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와 텃밭과 햇살과 아이

[골목길 사진찍기 14] 골목빨래가 받아먹는 풀내음

등록 2010.05.30 14:28수정 2010.05.3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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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집 앞마당에 널어 놓은 이불 밑으로 지나가면서 노는 우리 집 아이. ⓒ 최종규


후덥지근하다가도 갑작스레 쌀쌀해지는 봄 끝물이요 여름 첫물입니다. 요즈음 날씨를 몸으로 느끼노라면 봄이란 없다 할 만하고 여름과 겨울뿐 아닌가 싶으나, 어찌 되었든 달력에 적힌 날짜로는 봄 끝물입니다.


겨우내 포근하게 덮고 지낸 이불을 한 채 두 채 빱니다. 물비누를 풀어 하루 담가 놓은 다음 이튿날 아침에 신나게 빨고는 앞마당에 내다 넙니다. 얇은 이불이 아닌 두툼한 이불이라 하루 만에 마르지 않습니다. 밤에 거두어 빨랫대에 얹은 다음 이튿날 다시금 널어 놓아야 다 마릅니다. 이튿날 다시 널어 다 마를 무렵이면 오늘 새로 한 빨래를 널 때를 맞이합니다. 이불을 빠는 동안 아이는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다가는 아빠가 하듯 저도 발로 꾹꾹 밟고 싶어 합니다. 빨래에 긴 시간이 드는 만큼 아이를 씻기고 다른 옷가지를 함께 빨래하면서 아이가 이불밟기를 하는 모습을 내버려 둡니다. 헹굼물을 갈아야 한다고 이르면 아이는 처음에는 더 놀고 싶어 하다가도 그만둡니다. 아주 고맙습니다. 고집 잘 부리는 아이라 하지만, 참말 어른들 고집하고 아이들 고집은 견줄 수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 앞에서 똥고집을 부리지 않으며 착하게 살아간다면, 아이들은 누구나 착하고 바르며 곱고 어여삐 자랄 수 있다고 늘 느낍니다.

이불을 빠는 동안 허리는 욱씬거리고 등은 쑤십니다. 이불을 씻는방 빨래줄에 먼저 얹어 놓고 물기를 짜낼 때에는 도무지 등허리를 펼 수 없습니다. 구부정하게 선 채 끙끙거리면서 물기를 짜냅니다. 그냥 곧바로 내다 널 수 있으나, 이불이 머금은 물기를 짜내어 다른 빨래를 할 때에 애벌헹굼물로 쓰고 싶기에 더 손이 가는 손빨래를 합니다. 가뜩이나 이불 빨래에는 물이 많이 드니까, 이불 헹굼물은 그냥 버릴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걸레를 빨든 씻는방 벽과 바닥을 닦든 하며 써야 속이 개운합니다.

이웃동네 마실을 하며 이웃집 빨래를 바라볼 때에는 이분들이 빨래기계를 쓰셨든 손으로 하셨든, 빨래 한 점을 마치고 내다 널 때에 얼마나 상큼하고 후련한가 하고 함께 느낍니다. 날마다 손빨래로 한두 시간 넉넉히 쓰며 아이를 돌보고 살아가는 애 아빠이다 보니, 골목마실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모습이란 무엇보다 골목빨래입니다. 이 골목빨래란 집안이 좁아 널어 놓을 마땅한 자리가 없어 바깥에 줄을 드리워 내다 놓는 빨래입니다. 그러나 바깥에서 스며드는 손바닥만 한 햇살이 있어도 줄을 드리우기 때문에, 골목빨래를 내다 놓는 분들은 작은 햇볕 한 줌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온몸으로 느끼는 분이겠구나 싶습니다. 그냥저냥 날마다 떴다가 지는 해가 아니라 집집마다 구석구석 조금씩 따순 볕을 나누어 주는 해님입니다.

집식구들 떠나 비다가 무너지거나 헐린 집터가 있으면 어김없이 돌을 고르고 흙을 부고 거름을 내어 텃밭을 일구는 골목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손품을 들여 일군 아기자기한 멋들어진 텃밭 한켠에서 햇살을 받고 마르는 빨래를 바라볼 때에는 '이 빨래는 아줌마나 할머니 손길에다가 따순 햇살하고 시원한 바람을 머금는 한편 푸성귀와 푸나무 내음까지 받아먹으며 마르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은 빨래라지만, 전기와 많은 물을 쓰는 기계로 빨아내어 집안에서 널어 말리는 빨래하고 전기 없이 손품과 적은 물을 들여 빨아낸 다음 집밖에서 널어 말리는 빨래에는 사뭇 다른 기운이 깃들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똑같은 빨래가 아닐 테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돌보는 매무새도 똑같을 수 없겠지요. 돈이 넉넉하여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맡기고 엄마 아빠는 다른 바깥 볼일을 보는 분들이 있을 텐데, 우리 식구는 돈이 없기도 하지만 온 하루 아이랑 씨름하면서 미운 짓 고운 짓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함께 살아갑니다. 온 하루를 아이하고 붙어 지내니 어버이로서 엉터리 짓을 차츰 줄이는구나 싶고, 나 스스로한테 더 살갑고 사랑스레 살아낼 길을 찾는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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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66. 인천 중구 송월동1가. 2010.5.29.14:51 + F18, 1/80초
꽃무늬를 박아 놓아도 꽃신입니다. 예쁜 계집아이들이 신을 꽃신일는지 모르는데, 예쁜 사내아이들도 꽃신을 신으며 꽃내음을 느끼고 꽃내음을 나누며 꽃내음 가득한 삶과 믿음과 사랑을 넘실넘실 펼치며 즐길 수 있으면 우리 삶터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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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67. 인천 동구 화평동. 2010.5.29.14:35 + F16, 1/80초
동네사람만 오가는 호젓한 골목 안쪽은 갖가지 빨래를 널어 말리기에 아주 좋은 자리입니다. 빨래를 바라보며 살림새를 엿보고, 빨래거리마다 묻어 있는 투박한 손길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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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68. 인천 동구 화평동. 2010.5.26.13:22 + F11, 1/80초
풀약 안 친 풀을 먹고 자란 소와 돼지를 잡아 고기를 해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합니다만, 풀약 안 친 풀이 남아 있는 들판과 산은 나날이 줄어듭니다. 밥으로 먹는 고기가 되는 집짐승한테 싱싱한 풀이 더 좋다면 사람한테도 싱싱한 풀이 더 좋을 테며, 밥상 앞에서뿐 아니라 여느 터전에서도 시멘트와 자동차 바다가 아닌 풀과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을 때에 훨씬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큰 집보다는 더 알뜰살뜰 가꿀 텃밭이 있는 집이 우리한테 좋은 집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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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69. 인천 남구 용현2동. 2010.5.27.13:17 + F10, /80초
굳이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아름답고 훌륭한 살림살이를 찾아봅니다. 박물관에 모셔 놓은 문화유산이란 거의 다 '임금님과 권력자 노리개'이기 일쑤인데, 저로서는 '여느 사람 여느 살림살이'가 바로 우리한테 애틋한 문화유산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뒷간 조각창문 하나야말로 고운 문화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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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70. 인천 중구 경동. 2010.5.29.11:15 + F16, 1/80초
골목집 고추는 텃밭 가장자리에 철 따라 달리 피고 지는 꽃내음을 먹으며 자랍니다. 돈으로 얼마든지 값싸게 사먹는 고추이지만, 돈으로는 사먹을 수 없는 고추가 틀림없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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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빨래를 바라보는 하루는 더없이 고맙고 기쁩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사진찍기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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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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