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는 왜 4일에 한 번씩만 사냥을 할까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⑪] 동물의 왕국 마사이마라 국립공원(3)

등록 2013.08.14 11:46수정 2013.08.1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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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다양한 얼굴들 ⓒ 김동주


세계일주의 시작지로 5대양 6대주 중에 아프리카를 처음으로 뽑은 이유는 단 하나다. 나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세계에 살고 있고 그들은 야생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된 곳에서 더불어 살고 있다. 한국과 가장 동 떨어진 곳, 아프리카는 나의 호기심을 가장 크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케냐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서의 3박 4일 동안 나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누구나 호주의 케언즈에서, 동남아 섬나라에서, 혹은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눈부신 해변과 자연을 볼 수 있지만 이런 바다에서 돌고래를 같이 보기는 힘들고, 도로를 걸어 다니는 코끼리와 원숭이 떼를 볼 수 없으며, 끝없는 초원에서 사자와 치타를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아프리카의 야생 생태계에서 오래전 배웠던 수학이론을 되새기게 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마사이마라에서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하는 수만 마리의 누떼, 마치 보안요원 처럼 항상 누떼 곁을 지키는 다수의 얼룩말들 그리고 철저히 서로의 영역 안에서만 살아가는 코끼리와 기린들을 보면서 나는 이들에게 분명히 어떤 룰이 존재함을 느꼈다.

초식동물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따라서 언제나 사자나 치타 같은 맹수들의 '목표'가 되지만, 관광객인 우리가 그 장면을 목격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 맹수들에게도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천적이 없어 보이는 사자 그래서 우리는 사자를 맹수들의, 야생의 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과연 사자는 야생의 왕일까. 그렇다면 마사이마라 초원은 사자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실제 초원을 운영하는 건 바로 '먹잇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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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찾아 초원을 횡단하는 누떼 ⓒ 김동주


7월이 되면 남쪽의 세렝기티에서 북쪽의 마사이마라로 수십만 마리의 누떼들이 이동한다. 남쪽에는 더 이상 푸른 풀과 풍부한 물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식량을 찾아서 끊임 없이 이동한다. 그렇다면 사자는?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사자는 평균 4일에 한 번씩 사냥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놓치면 사자는 그대로 굶어 죽는다. 그렇다면 모든 누떼가 북쪽으로 이동을 하면 사자는 어쩔 수 없이 따라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즉, 이 드넓은 초원은 역설적이게도 먹이사슬 제일 위에 있는 사자가 아닌, 제일 아래에 있는 누떼들에 의해 운영된다.

게임 이론의 여러 가지 모형 중에 '매와 비둘기 게임'이란 게 있다. 공격적인 성향으로 상태를 해치면서 살아가는 개체를 '매파', 유순한 성향으로 서로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는 성향의 개체를 '비둘기파'라고 한다. 사자는 누를 잡아먹고 살아가므로 '매파'다. 반대로 누는 풀과 물을 먹으면서 스스로 살아가므로 '비둘기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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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매파'인 사자는 과연 초원의 왕일까? ⓒ 김동주


그렇다면 사자는 왜 4일에 한 번씩만 사냥을 할까. 만약에 사자가 욕심을 부려서 배가 고프든 말든 무차별적으로 누떼를 죽여서 누의 개체 수가 줄어든다면? 결국 이 초원에는 사자와 같은 매파만 남게 되고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바로 '공멸'이다. 결론적으로 사자는 누를 죽이면서 살아가지만 누가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에 둘은 항상 적정 비율로 섞여 있어야 한다. 사자는 바로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관광객은 사자가 재미 삼아 누를 사냥하는 장면을 볼 수 없다.

요컨대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 있는 이 거대한 생태계는 '다른 개체에 피해를 입히면서 살아가는 소수의 포식자들은 결코 스스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게임 이론 중 하나를 복잡한 설명 없이 아주 잘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안녕, 살아있는 배움터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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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마라는 살아있는 배움터다. ⓒ 김동주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분명히 우리는 어릴 때 서로 사랑하고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리고 악한 자는 언젠가 벌을 받는다고 교육받았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기초로 한다면 악한 자는 처벌을 받기는커녕 더 잘 살아갈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지만 종래에 결국 이런 자들만 남은 사회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공멸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 인간 세상에도 언제나 '비둘기'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 태어난 세대에게 항상 '비둘기'처럼 살라고 한다.

인간이 수십 년간 교육을 받으면서 배워야 알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이 초원의 동물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인간은 언제나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그런 점에서 아프리카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서 인류의 중요한 유산이자 동시에 살아있는 배움터다.

안녕, 아프리카. 다시 만날 때까지.
#마사이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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