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사물놀이를? 부끄러워졌습니다

[버스킹 여행기⑥] 나이 지긋한 '한마당패'와의 만남에서 배우다

등록 2013.02.14 15:08수정 2013.02.1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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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사물놀이에 대해서 혹은 국악 동아리에 대해서 좋은 추억은 많지 않다. 방학마다 계속되는 연습 일정 때문에 포기하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매번 준비하는 공연에 대한 부담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동아리 신입생 때, 쉬는 시간마다 동기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다.

"언제 탈퇴하는 게 좋을까?"
"이번 공연만 끝나면 탈퇴하자."
"아, 선배들 눈치 너무 보이는데…"
   
파릇파릇 동아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야 할 신입생이 탈퇴할 타이밍(?)만 노리고 있으니 그들에게 열정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여전히 신입생들에게 "동아리 요즘 어때?"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것은 그저 멋쩍은 웃음이다. 1학년이었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깨 너머 배운 사물놀이, 그 열정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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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를 배우는 시간 ⓒ 고상훈


그럼 우리 동아리 이야기를 옆에 접어두고 호주 이야기로 돌아오자. 사실, 멜버른에서는 우리가 버스킹(거리 공연) 이외에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멜버른에 정착해 사시는 한국 교민들께서 우리 국악을 알리기 위해 힘을 합쳐 만드신 '한마당패'를 도우는 일이었다.

이 소리패의 구성원들은 모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나의 부모님 세대도 여기에서는 막내 격이었다. 규모는 또 어찌나 작은지 다섯 명이 전부였다. 작은 규모에 무시할 수 없는 나이까지. 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인가? 또, 악기는 한국에서 악기 값만큼 운송비를 줘가면서 호주에 들여온 귀한 것이었고 연습실은 시청에 부탁 부탁을 해서 얻은 소중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소리패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사물놀이를 배울 곳이 없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악기를 구매하고 연습실을 빌릴 수는 있었지만 정작 사물놀이를 배우기엔 너무 멀리에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 전문적인 강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처럼 육지로 전수를 받으러 다니는 것도 아니니 그럴 만도 했다. 그동안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어깨 너머 배운 사물놀이가 전부였다. 꽹과리 같은 경우에는 인터넷으로 배우기엔 어려움이 많아 사두고선 연습실 한 구석에 박아놓았다니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짐작이 간다.

장구와 북을 다룬 것이 지금으로부터 불과 일 년 전이 처음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하지 않았던 국악을 여기 멜버른에서 시작한 격이었다. 때문에, 기초적인 것들에 대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셨다. 스스로 배우기도 어려울뿐더러 배우더라도 알고 보니 잘못 배운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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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놀이는 이렇게 치는 거예요 ⓒ 고상훈


우리가 하는 일은 이분들에게 짬이 날 때마다 사물놀이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여기 분들에게 기본적인 사항들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앉는 방법이나 채를 놀리는 것 같은. 매일같이 한마당패 연습실에서 혹은 공연장에서 시간을 쪼개가며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주었다.

여섯시에 연습을 시작하면 대게 열시나 열한시쯤 끝이 났다. 네다섯 시간이니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양반 다리에 다리가 저릴 만도 하고 악기를 치느라 허리나 팔도 아플 만도 한데 멈추질 않는다. 우리가 멜버른에 머무는 며칠 동안 한결 같다. 오히려 열정이 계속 불타는 것 같았다. 열정없이 탈퇴만을 노리던 내가 이들에게 열정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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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깨 아파라 ⓒ 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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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붙어다니며 배우시던 채순이모 ⓒ 고상훈


사실, 오랜 시간동안 저만의 방식으로 연습해 오면서 습관이 되어버린 것들을 지적받고 고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나이가 드신 분들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한마당패의 회원 분들, 손자뻘 되는 우리들의 지적을 듣고도 하나같이 불편한 기색도 없이 열심이었다. 게으름 피우는 동아리 후배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다.

덕분에 짧은 시간임에도 많은 부분들이 고쳐지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이번에는 꽹과리를 기필코 배우겠다며 나와 매일같이 붙어 다니시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연습하시던 한 분은 이틀 만에 기본 가락을 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보통 우리 동아리에서는 한 달 정도 걸리는 일이다.)

열정과 마음이 만드는 아름다운 공연

한마당패는 설에 큰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했다. 설을 맞아서 우리 문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국악으로 한인들의 마음을 모으는 귀중한 행사였다. 큰 공연이니 만큼 떨리시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한국을 대표해서 공연장에 서기에 부족한 실력이라는 생각에 많은 걱정이 앞서 계셨다. 우리가 나서서 돕고 싶었지만 시간은 너무나 야속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계속 우리를 재촉하고 있었다.

"진짜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솔직히 우리가 공연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
"아니에요, 정말 대단하신 거예요. 아마 저희가 이 상황이었으면 벌써 포기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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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은 이렇게 ⓒ 고상훈


그래, 아마 나라면 일찍 포기했을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력이 공연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공연을 대하는 열정과 마음이 공연을 만드는 것일까? 나는 뒤에 무게 추를 두고 싶었다. 이분들의 연습 과정과 열정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 동아리의 공연이 더 화려할 수는 있지만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한마당패를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은 있어도 평가할 자격은 없었다.

3년간의 동아리 생활을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1학년 때는 "언제 그만두지?", 2학년·3학년 때는 "왜 1학년 때 못 그만뒀지?" 그래, 나에겐 한마당패처럼 아름다운 열정이 있지도 않았다. 후회만 한가득이다. 나에게는 이분들을 가르칠 능력만 있지, 평가할 자격은 없다. - 1월 8일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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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 고상훈


덧붙이는 글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사랏골 소리사위 26기 상훈, 행문, 동호, 하영, 진실 다섯 명이 사물(꽹과리, 징, 장구, 북)을 들고 호주로 떠난 버스킹 여행 이야기입니다.
#버스킹 #길거리 공연 #사물놀이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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