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도시다운 발상... 지하철역만 봐도 알아요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 44] 경전선의 종착역 그리고 시작, 광주송정역②

등록 2013.08.01 20:12수정 2013.08.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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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에 밀양 삼랑진역을 출발한 경전선 300.6km의 여정이 이곳 광주송정역에서 끝이 났다. ⓒ 김종길


역사 너머로 해가 비스듬히 눕기 시작했다. 번득이는 유리와 쇳조각의 직선이 두드러진 역사는 도시의 건물답게 낯설었다. 경전선 300.6km를 달리며 만난 숱한 역들, 그 끝에서 가장 번잡한 광주 송정역을 마주하게 되었다. 햇빛이 건물 옥상 모서리에 날카롭게 부딪히는가 싶더니 이내 다이아몬드처럼 둥글둥글 파편이 되어 사라진다. 순간 뭉클해졌다. 작년 6월, 밀양 삼랑진에서 시작한 경전선 여행, 꼭 1년 만에 종착역인 이곳 광주 송정역에 이른 것이다. 아니 다시 그 출발점에 선 셈이다.

"어디로 갈까?"


여행이 막바지인데도 늘 그러하듯 여정에 대한 고민은 없다. 딱히 준비하고 정한 곳을 다니는 여행 습성이 아니다 보니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거침없이 다닐 뿐이다. 역 앞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지도를 챙겨 들고 일단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벽면에는 수많은 판소리 명창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송정리역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른 대도시와는 달리 이날 둘러본 광주의 몇몇 지하철역들은 조용했고 퍽 편안했다. 지하철역 곳곳이 무슨 전시관처럼 잘 꾸며져 있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자전거대여소도 보인다. 자전거를 빌려 송정역 일대를 여행하기에 좋겠다.

광주 지하철역에 있는 판소리 명창 전시관, 새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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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리역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벽면에는 수많은 판소리 명창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 김종길


지하철 개찰구 너머로 국창 임방울 선생 전시관이 보였다. 역무원에게 전시관에 간다고 했더니 개찰구 한편으로 나 있는 작은 쪽문을 열어줬다. 사실 전시관이라고 해봐야 손바닥만 한 크기에다 북과 장구 등이 진열되어 있을 뿐이고 그의 업적을 새긴 패널이 전부다. 다만 헤드폰으로 판소리를 들을 수 있어 휙 지나치고 말았을 전시관에 잠시나마 발길을 붙들어두고 있었다.

판소리 명창인 임방울(1904~1961) 선생은 이곳 광주시 광산구 출신이다.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목소리와 성량이 풍부했던 그는 오랜 수련 끝에 25세 때 상경하여 송만갑의 소개로 처녀무대에서 <춘향가> 가운데 '쑥대머리'를 불러 크게 인기를 얻었다. 특히 일본에서 취입한 '쑥대머리'는 우리나라·일본·만주 등지에서 100여만 장이나 팔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이화중선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명창이었다. 흔히 이런 그를 두고 '판소리 전통을 최후까지 고수한 사람' 혹은 '서편제 최후의 보루'라고 부르기도 했다.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잘했지만 특히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를 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에 원각사에서 공연을 했는데 이때 녹음하여 둔 테이프를 복사하여 취입한 음반인 <수궁가>와 <적벽가>가 전한다. 그의 많은 음반 가운데 <춘향가>에서 '쑥대머리'와 <수궁가>에서 '토끼와 자라' 대목은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매년 9월이면 '국창임방울국악제'가 열린다.

작지만 옹골찬 문학의 산실, 송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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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리역의 국창 임방울 선생 기념관 ⓒ 김종길


송정리역을 떠난 지하철은 송정공원역에서 잠시 섰다. 대도시답지 않게 번잡함이라곤 찾을 수 없는 광주의 지하철은 잠시 시간을 비켜선 듯했다. 객차와 객차 사이의 출입문이 모두 열려 있어 곡선구간을 지나칠 때면 길게 늘어진 열차 내부의 모습이 마치 속을 모두 비워낸 뱀의 몸뚱아리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거대한 뱀의 몸 안에 들어온 듯한 그 기괴한 느낌에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송정공원 가는 길은 광주라는 대도시와는 딴판인 한적한 시골이었다. 공원 앞에 다다랐을 때 철로가 가로질러 있었고 기차가 덜커덩덜커덩 지나는 걸 한참이나 지켜본 후에 관리원의 지시에 따라 길을 건널 수 있었다. 공원 층계를 막 올랐을 때 30대쯤 보이는 여자가 여행자를 보고 실없이 웃었다. 순간 답례로 웃음을 주었으나 그녀의 눈빛에 초점이 없다는 걸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은 산기슭 언덕에 불과한 변두리 공원을 찾은 데에는 "그냥 작은 공원인데요. 특별하게 볼거리가 없습니다"고 했던 안내소 직원의 만류도 한몫했다. 굉장한 볼거리나 있었다면 이렇게 공원을 샅샅이 훑는 수고로움은 애초에 없었을 터, 이 작은 언덕에서 추억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야겠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

