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고목 은행나무에 서린 '사화의 추억'

역사유적과 문화유산 답사로 보는 '대구의 풍경' (49) 대구의 학교

등록 2011.11.21 16:09수정 2011.11.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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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시립'대의 학생 납입금을 반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지방의 '도립'대 중에도 그에 발맞춰 비슷한 행보를 걷겠다고 나서는 곳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그 학교들이 중앙정부의 것인 '국립'이 아닌, 자치로 운영되는 지방정부의 '공립'이기  때문이다.

옛날로 치면 서울시립대나 지방도립대는 '향교'이다. 향교는 '공립학교', 서원은 '사립학교'인 것이다. 대구에는 옛날의 '공립' 대구향교가 있다(1398년 설립). 하지만 다른 지역의 향교에 비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장점이 있는 것도 아닌 대구향교를 외지인들을 유인할 만한 대단한 답사지라고 과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립'은 어떨까? 대구의 서원 중에서 외지인들에게 '답사할 만하다'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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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서원의 가을 ⓒ 정만진


대구에 처음으로 건립된 서원은 연경서원이다(1564년). 왕건이 지나가다가 선비들의 책 읽는 소리가 너무나 낭랑한 것을 듣고는 '연구'의 '硏'과 '경전'의 '經'이 결합시킨 '연경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바로 그 마을에 세워졌다. 하지만 연경서원은 건물도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을 뿐더러, 그 터도 일반인이 찾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곳에 숨은 듯 들어앉아 있다. 따라서 연경서원 터를 외지인들에게 권할 만한 답사지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연경서원은 남아 있지 않지만 대구에는 외지인을 당당하게 초청할 만한 뚜렷한 서원이 한 곳 있다. 도동서원이다. '조선 5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사화로 죽고 마는 김굉필을 섬기는 서원이다.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낙동강변에 있다.

도동서원은 이미 국가사적 488호에다 보물 350호로 지정받았으므로 자타가 인정하는 공신력도 가졌다. 특히, 김굉필의 외증손자인 정구 당시 안동부사가 심은 수령 400년짜리 은행나무가 그 많은 잎새들을 하나같이 노랗게 물들이는 11월초에 방문하면, 국가사적과 보물이 아닐지라도 그 아름다움에 충분히 취할 수 있으니, 도동서원은 누구에게든 답사를 권할 수 있는 '대구의 자랑'스러운 명소다. 

하늘을 쳐다보면, 아니 정면으로 앞만 바라보아도 더 없이 아름다운 이 나무. 그러나 어릴 때 노란 잎새를 주워 책갈피로 쓰던 추억을 떠올리며 땅을 보는 순간, 사화의 처참한 장면이 떠오를 만큼 나무는 몸통 곳곳에 시멘트가 박힌 채 전신을 뒤틀고 있다. 꼭 그렇게 선비들을 처참하게 죽여야만 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이 은행나무 아래에 서면 문득 그 아름다움에 취해버려, 많은 사람들의 역사속 죽음을 깜빡 잊은 채 그저 서정의 세계를 헤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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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서원의 여름 ⓒ 정만진


1498년, 연산군은 이미 죽은 김종직을 무덤에서 꺼내어 목을 베는 처참한 짓을 한다. 그리고 김일손 등을 죽이고 많은 선비들을 귀양 보낸다. 이를 무오사화라 한다. 김종직이 죽기 이전인 1475년에 수양대군이 임금 자리에 오른 일을 에둘러 비판하여 쓴 '조의제문'이란 글이 성종실록에 실리자, 계유정난 공을 세워 높은 벼슬을 차지한 자들이 이를 문제 삼아  반대편 선비들을 죽이고 유배 보낸 것이다. 이때 김종직의 제자인 김굉필도 귀양을 갔다.


