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지르지 말고 안아줘요"... 아빠가 꼭 그럴게

[가족인터뷰] 8살 아들·5살 딸과의 진지한 대화

등록 2013.09.03 10:48수정 2013.09.0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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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의 시우와 시연이 ⓒ 김용만


아들 시우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지난해까지 유치원생의 부모로 살다가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되니 부모 노릇이 한층 더 바빠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않았던 고민과 조바심이 늘었다. '혹시 학교 공부에 뒤처지진 않은 걸까'라고 신경을 쓰게 되고, 각종 준비물을 챙기게 되고, 아이를 일찍 마치고 학원에 보내야 했다. 여러모로 바빠졌다.


하지만, 사실 가장 바빠진 것은 시우 자신일 것이다. 유치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다가 초등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을 받게 되며 종이 칠 때까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고, 여러 질서와 규칙을 접하느라 힘들 것이다. 게다가 받아쓰기에 그림일기까지…. 시우가 이런 것들을 하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그런데 시우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배가 많이 나왔다. 많이 먹은 만큼 운동을 못해서라고 판단한 나는 시우를 데리고 운동을 하기로 했다. 물론 둘째 딸 시연이도 함께다. 시연이는 혼자 집에 있으면 안 되고 게다가 '오빠야'가 한다면 무조건 따라 하는 '따라쟁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30일, 우리 셋은 근처 공원에 나갔다. 걸으면서 아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우야, 시연아. 요즘 생활은 어때?"
"학교생활 재미있어요."

시우의 짧은 대답. 바로 튀어나오는 시연이의 대답.

"아빠 난 오늘 우리 유치원에서 뛰어놀다가 무릎 다쳤다. 피가 났지만 참았다."


의기양양한 표정. 시연인 요즘 들어 부쩍 다쳤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피가 났다도 빈번히 한다. 또 시연이는 자신의 무용담 이야기도 자주 하는데 결국 파헤쳐 보면 허구일 때가 많다. 5세쯤 되는 아이들은 현실과 생각을 헷갈린다고 하니 나는 이해하고 귀엽게 듣고는 한다.

아이들도 안아주는 걸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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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좋은 시우와 시연이 ⓒ 김용만


"시우 시연이는 커서 어른이 되면,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어떤 아빠가 좋은 아빠인데?"
"잘 노는 아빠요."
"아빠는 어때? 좋은 아빠 같아?"
"네!"

배시시 웃는다. 시연이도 따라 나온다.

"나도 좋은 엄마가 될 거예요."
"좋은 엄마는 어떤 엄마인데?"
"음…. 요리하는 엄마, 헤헤."

수줍게 웃는다. 둘째라서 그런지 확실히 빠르다. 말도 빨랐고 한글 익히는 것도 빨랐다. 게다가 이쁜 짓은 어찌나 하는지…. 사람들이 "딸, 딸" 하는 이유를 새삼 많이 느낀다.

"시우와 시연이는 아빠 엄마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소리 안 질렀으면 좋겠어요. 소리 지르면 무서워요."
"그래? 그럼 엄마 아빠가 화가 나면, 어떻게 하면 될까?"
"소리 지르지 말고, 작게 '화났다'고 말하고 안아주면 좋겠어요."

8살 된 아들 시우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내심 놀랐다. 아이들도 안아주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꼭 그리하리라 되새겼다.

그날은 아내가 늦게 오는 날이라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하며 걸을 수 있었다. 상당히 평화로웠다. 순간 시우가 말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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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앞바다를 보며 숭어를 기다리는 아이들 ⓒ 김용만


"아빠! 물고기가 뛰었어요!"
"어디, 어디?"

시연이도 달려간다.

"어디 아빠도 같이 볼까?"

아이들은 바다 쪽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숭어를 기다렸다.

"와 뛴다!!!"
"오예! 나도 봤다."
"내가 본 게 더 크지롱~"
"아이다. 내가 본 게 더 크다!"

시우와 시연이, 또 다투기 시작한다. 사실 시우와 시연이는 열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에 나왔다. 시우는 8개월 만에 세상에 나와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넘게 생활했고, 시연이는 그나마 건강하게 나와 이쁘게 자라고 있다. 시우를 안고 병원을 나서면서 얼마나 다짐했던가.

'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와주리라. 이 아이를 사랑으로 기르리라. 이 아이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리라.'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한 번씩 시우와 시연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나를 본다. 무척 부끄럽고 미안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화를 낼 때는 조용히 있다가 사태가 정리되고 나면 조용히 다가와 안긴다.

아이들은 아직 부모들에게 화를 낼 줄 모른다. 계속 다가와 안길 뿐이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동적인 일인가. 아이들은 죄가 없다. 단지 순간순간의 분노를 조절치 못하거나 또는 화풀이를 아이들에게 하는 어른들의 잘못이 훨씬 클 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 다 됐다. 항상 하는 질문을 던졌다.

"시우 시연이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생각할 시간도 없이 둘 다 대답한다.

"엄마 아빠 다 좋아."
"그런 게 어딨어, 솔직히 말해봐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나는 내심 내가 나오길 기대했다.

"아빠랑 놀 때는 아빠가 좋고, 엄마랑 놀 때는 엄마가 좋아."

아이들에게 듣고 싶은 답을 듣기는 틀렸다고 판단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부모도 성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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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8살과 5살이 된 시우와 시연이. 지금처럼 이쁘게 자라다오. ⓒ 김용만


마지막으로 물었다.

"시우 시연이는 행복해?"
"네. 행복해요."
"시우는 뭐가 제일 행복해?"
"우리 가족이 좋아요."
"나도 우리 가족이 좋아."

시연이도 웃으며 말한다. 이 아이들이 자라오는 것을 꾸준히 봐왔다. 하지만 매일매일 보다가 애기 때의 사진을 보면 몰라보게 자라있는 아이들을 보며 깜짝깜짝 놀란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나도 성장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부끄러울 때가 있다. 아이들은 말 그대로 부모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으로 대하고 따른다. 나도 이 아이들이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조건 없는 사랑으로 대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사이 왼쪽 손에는 시우가, 오른쪽 손에는 시연이가 매달려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새삼 행복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가족 인터뷰' 응모 기사입니다.
#김시우 #김시연 #가족인터뷰 #공모작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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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보다는 협력, 나보다는 우리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책과 사람을 좋아합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일의 걱정이 아닌 행복한 지금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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