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법, 이런 바보같은 법이라니

[갈등의 정보사회학 시리즈③] 셧다운제, 청소년 보호인가 규제인가

등록 2014.03.18 21:30수정 2014.04.0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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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우리 앞에 열린 정보사회는 지난 산업사회의 유물들과의 갈등과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갈등은 불가피하다. 새로운 시대의 첫 장을 위해서는 당연히 존재해야 된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의 본질, 논쟁의 사회적, 철학적 맥락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논쟁을 통해 정보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정보사회학을 전공한 필자가 매주 하나씩 주요 쟁점들을 분석·정리해서 올린다. 독자 여러분의 논쟁적 참여를 기대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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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 en.wikipedia.org


<신데렐라>라는 동화 속 신데렐라는 계모 밑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낸다. 어느 날 왕자님이 무도회를 열었고 계모의 두 딸은 화려하게 차려 입고 나갔지만 신데렐라는 일이 많아 갈 수가 없었다. 또 입고 갈 옷도 없었다. 그 때 마술지팡이를 갖고 있는 요정이 나타나 호박으로 마차를, 생쥐로 말을, 큰 쥐로 마부를 만들고 예쁜 옷도 만들어 줘서 신데렐라는 무도회장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맘껏 놀 수가 없다는 사실! 밤새 놀고 싶은데 12시가 되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1초라도 늦으면 안 된다. 할 수 없이 집에 돌아온 신데렐라는 무엇을 할까?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잘까 아니면 무도회에서 만난 멋진 왕자님을 생각하면서 밤새 그리워할까?     

'신데렐라법'의 등장

2011년 11월 21일 인터넷 <매일경제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셧다운제' 해도 즉효 없었다

소위 '신데렐라법'으로 불리며 심야시간(자정~오전 6시)까지 16세 미만 청소년에 대해 온라인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20일 0시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부모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접속하는 등 법을 무력화시키고 있어 실효성 논란이 첫날부터 벌어지고 있다. 실제 PC방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셧다운제가 본격 시행됐음에도 태연한 모습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우회 수법으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11월 21일은 소위 '셧다운제'가 실시된 둘째 날이었다. 셧다운제는 11월 20일 오전 0시부터 시행되었기 때문에 <매일경제신문>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비판적 기사를 게재했다. 하루 만에 새로운 법률에 대한 비판적 분석 기사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률 제정이나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에서 여러 차례 논의, 토론, 논쟁을 거치게 된다. 그 와중에 이해 집단 간 갈등도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일정한 합의를 통해 제정이나 개정에 이르게 된다. 이후 계도 기간 등을 거쳐서 공포하게 되고 사회적 정착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즉, 신규 제정된 법률이 사회적으로 적절하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반적 상황을 감안하면 <매일경제신문>의 위 기사는 성급한 분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런 기사가 나오게 되었는지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우선 셧다운제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아보자. 셧다운제는 청소년보호법 제26조의 별칭이다. 청소년 보호법의 목적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과 약물 등이 청소년에게 유통되는 것과 청소년이 유해한 업소에 출입하는 것 등을 규제하고 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구제함으로써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청소년보호법 제1조)에 있다.

이제 구체적으로 문제가 된 26조를 살펴보자.

청소년보호법 제26조(심야시간대의 인터넷게임 제공시간 제한)
① 인터넷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법률에서 중요한 것은 "청소년(만 16세 미만)이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온라인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게임 사이트에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청소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청소년이라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온라인 게임을 운영하는 회사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된다. 많은 청소년들이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고 그로 인하여 절대적 수면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이 법률로 인해 전부는 아닐지라도 꽤 많은 청소년들이 밤에는 '편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이 법률의 도입에는 청소년 수면권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규제, 과연 기술적으로 가능한가?

문제는 '청소년 수면권'을 법률로 보호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법 집행의 실효성 여부였다. 셧다운제는 사실상 관리가 불가능한 법률이다. 앞에서 인용한 <매일경제신문> 기사를 봐도, 청소년들은 법 시행 첫날부터 "부모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접속하는 등 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하지 않았나.

우회 수법을 통해 얼마든지 게임을 즐길 수 있다면 이미 제26조는 법률로서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 보호라는 취지는 동의할 수 있지만 법률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적 규제가 현실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면 법률로서의 효력은 정지된다. 남는 것은 형식적 당위성뿐이다.

