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명이 이 영화 보면 '정권교체'됩니다

[영화로 읽는 세상이야기 81] 글로벌 금융 사기극의 전모 밝힌 <인사이드 잡>

등록 2011.05.20 12:07수정 2011.05.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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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를 침체시킨 공공의 적은 미국 금융재벌


"금융 위기는 피할 수 있었던 재난이었다. 게다가 20조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힌 거대한 사기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태 복구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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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더미 위에 서 있는 남자를 통해 월가의 지배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사이드 잡>포스터.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MIT 정치학 박사 출신의 찰스 퍼거슨 감독이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을 제작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한 말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를 파탄 낸 두목격인 월 스트리트가 여전히 달러와 권력을 손에 쥐고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퍼거슨 감독은 다시 월가의 금융재벌과 오바마 정부를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2008년 경제위기는 피할 수 있었다'는 <뉴욕 타임스>의 진단을 파고든 <인사이드 잡>은 미국의 유력 언론들로부터 '대국민 경제사기 집단의 전모'(시카고 선 타임즈)를 밝히며, '분노를 안겨주는'(LA 타임스) '충격적 진실'(워싱턴 포스트)과 '폭발적 위력'(인디와이어닷컴)'으로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오싹한 경제 호러이며 최고의 걸작'(보스톤 글로브)으로 '반드시 봐야 할 영화'(허핑톤 포스트)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대체 영화의 어떤 내용이 이런 상찬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요? 

전 세계가 20조 달러 이상의 빚더미 위에 올라앉고, 3천만 명이 해고됐으며, 집값과 자산이 대폭락하고, 5천만 명이 극빈자로 전락해 길거리로 나앉은 금융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영화는 이 같은 의문에 대해 <미국민중사>를 저술한 실천적 지식인 고 하워드 진 교수와 친분을 맺으며 세계를 보는 눈을 다듬은 맷 데이먼의 간결한 내레이션으로 입을 엽니다.

모두 다섯 챕터로 구성된 영화는 퍼거슨 감독이 직접 월가의 금융자본가, 로비스트, 경제학 교수, 정치인 등 '위기의 주범'들을 1대 1로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제1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부터 제4부 '책임'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금융위기의 과정을 1980년 초 레이건 정부의 등장부터 시작해 금융위기 직후 월가의 CEO들이 어떻게 막대한 달러를 챙겼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제5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사회를 고찰합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1만 달러 이상의 입학금이 필요하고, 세제개편은 상위 1%의 부자만을 위한 혜택으로 전락하고, 골드만삭스와 모건 스탠리 등이 간부들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등 여전히 건재한 월가의 오늘을 추적합니다.  


영화는 월가의 금융위기가 1980년대부터 시작된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 및 철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 결과 미국의 금융 산업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회적 공익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정치권의 부패를 촉진했으며, 결국 세계경제를 침체시킨 '공공의 적'으로 지목합니다. 그동안 금기시된 영역에 대한 사실의 재구성을 통해 진실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의 결론입니다. 

세계 금융위기는 월가와 관료 등이 공모한 '금융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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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는 월가와 부시 행정부의 관료 그리고 경제학자 등의 공모로 초래된 글로벌 금융 사기극이었다.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영화의 오프닝 무대는 유럽의 강소국 아이슬란드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아이슬란드를 선택한 이유는 금융규제 완화로 인해 촉발된 위기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압축적으로 나타난 국가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금융위기로 사실상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아이슬란드는 제조업 등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이 3대 은행이 민영화되는 등 금융규제를 완화하면서 신자유주의의 품으로 내달립니다. 흥미로운 점은 은행손실만 1천억 달러에 이른 위기 상황에서 이들 은행이 다국적 자본으로부터 빌린 외채가 GDP의 10배가 넘는 데도 미국의 다국적 컨설팅업체인 KPMG가 최고 신용등급인 '트리플 A'(AAA)로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월가의 금융재벌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 국가의 존폐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탐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아이슬란드 정부와 금융감독원이 위기가 전개되는 와중에도 두 손 놓고 있었다는 대목입니다. 영화는 금융감독원의 임원들이 은행으로 1/3 이상 이직하는 것을 지적하며 부실의 커넥션을 지적합니다. 이것은 마치 이명박 정부의 금융감독원이 부산저축은행의 부실대출과 분식회계 등을 방조해 사태를 키운 것에 비견할 만합니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부산저축은행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청와대를 비롯해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부산지역 정치인 등으로 확대해 전모를 규명해야 합니다.

