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아이 스마트폰 좀 돌려주세요"

[학생부장 일기 32] '손바닥 안의 세상'에 무릎꿇은 학교

등록 2012.11.09 19:58수정 2012.11.0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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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15년 전 '피 끓던' 초임 교사 시절, 손에 쥔 매에 새겨놓은 글귀다. 지금이야 학교에서 대놓고 매질을 해대는 간 큰 교사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지만, 그때만 해도 교사들은 대개 그렇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그게 열정이고 헌신이며, 제대로 된 교육인 줄 알았다.

이른바 학교가 교육을 독점하던 시대, 교사들의 권위는 두루 인정받았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 '교사의 ×은 개도 안 먹는다'며 이따금 흉을 보았을지언정,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늘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은 지니고 있었다. 학부모가 교사를 못마땅해 하는 그들의 자녀 앞에서 무조건적으로 교사를 두둔했던 건 그런 까닭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변해도 너무 빨리 변했다. 초임 시절과 견줘보면, 요즘 아이들은 '다른 별에서 온' 존재들이다. 고작 40대 초반인 젊은 교사의 눈에도 그러할진대 정년을 앞둔 50~60대 교사들은 오죽할까. 소통은커녕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것조차 서로 힘들어한다. 명색이 미래세대를 길러낸다는 학교라면서, 아이들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구닥다리 교사들 탓이라며 힐난한다.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조롱하면서.

솔직히 부인하진 못하겠지만, 그게 어디 교사들만의 잘못일까. 속이야 후련할 테지만, 교사들을 싸잡아 뭇매를 가한다고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다. 시나브로 힘을 잃어가는 학교교육을 더욱 위축시킬 따름이다. 한때 복지부동 운운하며 '영혼 없는' 공무원을 타박하더니, 요즘엔 학교와 교사가 바통을 이어받은 모양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달라진 아이들의 일상

커서 교사가 되겠다는 아이들은 많아도, 지금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롤모델'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부모에겐 무능하다고 욕을 먹고, 아이들에겐 '재수 없다'며 손가락질 당하는 처지에 '롤모델'은 무슨. 제발 소 닭 보듯 하거나 대들지만 말아달라고 바랄 뿐, 사제지간으로 돈독한 관계가 이어지리라는 기대는 어느새 꿈조차 꾸기 어려운 헛된 바람이 되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이미 학교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학교의 존재 이유마저 교사 스스로 자문하고,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의심 받는 형편이다. 아이들도 더 이상 학교에 뭔가를 바라지도 않고, 교사들도 교육행위에 대한 효능감이 없다보니 열정이 빠르게 식어 그저 월급쟁이로 살아갈 뿐이라는 자조만 남았다.


아이들에게 교사의 훈화는 잔소리로 치부되기 일쑤고, 교과서는 참고서와 문제집에 밀려 폐지함을 전전한다. 학교수업은 인터넷 강의와 학원수업에 밀려나 부족한 잠을 벌충하는 시간이 돼버렸으며, 적잖은 예산을 들여 교실마다 설치한 프로젝션 TV는 스마트폰에 밀려 먼지 수북이 쌓인 '액세서리'로 전락했다.

고백하건대,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에 더 이상 학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학교교육이 무력화되면서 한계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의 그 어떤 교육행위도 도무지 먹히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지만, 거칠게 말해서, 생활태도든 공부든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건 학교가 아닌 교문 밖에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달라진 아이들의 일상이 그 단적인 예다.

수업시간 한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 걸렸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지니게 되면서 이런 일이야 낯설지도 않지만 뒤처리가 무척 번거롭다. 학교생활규정 상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압수당하면 담임교사가 한 달 동안 보관 후 되돌려주게 돼 있지만, 원칙대로 규정을 따르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학부모들의 반환 요구 때문이다.

