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먹는다'는 이곳 음식, 지갑이 절로 열리네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⑦] 탄자니아 - 잔지바르

등록 2013.07.22 08:58수정 2013.08.0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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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를 위해 사표를 던지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표를 부추긴 최고의 명언은 신입사원 교육 때 한 임원이 했던 말이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라." 약 4년 다닌 회사에 사표를 냈다. 2012년 7월부터 올 4월까지 200일간 5대륙 22개국을 여행했다. 그 여행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본다. - 기자말

동 아프리카에는 잠비아의 카프리음포시에서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살람(Dar es Salam) 사이를 달리는 타자라(Tazara)라는 이름을 가진 기차가 있다. 총 1860km, 공식 소요시간 40시간이라고 나와 있지만 실제 이 기차를 타고 50시간 이내로 도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는 미스터리한 기차. 낡고 허술한 철로 덕분에 달리는 건지 걷는 건지 모르겠다는 기차와 마치 죽어가는 공간 같다는 실내에서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홀로 불안에 떨며 2박3일을 보내기 싫었던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비행기를 택했다.


혹독했던 다르살람 착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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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루사카의 국제공항 ⓒ 김동주


왠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던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의 국제공항은 역시나 한겨울의 야구장처럼 텅 비어 있었고 손님은 물론이고 대기하고 있는 비행기조차도 눈에 띄지 않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 왔다. 아프리카 내의 국제선만 운영한다는 'Precision air'라는 저가항공은 아니나 다를까 아무런 이유도 안내 방송도 없이 이 맑은 날 두 시간이 지나서야 출구를 오픈했다.

기다리다 지친 승객들에 섞여 체크인을 하고 탑승 게이트로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항공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sorry(쏘리, 미안해요)'를 외치며 쏜살같이 옆을 지나쳐 달려갔다. 또 무슨 일인가 하고 게이트에 도착한 나는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체크인 카운터에서 티켓 검사를 하던 바로 그 직원이 전력질주로 뛰어서 이번에는 탑승 게이트에 나타난 것.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드디어 비행기를 탔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은 가시질 않았다.

약 두 시간 정도 짧은 비행을 마치고 탄자니아 다르살람에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에 사람들이 잠에서 깨고 있을 때였다. 천천히 고도를 낮추던 비행기가 갑자기 급추진을 하며 맹렬히 솟아 올랐고 여기저기서 비명과 함께 요란한 비상등이 울어댔다. 크게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착륙을 시도하던 비행기는 이번에도 착륙에 실패해 곡예에 가까운 비행으로 날아 올랐다가 사람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들었을 때쯤 겨우 착륙에 성공했다. 그것도 공항청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마치 월드컵과도 같은 함성과 기립박수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사람들은 죽었다 살아난 것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공항을 빠져 나왔다. 혹시 낮에 루사카 공항에 비행기가 드물었던 이유가… 비행기들이 모두 착륙에 실패해서 그런건 아니겠지?

해가 완전히 져서야 도착한 다르살람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에 도착해 미리 알아두었던 허름한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도저히 이대로는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원숭이 소매치기에 이어 비행기 착륙사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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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의 맥주, 세렝기티! ⓒ 김동주


아프리카의 밤은 문을 연 가게를 찾기가 힘들다. 맥주 한 캔 살 곳이 없나 한참을 돌아다니다 숙소 근처 '홀리데이 인' 호텔을 찾았고 그 곳 옥상에 있는 바에서 겨우 맥주를 주문할 수 있었다. 매우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던 바텐더는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게 되자 갑자기 밖에 걸린 대형 스크린의 채널을 돌려 볼륨을 높였다.

이럴수가.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 아프리카에서 매일매일 헤매느라 올림픽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스크린에는 런던올림픽 축구 3-4위 전, 그것도 한일전이 생방송으로 흘러나왔다. 결과는 2대 0으로 한국의 승. 아아… 비행기고 원숭이고 모두 잊고 오늘만은 '빅토리 코리아(Victory Korea)'다.

아프리카와 아랍의 중간, 잔지바르

아침에 일어나서야 탄자니아가 다른 아프리카와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가장 먼저 덥고 습한 한국의 여름과도 같은 날씨는 그간 낮에는 뜨겁고 건조한 태양, 밤에는 으슬으슬한 추위에 시달렸던 남부 아프리카와 전혀 달랐다. 탄자니아야말로 우리가 아는 1년 내내 뜨거운 여름만 있는 바로 그 아프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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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살람의 분주한 거리 ⓒ 김동주


다르살람은 다른 아프리카의 수도에 비해 무척 사람이 많았다. 마치 우리나라 대도시처럼 거리를 가득채운 채 활보하는 사람들, 그리고 정비되지 않은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사람들과 간간히 보이는 여행객 그리고 도처에서 들려오는 아랍권의 정체불명 흥얼거림들. 날씨가 더워 땀이 많이 나는 것만 빼면 활기가 넘쳐나 보이는 이 도시가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수도인 다르살람이 아니라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잔지바르다.

내 몸집만한 가방을 메고 부둣가를 찾아 헤매고 있으니 묻지 않았는데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친절하게 길을 알려준다. 이들에게는 잔지바르로 가는 배를 타는 여행자들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듯하다. 잔지바르로 가는 페리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어차피 관광객은 VIP석만 구매할 수 있으니 종류는 의미가 없어 보여 제일 빨리 출발하는 배를 타기로 했다.

