼니 빛깔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길에서 피어나는 빛깔이 곱다고 느끼니, 이 고운 빛깔을 혼자서 즐길 수 없어 빛깔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 어떠한 기술 처리를 하지 않고, 찍은 사진에 어떠한 손질을 하지 않으며, 종이에 사진을 앉힐 때에도 아무런 덧보탬이나 자르기를 하지 않습니다. 바라보는 그대로 사진으로 담고, 느낀 그대로 종이에 앉혀서 저 스스로 즐거워 하고, 동네 이웃한테 기쁘게 선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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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26. 인천 중구 신흥동1가. 2010.4.25.10:53 + F14, 1/60초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참새를 흔하게 보았습니다. 참새는 따로 보금자리를 틀지 않는다는데 추운 겨울날 서로 몸을 부비며 살아남을 뿐 아니라, 딱히 모이를 주는 사람이 없거나 잡아먹을 벌레가 많지 않을 텐데도 용케 도시에서 텃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쁘장한 새로 여기는 사람이 드물고 사랑해 주는 사람 또한 드물지만, 참새가 동네 골목마다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모습을 볼 때면 참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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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27. 인천 중구 내동. 2010.5.15.13:28 + F10, 1/80초

여느 사람들은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 흑백으로 찍습니다. 흑백으로 담는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골목길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애틋하거나 살가이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골목동네를 빛깔 그대로 담아낼 때처럼 곱거나 사랑스레 보여주기는 어렵습니다. 봄에는 봄빛을, 여름에는 여름빛을, 가을에는 가을빛을, 겨울에는 겨울빛을 느낄 수 있도록 빛깔 그대로 사진으로 담아 놓으면, 골목사람들 삶자락을 한결 가까이 살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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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28. 인천 서구 석남2동. 2010.4.24.11:57 + F13, 1/50초

인천 골목동네 어디에나 흔한 수수꽃다리는 골목집에서 날마다 내놓으며 해바라기를 하는 빨래마다 고운 내음과 느낌을 실어 놓습니다. 햇볕을 쬐며 보송보송 마르는 빨래마다 수수꽃다리 내음이 배면서 이 옷을 입고 살아가는 골목사람 삶을 더욱 보드라이 어루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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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29. 인천 중구 경동. 2010.4.23.13:40 + F13, 1/80초

봄꽃 구경 마무리는 봄꽃이 지면서 골목길에 한 잎 두 잎 톡톡 떨어져 꽃길을 드리울 때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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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30. 인천 동구 송현2동. 2010.5.1.5.14:08 + F11, 1/80초

몇 억짜리 아파트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자리에 1층짜리 낮은 골목집이 넉 줄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골목집들은 돈셈으로 치면 보잘것없는 집일는지 모르나, 골목사람들 누구한테나 사랑스럽고 애틋하며 고마운 보금자리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5.18 14:27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사진찍기 #인천골목길 #사진 #골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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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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