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에서 '벌떡' 일어난 나, 왜 그랬을까

[서평] 좋은 삶을 위한 '진짜 처세술' <세상물정의 사회학>

등록 2014.01.16 17:20수정 2014.01.16 17:20
0
원고료로 응원
"키 큰 사람 일어서 봐."

왜 일어섰을까. 원래 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먼저 나서는 것도 거리가 멀다. 일어서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냥 보통 보병 부대에 들어가 평범하게(?)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크가 조금 큰 편이긴 하다. 하지만 일어서지 않았다고 무슨 엄청난 치도곤을 당했을 리도 없다.


그런데 '벌떡' 일어났다.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의 온화하고 점잖은 인상에 순간 끌렸던 것 같다. 혹독한 신병 훈련으로 판단력이 마비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왠지 우리를 조금은 편안한 곳으로 이끌 것 같았다. 불과 몇 분 뒤에 그가 보병연대 수색대원을 차출하러 온 연대 정보하사관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경악할 틈도 없이 시린 손 불어가며 신원조회 서류를 작성하던 스무 살의 '89번 훈병 정은균'이 손에 잡힐 듯 선연하다.

어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흔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교무회의 같은 데서 '벌떡' 일어나 입 바른 소리를 하는 이른바 '벌떡교사'를 떠올려 보라. 그들은 스스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학교 관리자들이 싫어할 말만 따따부따 해댄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상식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는 뒷담화 표적이 된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반편일까.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캠퍼스와 아카데미를 벗어난 한 사회학자가 쓴 '세상물정론'이다. 여느 사회학자가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며 그들만의 '전문화' 성채를 구축하는 동안 저자 노명우는 "잃어버린 세속적 삶으로 이끄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기 위해"(7쪽) 연구실을 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관찰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죄가 없는 개인들이 죄가 많은 사회에게 불만을 말하는 애처로운 시도이다. 모두가 리얼리티에서 눈을 돌리고 위안을 찾기 위해 위안의 노래만을 듣는 시대에 사회학자는 '콜드 팩트'(평범하고 상식적인 삶과 생각에 충격이나 자극을 주는 냉정한 사실-기자 주)를 혼자 부르고 있다. 그 외로운 노래가 합창이 될 때, 상처받은 사회는 비로소 자기 치유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66쪽)

저자의 눈길에 포착된 '콜드 팩트'는 25개의 열쇳말로 정리된 것들이다. '상식', '명품', '프랜차이즈', '이웃', '게으름', '성숙' 등 평범하고 세속적인 단어들이다. 이들 25개의 열쇳말이 '세속이라는 리얼리티'(1부), '삶의 평범성에 대하여'(2부), '좋은 삶을 위한 공격과 방어의 기술'(3부) 등에 분산되어 자리잡고 있다. 그중 몇몇을 보자.


먼저 '배운 괴물들의 사회'로 제목을 잡은 '성숙'. 성장하면 성숙하는 건 자연의 이치다. 사람이 그러면 좋으려만 그렇지 않다. 저자는 70퍼센트 중·후반대의 최근 대학 진학률, 2010년 박사학위자 1만 322명, 1985년 0.3명이었다가 2009년 2.1명으로 크게 증가한, 인구 1만 명 당 박사학위 취득자 수, 2010년 발행 도서의 발행 종수 4만 291종 등등을 '지식사회'로서의 한국의 증표로 열거한다.

그렇게 배움에 투자했지만 '싸가지 없는 애들'과 '추잡스런 중년'과 '나잇값 못하는 늙은이들'이 뒤섞인 지하철 풍경은 배움이 사람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철썩 같은 믿음을 접도록 만든다. (241쪽)

저자는 '얼치기 배움'이 판치는 배움과 교육이 출세 수단이나 돈벌이를 위한 미래 투자로 더럽혀진 현실을 개탄한다. 그는 성장과 성숙이 일치하지 않은 사회에서 교육은 위인을 길러 내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의 생산 공장으로 전락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말처럼, 배우지 못한 장발장은 고작 촛대나 훔칠 뿐이지만, 배웠지만 성숙하지 못한 인간은 못 배웠지만 성실한 사람들의 삶을 통째로 파괴하는 괴물 짓을 서슴지 않는다.

다음은 '임금노동의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된 '노동'. 사회생활을 하는 대다수는 임금노동자다. 그래서 저자는 임금노동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저자를 따라가 보자. 임금노동에 의해서 먹고사는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대다수가 임금노동자인 우리는 노동해야 한다는 절실함의 강도도 유사하다.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퇴근시간이 넘어도 퇴근을 못하고, 영어학원에서 밤늦게 졸음을 쫓아가며 자기계발에 몰두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임금노동이 평범한 사람들의 운명과도 같은 무게감을 지닌다면, 그 운명에 맞서는 방법 중 하나는 임금노동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다. 그것을 거창한 말로 표현하면 연대라 한다. 연대가 지배적인 사회에선 거대한 공통분모에 주목하고 복지라는 수단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는 임금노동이라는 굴레를 헐겁게 해 주지만, 연대라는 단어를 살해한 사회에선 누구나 자신만의 예외를 꿈꾸며 임금노동의 세계로부터 혼자 탈출할 궁리를 한다. (193쪽)

자본 권력,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지배층들은 그런 사람들을 선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자 탈출할 궁리'만 한다. 회식 뒤 간 노래방에서 넥타이를 이마에 두른 채 상사 노래에 맞춰 탬버린을 친다. 뒤에서는 더럽고 치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앞게 가선 '짜웅'('아부'의 속된 표현-기자)을 한다. 그렇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세상을 살자 '연대'의 본보기인 노동조합 조직률은 10퍼센트 아래로 추락했다.

