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치기' 원숭이 때문에 목숨 걸고 절벽 아래로...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⑥] 세계 3대 폭포 첫 번째, 빅토리아 폭포

등록 2013.07.13 19:53수정 2013.08.0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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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를 위해 사표를 던지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표를 부추긴 최고의 명언은 신입사원 교육 때 한 임원이 했던 말이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라." 약 4년 다닌 회사에 사표를 냈다. 2012년 7월부터 올 4월까지 200일간 5대륙 22개국을 여행했다. 그 여행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본다. - 기자 말

카사네에서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달려 보츠와나의 국경인 카증굴라(Kazungula)에 도착 했을 때가 오전 11시께. 이미 배낭을 메고 국경을 넘은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보츠와나의 이미그레이션에 덩그러니 내려다 주고 떠난 택시를 멍하니 바라보다 출국심사를 받고 나니 무국경 지대가 2km 정도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아프리카의 햇살 아래 무거운 배낭을 메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더니 갑자기 강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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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와 잠비아 사이의 국경 ⓒ 김동주


"너, 잠비아로 가니?"

사실 자연스럽게 말을 걸면서 다가오던 그 흑인이 선한 의도가 아니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행동이 불편한 상황에서 뿌리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강 건너의 잠비아로 가는 페리를 타고 잠비아 입국심사를 받고 다시 숙소로 향하는 택시를 탈 때까지 꿋꿋하게 따라와서 말을 걸던 그는 결국 3배나 비싼 환율로 나의 달러를 잠비아 돈으로 바꿔주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마을을 좌우로 가르는 중심 도로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길도 나있지 않은 시골동네인 리빙스톤(LivingStone)은 좀 더 아프리카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겉으로 보면 한없이 한적한 시골마을처럼 보여서 다음 날 빅토리아 폭포 공원에 들어설 때까지도 이 마을 너머 어딘가에 그토록 거대한 폭포가 숨겨져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매표소를 지나 공원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흡사 천둥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과수, 나이아가라와 더불어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는 이곳을 발견한 영국의 탐험가에 의해 그들의 여왕 이름이 붙여졌지만 실상 원주민들은 '연기 나는 천둥'이라는 뜻의 '모시-오아-툰야'라고 부른다. 멀리서는 치솟는 물보라만 보이고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이 들리기에 붙여진 이름이리라. 그 천둥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마치 비라도 오는 것처럼 물보라가 온몸을 적실 즈음에 나는 천둥의 정체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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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빅토리아 폭포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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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빅토리아 폭포 ⓒ 김동주


아프리카 남부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을 가로지르며 1년 내내 분당 수천만 리터의 물을 쏟아내는 빅토리아 폭포는 낙차 108m로 길이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다. 도대체 이 뜨거운 태양 아래 어디에서 저런 급류가 흘러나오는지 도저히 알 수 없지만 막상 빅토리아 폭포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규모에 압도되어 다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비수기라 관광객이 거의 없는 넓은 공원에서 홀로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몸이 오싹해질 정도.


빅토리아 폭포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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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와 짐바브웨 국경을 잇는 아찔한 다리 ⓒ 김동주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산책로를 따라 깊게 들어서니 폭포의 왼쪽 너머로 그려놓은 듯한 아찔한 다리가 펼쳐진다. 바로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을 있는 다리인데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일까. 다리의 정중앙에서는 번지점프가 한참 진행되고 있고 그 아래를 흐르는 잠베지 강에서는 라프팅이 한창이다. 수 년 전 뉴질랜드에서 57m 높이에서 번지점프를 한 적이 있지만 무려 110m에 달하는 빅토리아 폭포 번지점프는 엄두도 나지 않아 얼른 눈을 돌렸다.

그런데 마침내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보았음을 실감하고 손발이 찌릿찌릿 할 때쯤 사고가 터졌다. 다리에서 시선을 돌리고 되돌아 나오고 있을 때쯤 문득 등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났다. 이게 뭐지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보다 빠르게 왼쪽 어깨에 무언가 충격이 느껴졌고 순식간에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이 끈이 끊어짐과 동시에 뜯겨나갔다. 내 가방을 낚아 챈 것은 거대한 원숭이였고 녀석은 그렇게 내 가방을 입에 물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의 나무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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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원숭이 ⓒ 김동주


원숭이한테 가방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가방 안에 든 카메라와 선글라스와 각종 물건을 생각하니 도저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손에 돌을 집어 들고 절벽으로 뛰어들었고 당황한 원숭이는 내 돌팔매질을 피하다 입에 물고 있던 가방을 수십 미터 아래 절벽 숲으로 떨어트렸다.

다행히 끈이 끊어진 가방 속에서 선글라스와 카메라는 찾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 물건들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절벽 아래 우거진 나무들 곳곳에 가득한 원숭이들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밀려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나는 끊어진 가방 끈을 어깨에 교차로 동여매고 목숨을 걸고 절벽 길을 다시 기어올랐다.

한 시간여에 거쳐 다시 절벽을 기어올라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며 공원을 빠져나가려는데 이번에는 어디선가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웅성대는 여행자들 사이로 한 여자 여행객이 발을 동동 구르며 가리키고 있는 나무 꼭대기에는 역시나 원숭이가 한 손에 가방을 들고 여유 있게 걸터앉아 있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가방을 뒤적거려 먹을 것을 찾은 녀석이 한 손에 쿠키를 들고 먹나 싶더니 어느새 다른 손에 그 여행객의 여권을 들고 까딱까딱 흔드는 게 아닌가. 나는 아프리카라는 혹성에 불시착했다.

