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이 없는 전태일 책

[서평] 전태일 40주기 기념 공동출간 <너는 나다>

등록 2010.11.10 15:16수정 2010.11.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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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과 함께 분신한 지 40년째 되는 날입니다. 평화시장 버들다리는 전태일다리로 불리게 되었고 현판식과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같이 노동하는 사람으로서 노동운동의 끊어진 명맥을 이어준 전태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전태일 40주기 기념 출간물을 만든 출판사들과 함께 "페이스북 전태일 day"를 하기로 했습니다.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 (http://www.facebook.com/socialbooks)도 만들고 네티즌들과 함께 11월 18일 하루 동안 페이스북에서 하루 종일 전태일 토론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 관련 링크) 이 자리에는 <너는 나다>(하종강 외 5인 저, 레디앙, 삶이 보이는 창, 철수와영희, 후마니타스 공동 출간)의 공동 저자 하종강, 임승수씨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출판사들이 독자들을 위해 책을 협찬하고, 토론회에 참여한 독자들은 책을 열심히 읽고 토론문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발제를 맡은 저는 <너는 나다>가 담은 메시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사회가 유지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죽어나가는 나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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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40주기를 맞아 4개 출판사(레디앙, 삶이 보이는 창, 철수와영희, 후마니타스)에서 공동 출간한 <너는 나다> 우리 일상 속에 남아 있는 전태일의 현실과 소망을 담담히 그렸습니다 ⓒ 철수와 영희 등 출판사 공동

<너는 나다>를 두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봤습니다. 1장에 해당하는 '전태일 열전, 우리 시대의 전태일'과 3장에 해당하는 '열혈청춘'을 한데 묶고, 2장 '만화 나태일&전태일'과 4장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를 한데 묶었습니다. 이 책은 "전태일이 들어가지 않은 전태일 이야기"라 불러도 좋을 만큼 전태일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전태일을 매개로 '현실'을 바라보자는 기획의 취지가 보입니다.

1장을 작성한 르포 '전태일 열전'의 작가 손아람씨가 전국에 있는 전태일을 만나러 가는 까닭은 '전태일은 잘 지내는지?' 하는 안부를 묻기 위해서입니다. 손씨는 노동자, 비정규직, 대학생 알바생, 자영업자 등 사회의 약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만나 가족과 일상, 꿈 등 익숙한 주제를 들으며 현재의 전태일을 그려보이고 있습니다. 이 글이 성숙하다고 할 수 있는 까닭은 사회를 단순히 '자본가-노동자'의 대결구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자본-소자본-노동자'의 먹이사슬과 자본 간의 수익을 위한 착취압력 등을 통해 그려낸다는 점 때문입니다.

포디즘(대량생산), 테일러리즘(표준화)은 구닥다리 이론이 되어 버렸고 다양성과 감수성을 생각하는 노동 환경으로 변했다고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여전히 화장실에 몇 번 가는지, 딴짓은 하지 않는지 등 노동자를 불신하고 기계처럼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가슴 아픈 사실이 책을 통해 확인됩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무미건조한 기계가 되어가고 있고, '주인'들은 이들을 또 다시 기계처럼 다루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럼 기숙사에 들어가면 뭐해요?"
- 술이죠. 오직 술. 야간 근무가 없을 때는 오후 7시부터 다들 방에 드러눕죠. 그리고 잠들 때까지 맥주 마시면서 담배를 피워 대죠.

"야간 근무가 있을 때는요?"
- 조금은 다르죠. 야간 근무일에는 일단 오후 10시까지 일하고 들어가서 방에 드러눕죠. 그리고 잠들 때까지 맥주 마시면서 담배를…<너는 나다>(56쪽)

노동자들이 기계가 되어 가는 까닭은 감시 때문만은 아닙니다. 근무, 특근, 야근을 반복하는 생활로 활력을 잃은 것이지요.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매우 많은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가난'을 배웁니다. 편의점, 주유소 알바에서 커피숍 쓰레기통 뒤져 커피잔 찾아내기까지 안 하는 일이 없지만 가계부는 항상 마이너스. 영화감상이나 독서는 사치가 된 지 오랩니다.(126쪽)

