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수 결심한 큰 아이, 태백산에 올랐습니다

[공모-입시가 뭐길래] 태백산 천제단에서 올린 기도

등록 2013.11.20 17:15수정 2013.11.2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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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1월이 되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고3' '수능'이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마음이 긴장된다.


수능. 우리나라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할,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과정처럼 돼 버렸다. 비단 수험생뿐만 아니라 부모님들도 수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도 내 마음을 이렇게 아린 것은 큰아이 때문이다. 그동안 우등생에 모범생이었던 큰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만 고집하는 것을 그저 믿고, 또 믿으며 보냈다. 그러나 보니 나는 물론 남편과 아이들 모두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힘든 시간을 넘어 탈진할 경지까지 이르렀다. 

그런 큰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기도 드리는 일이었다. 매일 새벽이면 절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리는 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그 뿐인가? 전국에서 영험하다는 기도지를 찾아다니며 간절함을 더했다. 가까운 수덕사를 비롯해 절 담장 바로 밖이 바다인 간월도의 간월암, 관악산 정상의 연주암, 동해의 감은사, 팔공산의 갓바위, 남해의 향일암, 보리암.

하지만 나의 간절함이 부족한 탓인지, 운이 따라주지 않았는지 큰아이는 안타까운 점수 차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더불어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한 백일기도는 천일기도가 되었으니.

큰아이가 4수를 선택하고  4수를 결정한 후, 처음 떠난 곳은 태백산이었다. 쉰이라는 나이에 처음으로 오르는 나도, 평소 공부하느라 운동을 하지 못한 아이가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간절한 마음 하나로 무작정 집을 나섰다. 가방 속에는 쌀, 초, 물, 과일 을 넣고 말이다.


때마침 태백산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이와 나는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앞만 보고 걸었다. 신발 밑에 아이젠을 달고 스틱으로 땅을 찍으며 가파른 비탈길을 걸으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가끔은 처음 보는 이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걷고 또 걸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정상 부근에 있는 쉼터에서 우리는 잠시 쉬기로 했다. 그 때 주변을 돌아보니 정말이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온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덮혀 있는,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장엄함은 온몸 구석구석으로 전해져 잠자고 있는 것들을 깨워주었다.

그 사이로 멧돼지 4마리가 움직이는 모습은 여기가 정말 태백산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걸어 정상에 올랐을 때, 아이와 나는 한동안 말을 잊고 서 있었다. 바람에 섞여 날리는 눈 사이로 우뚝 서 있는 천제단, 그 안은 물론 주변에 기도를 드리는 많은 이들의 모습, 날이 흐린 탓에 정상 밑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마치 구름 속에 서 있는 듯한 신비로움까지.

나는 아이와 함께 천제단안으로 들어가 준비해온 것들을 올리고 기도를 드렸다. 올해는 꼭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간절함을 더 해서. 그런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아이가 안타까워서도 아니고, 태백산에 오르기까지 몸이 힘들어서도 아니고.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 나서 나는 아이와 함께 점점이 흩뿌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말없이 한동안 앉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하늘과 제일 가까운 곳, 신성한 정기로 둘러 쌓인 천제단에 서 있으니 마치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 한 쪽이 아려온다.

정말이지 태백산에서 보았던 것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다시 또 가게 되면 그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다음에는 그만 조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찾아야겠다. 모든 수험생들에게 한 번으로 자신이 원하는 뜻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며...
덧붙이는 글 입시가 뭐길래'응모글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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