우선 청소년들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로 가입자 인증을 받는 것을 기술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사실상 자녀들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거나 차용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하여 대외적으로 문제를 삼는 부모는 없다. 또 외국 온라인 게임회사의 경우 사용자 인증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규제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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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9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G-STAR 2012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를 방문했다. 박 후보가 모교인 서강대의 게임교육원 부스를 방문하자, 한 학생이 '셧다운제' 도입에 찬성한 박 후보의 입장을 따져 묻고 있다. ⓒ 권우성


국내 업체의 경우에도 가입자 인증 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지 않는 회사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개인정보 유출로 주민등록번호 대신 다른 방식의 인증시스템이 요구되고 있다. 개인 정보가 많이 담겨 있는 주민등록증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거의 없고 온라인 서비스 이용 시 주민등록번호 입력을 요구하는 나라도 없다. 보호받아야 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그 요청에 순응하는 경우는 매우 특수한 사례다.

최근 일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제공해 준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악용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그저 간단한 사과 한마디면 끝난다. 정보 네트워크가 발달할수록 정보의 유통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번 유출된 정보를 회수할 수는 없다.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셧다운제는 그 전제가 주민등록번호에 의존하고 있어서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인권에 대한 사회적 요구 확대와 디지털 기술 발전에 의해 그 실효성이 의문시 된다.

달라진 정보통신 환경 또한 이 법을 무력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처음에 규제 대상은 PC 기반의 온라인 게임이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는 16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보급률이 낮아서 셧다운제에서 제외되었다. 당초 셧다운제의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는 2011년 2년의 유예기간 후에 모바일 게임의 중독성 여부를 판단한 후, 결과에 따라 2013년 5월부터 셧다운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사이 정보통신 환경이 변화되어 이제는 많은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소지하고 있고, 보급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보급이 가속화될수록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용 게임이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미 많이 출시되어 있다. 청소년들의 대부분이 이미 모바일로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고 그 중독성 여부가 PC 기반의 온라인 게임보다 덜하다는 증거는 없다. 디지털 콘텐츠는 기존의 아날로그 콘텐츠보다 더 유연한 형태로 표출되기 때문에 특정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와 상관이 없다. PC 화면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은 당연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에서도 즐길 수 있다. 결국 온라인 모바일 게임의 실질적인 규제 가능성 여부와 관련 게임업체 등의 항의 등이 계속되면서 모바일 셧다운제는 2015년까지 2년 더 유예기간을 갖게 되었다. 2015년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계속 유지되기 힘들어 보인다.

이외에도 인증방식이 다른 외국 온라인 게임업체와 국내 업체와의 형평성 문제, 국내 회사라 하더라도 게임용 서버를 해외에서 운영하는 경우 등은 단속하기가 쉽지 않은 사례가 많다. 또 온라인 게임업체와 오프라인 게임 업체 간 차별 또한 중요한 문제다. 단순히 네트워크 기능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중독성이 심하다는 결론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동일한 규제나 허용이 필요한 지점에서 법이 형평성을 상실한다면 결국 자발적 강제력은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셧다운제 취지 동의하지만, 정보화시대 적절성 의문

온라인 게임 국제 경기에 참가한 15세 청소년 프로게이머가 셧다운제 때문에 경기에서 졌다. <동아일보>의 2012년 10월 16일 기사를 보자. 

"아, 맞다. 셧다운 당하는데…. 헐."

13일 밤 12시가 다가오는 때였다. 이승현 선수는 게임 속 대화 창에 이 한마디를 남기고 접속을 중단한 채 신데렐라처럼 게임 화면을 떠났다. 프로게임단 스타테일 소속 프로게이머인 이 선수는 중학교 3학년 학생으로 15세다. 한국에서 16세 미만 청소년은 자정이 지나면 게임을 할 수 없다. '셧다운제' 때문이다.

경기 도중 접속이 끊긴 이 선수는 부모의 이름으로 미리 등록한 다른 아이디로 게임에 다시 접속했지만 7전 4승제 경기에서 상대 선수에게 3세트를 내리 내주며 결국 4 대 1로 패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셧다운제의 폐해에 관한 것이 아니다.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글로벌 환경에서 네트워크를 차단하려는 위험한 시도가 보여주는 한계성이다.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함께는 가야 하는데 법이 그 동행을 막고 있다. 규제는 최소화되어야 하고 자율성은 확대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셧다운제의 취지 자체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 정보화시대의 적절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규제가 더 이상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밤 12시 넘어 셧다운제로 게임을 못하게 되면 청소년들은 무엇을 할까? 법을 만든 사람들, 그 법에 동의한 사람들의 의도대로 적절한 수면을 취할까?
덧붙이는 글 김홍열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독문학, 국문학을 공부했고 성공회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박사 과정 후 <정보네트워크 변화에 따른 가상공간의 확장과 권력관계의 재구성>으로 학위 취득했다. 저서로는 <축제의 사회사> (2010. 한울), <디지털 시대의 공간과 권력>(2013, 한울)이 있고 현재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성공회대와 명지대에서 '과학기술의 사회학'과 '정보사회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셧다운제 #게임중독 #정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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