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피클이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공모-여행지에서 생긴 일] 촌아줌마, 난생 처음 상하이에 가다

등록 2012.06.18 17:22수정 2012.06.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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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억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벌써 해가 바뀐 건가? 그럼 그게 내 마지막 여행이었다는 건가?

2012년 6월 현재, 나이 마흔둘에 시도한 아들과 나의 '단둘이 해외 여행'은 벌써 1년하고도 4개월이 지났다. 기록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이 기억은 풍화된 뒤 남은 흔적 같은 것이다. 그 날 여행이 얼마나, 어떻게 남아 있는지 나도 궁금하다.


여행 출발 하루 전... 물리고 싶다, 이 여행!

지난해 2월, 난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정말 싫었다. 설마 설마 했더니 역시나 남편은 시간을 내지 못 했다. 취소도 안 된다. 도저히 혼자서는 못가겠다니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그깟 여행 하나 못갔다 오느냐'는 말에 오기가 생겼다. 대학 졸업한지 20년이 지났다. 10살 아들은 속도 모르고 자랑을 하고 다녔다. 대학 입학하면서 버스를 처음 타본 나다. 남편도 없고, 가이드도 없는 이번 여행이 나는 솔직히 두렵다. 

상하이 지하철 노선도 하나 들고 아들과 둘이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 남편은 어디어디 다녀온 증거 사진을 찍어오라는 미션까지 줬다. 윙버스에서 제공한 상하이 최신 지하철 노선도, 공항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버스 노선도를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봤다.

아이 앞에서 겁쟁이가 되기는 싫고, 솔직히 남편 없이 혼자 비행기 타는 것이 무섭고... 아, 정말 물리고 싶다. 이 여행!

촌스러워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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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떤 마음이었니? 사진을 찍는 엄마는 애써 용기를 내면서 웃어, 웃어 했었어! ⓒ 김재복


정말 무서웠다. 공항 가까이 살면서 아이와 나는 곧잘 비행기 구경을 하러 갔다. 어려서는 조종사가 꿈이었던 아들 탓이다.

이륙하는 비행기 배꼽을 보느라 한껏 고개를 뒤로 젖히며 보는 비행기는 아름다웠다. 떠나는 사람들의 설렘, 도착하는 사람들의 안도감을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며 함께 느꼈다. 딱 거기까지. 나는 비행기 보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이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줄을 서고, 표를 받고, 내가 탈 곳으로 가는 일이 나는 어렵다. 마치 글을 모르는 시골 할머니가 서울에서 혼자 지하철 타고 아들네, 딸네 찾아가야 하는 막막함같은 것이랄까. 아들 앞에서 촌스러워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쓰지만, 나는 당장이라도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상하이 푸동 공항, 가방이 바뀌다

출발 날, 걱정하느라 졸지도 못했다. 이제는 중국 땅이다. 여행 가방을 찾아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보이지 않는다. 함께 내린 사람들은 이미 다 빠져 나갔다. 애써 다잡아온 용기가 빠져 나가고 차오르는 것은 '올 것이 왔구나'라는 허탈감이었다.

마지막 남은 가방은 우리 것과 똑같지만 우리 것은 아니다. 손잡이에 씌워놓은 비닐조차 뜯지 않은 새것이다. 우리 것은 겨우 뚜껑이 닫힐 정도로 낡은 것인데, 대체 저 가방의 주인은 내 것을 들고 어디로 총총 사라졌을까. 그도 나처럼 여행이 두려운 사람이었을까. 함께 온 일행을 놓치면 큰일날까봐 가방이 바뀐 것도 모르고 부리나케 쫓아갔을까. 허탈한 마음으로 그 가방을 내려다 보는 나를 아들이 툭툭 친다.

"엄마, 저기가 물어보는 곳인가봐."

가방 그림에 불이 들어온 곳을 가리키며 아들이 앞장 선다. 내가 할 줄 아는 중국말은 "셰셰"(謝謝)와 "짜이찌엔"(再見) 그리고 "한궈러"(韓國人) 정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급하게 익힌 것이다. 가져 간 여행가이드에 쓰인 대로 읽어도 그들은 내 말을 못 알아 듣는다. "플리즈"(Please)라는 내 말에 젊은 여성은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곧 젊은 청년이 나온다.

"체인지 마이 빽"(Change my back)이라는 말이 있는 지 없는 지 나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 청년은 내 말보다 내가 가리키는 가방을 보고 단박에 상황 파악을 끝냈다.