그 관찰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도서관 한쪽 공터에 현충탑이 있었고, 언덕 아래로 비석 같은 것이 보였다. 언덕을 돌아내려 가서 부채와 북의 모양을 띤 국창 임방울 선생 기념비임을 확인했다. 문득 용아 선생의 시비도 이곳에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 어디쯤이 아닌가 하여 다시 왔던 길을 더듬어보는 데 숲 한쪽으로 배의 형상에 사람의 얼굴 같은 두상이 얼핏 보였다. 돛을 활짝 펼친 배에다 빗장에 자물쇠까지 채워 놓아 용아 선생의 <떠나가는 배>는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용아 박용철 시비였다. 겉으로 보기에 볼품없는 송정공원은 이 두 기념비로 인해 튼실한 문학의 산실임을 넌지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초가집 한 채, 용아 박용철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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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초가집이 조금은 생뚱맞아 보이지만 온갖 화초로 가꾼 용아 박용철 생가 안은 정갈하기 이를 데 없다. ⓒ 김종길


용아 박용철 생가는 송정공원에서 3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가뜩이나 한산한 거리를 벗어나니 시골스러운 골목 안쪽으로 용아 생가 안내문이 나왔다. 1층짜리 낮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변두리 도시 저쪽에는 하늘 높이 닿은 아파트들이 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로 너른 공터가 나타나더니 거짓말처럼 초가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뻘겋게 달아오르던 해가 기력이 다했는지 땅에도 붉은 기운을 넓게 드리우고 있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이 집은 초가지만 안채, 사랑채, 사당,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제법 번듯한 규모를 갖추었다. 양지바른 곳이라 햇볕이 아주 잘 들어 잠시만 있어도 절로 쾌활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지금이야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초가집이 조금은 생뚱맞아 보이지만, 온갖 화초로 가꾼 생가 안은 정갈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집에서 꼭 살고 싶은 생각이 절로 생긴다. 마당 한편에는 공원에서 보았던 그의 유명한 시 <떠나가는 배> 시비가 오도카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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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둘러싸인 용아 생가는 초가지만 안채, 사랑채, 사당,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제법 번듯한 규모를 갖추었다. ⓒ 김종길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헤살 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용아 박용철(1904~1938)은 한국 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순수 서정시인이다. 이곳 광산구 소촌동 솔머리에서 태어난 그는 유미주의, 탐미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한국현대문학의 개척자 중 한사람이다. 1930년 김영랑, 정지용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을 창간했고 <문예월간>, <문학> 등을 펴내는 등 1930년대 순수시 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

경전선 마지막 여행, 빛고을 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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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 박용철 생가에서 나오는 길에 만난 도심 속의 텃밭 ⓒ 김종길


그날 밤, 송정리역 근처 떡갈비 거리를 찾았다가 식당 주인이 추천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지하철을 탔다. 송정공원역, 공항역을 지나 김대중컨벤션센터(마륵)역에서 내렸다. 마륵역에는 2008년 10월에 조성한 '인권테마역사관'이 별도로 있었다. 각종 작품과 조형물, 패널, 책자들이 전시되어 있어 지하철 역내가 마치 하나의 전시관인 줄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인권의 도시다운 발상이었다. 벽면에는 문화지하철을 선전하며 매달 공연 일정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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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에 조성한 마륵역의 ‘인권테마역사관’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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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 김종길


5번 출구로 나와 잠시 걸었다. 호남권 최초의 컨벤션 시설이라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컨벤션 내에는 김대중 기념관이 있는데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공사로 온갖 소음을 내는 건물 바깥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길 건너로 넓게 잔디밭이 깔린 광장이 나왔고 황토색 벽돌로 쌓은 반원형의 조형물과 함께 5·18자유공원이라고 새긴 큼직한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텅 빈 광장에 외로이 솟은 기념탑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80년 광주의 윤상원, 박관현 등 들불야학 7열사의 북두칠성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적고 있었다. 이곳 5·18자유공원은 광주항쟁 당시의 처절한 아픔과 한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라고…. 혹한을 지나 피어난 들꽃처럼 순결하고 고귀한 영혼이 영원한 들불처럼 활활 타오르기를 묵념했다. 갑자기 뜨거운 그 무엇이 왈칵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나의 경전선 여행도 여기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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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자유공원에서 1년 간의 경전선 여행을 마쳤다. ⓒ 김종길


덧붙이는 글 광주 송정 여행은 6월 6일~7일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작년 8월부터 시작했던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 연재를 이번 44회를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이 기사는 코레일과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인권테마역사관 #5?18자유공원 #광주송정역 #임방울 #박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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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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