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년 전 투탕카문 꽃다발의 슬픈 사연

[이 시대에 읽어야 할 명저⑧] 세람의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등록 2011.02.13 19:40수정 2011.03.1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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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문화적 욕구를 추구할 때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주말이면 예외 없이 몇 시간은 동네 주변을 걷는다. 따사로운 햇살과 청명한 하늘 아래 걷노라면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도 잠긴다. 내겐 이 시간이 참 귀중하다. 이런 정도의 삶의 여유도 없다면 난 이 도시문명에 질식할지도 모른다.

이런 나에게 반가운 소식은 제주 올레길을 비롯하여 최근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걷기 좋은 길 조성이다. 그렇다. 이런 길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한국 사람도 조금 여유를 가질 수가 있다. 우~ 하고 몰려다니는 여행문화를 졸업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때론 혼자서 길을 걸어보자. 그리하면 내 삶의 진솔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고갈된 심리적 에너지가 새롭게 충전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사회가 개발을 통해 어느 정도 살 만하면 다음으로 추구되는 것은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문화다. 이것을 통해 우리 인간들은 욕구충족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주장한 인간욕구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분명히 정리되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배고픔, 갈증, 수면, 성욕 등으로 대표되는 생리적인 욕구가 가장 기본적이며, 이러한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그다음으로 안전, 소속감, 자존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아간다고 했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으로 심리적 욕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최고 단계인 자아실현의 단계가 바로 문화적 욕구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도 이제 본격적으로 문화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경제개발의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쉼 없이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하고 물질적 욕구를 넘어 지적, 심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름 하여 <문화적 인간>이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할 때이다.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

그런데 문화적 인간은 그냥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란 정신에서 나온다. 문화는 오랜 기간 학습을 통해 훈련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품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인문학적 기초가 없는 문화란 사실 얼치기 문화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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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고고학 산책>(C.W. 세람 저/안경숙 역) 겉그림. ⓒ 대원사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하는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C.W.세람 지음, 안경숙 옮김)은 우리를 문화의 향기로 인도할 좋은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수년 전 법조계의 대선배인 최영도 변호사님을 통해서다. 그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인권변호사인데(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역임), 법조계에서 인문학적 소양으로는 따를 이가 없을 정도로 박식한 분이기도 하다. 수십 년간 사라져 가는 토기를 모아 그 전부를 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고, 오랫동안 세계문명기행을 해 온 것을 토대로 그에 관한 책, <앙코르 티베트 돈황>(창작과비평사)을 쓰신 분이다.


나는 최 변호사님을 통해 법조인에게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배웠다. 그 덕에 지난 10여 년 동안 나 또한 세계문명기행을 해 왔는데, 이 여행을 할 때마다 나에게 문명사의 안목을 키워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여행안내서가 아니다. 문명사의 궤적을 통해 우리 인간이 어떤 문화를 만들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알게 하는 귀중한 인문학 서적이다. 이 책은 저자의 조국 독일에서는 청소년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세람(C. W. Ceram)은 필명으로 본명은 쿠르트 마레크(Kurt W. Marek)다. 1915년 베를린에 출생하여 1972년 함부르크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언론인이자 작가로 사실 고고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명성은 고고학에서 왔다.

그는 언론인 출신답게 유려한 필치로 고대문명의 역사적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하였다. 그의 대표작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1949)의 원 제목은 <제신과 무덤과 학자들>(Götter, Gröber und Gelehte)이다.

이 책의 서술방법은 딱딱한 고고학 전문서적에서 볼 수 없는 세람의 독창적인 것이다. 마치 독자로 하여금 고고학의 숲속을 걷는 것과 같은 생각을 갖기에 충분할 정도로 쉽고 낭만적이다. 그래서 번역자는 원제와 다른 제목을 붙인 모양이다.

