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두 번 울린 새누리 대변인

[取중眞담] 피해자 고려 없이 만천하에 공개된 성추행 사건

등록 2012.08.13 22:04수정 2012.08.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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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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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진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추행 사건을 공론화 한 데 대해 "저에게 2차 피해를 조장하고 인권에 굉장히 무지한 의원임을 오히려 애기하고 있는데, 실은 이는 성추행 또는 성폭행 피해자의 2차 피해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 유성호


"민주통합당의 주요당직자가 택시 안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해당 언론사와 민주통합당에서는 이를 숨기고 함구령을 내린 상태라고 한다."

민주당 당직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은 이 같은 신의진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에 의해 공론화됐다. 지난 10일 일이다. 주요 언론사들은 이를 즉시 기사화 했고, 성추행 사건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일견, 은폐될 수 있었던 사건이 신 대변인에 의해 공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신 대변인의 브리핑은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가장 먼저 고려됐어야 할, 피해자의 의사가 무시된 것이 첫 번째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처벌을 원했지만, 해당 상황이 공론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민주당은 해당 당직자의 해임 절차 등을 비공개로 처리했다.

피해자의 바람과 달리, 사건은 신 대변인에 의해 공개됐다. 신 대변인의 브리핑 직후 채 10분도 되지 않아 기자들 사이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거론됐다. 좁은 언론계에서 해당 기자는 특정됐고, 만천하에 공개됐다.

신 대변인은 브리핑 직후, '여기자가 상황이 알려지기 원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회사에 얘기했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 밝혀서 적절한 처벌을 원한 것과 이 일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일은 등치될 수 없다. 그럼에도 자의적 판단 하에 공개 브리핑을 한 것이다. 신 대변인은 이 같은 정황을 파악하기 위한 당사자와의 접촉은 일절 하지 않았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해당 기자가 소속된 <미디어오늘>에도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신 대변인은 13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피해자에게 전화했냐고 묻는데 그것 자체가 다른 문제가 이렇게 큰데 그것만 까칠하게 문제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렸던 신의진 대변인의 브리핑

이외에도 문제는 또 있다. 신 대변인 브리핑의 사실관계 자체가 맞지 않다. 성추행 장소와 시기가 모두 사실과 달랐다. 본인 스스로도 브리핑 당시 "완전히 사실이 확인된 상황은 아니다, 알아본 결과 떠도는 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여성이 성추행당한 상황에서 이를 둘러싼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도 없이,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신 대변인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내가 수사관도 아니고..."라며 "중요한 것은 진정한 사과와 떳떳한 공개"라고 강변했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피해자와 대리인의 상당을 지원해 온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성폭력상담소)는 이날 공식 입장문을 발표해 "브리핑 목적이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나 피해자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면 브리핑을 하기 전에 정확한 사건 파악과 피해자가 원하는 해결방향에 대한 사실 확인이 먼저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신 대변인이 주장하는 '민주당의 사실 은폐'도 사실과 다르다. 앞서 밝혔듯, 민주당은 해당 당직자를 해임하는 등의 절차를 이미 밟았고, 윤호중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등이 피해자에게 사과를 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신 대변인은 "이 일이 거대 야당에서 일어났고, 여성민우회도 조사를 함께하며 다 알고 있었다"며 "새누리당에서 일어났으면 어땠겠냐, 은폐는 상대개념일 수 있다, 이 정도면 은폐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새누리당에서 일어났으면 당장 공론화 됐을 일이 민주당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비공개로 처리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은폐'라는 신 대변인은 "정치판에 와보니 어느 당이건 성폭력을 은폐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의 의견과 피해자의 상황을 가장 먼저 생각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신 대변인은 "질문에 공정성을 잃어서 대답을 못하겠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신의진 대변인의 브리핑은 피해자에게 부메랑이 됐다"

성폭력 문제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신 대변인의 브리핑은 부적절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은심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 대표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문제의 핵심은 이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고 피해자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다"라며 "피해자 의사에 따라 해결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에서 이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처리가 미흡할 때 신의진 대변인의 공개적인 처리 요청이 설득력을 가질 텐데 이번 사건은 정파적 양상의 폭로로서, 부메랑처럼 피해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건의 비공개 처리에 대해서도 "성추행 사건을 공개 처리하는 게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라며 "사건의 은폐·축소 가능성이 없다면 피해자 보호가 제일 중요하고 가해자 공개 여부나 공익성 주장은 그 다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선미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도 "신의진 대변인은 소문을 브리핑 한 것으로 매우 무책임한 것"이라며 "성추행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은 문제적"이라고 비판했다.

성폭력 상담소는 입장문을 내고 "지금 필요한 것은 성폭력 사건을 알리고 가해자를 징계하고자 한 피해자의 선택과 용기를 왜곡한 상황을 바로 잡는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정치적 공방은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 피해자의 일상복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지금부터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신 대변인의 폭로는 피해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대신, 새누리당만 호재를 맞았다. 새누리당은 성추행 건과 이종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박근혜 의원을 향해 '그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한 데 엮어 공세를 펼치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앞 다투어 민주당을 비판하는 논거로 새누리당의 공세를 그대로 받아 쓰고 있다. 성추행 사건에 가장 중시돼야 할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이, 정치 공방으로만 사건이 재생산되고 있다.

실제, 신 대변인의 브리핑 이후 피해자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미디어 오늘>은 13일 입장문을 통해 "가해자에게 해임 처분이 내려진 뒤 피해자가 안정을 되찾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피해자는 지난 주까지 정상적인 업무를 보고 있었으나 신 대변인의 폭로 이후 심각한 충격을 받고 다시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디어 오늘>과 피해자는, 새누리당과 신의진 대변인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건을 공론화해 2차 피해를 입힌 데 대해 사과를 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조두순 사건의 피해 아동인 나영이(가명) 주치의로 명성을 떨친 정신과 전문의.' 지난 4월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기 전까지 신 대변인을 설명할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당사자로부터 2차 피해를 입힌 가해자로 규정되고 있다.
#신의진 #성추행 #민주당 #당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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