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지금 중요한 건 '국방 안보'가 아닙니다

[서평] 김창엽 <건강할 권리>

등록 2016.09.23 12:35수정 2016.09.2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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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표지 김창엽의 〈건강할 권리〉 ⓒ 후마니타스

최근에 지인 둘이 떠났습니다. 한 분은 지방의 대형교회 부목사였고, 다른 분은 중소형 교회 부목사였죠. 한 분은 40대 초반, 다른 한 분은 갓 50을 넘긴 분이었죠. 한 분은 얼굴 코 주위의 뼈에 생긴 암세포가 전이된 경우로, 다른 한 분은 대장암 말기로 인해 별세했습니다.

둘 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세상을 떠났으니, 그 안타까움을 어찌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분들의 때 이른 죽음이 노동환경과 뗄 수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부목사라 시간에도 쫓기며 살아야 했고, 여러 긴장감이나 스트레스에 더 쉽게 노출되고, 질병에 대한 예방조차도 신경 쓸 겨를조차 더 많지 않다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비단 교회와 같은 직업군에 속한 분들만 그런 게 아닐 것입니다. 일반 직장인들도 결코 다르지 않겠죠. 공무원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노동환경이나 처우개선에 열악한 조건에서 일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는 암과 같은 질병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정규직→저임금→낮은 생활비→건강에 나쁜 음식과 주거 빈곤→질병'이 고리를 잇는 것과 같은 식이다. 흔히 이것을 사회적 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경로'라고 표현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같은 사회적 요인인 것 같지만 그 위치가 다르고 그 사이에도 연결 고리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난과 노동의 권력의 좀 더 상위(근본)에 있는 것이라면 먹는 것이나 주거 형편은 좀 더 하위(현상)에 있는 요인이다."

김창엽의 <건강할 권리>(후마니타스)에 나오는 이야기이죠. 각자의 소득이나 교육, 작업환경이나 노동조건 등이 건강에 불평등을 가져오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입니다. 제주도 감귤 가공 공장에서 가스에 질식해 숨진 두 명의 사고도 그렇고, 서울의 한 구청에서 일하던 청원경찰이 당직 근무 후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건도 결코 노동환경도 무관치 않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한 개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식과 자손에게까지 대물림된다는 것이죠. 빈익빈부익부로 경제력이 나뉘듯이, 질병과 사망조차도 적극적인 대물림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부모 밑에서 금수저나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차이에 따라 경제력이 나뉘듯이, 질병과 죽음도 이제는 평생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또 다른 짐이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정부는 국민의 공공복지를 위해 '공적의료 서비스'를 더욱 활성화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본인경감대상자에게 시행하는 의료급여 뿐만 아니라, 시군 단위의 의료원들을 더욱더 활성화시키는 것 말이죠. 그래야 돈 없고 가난한 이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이, 저가의 비용으로 고효율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공식적으로는 공공병원이라 하더라도 사실상 공공이라 할 수 없는 병원이 많다. 극소수의 국립병원을 빼고는 정부가 운영 주체가 아닌데다가, 별도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도 거의 없다. 이름만 공공 병원이지 민간 병원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국립대학 병원을 '공공'의료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106쪽)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할 일인데,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흘러간다는 뜻입니다. 자유시장에 가까운 공급 구조 때문에 보건의료 서비스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죠. 고가의 의료 장비가 병원에서 상품화돼 판매되고 있으니, 그만큼의 투자를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해야 하고, 그래서 병원마다 경쟁이요, 환자는 상품으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뜻입니다. 대형병원에서는 의사 1인당 환자 3분의 진찰을 강제한다는 소문도 있다는데, 뜬소문만은 아니겠죠.

그런 현상들은 점점 더 의료 양극화와 대형병원의 독점을 부채질 하는 꼴이 되고 말겠죠. 그렇게 되면 지방의 작은 시·도립 의료원들은 재정적자 때문에 더욱더 허덕일테고 말이죠. 진주의료원만 사태만 봐도 그렇다고 합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부채가 279억 원이고, 매년 40억~60억 원의 적자를 봤다고 하니, 저소득층의 진료보다는 경제와 효율적인 면을 더 내다봐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겠죠.

하지만 그런 열악한 살림살이를 하던 시도 정작 다리에 쏟아 붓는 혈세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하죠. 부산시와 경상남도가 '가거대교' 민간 업체에 보전해 준 돈이 2012년에만 469억 원이고, 경상남도 안에 있는 '마창대교'도 매년 1백 원 가량의 적자를 도 정부가 메운다고 하죠. 이런 마당인데 어찌 지방 의료원의 서비스 질을 높이거나, 그 의료원을 살릴 방도를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이쯤 되면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이 돈이 되고, 무엇이 이득이 될 것인가 보다, 무엇이 사람을 생각하고, 나라를 세울 길인지 말이죠. 괜히 엉뚱한 데 돈을 쏟아 붓고, 나중에서야 제 발에 등을 찍었다며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 노후의 가난, 끝 모를 학벌 경쟁, 기후변화와 재해, 가계 파탄을 부르는 치료비, 허술한 응급 의료 체계가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 북한과의 대치 상태에서 오는 잠재적 위협이 아니라 일상이 곧 전쟁과도 같은 위험이다."(275쪽)

정말로 맞는 말입니다. 지금의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숨이 막힐 지경 아닙니까? 다들 먹고 살 걱정 때문에 고시원에 죽치고 살고 있고, 30대가 되어서도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마당이고, 병원 진료비와 치료비조차 부모에게 의탁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도 현 정부는 어떻습니까? 박근혜 정부는 연일 대북 강경정책 노선에 열을 품어내고 있죠. 전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명분에서 하는 일이라 감히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먼저 생각해야 할 게 있지 않겠습니까? 국민들의 생활과 건강, 다시 말해 살 권리 말입니다.

북핵문제를 언급하고 사드배치에 혈안이 돼 있지만, 사실 우리가 자극하거나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들도 그런 대로 소리치다가 제 풀에 꺾이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현 정부의 모습은 괜한 벌집을 쑤셔서 난장판을 만들려는 형국과 똑같아 보이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국방안보'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제는 '국민안보'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이겠습니까? 국민이 없다면 어찌 국방이 존재할 수 있겠으며, 백성이 없다면 어찌 나라가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만큼 국민의 건강과 살 권리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가 국방안보에 돈을 펑펑 쏟아 붓는 게 과연 올바르냐는 뜻이겠죠. 그러니 누가 결혼을 하려고 하겠으며, 누가 아이를 낳아 키우며 나라에 맡길 수 있겠냐는 것이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그런 양극화된 공공의료서비스를 개선시키는 게 더욱더 급한 데도, 현 정부는 영영 딴전만 피우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타들어가는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죠.

제발 다음 정부에서는, 백성이 살아갈 권리, 백성이 건강할 권리를 나라가 책임져줄 수 있는 토대라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도 그것입니다. 이 책에는 '군산복합체'의 비리처럼 '의산복합체'의 비리를 바르게 잡을 방도라든지, 국민의 건강할 권리를 바로 잡을 길들을 밝혀주고 있으니, 모두들 한 번 읽어봤으면 합니다.

건강할 권리

김창엽 지음,
후마니타스, 2013


# 〈건강할 권리〉 #김창엽 #국방 안보 #국민안보 #노동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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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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