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개발과 동네 텃밭

[골목길 사진찍기 16] 푸른 기운 불어넣는 동네사람 손품

등록 2010.06.03 14:12수정 2010.06.0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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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찌감치 지방선거 한 표 권리를 쓴 다음 옹기종기 모여 차 한 잔을 마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있는 한편, 아침부터 막걸리 잔을 붙들고 있는 동네 어르신들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막걸리 잔을 붙들고 있는 동네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남자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동네 텃밭에 물을 주고 김을 매며 돌보는 동네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여자입니다.

 

여름을 맞이한 동네 텃밭은 숱한 들꽃, 하얗고 노란 꽃이 지면서 푸르디푸른 잎사귀 새 빛깔을 뽐냅니다. 소담스러운 함박꽃하고 모란꽃까지 지고 있는 이즈음, 딱히 꽃이라 할 만한 꽃은 불그스름한 장미 하나만 돋보입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꽃이 끊이지 않는 골목동네에서 딱 이즈음에만 꽃이 살짝 끊깁니다. 그러나 꽃만 끊길 뿐, 숱한 푸성귀와 나무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먹으려고 잎사귀를 벌리고, 벌린 잎사귀는 한결 짙푸른 빛깔로 거듭납니다.

 

동네마실을 하며 돌아봅니다. 군데군데 고추꽃 핀 곳이 있고, 가지꽃 핀 곳이 있으며, 감자꽃 핀 곳이 있습니다. 벌써 노란 호박꽃이 달린 곳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의 거들떠보지 않으나 앙증맞게 핀 파꽃은 참 어여쁩니다. 시골 텃밭뿐 아니라 도시 골목길 텃밭에서도 어디에서나 어김없이 파꽃을 마주합니다. 이제 머잖아 배추포기마다 속심에 곧고 야무진 배추꽃을 한 송이씩 피워올릴 테지요. 파꽃이나 배추꽃이나 무꽃들을 꽃으로 치는 사람이 드물다 할지라도, 이들 파꽃이나 배추꽃이나 무꽃들은 고운 매무새를 한껏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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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꽃이 흐드러지게 핀 골목밭. ⓒ 최종규

파꽃이 흐드러지게 핀 골목밭. ⓒ 최종규

모두들 누가 동네 우두머리로 뽑히는지에 눈길을 모두고, 누가 되면 더 좋다거나 누가 되면 안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꽃을 피어냅니다. 그렇지만 누가 되든 말든 동네 텃밭에서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운 푸성귀들은 조용히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햇살을 받고 물과 바람을 먹는 가운데 동네 어른 손길을 타며 힘차게 자라납니다. 감나무의 반짝반짝하는 잎사귀가 사랑스럽고 대추나무 '늦쟁이' 새로 돋는 잎사귀가 고맙습니다.

 

따지고 보면 좋은 편이 동네 우두머리가 되든 나쁜 편이 동네 앞잡이가 되든, 우리 동네를 우리 동네사람 힘으로 가꾸고 돌보며 지킬 수 있으면 됩니다. 누군가 돈과 이름, 힘을 앞세워 엉터리 막개발을 일삼으려 한다면 동네사람 스스로 동네를 지킬 수 있으면 됩니다. 누군가 힘겹게 반가운 문화와 복지를 펼치려 한다면 동네사람 스스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어깨동무를 하며 도울 수 있으면 됩니다.

