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의 싸움? 박근혜는 MB가 밉다

박근혜, 민간사찰 덫에 걸리나... 총선서 '정권 심판론' 불가피

등록 2012.03.31 10:39수정 2012.03.3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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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새누리당 후보 합동연설에서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이 지원 유세를 하자 후보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유성호


총리실이 청와대 하명 등에 따라 작성한 민간인 불법사찰 자료 2619건이 공개된 뒤 새누리당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사찰증거 은폐'의 몸통으로 청와대가 부각된 데 이어 생생한 증거까지 공개되면서 민간인사찰 사건이 총선의 핵심이슈로 등장한 것이다.

사실상 수면상태에 들어갔던 비대위의 외부위원들도 오랜만에 모였다. 이미 사퇴한 김종인 전 청와대 수석을 제외한 이상돈, 이준석, 조동성, 이양희, 조현정 비대위원은 30일 오후 7시쯤 모임을 갖고 "민간인 사찰의 규모가 방대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로 시작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청와대에 대해 "민간인 사찰에 대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면 철저한 진상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며, 알고 있었다면 즉각적이고도 분명한 해명이 있어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향후 검찰 수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책임있는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외부 비대위원 전원, 권재진 법무장관 퇴진 요구

이는 문제의 민간이 불법사찰이 이뤄지던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권재진 법무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청와대에 칼날을 겨눈 셈이다.

이들은 또 "혹시 박근혜 위원장도 그 대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준석 비대위원은 이에 앞서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비대위는 새누리당 내에서 현 정권과의 단절을 가장 강하게 주장해왔던 조직"이라며 "비대위가 이번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에 현재의 대변인 논평 수준이 아닌 확실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 같다"고 예고했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이상일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오전 "관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처벌해야 하며, 새누리당은 수사결과가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조치도 강구할 것"이라며 "민간인 사찰은 김대중 정권의 불법 도청과 같은 범죄행위"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으나 청와대 관련 언급은 없었다.  비대위원들은 새누리당이 이 정도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근혜 쪽 "큰일이다, 그런데 별 뾰족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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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새누리당 홍사덕(종로), 정진석(중구) 후보 합동연설에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이 찾아 후보들을 지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유성호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이날 대전지역 지원 유세과정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민간인 사찰은 반드시 근절돼할 중대한 문제"라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이 누구인지 상관없이 철저하게 수사해 책임있는 사람은 엄벌해 아주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위원장 쪽의 한 관계자는 "큰일이다. 그런데 별 뾰족한 수가 없다"며 "(MB 쪽은) 도대체 도움이 안 된다"는 답답함을 나타냈다. 선대위의 한 핵심인사도 "뉴스가 나온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파급력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적지 않은 영향력을 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서울은 총력으로 해봐야 (48석 중) 1/3인 15석 정도가 가능한 상황인데 더 어렵게 됐다"고 토로했다.

구도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새누리당이 야권의 'MB심판론'에 맞서 내놓은 '노무현-박근혜 대결론'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사안이다.

야권의 핵심인 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과 통합진보당의 심상정 공동대표가 이명박 대통령 하야와 탄핵이라는 강수를 꺼낸 것도 그 동안 야권의 자책골로 흔들렸던 'MB심판론' 구도를 복원하겠다는 의도다.

지금까지 박근혜 위원장은 공식적으로는 "과거와 단절하겠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MB 탈당'은 반대하고,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서 이만우 교수 등 청와대가 요구한 인사들을 받아들이는 '제한적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박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과감한 절연을 요구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 등을 "누가 의원 30명 정도 끌고 나가버리면 큰일 아니냐"며 말렸다. 친이(이명박계) 인사들의 집단 탈당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 것이다. 김 전 비대위원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보니까 박 위원장이 불안해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 위원장이 김영삼 대통령 때의 이회창 후보나 노무현 대통령 때의 정동영 후보처럼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해서는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MB와 분명하게 갈라치기 해야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태도를 고수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현장을 뛰는 후보들도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지역 후보로 나선 한 의원은 "지금 당 간판이 이 대통령 쪽 인사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라며 "사건이 좀 더 분명해지면 박 위원장이 분명히 갈라치기를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것으로 본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경기지역의 한 의원도 "MB간판으로 치르는 선거라면 유도의 한판패에 해당하는 사안이지만 지금의 '박근혜 새누리당'에게는 다를 수 있다"며 "정권심판론을 피해가기 어렵게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위원장으로서는 낯선 '야당심판론'까지 내놓으면서, 그렇게 벗어나려 했던 'MB심판론' 구도로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해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 한 명이 갖고 있던 USB 3개 분량이다. 이외에 다른 사찰자료들이 있을 수 있고, 2619건 중에서도 KBS 새노조가 아직 살펴보지 못한 것들도 있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변호인인 이재화 변호사는 "실제 민간인 사찰의 1%도 안 되는 증거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들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민간인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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