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도 맛없다는 경상도, 통영은 예외인 이유

[서평] 생의 허기를 달래주는 맛 <통영은 맛있다>

등록 2014.01.12 14:41수정 2014.01.1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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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 백석 '통영2' 중에서

통영은 가볼수록 우리나라 어떤 도시와도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그 이름 통영(統營)이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비롯되었다지만 통영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뭔가 통하는 도시, 통통하고 넉넉한 항구도시의 느낌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한산섬, 욕지도, 연화도, 소매물도 등 많은 섬을 품은 통영에서 나는 풍성한 먹거리들이 한몫 했지 싶다.


이 책 <통영은 맛있다>는 시인 백석의 표현대로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통영의 맛과 멋, 풍경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보길도가 고향인 시인이자 수필가, 섬 여행가인 저자 강제윤이 부럽게도 통영에서 3년째 눌러 살면서 이상희 사진작가와 함께 통영을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통영시에서는 동피랑 마을의 빈 집 몇 채를 고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에게 작업실로 빌려 주고 있다.

재료 자체로 완성되는 바다의 맛

통영을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통영이 맛의 고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맛에 관한 한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다. 경상도의 전주다…(중략) 하물며 통영은 풍경이 좋은 데다 음식까지 좋으니 이를 어찌할까! 통영이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떠나게 하고 술을 마시지 않고도 취하게 만드는 곳이다 - 본문 가운데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통영의 재래시장은 연중 붐빈다. 언제나 싱싱한 활어회와 해산물들을 저렴한 값에 사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 통영의 맛을 진하게 느끼게 해준 곳은 새벽시장이 서는 서호시장 '시락국'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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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맛과 멋이 담긴 <통영은 맛있다> 표지. ⓒ 생각을담는집

새벽 4시, 밥을 먹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웬걸! 벌써 시락국집은 이른 식사를 하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시락국'은 시래깃국의 통영 말이다. 식당 문밖 가마솥에서는 국이 끓고 식당 안은 구수한 냄새가 아른거린다. 시락국 집은 독립적인 식탁이 따로 없다. 초면의 사람들끼리 옆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통영에 자주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충무김밥이나 꿀빵, 우짜 같은 것들은 실제로 통영의 대표 음식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통영 사람들은 그런 음식들을 잘 먹지도 않는다. 그냥 군것질거리거나 허기진 배 채우는 한 끼 간식일 뿐이다.

겨울에도 풍성한 통영의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들에서 느껴지는 바다의 맛이 진짜 통영의 맛이다. 남해의 바다는 사철 풍성한데 특히 겨울이야말로 제철이다. 동서남해 모든 바다의 어류들이 모여드는 까닭이다. 그 남해에서도 통영은 가장 많은 해산물들의 집산지이다.

복국이나 볼락구이처럼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철 즐기는 음식도 있지만, 통영 사람들에겐 계절마다 통과의례처럼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다. 봄은 도다리쑥국이고 여름은 갯장어 회나 장어구이. 그렇다면 겨울은? 단연 물메기국과 대구탕이다. 서울 사람들이 보신탕이나 삼계탕을 먹어야 여름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통영 사람들은 물메기국이나 생대구탕을 챙겨 먹지 못하면 겨울을 날 수 없기라도 할 것처럼 안달이다.

통영하면 굴도 빼놓을 수 없다. 동네 마트에서 자주 사다 먹는 통영 굴은 싱싱하기도 하지만 씨알이 큰 게 특징이다. 서해안의 굴은 밀물 때만 바다 속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반면 통영 굴은 항상 바닷물 속에 담겨 있어 씨알이 굵다고 한다. 바닷가로 가면 통영 앞바다는 온통 '굴밭'이다. 통영 앞바다의 굴 양식장 면적은 축구장 8000개 크기인 5371㏊에 달한단다.

통영에서 굴의 지위가 각별한 것은 껍데기를 벗기는 작업을 탈각(脫殼)이라 하지 않고 '박신(剝身)'이라 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통영의 겨울 굴 한 접시를 먹는 것은 바다를 통째로 마시는 일이다. 저자가 통영에 살면서 꼽은 최고의 굴 요리는 통영식 굴젓. 겨울날 통영에 가면 꼭 먹어보라 권한다.