영화는 아이슬란드의 위기는 고삐가 풀린 금융 산업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화가 2008년 금융위기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아니라 금융재벌이 전 세계인을 상대로 벌인 사상 초유의 '글로벌 금융 사기극'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윽고 카메라는 월가로 이동합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해설 속에 영화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메릴린치 회장출신으로 부자감세 법안을 추진했던 도널드 리건 재무장관의 금융규제 완화부터 클린턴 재임 시 씨티그룹 회장 출신인 로버트 루빈과 하버드 총장 출신 래리 서머스가 금융 산업 팽창을 진두지휘한 과정을 통해 투자은행 출신 CEO와 학계와 행정부 간에 어떻게 동맹을 맺게 됐는지를 '권력의 회전문' 역사를 통해 증명합니다.  

이같은 금융 산업에 대한 무장해제는 조지 소로스의 지적처럼 '대량살상무기'인 부채담보채권(CDO)과 같은 금융파생상품을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은행의 담보대출(영화는 이를 '약탈적 대출'이라고 규정한다)의 문턱을 낮추면서 버블을 촉진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어떻게 막대한 이익을 챙겼는지 영화는 골드만삭스를 집중 해부하며 그 실체를 폭로합니다.

골드만삭스는 내부적으로는 CDO가 '쓰레기'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민들에겐 안전하다고 판매하는 한편 이 상품이 망할 것에 대비해 AIG보험에 가입하고 AIG가 부도날 것에 대비해 다시 다른 보험 상품을 사들였습니다. 여기에 스탠다드 앤 푸어스와 무디스 등 신용평가사들도 이들 CDO를 '트리플 A'로 평가하면서 역시 막대한 수익을 나눠 먹는 등 '글로벌 금융 사기극'을 공동 연출했던 것입니다.

범야권, 금융민주화 프로그램 모색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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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에 소환된 골드만삭스의 CEO는 금융위기를 초래한 책임과 관련해 한사코 기억이 안 난다거나 책임질 일이 전혀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한다.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는 비틀거렸지만 월가는 더 많은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감독의 지적처럼 단 한 명의 책임자도 없었습니다. 최근 성폭행 혐의로 수감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가 당시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인 전 재무장관 헨리 폴슨에게 "욕심에 대해 책임을 지자"고 말했다가 "우린 욕심이 많아 어쩔 수 없으니 대신 규제를 막아 달라"고 했다는 일화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엘리엇 스피치 전 뉴욕주 검찰총장이 "정부에게 수사권이 있지만 진범을 잡을까 봐 일부러 수사를 안 했다"는 증언도 이를 반증합니다.

영화는 오염된 학계에 대해서도 질타합니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금융재벌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규제완화정책을 입안한 뒤 투자은행 이사로 취임해 왔기 때문입니다. 국가경제보좌관을 지냈던 로라 타이슨 UC버클리 대학 교수가 퇴임 후 모건 스탠리 이사로 자리를 옮긴 것은 단적인 예입니다. 금융재벌에 컨설팅해주고 돈 챙기는 도덕불감증의 아카데미가 금융규제와 개혁에 관해 조언하고 언론을 통해 여론을 주도하는 것만큼 어불성설은 없습니다.

영화는 오바마 정부는 '월가 정부'라고 단호히 규정합니다. 오바마가 해결사로 당선됐음에도 월가의 '주범'들과 배후세력들이 계속 샴페인을 터트릴 수 있었던 것은 오바마 정부의 경제참모들이 대부분 월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루빈의 애제자인 티머스 가이트너가 재무장관에 앉고, 래리 서머스가 경제수석자문을 역임하면서 금융개혁 관련 법안들은 제안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텐트촌이 즐비한 플로리다주 들녘을 클로즈업합니다.

오바마가 집권했음에도 권력의 실세는 여전히 월가라는 영화의 경고는 한국 정치에 반면교사로 삼을 만합니다. 현재 범야권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빅 텐트론과 진보대통합론으로 맞서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2013년 체제'의 내용과 방향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즉, 2013년 체제가 금융민주화 등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해법을 탐구하는 등 정권교체에 따른 희망의 대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함에도 헤게모니 다툼의 잔상만 지루하게 언론에 부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사회는 삼성을 정점으로 모피아와 조중동, 그리고 검찰이 강고한 커넥션을 이룬 채 대리정권인 한나라당을 통해 지배 권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에게 금융민주화는 관심 밖이며,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공정한 경쟁의 결과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들과 범야권을 차별화하는 핵심 아젠다는 금융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라는 쌍두마차로 대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편적 복지와 함께 금융민주화 프로그램에 대한 범야권의 공통분모가 시급히 모색돼야 할 이유입니다.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인사이드 잡> '관람 전도사'로 나섰습니다.  그는 "100만 명이 (이 영화를) 보면 (정권교체로) 금융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명료하게 밝혔습니다. 2012년이 허울뿐인 정권교체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지배 사슬을 끊어 내고 금융민주화부터 시작해 이명박 정부 5년간의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분기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 강추합니다.
#인사이드 잡 #세계금융위기 #월 스트리트 #금융감독원 #부산저축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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