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 딸아이가 사준 감동의 '라멘' 한 그릇

[공모-입시가 뭐길래] 꼬깃꼬깃 아껴둔 만 원짜리로 아빠 점심을...

등록 2013.11.08 14:56수정 2013.11.0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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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여러분들의 수능대박을 응원합니다! 마을 한 고등학교 앞에 응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 변창기


7일 아침, 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했습니다. 수능시험 날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초등학교 학생들도 등교를 1시간 늦춰 한다는 건 몰랐습니다. 학교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저는 평소 출근시간대로 출근했습니다. 제가 사는 울산 동구는 현대중공업 쪽 아랫길과 동구청 쪽 윗길로 나뉘어 있고 양 쪽으로 버스가 다닙니다. 저는 동구청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제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 내릴 수 있습니다.


버스 타고 동구청에 다다를 무렵이었습니다. 동구청 맞은편에 고등학교가 있는데 학생들과 교사, 경찰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두어 정거장 더 가야 하지만 저는 거기서 잠시 내렸습니다. 학생들이 교문 앞에 서서 응원을 하는 모습도 보였고요. 등 뒤에 '자유총연맹'이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은 나이 든 여자들이 미처 밥을 먹지 못한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려는지 김밥 한 줄과 우유 하나씩을 들고 서 있기도 했습니다. 어느 학생은 경찰 오토바이 뒤에 타고 와, 늦었는지 학교 안으로 달려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수능시험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시험인지 저는 모르지만 나라 전체가 시끌벅적한 걸 보니 큰 행사이긴 한가 봅니다. 저는 그런 풍경이 낯섭니다. 저는 대학 입학시험을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펼침막까지 붙여가며 난리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수능 날 아침 풍경을 잠시 지켜보면서 제가 고입시험을 보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다닐 집안 형편도 안 되었고 실력도 모자랐습니다. 어찌 할 바를 몰라 그냥 가만히 있었더니 담임 선생님이 시험이나 쳐보라 했습니다. 어머니도 시험 쳐보고 붙으면 어떻게 해서든 입학금 마련할 테니 한번 해보라 했습니다. 그래서 중3 때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체력시험을 먼저 보았습니다. 100미터 달리기, 턱걸이, 윗몸 일으키기 운동을 시키고 점수를 매겼습니다. 모두 만점 맞으면 20점을 쳐주었습니다.

저는 동구에 있는 공업계 고등학교에 응시원서를 냈습니다. 대학 갈 형편이 못 되니 기술이나 배워 공장에 취직하라는 것이었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정도로 공부를 잘 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가정 형편 또한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나름 시험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책만 보면 항상 정신이 산만해졌습니다. 아버지의 술주정도 힘들었습니다. 산 속에 집이 있어서 전기도 없이 호롱불로 붉을 밝혀 책을 보자니 글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문계는 점수가 120점은 넘어야 합격했으나 실업계는 체력시험 20점에 고입시험 90점 합해서 110점 이상 되면 합격했습니다. 체력시험은 교사들이 많이 봐주어 조금만 열심히 하면 누구나 20점을 주었습니다. 저도 체력시험은 20점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입시험을 보고 나서 기다려도 저에게는 아무 소식도 오지 않았습니다. 반 친구들은 모두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에 합격했느니, 어느 실업계 고등학교에 합격했느니 하면서 자랑할 때 저는 쥐 죽은 듯이 고개 숙여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학교 졸업하면서 저는 제 나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취업했습니다. 당시 대기업엔 '사환'이라는 일자리가 있었습니다. '사원'들의 잡심부름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벌써 나이가 오십줄에 가까웠네요. 저는 그렇게 옛 일을 생각하며 수능시험장 앞을 잠시 지켜보다 출근했습니다.

용돈 아껴서 아빠 점심 사준 딸... 수능 덕분에 '점심대박'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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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들 수능시험 잘 보세요" 제가 사는 동네 한 고등학교 앞에서 후배들이 수능시험보는 선배를 응원하고 있었다. ⓒ 변창기


"아빠, 나 오늘 학교 안 가는데 저번부터 먹고 싶었던 거 먹고 싶어. 같이 먹자."

딸은 간만에 시간 난다며 저에게 점심을 사준다 했습니다. 저보다 똑똑해서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은 오늘 수능시험 보는 날이라고 쉰다고 했습니다. 제가 늘 돈 없다고 하니까, 딸이 용돈 아껴 놓은 것으로 점심을 사준다네요. 참 고마웠습니다.

저번부터 딸이 먹고 싶어 했던 음식은 '라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라면을 일본에선 그렇게 부르나 봅니다. 딸은 신기한 음식 맛보는 걸 좋아합니다. 저번부터 딸은 라면과 라멘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아빠, 돈 생기면 가보자" 했었는데 딸이 먼저 "용돈 모은 거 있다"면서 점심 사주겠다고 전화를 했네요.

울산 동구 일산해수욕장이 있는 큰길 가에 라멘집이 있었습니다. 라멘집을 가보니 일본 분위기였습니다. 라멘 한 그릇에 6000~7000원 정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라멘 중에 딸은 미소라멘을 선택했습니다. 잠시 후 나온 걸 보니 숙주나물을 얹고, 달걀 삶은 거 반토막, 돼지고기 얇게 썬 거 한 조각, 파 다진 것과 국수처럼 생긴 국을 한 그릇 주었습니다. 딸은 담백하고 맛나다 했습니다. 저도 떠먹어보니 된장국 맛도 나면서 사골 국물 맛도 났습니다. 딸은 맛나다며 잘 먹었습니다.

"딸 친구 중에 간호학과 가는 친구 몇 명이나 되냐?"
"모두 5명.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그중에 내가 제일 확률이 높대."

딸은 자랑스러운 듯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년 이맘때 딸도 대입시험 볼 테니 잘 준비해라"며 격려해주었습니다. 점심을 다 먹고 제가 계산을 하려 하자 딸이 나서며 말했습니다.

"내가 아빠 점심 사준다고 했잖아. 나 돈 있어."

딸은 저를 뒤로 밀치면서 꼬깃꼬깃 주머니에 넣어 온 1만 원 지폐 두 장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계산하는 분이 "효녀네" 하면서 계산을 해주었습니다. 딸은 밖으로 나오자 집까지 걸어간다고 했습니다. 저도 가끔 일터에서 마치면 집까지 걸어가곤 하는데 1시간 30분 정도나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딸은 배불러 걸어간다고 했지만 아비된 저로선 조금 안쓰러웠습니다. 차비라도 아끼려는 딸의 심정이 와닿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딸은 어려서부터 언제나 속 깊은 면이 있었습니다.

대입 수능 날. 누구는 웃고 누구는 한숨을 쉬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대입시험을 쳐본 일이 없어서 그 심정을 모르지만, 딸 하나 잘 둔 덕분에 수능 날 '점심대박'을 맞아서 참 기분 좋았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딸바보로 살아야겠습니다. 착한 딸, 잘 커서 누군가에게 시집가 잘 사는 것 볼 때까지요. 언제나 다정한 친구 같은 아비로.
덧붙이는 글 '입시가 뭐길래' 공모 응모글입니다.
#수능 #시험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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