그런데 보자. '각자도생'은 과연 성공했는가. '성공'했다는 그들의 삶은 과연 진정으로 행복할까. 세상에는 여전히 복권을 사는 사람과 더 이상 복권에 기대하지 않고 연대라는 죽어 버린 단어에 귀 기울이는 두 종류의 임금노동자가 있다. 저자는 묻는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마지막으로, 도회적 일상의 전형적인 풍경을 대변하는 단어가 돼 버린 '프랜차이즈'를 보자. 퇴직 후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여는 이들 이야기는 너무나 상투적이다. 안타까운 영웅의 실패담으로 부를 만한 유형적인 구조를 따른다. 그들은 퇴직금 전부를 쏟아부은 가게를 야심차게 시작한다. 2, 3년 밤낮으로 열심히 일한다. 불행하게도 망한다. 졸지에 중산층에서 극빈층으로 전락한다. 세상 쓴맛을 그제서야 안다.

망하자고 자영업을 시작하는 이들이 있을까. 그들 각자는 가장 절실한 마음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저자는 어떤 프랜차이즈든 개개인은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개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의 총합도 합리적일까.

던킨도너츠 곁에는 미스터도넛이, 둘둘치킨 옆에는 굽네치킨이, 김밥천국 곁에는 김가네김밥이,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나란히 영업을 하고 있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하나하나의 합리성이 모여 비합리성을 연출하는 순간이다. 작은 합리적 선택이 쌓여 빚어낸 거대한 비합리성 속에서, 자본의 지배가 확대되면 우리는 자본의 울타리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쇠 감옥'에 갇힌 꼴이 된다. (51쪽)

저자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자본이 도시 곳곳에 심어 놓은 '모세혈관'에 비유한다. 그들 자본끼리는 별로 싸우지 않는다. 가맹점 사장들이 돈을 갖다주기 때문일 터. 그런데 정작 붙어 있는 빵집과 마주 보고 서 있는 편의점들은, 서로 붙어 있고 마주 보고 있어도 이웃일 수 없는 비합리적인 무한의 생존경쟁을 반복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다.

글머리의 '벌떡' 이야기로 돌아가자. 만인 대 만인의 무한 경쟁이 벌어지는 이 무서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벌떡' 일어나 외롭고 힘들다고 외쳐야 한다. 나만 잘못이 아니라고, 세상에도 큰 문제가 많다고 고함칠 줄 알아야 한다. 저자가 말한 '콜드 팩트'가 필요한 순간이다.

'벌떡' 일어나 '콜드 팩트'를 말하는 이가 하나 둘 늘어날 때, 세상은 조금이나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지 않을까. '벌떡교사'가 넘치는 학교는 시끄럽고 어수선하지만 침묵과 순종이 지배하는 학교보다 좀 더 건강해질 것이다. '벌떡회사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들의 사무실에 '짜웅'이 들어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슈퍼갑질'하는 함량 미달 정치인도 '벌떡시민'이 힘을 합치는 동네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리라.

(착하고 선한 삶이 아니라-기자) 좋은 삶을 기대하는 유토피아적 희망은 삶의 무시무시한 리얼리티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먹고 자란다. 듣기 좋은 말은 때로는 거짓이다. 몸에 좋은 약은 불가피하게 쓴 맛을 지닐 수도 있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세상도 사실은 환영일 수 있다. 세상은 분명 아름답지만 언제나 세상이 아름답지는 않다. ···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도 있지만, 짐승만도 못한 인간도 있는 법이다. 이러한 세속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삶의 리얼리티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라는 환등상(幻燈像)의 등불을 끄게 만드는 힘의 근원이다. (20쪽)

저자는 좋은 삶을 위해 교활해서는 안 되지만 영리할 필요는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영리함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나 물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으로 좋은 삶을 지키기 위한 방어술과, 좋은 삶을 훼방 놓는 악한 의지의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공격술을 모두 터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삶을 향해 가는 비법이라는 의미의 복원된 처세술"(18쪽)이 중요한 까닭이다. 그런 진짜배기 '처세술' 책이 고작(?) '16,800원'이니 이 정도면 거저 아닌가.
덧붙이는 글 <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 12. 30 | 308쪽 | 16,8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사계절, 2013


#<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사계절 #세속 #복원된 처세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AD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대통령, 또 틀렸다... 제발 공부 좀
  2. 2 한국에서 한 것처럼 했는데... 독일 초등교사가 보내온 편지
  3. 3 임성근 거짓말 드러나나, 사고 당일 녹음파일 나왔다
  4. 4 저출산, 지역소멸이 저희들 잘못은 아니잖아요
  5. 5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요양원 나온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한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