1504년, 연산군이 다시 사화를 일으킨다. 갑자사화이다. 자신의 어머니인 윤씨가 1479년(성종 10)에 왕비 자리에서 쫓겨나 그 이듬해에 죽임을 당한 일을 두고 연산군이 보복을 하면서 발생한 사화였다. 이번에도 사림파들이 대거 피해를 입었다. 김굉필은 이때 사형을 당한다. 김굉필 선생의 묘소는 도동서원 뒤편 산자락에 있다.

도동서원 인근에는 김굉필과 정여창 두 사람이 1504년(연산군 10) 잠시 만나 시를 읊으면서 석별의 정을 나눈 곳이 있다. 그 정자를 이로정이라 한다. 두 사람의 선비가 만났던 정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헤어진 이후 정여창은 타계했으나 그 해 일어난 갑자사화로 (김종직처럼) 부관참시되고 김굉필도 사형된다. 이로정은 1610년(광해군 2) '오현'(五賢)으로 추앙되어 이황, 조광조, 이언적과 더불어 문묘(공자를 제사 지내는 사당)에 모셔졌던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의 장소'가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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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성학교 아담스관 ⓒ 정만진


근대로 들어와서 설립된 학교 중에는 계성학교가 추천할 만한 답사지이다. 1919년 대구 3.1운동의 핵심적 주체라는 역사성을 지닌 학교이다. 한강 이남에 세워진 최초의 2층 교사(校舍) 아담스관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도 볼 만하고, 숲속으로 난 50계단을 지나야 본관으로 갈 수 있는 남다른 교정도 자랑거리이다. 6.25때 이 학교 운동장에서 2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비석도 있어 민족상잔의 아픈 상처도 되새겨볼 수 있다.

4.19의 도화선이 된 2.28의 주역 경북고등학교도 대구 지역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학교이다. 물론 졸업생들이 세운 작은 2.28기념탑 하나뿐 그 외에는 볼거리가 없어 답사자를 실망시키기도 하지만, 그 실망감을 뒤엎을 '무기'가 학교 정문 바로앞에 있다. 국립 대구박물관이다. 경북고를 답사하려면 대구박물관과 한 묶음에 넣어 방문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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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야외박물관 ⓒ 정만진


대학은 경북대학교가 괜찮은 답사지다. 특히 경북대학교를 답사지로 추천하는 이유는, 그 학교가 4840평이나 되는 광활한 야외 박물관을 거느렸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어느 대학교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어지간한 공원 이상으로 잘 조경이 된 야외박물관에서 여러 가지 '보물'들도 볼 수 있고, 본래는 인흥사라는 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기와집들로 가득찬 문씨세가지로 변한 인흥마을에서 옮겨온 3층석탑이 주위의 경치와 멋지게 어우러져 있다. 뿐만 아니라, 고인돌, 불상, 척화비, 탑 등의 문화재들이 '발길에 툭툭 차이는' 잔디밭에서 어린 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노는 광경 또한 대도시에서는 보기드문 볼거리다.

경북대학교 야외박물관은 겨울에도 방문객이 많다. 사방 넓은 잔디밭에 눈이 하옇게 쌓이고, 곳곳에 자리를 잡은 문화재들이 자연의 풍경과 어우러져 말끔한 '그림'을 만들어주는 곳도 드물기 때문이다. 또 이곳은 봄에도 멋지다. 학교 출입문에서 야외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사통오달의 길들 좌우로 가득 피어나는 벚꽃들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준다. 자연경관으로든 박물관으로서든 전국 어느 대학에 뒤지지 않는 곳, 바로 경북대학교다.

도동서원, 계성학교와 경북고, 그리고 경북대학교 야외박물관, 이들은 답사지로서의 '대구의 학교'들이다. 대구에 살지 않는 답사자들께서는 꼭 이곳들을 찾아가 보시라. 특히 자녀와 함께 하는 답사라면 '학교'여행도 제법 괜찮은 '메뉴'가 아닐는지.
#경북대 #계성 #도동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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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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