이 책은 5부로 구성되었는데 주된 내용은 제1부에서 제4부까지다. 제1는 유럽권의 고고학 발견을 다루어다. 폼페이, 트로이, 미케네, 크레타가 그 대상이다. 제2부는 이집트의 나일문명을 다루었다. 상형문자의 비밀의 문을 연 샹폴레옹을 비롯한 이집트 고대문명의 위대한 발굴자들의 기념비적 발굴을 다루었다. 제3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관련된 고고학 발굴을 다루었다. 그로테펜트의 설형문자 해독과 롤린슨의 네부카드네자르의 점토판 사전 등이 다루어진다. 제4부는 대서양을 넘어 미주대륙에서 발견된 아즈텍, 마야 문명을 다룬다. 버려진 마야 도시들의 비밀들이 위대한 발견자들의 손에 의해 하나씩 베일이 벗겨진다.

과거로의 여행은 왜 하는가

이 책을 쓴 세람(C. W. Ceram)은 독일의 언론인 출신의 작가로 세계인들에게 고대문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기념비적인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그가 60년 전에 쓴 책이 바로 이 책인데, 이 책은 세계 고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 발견을 유려한 문체로 설명하고 있다.

한국에서 번역된 이 책 제목은 원제와는 다르지만 책 전체의 분위기에 걸맞은 제목이다. 왜냐하면 세람은 과거의 역사를 딱딱한 학문적 용어로 전달할 생각이 없었다.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 이들의 호기심이 얼마나 감동적인 역사를 만들었는지를 부드러운 필치로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이 책을 읽다보면 수천 년 전의 세계로 잠시 여행을 가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독자들 중 일부는 우리가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세상 살아가는 데 해야 할 일도 많은데 그저 지적 유희에 불과한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반문할 것만 같다. 저자인 세람도 독자들이 이런 의문을 품을 것을 예상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 자동차를 운전하고 비행기를 조종하며 과거가 아닌 미래 지향적인 20세기의 사람들에게 아시리아의 왕이 그의 아들에게 설형문자로 무어라고 썼으며, 이집트 사원의 기초 설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것은 그럴듯한 질문이고 그에 합당한 답변이 있어야 한다."(35쪽)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랫동안 고민하지 마시라. 세람이 바로 답을 주고 있으니. 그는 이렇게 말한다. 

"… 고대 문화의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미지의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자와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오히려 그는 그가 항해하고 있는 물길을 발견하고 자신의 과거로부터 알 수 있는 미래까지의 그의 진로를 갑자기 알아차리게 된 항해자와 같다. 그렇다! 그는 심지어 미래까지도 감지할 수 있다." (35쪽)

그렇다. 과거로의 여행은 단순히 인간의 과거사를 알고자 하는 지적 욕구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인간사라는 항해에서 결코 길을 잃지 않는 해법을 배운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지혜를 배우고 그것은 우리가 미래라는 미지의 세계를 결코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한다. 여기에 문화의 비밀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이런 책을 통해 문화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이집트 고대 상형문자의 비밀을 해독하다

이 책은 고고학사에서 놓칠 수 없는 발견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 샹폴레옹의 상형문자 해독, 하워드 카터의 투탕카문 발굴, 그로테펜트의 설형문자 해독, 존 로이드 스티븐슨의 마야문명이 소개될 때 우리는 감동을 경험한다. 현대 인류가 과거로 여행을 하여 얻는 보물단지를 캘 때의 감동을 생생하게, 그리고 낭만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이 짧은 글에서 그 많은 에피소드 하나하나 소개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독자들에게 나일문명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을 소개함으로써 이 책의 독서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하고자 한다. 먼저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독자 여러분은 이 기이하게 생긴 문자가 어떻게 해독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나일문명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키는 상형문자이다. 나일문명은 어느 문명보다 많은 문자를 후세에 남겼다. 이것은 문명사적으로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중국문명도 3천 년 전, 아니 그 이전의 갑골문을 남겼지만 나일문명은 그 이전,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의 일을 문자로 남겼다. 나일문명은 기원전 3천 년부터 남긴 상형문자로 인해 가장 정확한 역사를 알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문명이 되었다.

