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하늘에 날벼락, 우리 집이 경매라니!

[공모-나는 세입자다] 전세금 7000만원은 한 푼도 못 받고... 서민 실상 아시나요?

등록 2012.10.01 22:01수정 2012.10.0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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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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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자료사진) ⓒ 한경희


올해 봄 어느 날, 퇴근해 집에 갔더니 아내가 서류 하나를 내밉니다.


"여보, 법원에서 등기가 왔어요."

평생 살면서 법원에서 등기 받을 일이 없었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내용을 보니 더욱 당황스럽습니다.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집주인이 부동산 업자였는데 부도가 나서 본인은 구치소에 갇히고 집은 경매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처음 집을 계약할 때 은행 대출이 많아 특약 사항에 전세금을 받아 대출을 낮추겠다고 약속하고 계약서에도 적고 계약을 했는데 막상 이사를 한 이후에 확인해 보니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몇 번 전화로 독촉을 했고 그때마다 한다고 말만 하고 차일피일하더니 결국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문제는 1순위인 은행 대출이 많아 우리가 지불한 전세 7000만 원은 단 한 푼도 못 받게 된 것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제4조(우선변제를 받을 임차인의 범위)에 따르면 제가 사는 인천은 보증금 5500만 원 이하만 우선변제를 받을 자격을 줍니다. 이 금액이 넘어가면 한 푼도 못 받게 되어 있답니다. 뉴스로만 듣던 일이 저희들에게 닥친 것입니다.

15년 동안 9번 이사... 임대아파트 입주가 코앞인데 


저는 1998년에 결혼을 했고 올해 결혼 15년째인 목사입니다. 그 사이 아이도 셋을 낳아 첫째가 중1이고 둘째는 초등학교 5학년, 셋째는 4학년입니다. 그동안 9번을 이사했으니 평균 1년 반 만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한 셈입니다.

세 아이를 데리고 이사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어 1년 전에 '보금자리' 아파트에 10년 임대를 지원했고 다행히 당첨되어 2015년에 입주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임대아파트 입주 조건은 보증금 80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입니다. 당시 8000만 원 전세를 살고 있었습니다. 이 중 4000만 원이 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돈이었습니다.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생각했습니다.

전세 7000만 원 빌라를 얻어 이사를 하고 1000만 원은 대출을 갚았습니다. 이제 2년 살고 특별한 문제 없으면 2년 더 살다가 보금자리 아파트로 들어가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아내는 2015년만 손꼽았습니다. 그동안 전세 월세 살면서 내 집이 아니라 가구도 신혼 때 것 그대로, 필요하면 중고 매장에서 대충 사서 사용했고, 남의 집이니 취향에 맞게 제대로 꾸미지도 않고 대충 살았습니다.

아내는 2015년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2015년부터는 10년간 이사 가지 않아도 되니 이사 가면 애들 방은 이렇게 해주어야지, 이사 가면 화분을 많이 두어 화초를 키워야지, 이사 가면 거실은 이렇게 해야지. 아내는 진작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저희는 1998년 결혼해서 처음 1100만 원짜리 지하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신혼집을 구했다는 말에 장인 장모께서 처음 방문하고는 눈물을 글썽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가난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인데 이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또 이사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가난한 사람의 삶'으로... 정책은 바로잡아야겠습니다

아내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황당한 상황에도 조금도 당황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도, 꼼꼼하지 못한 남편도 원망할 만한데 그 무엇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시 시작하면 되지요. 밥 안 굶고 길거리 나앉지 않으면 됐지요"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 가족이 있으니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목사로서 '가난한 사람을 도우며 삽시다' 설교하고 가르쳤지만 어느덧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을 잊고 살았는데, 이제 제대로 가슴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목사로서의 배움입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전세보증금을 보호해주는 정책을 세운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전세금이 5000만 원 이하인 경우에는 보호를 받는데 그 이상은 단 한 푼도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5000만 원 이상인 사람도 최소한 5000만 원까지는 보호를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5000만 원 전세금을 낸 사람이나 전세자금 대출 3000만 원 받아서 7000만 원을 낸 사람이나 실상 가난함의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단지 전체금액 5000만 원을 기준으로 '보호'와 '비보호'를 가르는 것은 서민들의 실상을 모르고 정해진 정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관련 정책을 집행하시는 분들께서 살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나는 세입자다' 공모 응모글
#경매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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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세나무교회 목사.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 공동대표. 저서로는 [재편-홀로 빛나는 대형교회에서 더불어 아름다운 건강한작은교회로](비아토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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