뭐라고 뭐라고 열심히 영어로 말을 하는데, 갸웃거리는 나를 보면서 그 청년은 글로 써 보이면서 내 이해를 돕느라 애를 썼다. 드디어 나는 내 숙소 주소가 적힌 종이를 보여줬다. 그가 그것을 적고, 내 것이 아닌 가방을 맡기고서야 일이 끝났다.

크로스백에 돈과 휴대폰, 결정적으로 호텔까지 가는 버스 노선도, 지하철 노선도가 있으니... 갈아 입을 옷이야 호텔 근처에 까르푸가 있다고 했으니, 일단 가자!

몇 번씩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는 아들 손을 잡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내 손은 뜨거웠고, 아들은 "엄마, 내 말이 맞지?"란다. 다행이다.

'이 녀석 의외로 센 걸? 엄마가 있어서 자기야 걱정 없었겠지, 그래도 어른이고 엄마가 있는데. 그래, 아빠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하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를 믿어 줘. 아들까지 엄마따라 겁먹으면 엄마 체면이 뭐가 되겠니?'

그나저나 1번 터미널은 어디고 2번은 어디냐? 1번 터미널에서 버스를 탄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왔던 길을 다시 오기를 몇 번을 나서야 그야말로 간신히 공항 버스에 올랐다. 지하철을 탔고, 호텔에 갔다. 체크인을 하고 프론트에 잃어버린 가방 얘기를 했다.

호텔 방에 가서 우리 둘 다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해는 아직 중천인데, 이제 뭘 해야 하지? 아, 점심 먹으러 가야 하는구나!

중국 땅이 넓다고 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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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두 번째로 꼽은 상해 임시 정부. 첫 번째는 당연히 가방 실종사건, 세 번째는 피클 없는 피자였다. ⓒ 김재복


값싸고 알찬 여행을 계획한 건 남편이다. 그는 일 때문에 지구를 반 정도 다녀본 사람이라 다른 나라에 가는 게 아무렇지 않다. 우리끼리 여행을 하자고 한 일이라 그가 짠 여행 일정은 순전히 지하철을 이용해야 한다. 겪으면 알겠지만 사실 제일 쉽고 편안한 수단이다. 중국어는 몰라도 우리 역시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으니 조금만 신경쓰면 내려야 할 역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촌사람이라 해도 서울 생활을 10년이나 했는데... 지하철의 원리가 중국이라고 특별히 다르겠는가.

상하이를 얼마나 걸었을까? 지하철 한 역과 역 사이를 서울 기준으로 생각했다가 낭패를 보면서 중국 땅이 넓다는 걸 온 몸으로 체감했다.

박물관에서도 걷고 또 걷고, 역에서 내려서도 걷고 또 걷고, 골동품 시장을 찾으러 가는 길도 걷고 또 걷고, 동방명주를 찾아가는 길도 걷고, 오래전부터 국제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는 외관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상하이의 공기를 느끼기 보다는 밀려 오는 허리 통증에 '아이고, 아이고' 비명을 지르며 걸어야 했다. 쉬어가자고 하는 건 번번이 아들이 아니고 나였다.

아들은 그 길고 건조한 길 위에서 단 한번도 칭얼대거나 짜증내거나 쉬어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 손을 잡고 가다가 엄마가 좀 쉬자고 하면 '알았어'라고 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가 되래 오래 머무는 곳은 '메이드 인 차이나' 장난감들을 파는 데 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들한테 사준 것이 하나도 없단다. 팬티와 양말, 만화경이 전부.

서울 집에 와서 나는 좀 낡긴 했어도 떠날 땐 멀쩡했던 운동화를 버렸다. 밑창이 닳아서 결국 거짓말처럼 구멍이 나 버렸다. 아주 많은 다이어트 방법이 있겠지만, 적게 먹고 하루 여섯 시간 남짓 걸어다니면 3일에 3킬로그램은 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클 좀 주세요, 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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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골동품 거리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 멀었다. 이곳에서 아이는 판다가 그려진 만화경을 샀다. 찌그러졌지만 가끔 내가 들여다 본다. ⓒ 김재복


호텔에서 나가고 드는 일이 익숙해지는 건 하루면 된다. 상하이 시내를 이제는 어디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여유가 생기니 배가 고프다. 주문도 말을 모르니 손으로 짚을 수 있는 그림이 있는 곳에 갔으나 음식 맛은 실패다. 아들이 처음으로 부탁을 한다.

"엄마, 우리 피자 먹어! 나 피자 먹고 싶어!"
"피자? 그래? 피자 먹고 싶어? 알았어, 먹자, 피자!"

