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가대교에 비하면 진주의료원 적자는 애교 수준

[서평]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 김창엽의 <건강할 권리>

등록 2013.07.11 14:58수정 2013.07.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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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의 <건강할 권리> 의학은 사회과학이고, 정치는 넓은 의미에서 의학이다. ⓒ 후마니타스

사회 의학의 아버지로 부르는 독일의 병리학자이자 정치가인 루돌프 피르호(1821-1902)는 발진티푸스 유행을 막기 위해서는 소득재분배와 토지개혁을 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세균이 퍼트리는 병조차 사회적 요인을 고치지 않고는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인식이 이미 100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김창엽 소장이 쓴 책 <건강할 권리>는 바로 건강의 사회적 맥락,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해 다각도로 펼쳐 보인다. 이 책이 기존의 건강 관련 책과 다른 점은 건강 문제가 결코 개인적인 '관리' 문제나 생물학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이다.


'개인화'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노골적 경향'인데, 이에 대항하여 저자는 정말 철저하고 일관되게 건강의 '사회성'을 밀고 나간다. 사회성은 곧 '공공성'이며, 공공성은 또한 '정치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저자는 "건강의 정치화는 결코 피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질병은 사회적 요인으로 발생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이미 지나간 세월의 유물인가, 아니면 현재 진행형 현상인가. 저자는 '가난이 병'이라는 전제 아래 2012년 국무총리실에서 발표한 빈곤층은 340만 명이고, 이른바 차상위 계층을 포함하면 570만 명에 이르며, 이는 열 사람에 한 명 꼴로 가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이 결코 멀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이 가난을 건강을 해치는 '근본 원인'으로 보아야 하고, 건강과 보건 의료의 공공성은 이런 경제적 약자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가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충분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수준의 지원'을 시행하여, 모든 빈곤 인구로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기존의 본인 부담을 없애나가야 한다는 것이 보건 의료의 공공성이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대해 혹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으며, 빈곤층을 일하게 해야지 돈을 지원하면 공짜 심리가 생긴다며 제동을 거는 목소리에 대해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인도적이고 정의에 부합하는 안전망의 원리는 비록 열 사람이 낭비를 한다한들, 꼭 필요한 한 사람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본문 36쪽)

경제적 불평등으로 해서 오는 건강문제 중에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노동이다. '기울어진' 노동의 권력관계로 인해 위협당하는 건강문제는 참으로 흔한 우리 사회의 모습들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은 저임금을, 저임금은 낮은 생활비를, 낮은 생활비는 건강에 나쁜 음식과 주거환경을 가져오고, 이는 결국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환경 재해, 열악한 생활환경 그리고 경제 위기는 유독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요인이 되고, 도시와 농촌간의 지역 격차, 차별받는 여성과 어린이, 결혼이주여성 등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작용하는 광범위한 건강 불평등 구조에 희생되고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질병과 장애 그리고 자살과 죽음들이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문제의식 자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곧 건강을 개인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적 결정 요인'이 더 중요하고 앞선다는 인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의료보건의 공공성 수준과 진주의료원 폐업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우리나라의 보건 의료에 작동하는 공공성의 수준은 형편없다고 말한다. 한국의 보건 의료는 공급면에서는 완전 시장에 가까워서 사회적 통제나 공공성이 전혀 힘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는 거의 전적으로 민간 부문에 의존하는 한국 의료의 기본 구조 때문이라는 것.

예를 들면, 2013년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한국의 공공 의료 비중은 의료 기관 수 기준으로 5.8%, 병상 수 기준으로 10%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예외적이고 기형적'이다. 병상 수만 놓고 볼 때, 영국은 100%, 호주는 69.5%, 프랑스 62.5%, 독일 40.6%이며, 민간 부문이 우세하기로 유명한 일본은 26.4%, 미국은 24.9%로, 한국 병원의 병상엔 정부의 공적인 손길이 거의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정도이니 대형 병원이 점점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고, 의료는 양극화가 심화되어 민영 영리 병원이 설립되고, 103년 전통의 진주의료원 같은 공공의료기관이 적자를 이유로 폐업되기도 한다.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의료민주화'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진주의료원 폐업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신랄하다.