페리에 올라타니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VIP석을 가득 메운 백인 여행객들, 잔지바르의 매력을 증명해주는 기분 좋은 증거 같은 느낌. 넓은 좌석에서 긴장을 풀고 3시간 정도 지나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내릴 채비를 한다. 그리고 페리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눈부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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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지바르의 항구 ⓒ 김동주


탄자니아의 동쪽 끝, 인도양 위에 떠있는 섬 잔지바르는 페르시아어로 '검은 해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름을 붙인 페르시아인들의 눈에는 흑인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의 모래가 검게 보였으리라. 아주 오래 전부터 아랍권의 무역로로 사용되었던 탓에 아프리카에 속해 있지만 거주민들의 대부분은 아랍의 율법과 관습을 따르는 독특한 곳이다.

그러나 유럽의 정복자들은 잔지바르의 아름다움을 일찌감치 알아챘던 걸까. 페르시아와의 오랜 교역이 영국에 의해 끝나고 그 뒤를 이어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기까지 따지고 보면 식민통치의 역사현장이나 다름없는 이 섬이 인도양 특유의 눈부신 바다로 인해 포르투갈과 영국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여행지가 되어 본토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으니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나는 문제없어! 하쿠나 마타타!

배에서 내려 들어간 잔지바르의 시작은 바로 스톤타운이라는 잔지바르의 주 도시다. 도시라기 보다는 작은 마을이지만 관광객과 이를 위한 위락시설이 집중되어 있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섬 원주민들의 터전이기도 한 곳. 그래서 그런지 이방인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자연스레 선물이나 식당을 권하는 이들의 행동이 그리 싫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거운 배낭부터 내려놓을 요량으로 미리 알아둔 숙소를 찾기 위해 스톤타운의 골목길에 들어선 나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패닉 상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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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같은 스톤타운의 골목길 ⓒ 김동주


겨우 사람 두 명이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과 처마 때문에 좀처럼 열리지 않는 하늘, 그리고 거미줄처럼 얽힌 길들은 마치 미노타우르스의 미로를 연상시킨다. 전혀 쓸모가 없는 지도를 들고 이러저리 발길을 돌려보지만 같은 곳을 두 번째 지나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정도로 내 눈에는 그저 새로운 길도 지나친 길이고 지나친 길도 새로운 길이었다. 점점 어깨가 아파와 포기할 작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슬쩍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다.

"하쿠나 마타타, 친구여(Hakuna Matata, My friend)."

"문제 없어, 괜찮아"라는 뜻인 하쿠나 마타타를 입에 달고 사는 이들. 무엇이 그렇게도 만족스러운지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문제가 생겼을 때도 하쿠나 마타타다. 미로 같은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도착한 숙소 앞에서 그는 두 손가락을 비비며 팁을 요구했지만 안타깝게도 팁으로 줄 만한 현금이 없었던 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고 그는 이번에도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며 조용히 사라졌다. 다른 아프리카와 참 다른 모습.

숙소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한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스톤타운을 둘러보고 싶어 무작정 길을 나섰다. 어디든 한 방향으로만 가면 골목을 벗어나 바닷가나 큰 길이 나오겠지 싶어 또다시 미로를 이리 저리 헤매다 문득 이 골목길 헤매기야말로 스톤타운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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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의 시선을 끄는 기념품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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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의 시선을 끄는 기념품들 ⓒ 김동주


골목마다 가득한 아기자기한 공예품들과 그림들은 모두 원주민들의 솜씨라 자세히 보니 똑같은 물건이 단 하나도 없다. 금방이라도 집어들고 싶은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도저히 보관할 자신이 없어서 다시 내려놓기를 몇 번을 반복했을까. 새로운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들리는 '하쿠나 마타타', 그리고 간간히 풍겨오는 묘한 커피 향은 좁은 골목 곳곳을 채우고 그럴 때마다 내가 지금 베니스에 있는지 스톤타운에 있는지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만약에 스톤다운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한 가지만 명심하자. 우연히 발견한 마음에 든 물건은 바로 흥정해서 사야 한다. 두 번 다시 같은 가게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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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타운의 명물, 야시장 ⓒ 김동주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지나고 노을이 흩어져 어둠이 깔릴 시간이 되면 스톤타운에 있는 모든 여행객들은 바다를 등지고 있는 '포로다니 가든(Forodhani Garden)'으로 몰려든다. 매일 오후 6시 반이면 떠들썩하게 열리는 포로다니 가든 야시장을 구경하기 위해서인데 스톤타운의 해산물을 주로 한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라 언제나 사람이 가득 붐빈다.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스톤타운 야시장의 음식은 눈으로 먹는다'라는 얘기가 있다. 잔지바르에 있는 모든 손수레를 다 모아 놓은 것처럼 공원 한가득 들어찬 리어카에는 도대체 언제 어디서 잡아 요리된 것인지 알 수 없는 해산물 요리가 가득 실려 있다. 오로지 여행객을 위한 장사이다 보니 오래된 음식들은 그 특유의 탄력을 잃고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뿌려댄 소금 맛만 가득하다. 그래도 한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있으면 너도나도 자연스레 지갑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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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고 달콤하면서 상큼한 사탕수수 주스 ⓒ 김동주


그 중에서도 야시장의 명물은 사탕수수 주스. 긴 사탕수수를 베어 기계에 넣고 돌리면 줄기 사이에서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리는데 어딘가의 냉장고에서 꺼내왔는지 시원함을 유지한 그 액체를 한 컵 가득 마시고 나면 사탕수수에 왜 '사탕'이라는 단어가 붙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아아… 아프리카 여행 3주 만에 드디어 천국에 왔다!
#잔지바르 #탄자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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