그러고 나서도 꽤 돌아다닌 후에 빨간 모자 그림이 있는 피자집을 찾아 들어갔다. 이 그림이 있는 피자가게는 전 세계가 다 이렇게 친절할까?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젊은 친구들이 상냥해서 여행자의 느긋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삼삼오오 맛있게 피자를 먹는다. 나는 중국과 피자의 조합이 아주 약간 어색했지만 상하이는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이 아니라고 하더니 맞는 말이다.

서울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피자를 주문하는 사람이니 역시 상하이에서도 '아무거나' 주문했다. 맛있었다. 맥주 한 잔이 간절했지만 메뉴판에 그림이 없어 마실 수가 없었다. 원래 없나 생각하기도 했다.

아들이 피클을 먹고 싶다는 말을 안했어도 나는 간절히 피클이 먹고 싶었다. 말을 할 수 없어서 참고 있었을 뿐. 그런데 아들이 피클을 먹고 싶다고 하니 내가 손을 든다.

"기브 미 피클!"(Give me pickles)
"하하하.(웃음)"
"피클 주세요. 네? 못알아 듣는다구요? 피클 몰라요, 피클? 거 왜 새콤달콤한 오이지 있잖아요. 서울에서는 피자 시키면 당연히 따라 나오는 거 있는데요. 피클요, 피이~크을~."

내가 들고 간 책에는 피클을 달라는 주문의 예는 없다. 다른 청년이 온다.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또 다른 사람이 오고, 세 사람인가 네 사람이 웃으며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사이,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피클을 포기했다. 아들은 왜 피클을 못알아 듣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피클이 없으니 갑자기 피자도 맛이 없어진다.

내가 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격이 못 된다.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하다보니 피클이라는 말이 왜 안통했는지 당연히 알아보지 않았다. 코카콜라도 저희들 대로 '가구가락'(可口可樂)라고 바꿔 부르는 사람들이니 피클이라는 말이 당연히 통하지 않았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요즘도 아들과 상하이 여행 이야기를 하면 아들은 여전히 분개한다.

"어이없어, 엄마. 어떻게 피클이 없을 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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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버려야했던 정든 운동화. ⓒ 김재복


까르푸에서 아이 속옷 사면서 로션을 사려고 해도 모든 게 다 중국말로 써 있어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영어로라도 써 있으면 좋으련만 당연하게도 영어 설명을 없다. '니베아' 제품으로 로션일거라고 짐작되는 것을 사들고 나오면서 아주 잠깐 '흥, 잘났어 정말, 자존심 하나는 대단하네'라고 생각을 했다.

내가 다시 상하이에 가서 피자를 먹을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피클'을 뭐라고 하는 지 알고 싶은 마음은 없다. '피클' 사건은 아들과 나의 상하이 미제 사건으로 남겨 두고 싶을 뿐이다.

해저녁에 숙소에 돌아와 보니... 아니, 저것이 무엇이여? 나보다 아들이 먼저 말했다.

"엄마, 우리 가방이다."
"어머나, 맞네! 우리 가방이네. 어머나 세상에, 가방이 정말 왔네!"

가방과 극적인 해후를 하고 나서야 막 사들고 온 속옷이며, 양말이 생각났다. 왜 일은 늘 이렇게 꼬이는 걸까? 조금만 더 참지 못하는 것이 늘 화근인가?

비밀번호를 누르니 딸칵하면서 아는 소리가 들린다. 내 물건을 이틀만에 만나는 느낌은 묘했다. 사실 가방이 호텔에 올 것이라고 생각치 않았다. 이미 들은 소리가 있었는데, 짐작한대로 좋지 않은 소리였다. 중국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 절대 못찾는다, 찾아준다는 말은 하지만 찾아주는 법은 없다. 그러니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었고 그러려니 했다.

내 상식으로 가방 주인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가방 꼬리표를 봐도 알 수 있을 거고 다만 찾아 주려는 사람의 의지가 문제일 것이다.

저쪽에서도 아마 같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내 것과 바뀐 가방 속에는 정말 중요한 물건이 들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바뀐 여행객의 가방을 찾아주느라 그 사이에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수고가 있었다는 생각에 문득 미안해졌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했을 뿐이지만 나는 공항에서 그 청년이 베푼 호의가 참으로 고마웠다. 오해해서 미안했고, 기대하지 않아서 더 기뻤다.