이렇게 기계가 되기를 강요받는 체계가 대한민국에 만연한 까닭은 "기본급 비중이 기형적으로 너무 적기 때문"(221쪽)입니다. 기본급만 받고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기 때문에 야근, 특근을 밥먹듯 하고, 목숨을 잃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노동전문가 하종강씨는 책에서 '우리나라에 교통사고가 잦은 까닭이 OECD 최장의 노동시간을 감당하면서 주의력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자살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산업재해로 죽고… 대한민국은 나라가 유지되는 과정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딱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파업, 1000원짜리 배추를 500원에 팔 순 없는 법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두 번째 부분은 "우리의 적은 자본가가 아니라 불로소득"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25사변을 거치면서 진공청소기처럼 쓸려나간 노동 운동의 맥이 전태일을 통해서 비로소 소생한 지 40년. 하지만 일제에 당하고, 지주에게 당하고, 대자본, 독재에 당하던 노동자들의 피해의식은 깊은 병처럼 치유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너는 나다>는 억눌린 노동자의 자아가 아니라 건강하고 상식적인 눈으로 바라본 노동 현실을 환기합니다. '나태일 & 전태일'이라는 흥미로운 만화는 인간보다 우수한 문명의 외계인이 대한민국의 한 게임 업체에 취업하면서 겪게 되는 상황을 사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냈습니다.

노동전문가 하종강 선생의 조근조근한 설명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내가 자랑스러운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파업'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시장바닥에서 1000원짜리 배추단을 파는 할머니를 데려와 깔끔하게 설명합니다. 한번 들어보실래요?

(1000원짜리 배추를 자꾸 500원에 내놓으라고 우기는 손님에 대해서 할머니가) "손님에게는 팔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면서 그냥 두 손을 놓잖아요. 그것이 바로 노동자들이 하는 '파업'입니다. 자신의 노동력 상품 가격이 맞지 않으니까 "그렇게 헐값으로는 팔지 않겠소"라고 하면서 일하지 않는 게 바로 파업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33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단체 행동권이란 바로 그런 거지요. 파업이라는 건 무슨 굉장히 과격하고 폭력적인 행위가 아니라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투쟁 방식 중에서도 상당히 온건한, 합법적인 방식인 거예요. (230쪽)

<너는 나다>에는 하루 8시간 노동을 지키기 위해 총파업을 벌이다가 처형된 노동자가 최후진술을 통해 미국 자본가와 권력자들에게 한 말(201쪽), 극장주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극장 운영의 꿈을 깨끗하게 포기한 이야기(51쪽) 등 위대한 노동자들, 쿨한 노동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에 비해 경영자와 불로소득자들은 천박한 삶을 꾸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유한킴벌리 회사의 문국현 사장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경영자들이 모이는 국제 행사에 참석했는데, 개인적인 자리에서나 공식적인 토론회에서 외국 CEO들이 하는 얘기의 절반 정도가 환경 보호라든가, 기후 변화라든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든가 이런 것들에 관한 내용이었다는 거죠. 그게 전문 경영자의 기본적인 소양이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의 CEO들은 모였다 하면 수익이라든가, 비용 절감이라든가 계속 이런 얘기만 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좀 창피하더라는 거지요.(252쪽)

불로소득자들의 삶은 더욱 초라합니다. 아파트 단지를 팔아서 6억 원인가 수익을 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언론은 또 이것을 보도해 사행심을 부추기고. 이 사람들의 재산상 손해를 막아주기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없애버리고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대중들은 차가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결국 해결돼야 할 문제는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노동하지 않으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소득은 너무 많고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들의 소득은 너무 적은 안 좋은 상황"을 없애고 노동이 제 값을 받게 만드는 것. 그리고 노동하는 사람들을 점점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 인류가 걸어온 도도한 흐름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일을 조금씩 더 적게 하면서, 조금씩 더 잘 살게 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 진행 방향이 옳지 않았다면 노예 제도나 머슴 제도가 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강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역사의 강물도 계속 흘러가는 방향이 있어요. 노동자들이 조금씩 더 적게 일하면서도 조금씩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는 겁니다.(224쪽)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철수와영희, 2010


#전태일 #너는 나다 #전태일 DAY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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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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