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26일 단식, 꿈쩍도 않는 한국타이어

'보복징계' 논란 정승기씨, 거듭된 요청에 단식은 풀었지만 사측 태도는 진전 없어

등록 2010.10.11 18:19수정 2010.10.1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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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11시, 대전지역 야5당 시당위원장과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원인 규명 공동대책위' 관계자 등 40여 명이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심규상


11일 오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정문에서 만난 정승기씨의 얼굴은 많이 상해 있었다. 퀭한 눈에 수분이 빠진 피부는 깊게 주름이 잡혀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 '한국타이어 정승기 해고자 단식농성 해결 및 유가족에 대한 법원의 화해권고 이행촉구 기자회견'이 시작됐으나 정작 정씨는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서 정씨를 돌봐 온 그의 부인이 "기운이 없기도 없지만 목숨을 건 단식농성에도 묵묵부답인 사측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독교계를 대표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남재영 목사는 정씨의 모습을 보고 인사말을 하기도 전에 눈시울을 붉혔다. 잠시 동안 목소리도 울먹였다.

대전지역 야5당 시당위원장(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대전시당)과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원인 규명 공동대책위' 관계자 등 40여 명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타이어는 집단사망 사건으로 강압적인 조직문화와 노무관리 시스템 등 죽음의 공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까지도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을 근거로 정씨가 복직을 요구하며 26일째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데도 사측은 묵묵부답"이라며 "특히 사태의 원만한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면담 요청마저 번번이 거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 한국타이어는 지난달 30일에는 유족대책위의 한국타이어 상무 면담을 거부한 데 이어 지난 1일 한국타이어 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의 임원 면담 요구를 재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급기야 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은 지난 8일, 한국타이어를 항의방문하고 11일 임원 면담을 통해 회사 측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이날 다시 회사를 찾은 것.


하지만 이날 책임 있는 답변을 듣겠다는 공동대책위 측의 요구에 대해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측에선 환경안전팀 차장과 문화홍보팀장이 각각 나와 "정씨의 복직 요구건과 관련해서는 아직 정해진 입장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중앙노동위원회와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에 이르는 법적 절차가 남아 있는 상태이므로 대법원 확정 이후 판결 결과에 따르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 사측 관계자들은 "다만 사망한 유가족들과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 대화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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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관계자가 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의 출입을 저지하며 손으로 카메라를 가로막고 잇다. ⓒ 심규상


이에 앞서 한국타이어 유가족 중 한 명은 한국타이어 정문 차단막을 붙잡고 "면담에 응하라"며 1시간 가까이 울부짖었지만 사측은 끝까지 대표단의 임원 면담 요구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은 단식 중인 정씨에게 "이제 우리가 대신 나서 싸우겠으니 단식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야5당 및 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의 거듭된 요청에 정씨는 이날 오후 단식농성을 풀었다. 단식을 시작한 지 26일만이었지만 사측으로부터는 복직에 대한 아무런 진전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은 "사람의 생명은 어느 것보다 존귀하다"며 "현재 한국타이어의 태도는 기업의 가치를 무시하고 비이성적이고 비인권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대전지역 야5당과 종교계, 시민사회단체가 모두 나서 한국타이어에 대한 불매운동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부르짖는 공정한 사회에 맞는 책임 있는 기업의 모습을 대통령 사돈기업이 먼저 보여주길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측은 정씨에 대해 허위·왜곡사실을 언론에 인터뷰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근무기간 중 직무수행을 거부하는 등 업무태도가 불량하다며 지난 3월 해고했다. 이에 대해 정씨는 회사의 억압적 조직문화와 열악한 작업환경을 고발한 데 대한 보복징계라며 지난달 16일부터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부근 네거리에서 단식농성을 벌여왔다. 정씨는 1993년 12월부터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및 대전물류센터에서 16년 동안 일해 왔다. 
#한국타이어 #정승기 #단식농성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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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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