가방을 찾고, 길도 익숙해졌고, 호텔 메니저도 낯이 익을만 했는데... 그새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출발할 때는 참 길기만 했던 3박 4일이었다. 새벽에 출발하기 위해 콜택시를 부탁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들과 나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겁내서 미안해요

나흘간 머물렀던 호텔은 푸동 공항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다. 김포공항을 기준으로 파주나 부천 정도의 외곽에 있었다. 거리는 훨씬 더 멀었지만. 이유는 단 하나, 값이 싼 호텔이었다.   

오전 5시에 호텔에서 출발, 중년의 기사가 기다리고 있다. 가방을 들어주려는 행동을 했는데, 순간 내가 거부하는 꼴이 됐다. 정말이지 내가 들어도 됐기에 거절한 것이었는데, 중년의 택시 기사는 기분이 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안에서 계속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비가 살짝 내리고 있어서 새벽길은 아주 약간 음산했다. 가도 가도 공항 표시는 안보이고 순간 내 촌스러움이 또다시 발동했다 그 택시 기사가 왜, 무슨 이유로 다른 길로 갈 것이라고 쓸데없는 걱정을 했을까... 한 시간 가까이 달려 공항을 알리는 이정표를 보고서야 마음을 놓으면서 거스름돈을 안 받는 걸로 잠시나마 그를 무서워 했던 것에 대한 내 미안함을 대신했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내 아들 같은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조심해야 할 것들만 챙겨간 나같은 여행객한테 그가 잠시나마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미안하다. 

아빠랑 여행가야 재미있다는 아들

집에 돌아온 날, 나는 좀 으쓱해졌다.

"거봐, 당신은 내가 못 다녀올 줄 알았지? 나, 아들하고 둘이 패키지가 아니라 자유여행 다녀왔다구. 당신이 다녀와야 한다고 했던 데 다 갔다 왔어."

놀러 갈래, 집 볼래 하면 늘 집 보는 쪽에 손을 든 나였기 때문에 그가 알 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이 나한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스무 살에도 해 보지 못한 여행이었다.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나를 위해 용기를 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여행은 나를 위한 여행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한참 지나고 나서 어느 날, 아이에게 다음에도 엄마랑 둘이 나라 밖으로 여행 가자고 하니 아들은 "절대 둘이 가지는 않겠다"고 대답한다. "아빠하고 가야 재미있다"는 게 이유인데, 아이는 '피클'을 먹지 못한 것이 엄마의 영어 실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엄마는 영어 잘 못하잖아! 이 녀석이!!"

여행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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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뒤로 보이는 건물 중에서 아들과 나는 마음에 드는 건물 하나씩 찜하고 왔다. ⓒ 김재복


박물관에도 가고, 사진도 찍고, 이름난 공원에도 가고, 물의 도시도 가고, 현지에서 꾸려진 하루짜리 여행팀도 만났다. 지하철 안에서는 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도 만났다. 사람이 많아서 부대끼는 사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도 어색하지 않았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누구 말대로 거기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루 장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국수를 먹는 가게 주인도 있고, 새로 만든 역사 마당에서 전통 악기를 배우는 아줌마들도 한참씩 구경했다. 길에는 개가 싸놓은 배설물들이 널려 있고, 다리 밑에서는 이발사가 머리를 깎고 있다. 까르푸 푸드코트에는 끼리끼리 모여앉은 처녀들이 깔깔거리며 음식을 먹는다. 호텔 매니저는 유창한 영어로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것 까지 챙겨줬다. 그녀가 꽤 멋져 보인 것은 호텔의 메니저이지만 그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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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용했던 11호선. 장기자랑이라도 있는걸까? 무척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중국 아주머니들. ⓒ 김재복


그들은 모두 자기에게 주어진 제 몫의 일을 하고 있었다. 어설프게 듣고 간 안 좋은 소리들로 내 귀와 마음에 선입견이 잔뜩 끼어 있었을 뿐, 그들은 나와 아들에게 친절했다.

무슨 맛인지 모르고 시켰지만 값을 올려 받은 것 같지도 않다. 물건을 사라고 귀찮게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게 그들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어쩔 수 없이 푸동 공항의 청년을 떠올렸다.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만나도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다. 그가 보여준 성의는 우리 여행을 좋은 여행으로 기억하게 해줬다.

불안하고 두렵고 낯설어서 다시 그 비행기를 타고 되돌아 오고 싶었던 순간, 그 청년이 또박또박 글씨로 써가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당신의 가방을 찾아, 당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돌려주도록 노력하겠다는 말, 약속하겠다는 말은 낯선 이방인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그리고 남은 것, 언젠가 다시 집을 나설 때는 지금보다 훨씬 가볍게 떠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천지개벽의 순간처럼 감격의 순간이다. 이런 게 여행의 힘이 아니겠는가!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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