상형문자는 기원전 3천 년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약 3천 년 동안 사용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런데 이 문자는 기원후 5세기 이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수많은 문자가 이집트의 유적지에서 발견되었지만 그것은 단지 그림에 불과하였다. 그러는 시간이 어언 1500년이 흘렀고, 이 기간 중 어느 누구도 상형문자를 해독한 이가 없었다. 나일문명은 그저 베일에 싸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상형문자가 세상의 사람들에게 새롭게 나타난 것은 공교롭게도 나폴레옹의 업적이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이집트 조각실에 전시돼 있는 로제타스톤(Rosetta Stone). 이 돌에 새겨진 글은 톨레미 5세인 에피판스의 칙령(勅令)이라고 한다. ⓒ 유창재


나폴레옹은 1798년 이집트 원정에 나서면서 175명의 고고학자를 대동한다. 아마도 젊어서부터 들어온 이집트 고대문명에 대한 관심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이 원정에서 프랑스 한 장교가 엘-라시드의 포트 줄리앙이라는 곳에서 화강석 석판을 발견한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로제타스톤(Rosetta Stone)이다(현재 이것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있다. 나폴레옹이 넬슨 제독에 패해 이 보물은 영국의 전리품이 된 것이다).

이 석판은 높이 1.1미터, 폭72센티미터의 크기인데, 이곳에는 14줄의 상형문자(신관문자, 이는 정통 상형문자로 종교적인 목적에 주로 사용하였음)와 32줄의 민용문자(상형문자를 좀 더 간편하게 만든 것으로 주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였음), 그리고 54줄의 그리스어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발견 당시 드디어 난공불락의 상형문자가 해독되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리스어와 상형문자를 대조하면 금방 상형문자의 문자체계를 이해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해독의 단서를 잡을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로제타스톤(Rosetta Stone) 상단에 새겨진 것은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이것을 제대로 해독한 것은 그 뒤 20여 년이 흐른 뒤였다. 천재적 고고학자 샹폴레옹이 나타나 이 문제의 해답을 얻었던 것이다. 샹폴레옹은 1808년 그의 나이 18세에 로제타스톤의 탁본을 입수한 뒤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에 들어갔다. 고대 그리스어에 능통했던 상폴레옹은 파라오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보이는 타원형 부분(카르투슈)과 그리스어를 비교했다. 그것은 다른 학자에 의해 그리스어 프톨레마이오스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부분이었다. 샹폴레옹은 그동안의 통설적 견해와는 달리 파라오의 이름을 알파벳처럼 소리로 읽어야 하며, 각각의 상형문자가 독립된 글자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카르투슈에서 이집트 상형문자의 알파벳 일부를 작성하였다. 샹폴레옹은 다른 연구를 통해 좀 더 많은 알파벳 기호를 알아냈다. 마침내 그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의미인 동시에 소리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이에 따른 상형문자의 문법체계를 정리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것이 1822년의 일이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클레오파트라를 나타내는 상형문자군의 두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기호가 프톨레마이오스를 나타내는 기호군의 네 번째, 세 번째, 첫 번째 기호와 일치한다는 것이 확실하다. 이들이 상형문자를 푸는 열쇠이며 또한 고대 이집트의 잠긴 문을 모두 열 수 있는 열쇠인 것이다."(153쪽)

샹폴레옹의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지난 1500년간 잊혀진 글자, 이집트 상형문자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나일강가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상형문자가 낱낱이 해독되었고, 이로 인해 나일문명의 역사는 확연하게 인식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오랜 세월 닫혀 있었던 고대 나일문명의 관문이 열린 것이다.

여러분도 상형문자 읽기에 며칠만 투자해 보라. 이집트 여행을 하면서 각종 상형문자를 스스로 읽을 수 있을 터이니.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한 사실이다.

