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3년·집유 5년' 재벌 면죄부 공식 바뀌었다

[분석] 재계3위 최태원 SK그룹 형제 실형 선고... SK, "최악의 시나리오" 침통

등록 2014.02.27 20:37수정 2014.02.2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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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뭔가 한가닥 기대를 했었는데..."

전화 수화기 너머로 아쉬움이 짙게 배어 나왔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에스케이(SK)그룹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27일 최태원 SK회장 형제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이 최종 확정되자, 말그대로 침통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말처럼 SK쪽에선 이날 대법원의 판단에 희망을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법원이 김승연 한화 회장 등에 대해 집행유예 또는 일부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의 경우는 달랐다. 오히려 최 회장 뿐 아니라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까지 형제가 모두 실형을 선고 받았다. 재벌총수 형제가 배임 등의 이유로 3년 넘게 옥살이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법원과 재계 주변에선 향후 사법부의 기업범죄에 대한 단죄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벌 양형기준 이후 총수일가 첫 실형사례... 법원 "현직 재벌총수 실형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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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최태원 SK회장 형제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 유성호


실제 최 회장의 사건의 경우 1심부터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법원의 의지가 분명했다. 1심 재판부는 "SK그룹을 대표하는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 우리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을 피고인의 형사 책임을 경감하게 하는 주요 사유로 삼는데 반대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항소심에선 아예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동생까지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재벌 오너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회삿돈을 마음대로 사용했는지의 여부였다. SK쪽에선 검찰수사때부터 김앤장 등 내로라는 대형 로펌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검찰과 재판과정에서 변호인단 스스로 앞뒤 맞지 않는 변론을 펼치는 등 우왕좌왕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김앤장, 태평양 등 변호인단이 바뀌면서 변론과정 자체가 매끄럽지 못했다"면서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가며 비용도 엄청나게 썼을테지만 결국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최 회장 등은 재판과정에서 바뀐 변호인단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다가 결국 사법부의 불신만 더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법원 주변에선 "법정에서까지 수시로 증언을 바꾸는 모습은 마치 '돈으로 사법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재벌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허황되고 탐욕스러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계열사의 자금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이들 두 형제에 실형을 선고했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 후 "재계 서열 3위의 SK그룹 회장과 부회장이 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유용한 행위 등에 엄정한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이번 판결은 경제민주화 요구에 따라 재벌 총수에 대한 양형 강화된 후 실형이 확정된 첫번째 사례가 됐다.

충격의 SK, "참담하고 비통"... 재벌총수의 사회적책임 강화 계기돼야

SK그룹은 말그대로 '침통' 그 자체다. 이날 대법원 선고가 나오자 회사쪽은 "SK를 사랑하는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심겨를 끼쳐 드린점에 깊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많은 노력에도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해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SK그룹은 이날 오전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를 긴급 소집하는 등 위기 대응책을 논의하기에 바빴다. 김창근 협의회 의장을 비롯한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총수의 경영공백이 길어짐에 따라 신규사업 진출 등 글로벌 사업 분야에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를 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이날 회의에서 "몇년을 걸쳐온 이번 재판이 큰 상처를 남기고 마무리됐다"면서 "지금부터 그 상처를 보듬고 새살이 돋아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또 "SK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성장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의 당부에도 그룹 안팎에서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그룹 한 임원은 "요즘 글로벌 시장의 경쟁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면서 "아무리 시스템 경영을 한다고 하지만 총수 오너중심의 빠른 의사결정 등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위축은 결국 투자와 고용창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벌 총수 중심의 투명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위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커지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SK 사건을 계기로 더이상 총수 오너의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가 동원되는 구시대적인 행태가 사라져야한다"면서 "투명과 윤리경영, 사회적책임은 이제 거스를수 없는 대세이며, 기업들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부장도 "이번 판결은 그동안 재벌총수는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더이상 사법부가 경제권력에 면죄부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인다"고 평가했다.
#최태원 회장 #재벌총수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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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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