"경남 거제도와 부산의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를 만들기 위해 효율성을 명목으로 민간 자본을 유치했다. 그러나 2010년 완공된 후의 실상은 공익은 고사하고 효율과도 거리가 멀다. 부산시와 경상남도가 민간 업체에 보전해 준 돈이 2012년에만 469억 원이란다. 이대로 가면 물가 상승분까지 고려해 앞으로 20년 간 6조 원을 물어줘야 할 형편이다. 놀랍게도 경상남도 안에 비슷한 다리가 또 있다. 마창대교 역시 매년 100억 원 가량의 적자를 도 정부가 메워준다.

이 정도면 진주의료원의 적자는 그야말로 애교 수준이다. 도 살림이 어렵다면서도 다리에 쏟아 붓는 혈세는 상상을 초월할 만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짐짓 도 정부의 반격은 공공 병원을 향한다. 의료원을 없애서 적자를 줄이겠다는 신파 정치의 논리는 공공이 공공을 공격하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본문 116쪽)

'공공이 공공을 공격하는 자해 행위'는 공공부문에 부정적인 사회 여론을 조성하여, 그 뒤에 숨어있는 민영화와 의료의 시장화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결국 규제완화, 민영화(사영화), 영리병원, 효율성과 같은 신자유주의 의료 정책을 넘어 '건강권'을 우리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인권'의 하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생각이고 신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 의료와 국민의 건강은 국가가 책임져야지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며, 국가의 정책은 정치적 선택의 결과이므로 정치성을 띄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1989년 체제'를 넘어서는 보건 의료 건강 정책

저자는 '1989년 체제'란 말을 쓴다. 이 말은 1989년에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시작되어 25년간 지속되어온 한국의 건강정책과 의료정책의 패러다임을 말한다. 저자는 왜 '1989년 체제'를 넘어서자 했을까. 그것은 건강보험의 순기능도 있지만 의료나 건강보험이 '건강'이라는 인간 사회의 목표를 감당하지 못함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암이나 심장병, 치매의 치료비는 줄일 수 있지만, 애초에 병을 피하게 함으로써 한 사회의 질병 부담을 줄일 수는 없을까. 자살과 교통사고, 산재 사망의 원인을 줄이는 데에 의료보험은 전적으로 무력하지 않을까. 영양·주거·환경·빈곤·노동·소득 등의 사회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질병에 건강보험이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제는 현재 의료 정책을 넘어 국가 건강 정책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재 의료 정책을 그대로 두는 한, 삼성전자의 백혈병과 쌍용자동차의 자살 그리고 쪽방 노인의 고혈압과 심장병, 고독사를 막을 도리가 없다.

김창엽의 <건강할 권리>는 바로 이런 문제에 깊이 천착해 들어가면서 건강 정의, 공공성, 민주적 참여, 그리고 정치와 노동을 연결 지어 다양한 해법을 찾아나가는 책이다. 우리는 저자가 제시하는 진단과 해법에 더욱 안심한다. 그것은 건강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하는 전망과 실천 속에서 이루어짐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문제를 논의할 때 흔히 비껴가기 일쑤인 노동과 노동자 문제를 직접 거론하면서, 노동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이므로, 노동과 건강을 떼놓을 수 없다는 관점은 이 책을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건강이 이기적 소비와 탐욕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과 사회연대 속에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믿음은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시야를 넓게 확장시켜주고, 우리 사는 세상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열어나가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덧붙이는 글 <건강할 권리>, 김창엽, 후마니타스, 2013년 6월 17일, 1만 5천 원

건강할 권리

김창엽 지음,
후마니타스, 2013


#건강의 사회성 #공공성 #건강권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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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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