 

인천시장이 되고자 하는 후보들 모두 수십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어디에선가 마련하여 인천이 우리 나라 '일류도시'가 되게끔 재개발을 한다고 공약으로 내놓고 있습니다(한 분은 10조, 다른 한 분은 30조 ……). 한 표 권리를 쓰러 가기 앞서 후보자 공약정책모음을 다시 한 번 읽다가 얼른 덮습니다. 10조라서 모자라고 30조라고 알맞을 수 없습니다. 10조조차 너무 많고 1조라 하여도 지나치게 많습니다. 우리한테는 이렇게 셀 수 없이 커다란 돈으로 무언가 뚝딱뚝딱 부수고 새로 지을 개발이 아닌, 돈은 한푼조차 없다 할지라도 너른 품과 따사로운 눈길, 아름다운 손길로 서로 좋은 이웃이 되어 부둥켜안을 수 있는 두레를 꿈꿀 나날을 바라 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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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과 골목밭과 골목집과 아파트. ⓒ 최종규

붓꽃과 골목밭과 골목집과 아파트. ⓒ 최종규
하얗게 터지려고 하는 손톱보다 작은 고추 꽃송이를 들여다봅니다. 그예 고추 꽃송이만큼 작고 하얗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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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76. 인천 동구 송림2동. 2010.6.2.07:14 + F9, 1/60초

집이 있다가 사라진 자리에 동네 어르신이 아주 정갈하게 푸성귀를 심어 기르고 있습니다. 이 땅은 시가 가진 땅이라 하는데 동네 어르신이 텃밭농사를 지어도 그대로 두고 있는 듯합니다. 생각해 보면, 시에서 무슨무슨 건물을 짓는다거나 주차장을 마련한다거나 하지 말고, 빈 공간을 알뜰한 동네사람한테 텃밭 자리로 내줄 때에 동네 터전이 한결 아름답고 깨끗하게 살아나는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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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77. 인천 동구 금곡동. 2010.6.2.07:06 + F10, 1/60초

동사무소를 마주보는 자리에 동네 할머니가 오래도록 텃밭농사를 짓습니다. 텃밭 가장자리에는 온갖 나무를 골고루 심어서 가꾸고 있습니다. 우리한테는 더 넓거나 더 큰 집도 나쁘지는 않을 테지만,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집하고 맞붙은 알맞춤한 텃밭 하나 있어 스스로 땀흘리고 스스로 동네를 살찌우는 손품을 기를 수 있을 때에 한결 좋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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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78. 인천 동구 송림4동. 2010.6.2.07:30 + F11, 1/80초

재개발을 앞두고 하나둘 헐리는 집자리는 이곳에서 끝까지 살아갈 분들이 새롭게 텃밭농사를 짓는 밭자리로 거듭납니다. 지방선거를 치르는 날에도 아침 일찍부터 텃밭마다 물 주고 김매는 손길이 분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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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79. 인천 동구 송림4동. 2010.6.2.07:33 + F8, 1/60초

흙땅을 밟기 어려운 도심지인데, 이 도심지에서 날마다 흙을 밟으며 풀을 만지는 분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고작 몇 평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다문 한두 평밖에 안 될 조각밭일지라도, 이 조그마한 골목밭 하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당신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당신이 뿌리내린 삶터를 사랑하는 마음이로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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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80. 인천 동구 송림6동. 2010.6.2.08:12 + F13, 1/80초

개발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와 구와 나라가 벌이는 일이란 언제나 찻길을 넓게 닦고 높직한 아파트를 세우는 일입니다. 시와 구와 나라가, 또 건설회사가 하는 개발이 '가난하고 수수한 작은 사람'이 지낼 값싸고 작으며 고운 집을 짓는 쪽으로 흐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문화회관을 짓고 도서관을 올리고 복합문화관이니 무어니 하고 큰돈 들일 토목공사만 벌이고들 있습니다. 돈 한푼 안 들이고 오로지 다리품과 손품만으로 텃밭을 일군다든지 오두막을 짓는다든지 하면서, 도시에서도 푸른 숨결을 나누거나 맛보는 일에는 아무런 눈길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꽃도 나무도 돈을 들여 심을 때에는 하나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동네사람 스스로 꽃씨, 풀씨, 나무씨를 심거나 꽃과 풀과 나무가 스스로 씨앗을 뿌리내리도록 할 때에 비로소 아름답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6.03 14:12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인천골목길 #사진찍기 #골목길 사진 #골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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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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