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더위에 논 일하다가 도망가고 싶을 때...

귀농6년 차, 논매기하다가 '땅강아지'를 생각하다

등록 2012.07.28 14:06수정 2012.07.2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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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논에 김을 맸다. 우렁이농법으로 논 풀을 잡아보려 했지만, 올해도 실패했다. 논 곳곳에 풀이 엄청나게 자라있다. 우렁이 농법이 성공하려면 논의 수평이 잘 맞아야 한다. 올해는 '논갈이'때 수평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물에 잠긴 부분은 우렁이가 풀을 먹어 깨끗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풀이 그대로 막 자라있다. 이쯤되면 다른 방법이 없다. 결국 사람이 논 속으로 들어가 일일이 손으로 매어줘야 한다.


여름철 이맘때 논에 들어가는 길은 일단 고행이 보장된 길이다. 여기는 경남 내륙지방. 오전 10시 이전에 들판의 온도계는 30도를 가볍게 넘어버린다. 논두렁에서부터 감고 올라오는 후덥지근한 습도는 온도계를 비웃는다. 순간 호흡을 가다듬으며 논으로 뛰어든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노란 물장화를 신고 논 가운데 들어서면 미끄러운 논바닥에 중심 잡는 것부터 애를 먹는다.

작업은 매우 더디다. 자라나는 모는 밟지 않으려 애쓰며 모 옆에 난 풀들을 손으로 뽑으며 앞으로 전진 하는 일의 반복이다. 아무도 없는 농촌의 들판에서 나 홀로 묵묵히 하는 작업이다. 허리를 숙이고 손을 논 뻘 속에 집어넣고 하나하나 손가락이나 손톱으로 뽑아 올린다. 풀뿌리는 진흙 속에 뿌리박고 있고 풀의 몸체는 손안에서 미끄럽다.

논흙은 이리저리 튀어서 바지와 윗옷을 버리고 얼굴도 뻘흙이 묻기 시작한다. 거기에 더해 땀인지 흙물인지 얼굴을 자꾸 타고 내린다. 땀이 맺혀 소금기 있는 얼굴엔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날아든다. 그걸 피하려 얼굴을 돌리다보면 모의 날카로운 잎날이 사정없이 볼살을 때린다. 얼굴이 가렵고 따갑지만, 양손에 뻘이 묻어 가려운 곳을 긁어줄 방법도 없다.

뽑아 낸 풀들은 비닐종이에 담거나 논두렁 쪽으로 던져야 한다. 한참을 그렇게 허리 숙인 채 전진하다 가끔 아픈 허리를 풀기위해 몸을 일으킨다.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때 잠시 서서 작업량을 둘러본다. 여태 지나온 길과 앞으로 남은 양을 가늠한다. 일을 제법 한 것 같은데 지나온 길은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에 앞으로 전진해야할 길은 하나도 줄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다. 입 안에 단내가 나는 순간이다. 이럴 때 딱 드는 생각은 하나다.

" 오늘은 그만하고 싶다."


그만하고 돌아나가고 싶은 생각이 막 밀려든다. 이 땡볕에 언제 저기까지 마무리 짓겠나 싶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다. 이럴 때 누구 전화라도 오면 그 핑계로 빠져나오고 싶다. 이런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잘 다독여야 한다. 오늘도 하마터면 몇 골도 매지 못하고 돌아 나올 뻔했다. 그때마다 어제 본 '땅강아지'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땅강아지'처럼 하면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이렇게 속말을 하며 견뎠다. 그 덕분에 겨우 마음을 추슬러 다시 일을 할 수 있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머리를 논바닥에 박듯이 들이 밀고 꾸역꾸역 밀고 나갔다. 다행히 오늘은 땅강아지 생각 덕분인지 마음먹은 작업량을 다 마칠 수 있었다.

땅강아지 헤엄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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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강아지 요즘은 귀해진 곤충 ⓒ 서재호


논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웬 '땅강아지' 소린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어제 논 앞 시멘트 농로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야겠다. 어제 논일을 마치고 논두렁을 넘어 농로로 올라섰을 때였다. 내 차 앞바퀴 근처에 조그만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게 보였다. 몸을 숙이고 자세히 보니 '땅강아지(메뚜기목 땅강아지과)'였다.

옛날엔 참 흔한 곤충이었는데, 요즘은 귀한 몸이 된 녀석이다. 아마도  땅강아지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연식이 대강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40대 이상의 연령이라면 도시에 살았건 농촌에 살았건 땅강아지를 알 것이다. 어릴적 학교나 공터에서 놀다보면 모래땅을 헤집고 다니는 땅강아지를 많이 만났을 것이다. 그놈을 잡아다가 손바닥에 올려놓고 놀기도 했을 것이고. 땅을 파는 땅강아지를 자꾸 건드려서 땅 파는 걸 방해했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옛날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녀석을 잡아다가 손바닥에 올려놓기도 하고 이리저리 방향을 돌려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전에 본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조관일씨가 지은 책 <멋지게 한 말씀>에 나오는 구절인데 이런 대목이 있다.

"일본 속담에 '땅강아지 물 건너기'라는 말이 있다. 통에 물을 붓고 한쪽 끝에 놓아주면 처음에 활발하게 헤엄쳐 나간다. 그런데 이 땅강아지는 물통 중간쯤 가다가는 되돌아오는 버릇이 있다. 끈기가 없어서 그렇다. 그러다 보니 목적지까지 못 간다. 괜히 중간까지 헤엄치느라 힘만 들었다. 이걸 바로 '땅강아지 물 건너기'라 한다." (본문중)

그 일본 속담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확인해보기 위해 땅강아지를 가지고 직접 실험해 보진 않았다. 그런데 내 기억이 맞다면 어느 정도는 타당하지 싶다. 옛날 어릴 적에 세숫대야에 빠져있는 땅강아지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때 땅강아지는 세숫대야 가운데서 놀지 않고 세숫대야 가에서만 맴돌아 지켜보던 내가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다. '땅강아지 물 건너기' 이야기는 저자가 말했듯이 교훈적인 이야기다. 의지가 약하고 끈기가 없는 나 같은 사람한테는 딱 경구가 될 만한 글귀다.

어제도 땅강아지를 본 뒤로 자꾸 그 글귀가 생각났다. 그래서 괜히 내가 땅강아지라도 된 것처럼 마음이 캥겼다. 속으로 몇 번 다짐 비슷한 말도 한 것 같다.

"물통 중간에 돌아오면 안돼. 물통 끝까지 건너야 해. 땅강아지처럼 하면 안돼 !"

그 덕분에 오늘 논 일도 이 악다물고 해낸 것 같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으면서도 중간에 돌아 나오지 않고 작업량만큼 마무리 짓고 나왔다.

돌아 나오지 않고 끝까지 가 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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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강아지 물건너기 약한 끈기와 의지의 대명사 ⓒ 서재호


귀농하기 전 부산귀농학교 귀농교육때 만난 사람 중에 필명을 '원완주'로 쓰는 사람이 있었다. 교육후 경북 상주로 귀농해서 모범적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이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원완주'씨에게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필명을 왜 그렇게 지었어요?"

그때 그 사람은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한번 시작한 건 끝까지 가보고 싶어서요. 원완주는 '완주'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마라톤으로 친다면 42.195km. 골인점까지 가보고 싶다는 거죠."

이 사람 '원완주'씨도 내게는 '땅강아지 물건너기'의 경구처럼 의지와 끈기에 관해 늘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다. 나는 아마도 앞으로도 힘들 때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한 마리의 곤충과 한 분의 이름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으려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제 블로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제 블로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땅강아지 #부산귀농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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