아릅답고 위험한 두 얼굴, 리빙스톤 아일랜드

그날 저녁 숙소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그 말도 안 되는 모험담을 얘기하다가 매우 귀중한 풍경을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비아 리빙스톤 쪽의 빅토리아 폭포에는 '리빙스톤 아일랜드'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분당 5억 리터의 물을 쏟아내는 폭포의 꼭대기를 이르는 말인데, 그 리빙스톤 아일랜드에서 수심이 얕고 수풀 등에 걸러져 물살이 강하지 않은 곳을 골라 지나다 보면 마침내 절벽을 등지고 있는 천연 수영장을 만날 수 있단다.

'데빌스 풀(Devil's pool)'이라고 불리는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 많은 여행객들은 여행사들에게 제법 큰 돈을 지불하고 모험을 떠난다. 사실 이 거대한 폭포의 꼭대기에 선다는 것만으로 아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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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위, 리빙스톤 아일랜드의 모습 ⓒ 김동주


결국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빅토리아 폭포를 찾았다. 이번에는 당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카메라만 집어들고 폭포의 꼭대기 쪽을 향해 걸었는데 수풀을 헤치고 나니 그곳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수평선처럼 넓게 펼쳐진 평지에 군데군데 박혀 있는 돌들 사이로 빠르게 흐르는 물살. 그리고 그 틈을 헤쳐 어딘가에 있을 리빙스톤 아일랜드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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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이면 이토록 선명한 무지개를 볼 수 있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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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앉아서 ⓒ 김동주


물길을 헤매다 절벽의 끝에 닿으면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듯한 느낌과 함께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말이 없다. 이 엄청난 폭포의 굉음에도 묻히지 않을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 심장 고동만 있을 뿐이다. 절벽의 끝에 살짝 걸터앉으니 삶의 터전을 떠나온 여행자에겐 덧없는 오랜 기억들이 향수가 되어 머리 속을 스쳐지나 가고, 그것이 지나간 자리를 맹렬한 파도가 채운다.

아득해져 오는 정신을 가다듬고 한참을 더 물길을 헤집고 나니 강물이 잦아들고 커다란 바위들이 가득한 곳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바위 너머 경사진 곳 아래가 바로 악마의 유혹에 빠진 여행자를 맞이하는 데빌스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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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을 등지고 있는 천연 수영장, 데빌스 풀(Devil's Pool) ⓒ 김동주


그냥 보기에는 평범하게 계곡 웅덩이 같지만 그 너머는 발 디딜 곳이 없는 낭떠러지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알기 위해선, 높은 곳일수록 좋다. 100m 높이 절벽에 매달려 있는 천연 수영장에 서있는 그 순간, 손 끝이 찌릿해져오는 그 느낌이 좋았다. 약간의 망설임을 떨쳐내고 마치 악마에 홀린 사람처럼 그 물에 첨벙 뛰어들었고 주변의 구경꾼들은 저마다 소리를 질러댄다. 위태위태한 절벽 수영장에서 턱을 괴고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빅토리아 폭포를 즐기는 가장 짜릿한 방법이다.

인공이 없는, 인위가 없는, 그래서 원숭이와도 생존을 다투어야 하는 이 대자연 앞에서 나는 한없이 소박한 존재였다. 언젠가 다시 그 생생한 절벽에 오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간략 여행 정보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을 가로지르고 있는 빅토리아 폭포는 양국 모두에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폭포를 바라보는 뷰는 짐바브웨가 좀 더 가까워서 유명한 반면, 잠비아 쪽은 폭포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다리를 건너 양쪽 모두를 관람할 수 있지만 두 나라 모두 입국시 40USD에 관광비자를 구입해야 한다.

잠비아에서 빅토리아 폭포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리빙스톤으로 가야 하며 리빙스톤에서 폭포까지는 정규 교통편이 없어 투어나 택시, 혹은 사람이 다 차야만 출발하는 거리의 승합차를 이용해야만 한다. 폭포가 있는 공원 안에는 음식을 파는 곳이 없어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 좋으며 원숭이의 습격에 대비해 어깨에 메는 가방보다는 반드시 등에 메는 가방을 준비하자.

리빙스톤 아일랜드에서 데빌스 풀까지는 적어도 30분은 걸어야 하는데 물살이 적고 얕은 곳을 모르면 위험하기 짝이 없으니 투어를 이용하자. 리빙스톤 아일랜드 입구에는 현지 아프리카 청년들이 옹기종기 모여 여행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팁을 받곤 하는데 그들에겐 직업과 같은 일로, 잘 협상한다면 투어보다는 훨씬 싼 가격에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아래는 잠비아 쪽 빅토리아 폭포 관람을 위한 각종 비용.

빅토리아 폭포 입장료 : 9만8000콰차(약 20USD)
리빙스톤 아일랜드 투어 : 70USD
리빙스톤에서 빅폴로 가는 택시 편도 : 6,000콰차(약 1.5USD)
(모두 2012년 8월 기준)

#빅토리아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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