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가 교사들에게 헌신을 요구한다고요?

[주장] 혁신학굥 대한 세 가지 오해

등록 2012.12.10 15:16수정 2012.12.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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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혁신학교는 교사들에게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한다?
둘. 혁신학교는 특혜를 받는 학교다?
셋. 혁신학교는 전교조의 해방구다?

혁신학교는 연구학교나 시범학교처럼 특별한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학교가 아니다. 보여주기식 사업을 벌이지도 않을 뿐더러, 교육청이 교육과정 운영 등에서 학교의 자율과 자치를 보장하고 지원해 주는 학교다.

일반 학교에는 교육과정(교과 및 수업 시수) 운영의 자율성이 거의 인정되지 않는데 반해, 자율학교로 지정되면 중학교의 경우 대략 20% 범위 내에서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이 부여된다. 일반 학교에는 정규 교육과정 외에도 학교의 교육활동 대부분을 교과부나 교육청이 기획해 업무처리 지침과 함께 하달한다. 학교로 배분되는 예산 역시 교과부와 교육청이 일일이 용도를 지정해 편성한다. 학교와 교사들은 지침대로 사업을 집행하고 실적을 보고해야 한다.

교과부가 정해 준 교과(내용)를 역시 정해진 수업 시수 내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전달하고, 평가 역시 교과부가 선도하는 학업성취도평가라는 일제고사 방식을 따른다(시·도교육청 차원의 연합학력고사도 연 2회 실시된다). 비교과 활동도 교과부의 지침을 벗어날 수 없다. 영재교육·생활지도·진로지도·상담·수련활동 심지어 방과후학교마저 교육청의 지침을 벗어날 수 없다. 자율성이 극도로 제약되다 보니 교육청이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초학력 부진 학생 지도를 포기한 학교도 있었다.

이렇게 학교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아서 교사의 전문성이 발현될 기회가 없다 보니 교사들은 마치 하급 관료처럼 행동한다. 형식적인 업무처리·권한에 대한 집착이 바로 그것이다. 교과 교육활동은 이미 수업과 평가 방법이 짜여 있는 대로 시행되고, 비교과활동 역시 교육청이 시달한 지침대로 형식적으로 이뤄진다. 교사들은 자신이 담임을 맡은 교실 또는 자신이 담당한 교과 교실 안에 틀어박혀 동료 교사들과 소통하거나 협력하려 하지 않으며, 수업 외에는 모든 일을 잡무처럼 인식한다. 교육전문가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으니 생활지도마저 불가능해진다. 체벌이나 징계권 강화만으로 교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교사들은 교실붕괴·학교폭력 앞에 무기력하다.

혁신학교는 교사들을 신명나게 만든다

혁신학교에서는 교사들에게 특별한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교육청이 잡다한 교육사업을 하달한다거나 목적사업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니 오히려 잡무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강요받지 않으니 교사들이 자신만의 수업과 평가 방법을 채택할 수 있으며, 자신의 교육적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신의 교육적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자연히 동료교사들과 소통하고 협력하게 된다. 교사의 교육적 전문성이 발현되면서 교육적 권위가 살아나게 되고 학생·학부모들로부터도 자연히 존경받게 된다.

따라서 혁신학교는 교사들을 신명나게 만드는 학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산점이나 별다른 인센티브를 부여하지 않아도 혁신학교 근무를 원하는 교사들이 줄을 서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시범학교나 연구학교처럼 매년 실적보고서를 쓰고 단기간에 성과를 내도록 강요받지도 않기 때문에 혁신학교 지정과 관련해 아무런 추가적 잡무가 더해지지 않는다.

혁신학교에는 일반 학교에 비해 추가적인 특혜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다만 잡다한 사업과 꼬리표가 붙은 예산 대신 자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1억 원 내외의 운영비가 주어진다. 예산이 통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학교 실정에 맞는 사업에 우선순위를 정해 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 이러니 학교운영위원회도 살아난다.

서울시 교육청 산하 1300여 개의 학교 중에 혁신학교는 초·중학교와 일반계 고등학교(고등학교 317개교 중 특성화고는 73개교, 특목고는 19개교, 자율고는 45개교)만을 대상으로 지정되는데 2012년 말 현재 현재 지정받은 학교는 61개에 불과하다. 혁신학교 지정을 신청주의에 입각해 확대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강제 없이 교사들 과반수가 혁신학교 지정에 동의할 경우에만 지정이 이뤄진다.

혁신학교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인센티브도 없는데 업무량만 많아지는 것 아닌가'라는 일선 교사들의 오해였다. 사실 교육청 관료들부터 그렇게 오해하기도 했다. 혁신학교 교사들에게도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든가, 혁신학교 지정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심지어 특별한 프로그램을 시행하도록 유형을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장애는 연구·시범학교로 지정된 학교가 너무 많고, 이들 학교 교사들은 이미 가산점 등의 인센티브를 받고 있으므로 혁신학교 지정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복지특별지원학교, 각종 창의경영학교, 각종 과학·예술 중점학교에도 이미 수 억원씩의 지원금과 가산점이 주어지고 있으므로 역시 교사들이 혁신학교에 관심이 없었다.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교사들은 학생들의 입시준비를 관리해 주는 데 바빠 여력이 없고, 방과후 보충수업에 몰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혁신학교가 교사들을 신명나게 만들고 교사들이 신명나게 일하는 만큼 학생과 학부모들이 행복해지는 학교라는 데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혁신학교 중 일부 학교에 전교조 출신 교사의 비율이 많다든가 하는 이유로 혁신학교를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혁신학교의 확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실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일부 관료집단 밖에 없다. 즉 학교에 교육과정과 예산 운영의 자율성을 부여하게 되면 기왕에 누려 온 관료들의 기득권이 상실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특히 각 교과관련 사업 예산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고 각 교과를 중심으로 형성돼 온 기득권 관료들의 물적 기반이 와해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교육행정을 혁신해 모든 학교에 자율과 자치를 보장해야

혁신학교는 연구·시범학교처럼 일정한 성과가 나타나는 것을 기다려 그 성과 모델을 확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건이 허용하는 한 전면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즉 재원만 마련된다면 신청주의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교사들 과반수가 지정을 원하는 경우에 바로 혁신학교 지정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교과부·교육청의 관료들부터 권한을 내려놔야 한다. 연구학교·시범학교·각종 중점학교 지정 권한, 각종 교육활동 기획 및 예산배정 권한을 중심으로 짜여진 교육행정부터 혁신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학교가 자율과 자치가 보장되는 혁신학교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학교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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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교육청소년위원회) 변호사 2010. 9. ~ 2013. 1.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2013. 2. 2015. 2. 서울시 감사관 현 (사)시민자치감사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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