투탕카문 아내의 꽃다발에 담긴 슬픈 사연

나는 이번 방학기간 중 나일문명기행을 하였다. 나일강을 따라 이집트 나일강의 최상류에 있는 아부심벨 신전부터 나일강의 하구인 알렉산드리아까지 나일문명의 정수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이 여행기간 중 나를 안내한 최고의 안내서도 바로 이 책이었다. 나일문명에 관한 많은 안내서도 함께 가지고 가 여행 도중 하나하나 읽어 보았지만 역시 세람의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을 따를 책은 없었다.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된 투탕카문(Tuthankhamun)의 황금마스크. ⓒ Egyptian Museum

여행 도중 가장 감격적인 순간은 카이로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였다. 그곳 2층은 1922년 하워드 카터가 발굴한 투탕카문의 묘에서 발굴한 유물로 도배된 곳이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투탕카문의 황금 마스크도 보았고, 그가 앉았던 황금 의자도 보았다. 매순간 흥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나를 가장 매료시킨 유물은 다른 것이 아닌 박물관 한켠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진열장 안에 있던 불에 까맣게 그을린 듯한 꽃다발이었다.

관광객 누구도 그 진열장 안의 꽃다발을 아는 이가 없는 것 같았다. 바로 그것이 투탕카문의 어린 왕비가 일찍 세상을 뜬 남편에 준 마지막 선물인 것을. 이러한 감동은 바로 이 책에서 묘사된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비롯되었다.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문 묘를 발굴하고 마침내 투탕카문의 미라를 개봉하는 날을 묘사한 부분이다.

"… 그러나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가장 깊게 감동시킨 것은 (투탕카문) 초상의 이마 근처에 놓여진 한 묶음의 화환이었다. 그것은 청상과부가된 나이 어린 왕비가 남편에게 바치는 마지막 작별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 그 화환은 3천 년의 세월이 진실로 얼마나 짧은 순간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265쪽)

그렇다. 그 까만 꽃다발은 3천 년의 시간을 보내고 내 앞에 놓여진 투탕카문 아내의 화환이다. 그 긴 세월을 거쳐 현대인, 그것도 투탕카문 시절 전혀 그 존재도 알 수 없는 코리아에서 온 한 사람의 눈앞에 놓여 있는 꽃다발,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이런 사실에 전율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만일 세람의 이 책이 없었다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이었다.

돌 하나에도 감동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문화의식은 과거에 대한 감동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가졌다. 과거를 여행하면서 발견하는 조그만 돌 하나에도 수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사회도 많은 문화유적이 보존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게 된다. 우리는 시간을 여행하는 여행자다. 현재가 중요하지만 그 현재는 과거가 있었기에 존재하고 미래는 오늘이 있기에 존재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면 어린 꼬마들이 득실거린다. 문화는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워야 한다. 이래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화 유전자가 생겨 그 문화가 후대에게 전승 되는 것이고, 거기에서 문화시민이, 문화국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온갖 문화시설이 몰려 있다는 서울조차도 박물관과 도서관은 실생활에서 너무 멀다. 이런 환경에서 문화 유전자는 생기지 않는다.

사실 서울 한복판의 서울시청 자리에는 시민을 압도하는 청사가 있어야 할 공간이 아니라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들어서야 한다. 그래서 모든 시민이 오다가다 들릴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사용할 때 우리의 문화적 의식이 성장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문화적 소양을 갖길 바란다. 이 소양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람도 고고학 전문가가 아니었다. 언론인 출신이었지만 고고학에 관심을 갖고 인류의 찬란한 문명을 젊은이에게 전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렇지만 그의 글은 어느 고고학 전문가의 글보다 반향이 컸다. 세계의 젊은이에게 인류 문명사에 관심을 갖게 하였고, 인류 문화유적의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에게도 세람과 같은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도 한 단계 올라간다. 무조건 개발하고, 높이 올려 세계 제1 운운하는 그런 유치한 발상은 이제 졸업할 때가 왔다. 이제 우리도 땅속에서 발견되는 돌 하나에도 고대인들의 손길을 느끼며 감동하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주말이면 주변의 박물관을 찾아 우리 선현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과거와 현대를 음미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게, 나만의 바람인가, 아니다. 문화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나는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찬운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 교수이자 변호사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박찬운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 교수이자 변호사이다.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C. W. 세람 지음, 안경숙 옮김,
대원사, 2002


#C. W. 세람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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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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