압수당한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주의시킬 테니 돌려달라며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하나같이 스마트폰이 없으면 종일 아이와 연락할 방법이 없다며 통사정이다. 똑같은 잘못이 두 번 세 번 반복돼도 학부모의 요구와 이유는 똑같다. 자녀가 스마트폰을 전화기가 아닌 주로 게임을 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스마트폰으로 교사의 수업내용을 복습하기 위해 녹음하거나 사전처럼 단어를 찾고 관련 지식을 검색하는 경우는 그나마 이해해줄 만한 구석이라도 있다. 수업시간 스마트폰 사용을 허락할라치면 모두 눈치껏 게임에만 열중할 뿐,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습용으로 사용하는 아이는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감시하거나 적발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자칫 수업 분위기를 흐트러뜨릴 우려가 크다.

많은 아이들이 책과 가방은 놓고 다닐지언정 스마트폰이 손에서 떨어지는 법은 없다. 등하교하는 버스 안에서도,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갈 때도, 급식소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심지어 운동장에 공을 차러 갈 때조차 손에 들고 가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잠시 꺼두라고 말하면, "스마트폰은 제 '분신'과도 같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스마트폰이 손에 없으면 왠지 불안하다고 하고, 하트를 친구들끼리 주고받으며 게임에 몰입하다보면 아무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독에 가까운 상태다. 이런 아이들이 열에 서넛은 될 거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게임을 하려면 컴퓨터가 있는 집이나 피시방을 가야만 했지만, 이젠 스마트폰 덕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게 됐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에게 '스마트 교육', 괜찮을까요?

요구하신 대로 되돌려줄 테니 자녀가 더 이상 스마트폰에 빠져들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했더니, 되레 학교에서 철저히 교육시켜 달라며 책임을 떠넘긴다. 숫제 스마트폰 사용에 관한 교육이 되지 않아 자녀가 중독이 됐다는 투다. 스마트폰 사용으로 황폐해진 교실 풍경을 알만한 교과부와 교육청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짐짓 태연하기만 하다.

외려 한두 해 전부터 스마트폰 등 하드웨어에 전자책 등의 콘텐츠를 결합시켜 교실수업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며 생뚱맞게 '스마트 교육' 운운하는 실정이다. 스마트폰 사용에 중독된 아이들이 시나브로 늘어나면서 학교수업이 산만해지고 생활지도마저 어려워지는 현실을 토로하면, 외려 '교통사고 잦다고 자동차를 없애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이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보고 배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가 담당했던 부분을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로서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자극적인 게임의 유혹을 떨칠 수 있도록 신나는 수업을 하고 감동적인 교육을 보여주고 싶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시작하기도 전부터 시큰둥하다.

적어도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아 요즘 아이들의 생활태도가 엉망이라는 말은 틀렸다. 학교교육에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남우세스러울 정도로, 학교는 '손바닥 안의 세상'에 이미 무릎을 꿇었다. 이러다간 교과수업은 물론,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해온 폭력예방교육도, 금연교육도, 성교육조차도 교육용 스마트폰 '앱'을 서둘러 마련해야할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다시 대선 시즌이 왔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메뉴'가 교육 관련 공약이다. 각 후보들이 쏟아내고 있는 공약은 늘 그래왔듯 지극히 원론적이고 뜬구름 잡는 얘기뿐이다. 교육 현실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공감이 안 되고 그러다 보니 내놓는 대책이란 게 구체적이지 못하고 실효성이 떨어지기 일쑤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교육 대책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건 '디테일'이다.

현 정부 들어 교육개혁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것들은 폼도 나고 명분도 그럴 듯하게 내세웠으나 하나같이 학교교육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몰고 갔다. 고교서열화로 귀결된 수월성 교육과 경쟁 교육도, 교육과정의 파행을 몰고 온 집중이수제도, 또, 앞서 언급한 스마트 교육도 그 취지야 어떻든 학교교육을 왜곡시키고 있다.

이렇듯 흔들리는 학교교육을 바로잡아줄 대선 후보가 선뜻 눈에 띄지 않는다. 주변에선 교육 공약을 현직 교사가 아닌 대학 교수나 행정 관료들에게 맡기다 보니 자꾸만 엉뚱한 대책만 나오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하긴 각 대선 캠프에 학교교육을 잘 아는 교사 출신이 과연 몇이나 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학생부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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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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