겨울 시금치가 가장 맛있을 때 그 맛 또한 극점에 이른다는 우럭조개를 먹어 보면 또한 통영 맛의 비결과 본질을 깨닫게 된다. 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 살짝 끓이거나 데쳐 먹어도 달디 달다. 자연의 단맛이란 이런 것이구나! 무릎을 치게 된다. 생의 허기를 달래준다는 통영의 맛이란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재료 자체로 완성되는 맛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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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살면서 20여년 간 통영과 그 섬들을 담아온 이상희 작가의 사진도 책 속에 있다. ⓒ 이상희


이 밖에도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은 해산물 다찌, 봄마다 그 향내에 사람을 취하게 하는 도다리쑥국, 통영 사람들이 정신줄을 놓는 바람둥이 물고기 볼락, 마시멜로처럼 살살 녹는 연탄불 꼼장어 구이, 술병도 고쳐주는 물메기국 등 통영의 대표 음식부터, 통영 전통음식인 홍합초와 개조개 유곽, 해물잡채, 통영식 굴젓, 볼락김치까지 옆에서 함께 먹는 것처럼 군침 돌게 소개한다.

통영이 맛있는 근거있는 이유

통영이 경상도가 아니었으니 맛의 유전자도 경상도 혈통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 통영의 맛은 전라, 충청, 경상도의 맛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맛이었다. 그러니 행정구역이 경상도로 편입된 지금까지도 유독 통영의 음식이 맛있는 것이다. 입맛 까다로운 전라도 사람들도 통영에 와서는 음식이 맛있다고 감탄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 본문 가운데

경상도 음식은 짜장면도 맛없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이 속설을 보기 좋게 깨주는 곳이 통영이다. 통영은 맛있다. 왜 유독 통영만 맛있을까.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은 경상도지만 맛의 유전자는 경상도 혈통이 아니라며 저자는 근거 있는 이유를 댄다.

통영(통제영)이라는 군사 도시가 생긴 1605년부터 통제영이 폐지된 1895년까지 3백 년 동안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라 삼도수군 통제영 소속이었다. 삼도수군 통제영은 경상, 전라, 충청 해안 지방과 섬들의 군사기지가 하나로 묶인 '특별자치구역'이었고 통영은 그 중심 도시(본영)였다. 육로보다 수로 교통이 활발했던 과거에 수군 사령부인 통영으로 각지의 물산과 문화가 자유롭고 활발하게 유입되었다.

겨울에도 동서남해 모든 바다의 어류들이 모여드는 등 천혜의 지역적 위치 또한 통영을 맛의 도시로 부족함이 없게 한다. 김제·만경 평야라는 큰 들녘과 풍요로운 갯벌이 있었기 때문에 전주의 음식문화가 발달한 것과 비슷한 경우다. 한겨울 어종이 단순해지는 서해나 동해에 비해 통영 강구안 앞 중앙시장에 가면 굴, 물메기, 대구, 전복, 조개, 해삼 등으로 풍성하기만 하다. 옛 부터 조선에서 가장 상업 활동이 활발했던 통영의 물적 기반과 남해바다의 풍부한 해산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저자는 또 통영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놀라운 사실들도 새롭게 발굴해내고 있다. <통영은 맛있다>에는 소설가 박경리가 50년 동안이나 고향 통영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숨겨진 이유, 지고지순한 정신적 사랑의 상징으로 알려진 청마 유치환에게 이영도 시인 외에 또 다른 여인 반희정이 있었다는 이야기, 백석 시인이 통영 여자 난에게 실연을 당한 것이 친한 친구의 배신 때문이었다는 비화, 또 이중섭의 대표작 소 그림들이 통영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은 물론, 왜구의 혼을 떠받들기 위해 팠다는 해저터널에 얽힌 야사까지 통영에 대한 흥미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덧붙이는 글 <통영은 맛있다> 강제윤, 이상희 저 I 생각을담는집 | 2013년 07월 | 16,000원

통영은 맛있다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강제윤 지음, 이상희 사진,
생각을담는집, 2013


#통영은 맛있다 #강제윤 #이상희 #통영 #생각을담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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